Beautiful Top Star RAW novel - Chapter (148)
우혁은 로스엔젤리스행 항공기 비즈니스석에 앉아 생각에 잠겨 있었다.
식당에서 박 감독으로부터 들은 꿈 이야기가 뇌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박 감독은 항공기에 오르자마자 곯아떨어졌다.
백곰은 박 감독에게 자신의 어깨를 빌려 주었다.
“형! 박 감독님이 식당에서 한 이야기, 아우라가 엄청났어. 듣는 순간, 찬란한 아우라가 박 감독님 주변을 에워싸지 뭐야.”
백곰이 작은 소리로 속삭였다.
우혁은 백곰의 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제목조차 없는 이야기.
박 감독의 이야기를 듣는 순간, 강렬한 끌림이 느껴졌다.
박 감독이 이야기를 시작할 때 가능하면 희망적인 말을 할 생각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좌절에 빠져 있는 사람을 걷어차서 바닥에 주저앉힐 수는 없지 않은가.
살짝만 건드려도 풀썩 주저앉을 것 같은 박 감독이 애처로웠다.
칭찬과 격려, 희망의 말을 하리라 마음을 먹고 이야기를 듣기 시작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박 감독의 이야기에 빠져 들어 격려를 해야겠다는 생각마저 잊어버렸다.
이건 영화로 만들어야 돼!
이 영화에 출연해야겠어!
그러나 박 감독이 처한 현실을 생각하면 암담했다.
실패한 감독인데, 투자자가 나타날까?
나타날 리가 없다.
시나리오가 좋다고 판단되면 시나리오를 팔라고 할 것이고, 감독을 맡기지는 않을 가능성이 높다.
기시감!
[길 밖의 새>와 상황이 비슷하다. [길 밖의 새>를 시작할 때, 아무도 박 감독을 신뢰하지 않았다.영화가 만들어지자 박 감독에 대한 의구심은 사라졌다.
그러나 두 번째 작품에서 크게 실패하면서 [길 밖의 새>로 쌓았던 신뢰를 모두 잃고 말았다.
신뢰를 쌓기는 힘들어도 무너지는 건 한순간이다.
박 감독에게 기회를 줄 영화사와 투자자를 찾는 일은, 백곰의 말마따나 등나무 의자에서 등나무 꽃이 피기를 기다리는 게 더 빠를지도 모른다.
투자자를 구할 수 없다면, 직접 투자를 하면 된다.
투자를 결정할 만큼 박 감독의 이야기가 마음을 끌었다.
“어느 날 정체불명의 바이러스가 퍼집니다.”
식당에서 박 감독이 이야기를 시작했을 때, 좀비 영화인 줄 알았다.
또는 재난영화이거나.
좋아하는 소재는 아니었으나 우혁은 귀를 기울였다.
“이 바이러스에 걸리면 사람이 무거워져요.”
“사람이 무거워진다구요?”
백곰이 박 감독의 말에 호응했다.
“예! 자신의 체중보다 훨씬 무거워지는 거예요.”
“어떻게 그럴 수가 있죠?”
“그건 저도 잘 모르겠어요. 꿈에 나왔으니까요.”
“그래서요?”
백곰이 박 감독에게 이야기를 재촉했다.
“바이러스에 걸린 사람들이 지나간 아스팔트에는 그 사람의 발자국이 생길 정도예요.”
“모래사장을 걸을 땐 무릎까지 푹푹 들어가겠네요.”
백곰이 박 감독의 말을 부연했다.
“그렇죠. 물에 들어가면 가라앉아 버려요. 납처럼 말이에요.”
“저런!”
백곰이 추임새를 넣었다.
“처음에는 몇몇 사람들에게 증상이 나타나지만, 곧 전 세계로 퍼져 나가죠.”
“인터넷 실검 1위를 차지할 것 같아요. 뉴스에도 나오고.”
“그렇겠죠. 전 세계 정부에서 이 정체불명의 현상을 연구합니다. 바이러스라는 걸 밝혀내죠. 그리고 바이러스에 걸린 이들에게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는 사실도 발견해요.”
“공통점이 있나요?”
“잘 웃지 않고, 걱정이 많거나 우울증 증세가 있어요.”
우혁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감이 왔다.
주제가 어렴풋이 손에 잡혔다.
소재도 참신하고.
영화로 만들면 재미있을 것 같다.
캐릭터를 구축한 뒤 내적 ․ 외적 갈등을 증폭시키고, 에피소드와 사건들을 긴밀하고 밀도 있게 조직한다면!
사회 풍자와 메타포가 담긴 영화.
“바이러스 증세가 심한 경우는 마룻바닥을 뚫고 아래층으로 떨어지기도 하죠.”
박 감독은 이 지점에서 비현실적인 과장을 쓸지도 모르겠다.
“바이러스에 걸린 사람들이 작은 씽크홀을 만들면서 땅속으로 들어갈 수도 있겠군요.”
우혁이 박 감독의 말에 호응했다.
“씽크홀!”
박 감독이 가방에서 노트를 꺼내 메모를 했다.
“바이러스 이름이 뭐죠?”
우혁이 물었다.
“잘 모르겠어요.”
박 감독이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이름을 지어 줘야겠군요. 플럼범 바이러스 어때요?”
우혁이 말했다.
“플럼범 바이러스?!”
백곰과 박 감독이 동시에 우혁을 쳐다보았다.
박 감독은 노트 중앙에 큰 글씨로 메모를 했다.
‘플럼범 바이러스(Plumbum Virus)’
“플럼범이 무슨 뜻이야?”
백곰이 우혁에게 물었다.
“납이라는 뜻이에요.”
박 감독이 우혁 대신 대답했다.
“플럼범 바이러스! 딱 어울리는 이름입니다. 제목을 ‘플럼범 바이러스’라고 해도 되겠어요. 아니면 ‘작은 싱크홀’도 괜찮겠구요.”
“제목은 차차 생각하기로 하고, 이야기를 더 들어보고 싶네요. 플럼범 바이러스에 걸린 사람들 때문에 사고가 발생할 수도 있겠어요. 운전하려고 차를 타면 펑크가 날 수도 있지 않을까요?”
우혁이 빙그레 웃으며 박 감독에게 질문을 던졌다.
아이디어 초기 단계에서는 프리 토킹이 중요하다. 다소 엉뚱하고 말이 되지 않더라도 자유롭게 자신의 생각을 피력하다 보면 좋은 아이디어를 얻을 수도 있다.
“플럼범 바이러스에 걸린 사람이 배에 타면 배 바닥에 구멍을 낼 수도 있죠.”
박 감독이 한술 더 떴다.
황당하지만 그럴 수도 있다.
과유불급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박 감독의 영화는 특유의 과장법을 통해 풍자를 극대화하곤 한다.
“비행기를 타고 가던 바이러스 감염 승객이 비행기에 구멍을 내면서 아래로 떨어질 수도 있어요.”
백곰이 박 감독의 말을 받아 머리에 떠오르는 생각을 말했다.
우혁과 백곰이 흥미를 보이고 관심을 드러내자 박 감독이 신이 난 표정을 지었다.
“사회에서는 플럼범 바이러스에 걸린 사람들을 경계하겠군요.”
우혁이 갈등 요소를 언급했다.
“택시 기사는 승차 거부를 할 테고, 선박이나 항공기에서도 탑승을 거절할 테니까요.”
박 감독이 우혁의 말에 공감했다.
“엘리베이터에 타도 안 돼요. 추락 사고의 위험이 있잖아요.”
백곰이 박 감독의 말을 이어받았다.
플럼범 바이러스에 걸린 등장인물이 급하게 외국에 갈 일이 있어 항공기에 탑승하려는데 탑승을 허락받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는 에피소드를 생각할 수도 있겠다.
“그렇죠.”
박 감독은 백곰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바이러스에 걸린 사람들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 사이에 갈등이 발생하겠군요. 각각의 정부에서는 경찰력을 동원해 바이러스에 걸린 사람들을 색출하면서 갈등이 증폭하겠죠.”
우혁이 말했다.
박 감독은 행여 놓칠 새라 우혁의 말을 다급하게 메모했다.
“플럼범 바이러스는 어떻게 전파되나요?”
우혁이 박 감독에게 질문을 했다.
“그건 잘 모르겠어요.”
“그 이유를 만들어야 할 것 같은데요. 가령 시선을 교환한다던가, 일정 시간 이상 같은 공간에 머문다던가, 육체적 접촉을 한다던가···.”
“예, 알겠습니다.”
박 감독이 다시 메모를 했다.
“바이러스를 퇴치할 수 있는 방법은 무얼까요?”
우혁이 다시 질문을 던졌다.
“아직 그것까지는 생각해 보지 않았어요. 꿈에서는 나타나지 않았거든요.”
“바이러스에 걸린 사람들의 공통점이 잘 웃지 않고 우울증에 걸린 사람이라고 했으니까, 우울증을 극복할 수 있도록 해야 하지 않을까요? 환자에게 많이 웃을 수 있게 하고, 행복을 느끼게 해주면 증세가 호전되는 거죠.”
“그렇겠네요.”
박 감독이 고개를 끄덕이며 메모를 했다.
“중요한 건 등장인물일 것 같군요. 바이러스에 걸린 남주나 여주가 병에 걸려 고통스러워하면서 병을 극복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과정을 그릴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재미있겠다!”
백곰이 끼어들었다.
박 감독은 메모를 하느라 정신이 없었고.
“남주의 아내가 바이러스에 걸렸다고 가정하면, 바쁘다는 핑계로 아내의 우울증을 방치하던 남주가 바이러스에 걸린 아내를 지키고 구하기 위해 애를 쓴다면, 한 편의 드라마가 나올 수 있겠지요.”
우혁은 계속해서 떠오른 대로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머릿속에 에피소드들이 막 떠오르네요. 감동적인 이야기가 나올 것 같습니다.”
박 감독은 우혁의 말을 받아 적으며 흥분했다.
“배우님께 이야기하기를 잘한 것 같습니다. 막연했던 이야기가 많이 구체화되었거든요. 만약 이게 영화화된다면 극작가명에 배우님의 이름을 명기해야 할 거예요.”
박 감독이 우혁을 빤히 쳐다보았다.
“훈수 몇 마디 했을 뿐인데 그럴 수야 없지요.”
“아닙니다. 제 말대로 하는 게 맞을 겁니다. 백동수 씨 이름도 넣어야 하구요.”
박 감독의 말에 백곰이 눈을 휘둥그레 떴다.
“말도 안 돼요. 형은 중요한 얘기를 많이 했지만, 저는 감독님 말씀에 호응을 했을 뿐인걸요.”
“아뇨. 중요한 이야기를 해줬어요.”
박 감독의 꿈 이야기를 다 듣고 나서, 우혁은 박 감독에게 투자를 할 테니 이 이야기를 영화화하라고 권했고, 박 감독은 투자보다 출연을 부탁했다.
“배우님! 말씀은 고맙지만, 제가 배우님께 바라는 것은 투자가 아닙니다.”
“?”
“주인공이 필요합니다. 배우님께서 주인공으로 출연하지 않으신다면, 영화화할 생각 없습니다!”
박 감독은 배수진을 쳤고, 우혁은 캐스팅에 흔쾌히 응했다.
캐스팅 얘기가 끝난 뒤 박 감독은 시나리오 집필을 도와달라고 부탁했다.
“초고를 써서 보내드릴 테니까 수정해야 할 부분이나 보완해야 할 점이 있으면 의견을 주실 수 있는지요?”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시죠.”
세 시간 전에 나누었던 대화였다.
[플럼범 바이러스>.우혁은 영화 제목으로 안성맞춤이라고 생각했다.
우혁의 머릿속에서는 [플럼범 바이러스>가 계속해서 맴돌았다.
구체적인 에피소드들이 끊임없이 떠올랐다.
여자 주인공으로 캐스팅하고 싶은 배우를 생각해 보기도 하고, 레오가 카메오로 등장한다면 어떤 역할이 좋을지도 생각해 보았다.
떠오르는 대로 휴대전화에 메모를 해두었다.
우혁은 이번 영화 [플럼범 바이러스>에서 프로듀서 역할을 해보면 어떨까 싶었다.
시나리오, 배우 캐스팅, 촬영, 편집, 홍보, 투자, 재무까지 관여하면서 영화 시작부터 끝까지 책임지는 것이다.
물론 배우로 출연해 연기를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겠지만.
한국 영화계에는 프로듀서라는 개념이 낯설지만 할리우드의 프로듀서에 해당하는 역할을 하는 사람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영화 전반에 대한 총체적인 경험을 하는 것이 연기 생활에 도움이 되었으면 되었지 방해가 될 것 같지는 않았다.
다만 좀 더 바쁘게 살아야 할 테고, 휴식 시간 등을 희생할 각오를 해야 할 것이다.
“형! 도착했어.”
백곰이 우혁의 상념을 깨웠다.
백곰의 어깨에 기대어 곯아떨어졌던 박 감독도 눈을 떴다.
***
레오를 만나기로 한 레스토랑에 도착했다.
“제가 가도 되는 자리인가요?”
박 감독이 부담스러워하며 우혁에게 물었다.
“그럼요. 부담 가지실 거 없습니다. [플럼범 바이러스>에 카메오로 출연할지도 모르니까 감독님 마음에 드는지 판단해 주세요.”
웨이터의 안내를 받아 객실로 들어갔다.
원형 식탁과 소파, 욕실까지 딸린 넓고 화려한 객실이었다.
통창 밖으로 보이는 뷰가 근사했다.
식당 객실이 아니라 호텔 스위트룸의 거실 같았다.
객실 안으로 들어서자 소파에 앉아 있던 레오가 일어나며 반갑게 맞아 주었다.
“어서 와요!”
레오를 발견한 박 감독은 귀신이라도 본 것처럼 놀라며 우뚝 멈춰 섰다.
설마 이 사람을 카메오로 출연시킨다고?!
말도 안 돼!
“배컴! 안녕!”
레오가 백곰에게 인사를 했다.
“오스카는요?”
백곰이 레오에게 물었다.
“데이트하러 갔어요. 그건 그렇고, 이따가 알까기 한 판! 응?”
“이번에는 제발 절 좀 이겨 보세요.”
“반드시, 기필코, 꺾어 줄 테니까 두고 봐요.”
박 감독은 눈앞에서 펼쳐지는 광경을 믿을 수가 없었다.
백곰과 디카프리오가 친구처럼 허물없이 얘기를 나누고 있지 않은가.
“레오! 인사 드려요. [길 밖의 새> 감독님이에요. 박용구 감독님!”
우혁은 박 감독을 레오에게 소개시켜 주었다.
“안뇽하세요. 반갑습니다.”
레오가 한국말로 인사말을 하며 박 감독에게 머리를 숙였다.
“우혁에게 소개시켜 드릴 분이 있어요.”
레오가 소파에 앉아 있는 한 여성을 가리켰다.
낯이 익다.
“제니퍼 로렌스!”
박 감독이 중얼거렸다.
그녀는 제니퍼 로렌스였다.
제니퍼가 미소를 머금은 채 이쪽으로 걸어왔다.
제니퍼를 보는 순간, [플럼범 바이러스>에 들어갈 장면 하나가 떠올랐다.
‘플럼범 바이러스’에 걸린 유명 할리우드 배우, 레오와 제니퍼가 CNN 뉴스에 방송되는 장면.
그러려면 우선, 레오만큼 친분을 쌓아야 한다.
친분을 쌓는다고 해서 카메오 출연을 허락할지는 잘 모르겠지만.
안 되면 말고.
[ 차기작 [플럼범 바이러스> > 끝작가의말
프로듀서로서 우혁이 [플럼범 바이러스>를 어떻게 성공시키는지 기대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스톤 감독의 [위대한 시민> 촬영이 시작되고, 타란티노 감독의 [쓰레기들: 화이트, 블랙, 옐로우> 흥행 여부도 곧 드러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