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autiful Top Star RAW novel - Chapter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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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서 찾았어요, 이런 보물을?!
우혁은 백곰과 달리 [서울 가로등>이 썩 끌리지 않았다.
차기작은 TV 드라마보다 영화 출연을 원했다. 민환이 주인공으로 활약하고 있는 [생강>과 같은 매력적인 영화.
그런데 백곰이 꽂힌 작품은 영화가 아니라 TV 드라마였다.
그것도 공중파도 아닌 종편인 NTV의 월화 24부작 가족 드라마.
하지만 백곰을 믿기로 했다.
“형은 이 배역 별로 마음에 안 들지?”
“···.”
“내가 봐도 연기가 쉽지 않을 것 같아. 좀 전에 말한 건 순전히 내 느낌일 뿐이니까 너무 신경 쓰지 마. 차기작은 시간 여유를 가지고 좀 더 찾아보자. 형 마음에 드는 작품이 나타날 거야.”
“차기작 결정했다. [서울 가로등>으로.”
우혁은 [서울 가로등> 시놉시스를 읽으며 무덤덤하게 말했다.
그런 우혁을 백곰은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유앤씨에서 모시던 배우가 고른 작품과 배역이 성공을 거둘 것 같지 않다고 느낌을 말했다가 미친놈이라고는 소리를 들었다.
그 일이 있은 지 며칠 뒤 다른 매니저로 바뀌었다. 백곰이 무척 좋아하던 배우였는데.
그 배우가 유앤씨 대표에게 하소연을 했는지, 대표를 비롯해 직원들 모두 백곰을 미친놈 취급했다.
그런데 우혁은 전혀 다른 반응을 보이고 있다.
눈물이 핑 돈다.
“녹차 다 식었겠다.”
우혁이 문득 식은 녹차를 발견하고서 말했다.
“정 실장님이 정성껏 준비했는데 손도 대지 않은 걸 보시면 실망하겠는걸. 마시자!”
우혁의 말에 백곰도 그 말에 공감하며 얼른 찻잔에 녹차를 따랐다.
쪼르르르르.
우혁이 씩 웃으며 건배를 청했다.
짠!
차를 마셨다.
너무 진하게 우러나서 조금 떫고 미지근하다.
풀 냄새가 지독하다.
맛없다.
그때 밖에서 정 실장의 목소리가 들렸다. 한 직원과 얘기를 나누는 소리였다.
우혁과 백곰은 시선을 교환한 뒤 서둘러 녹차를 마시기 시작했다.
음미?
그런 거 모르겠고, 일단 마셔.
원샷.
원샷.
원샷.
원샷.
정 실장의 발소리가 가까워진다.
백곰이 주전자 채 손에 들고서 벌컥벌컥 마셨다.
소회의실 문이 막 열렸을 때, 백곰은 빈 녹차 주전자를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정 실장이 소회의실 안으로 들어왔다.
“꺼어억!”
그 순간, 백곰이 요란한 트림을 했다.
녹차 마시고 트림 하기는 처음이었다.
막걸리 트림 못지않게 고약했다.
“죄송합니다. 차 대접한다고 모셔 놓고 이렇게 싸돌아다니네요. 하는 일도 별로 없으면서 바쁘기만 합니다. 차 맛은 어떻던가요?”
“맛있게 잘 마셨습니다.”
우혁이 대답했다.
“백 대리, 아침에 마실 때하고는 맛이 다르죠?”
“예, 조금!”
아니, 많이!
“백 대리의 맛 표현이 듣고 싶네요. 아침에는 ‘싱그러운 바람 맛’이라고 하셨는데 이번에는 어떤 맛인가요?”
청량한 샘물 한 모금을 마시려고 샘터로 갔다가 발을 헛디뎌 물에 빠져 샘물이 코로 들어갔을 때의 맛?
“끄억!”
맛 표현을 하려는데 짧은 트림이 나오는 바람에 얼른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녹차가 소화에 좋습니다. 과식을 했을 때 녹차를 마시면 더부룩한 속이 가라앉죠.”
정 실장이 무안해하는 백곰을 두둔하는 말을 주워섬겼다.
“[서울 가로등> 가로등지기 역할 결정되지 않았으면 제가 해보고 싶습니다.”
우혁이 [서울 가로등> 시놉 위에 오른손을 올려놓은 채 정 실장에게 말했다.
정 실장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우혁의 말에 놀라 눈을 크게 떴다.
“가로등지기를요?”
“예! 제가 하면 안 될까요?”
정 실장은 즉답을 못하고 머뭇거렸다.
“사실 대표님께서 호출한 이유도 가로등지기 배역 문제 때문이었습니다. 엄 피디가 대표님께 연락을 한 모양입니다. ‘나무’ 초창기 때 엄 피디가 우리 소속사 배우를 캐스팅해서 많은 도움을 주셨거든요.”
정 실장이 우혁의 오른손 밑에 깔려 있는 [서울 가로등> 시놉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12월 첫 주 월요일부터 방송이 나가야 하는데 가로등지기 배역을 찾지 못해 난감한 상황이라고 합니다. 애초에 타 소속사에서 이 배역을 하려던 배우가 있었는데 갑자기 문제가 생기는 바람에 어그러져서 대표님을 통해 우리 소속사로 넘어온 거거든요.”
정 실장이 손에 들고 있던 휴대전화를 톡톡 두드렸다.
“두 배우한테 적극 추천을 했지만 고사하는 바람에 대표님도 곤란한 처지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대표님이 저를 호출해서 빨리 적당한 배우를 물색하라고 지시하셨죠.”
정 실장은 잠시 말을 멈추고서 우혁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저 개인적인 판단으로는 우혁 씨한테 이 배역을 권하고 싶지 않습니다.”
우혁은 아무런 대꾸 없이 침묵을 지켰다.
“좋은 작품 들어올 때까지 느긋하게 기다리시죠. 작품 계약했다가 더 좋은 작품을 놓칠 수도 있거든요.”
우혁의 아끼는 마음에서였다.
[생강> 촬영장에서 우혁의 연기를 보고 반했다. 그 눈빛에 어울리는 배역을 찾아주고 싶다. [서울 가로등>의 가로등지기는 [생강>의 고문기술자 역에서 보여 주었던 눈빛과 180도 다르다.자칫 잘못하다간 어리숙한 이미지로 전락하는 수가 있다.
배역도 문제이지만 드라마는 영화보다 완성도가 떨어진다.
드라마를 무시하는 것은 아니지만 영화만큼의 완성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최근에는 사전 제작을 하는 드라마도 생겨나고는 있지만 여전히 편성부터 따고 다급하게 촬영, 편집, 방영하는 관행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강우혁을 간신히 얻었다.
외삼촌이기도 한 안창현 대표를 설득하느라 어머니까지 동원하지 않았던가.
다이아몬드를 한물간 구닥다리 싸구려 구슬 목걸이에 끼워 넣고 싶지 않은 것이다.
“백 대리도 시놉시스 봤지요?”
“예? 예!”
정 실장의 갑작스런 질문에 놀라 백곰이 눈을 크게 떴다.
“어떻던가요?”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대박 날 것 같다고 하지 않았나?”
우혁이 불쑥 끼어들었다.
백곰은 당황해서 어쩔 줄 몰라 했다.
정 실장은 백곰이 자기와 같은 생각인 줄 알았다. 시놉과 대본을 읽어본 직원들 중에서 대박은커녕 중박을 얘기한 사람도 찾아볼 수 없었으니까.
“저희 소속사 입장에서야 배우님이 열심히 해주시면 그게 다 수익으로 연결되니까 마다할 이유가 없지만 길게 보십시오. 저희 소속사 좋은 시나리오 많이 들어옵니다. 조금만 여유를 가지시고 기다리시지요.”
“24부작이니까 3개월이면 종방입니다. 3개월 동안 차기작 고르겠습니다. 연기 연습한다 생각하고 임하겠습니다.”
“이런 말씀 드리기 무엇합니다만, 배우님께서 하고 싶다고 해서 되는 건 또 아닙니다. 촉박하긴 하지만 엄 피디, 유 작가 두 사람 모두 배우 캐스팅에 여간 까다롭지가 않거든요. 괜히 하신다고 하셨다가 상처만 입는 건 아닌지 염려스럽습니다.”
“그런 걱정은 하실 필요 없습니다. 퇴짜 맞는 데는 이골이 났으니까요.”
수많은 오디션에 떨어지지 않았던가.
“정말 이 배역 하실 겁니까?”
“예! 꼭 하고 싶습니다.”
우혁의 표정으로 보아 결심을 굳혔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정 실장은 설득을 포기하기로 했다. 배우 본인의 선택이 가장 중요하니까.
“알겠습니다. 그럼 그렇게 알고 진행하겠습니다.”
***
“누구요? 강우혁?! 처음 들어보는 이름인데.”
엄승태 피디가 낡은 휴대전화기에 대고 말했다.
– 지명도는 약하지만 영화, 드라마, 연극은 물론이고 뮤지컬까지 했던 실력파 배우입니다.
“내가 부탁했던 두 배우는 안 되는 겁니까?”
– 죄송합니다, 피디님! 다른 작품하고 일정이 겹쳐서요.
“그렇다고 듣도 보도 못한 배우를 쓸 수는 없어요. 촬영을 안 하면 안 했지.”
– 그럼 없던 일로 하겠습니다.
“일단 만나나 봅시다. 대신, 마음에 안 들면 바로 빠꾸시킬 겁니다.”
– 뭐, 그러시죠.
“내일 오후 2시에 우리 회사로 좀 보내 봐요.”
– 예.
엄 피디가 끊기도 전에 전화가 끊어졌다.
“뭐가 이렇게 으시딱딱해.”
엄 피디가 오만상을 찌푸리고서 휴대전화를 흘기며 투덜거렸다.
얼굴에 근심이 가득하다.
내일 오전에 다른 소속사의 배우를 만나기로 했다.
마음에 썩 들지는 않지만 이 배우로 가야 할 것 같다.
내일 오후 2시에 강우혁이라는 듣보잡 배우에게는 큰 기대가 없다. 정 실장에게 보내 보라고 한 것은 유은아 작가에게 생색을 내기 위해서일 뿐.
유 작가는 내일까지 최대한 많은 배우를 보고 싶다고 했다.
배우 많이 본다고 달라질 것 없다. 오디션을 보고 뽑을 시간이 상황이 아니다.
검증된 배우로 가야 한다.
첫 방이 12월 첫째 주 월요일이다.
곧바로 촬영에 투입할 수 있는 배우가 필요하다.
“내가 배우 난을 겪게 될 줄이야. 격세지감이로구만.”
엄 피디가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띵똥!
휴대전화 메신저 메시지 도착 알림음이 울렸다.
메시지를 확인했다.
정 실장이었다.
-강우혁 배우의 최근 연기 동영상입니다. 참고하시라고 보냅니다. 개봉 전이라 밖으로 나돌면 안 되는 영상이니 유출되지 않도록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럼···.
매니저가 보낸 메시지가 아니라 관공서에서 보낸 안내문 같다.
“보낼 거면 프로필을 보내든가. 무슨 작품을 했는지도 모르는데 무슨 연기 동영상이야.”
심드렁한 표정으로 동영상을 클릭했다.
“뭐야 이거? 휴대폰으로 찍은 동영상을 보냈어? 나 참!”
엄 피디는 볼 맛이 떨어져서 휴대전화를 들고 있던 손을 축 늘어뜨렸다.
휴대전화에서 조잡한 소음 같은 소리가 들려온다.
휴대전화를 들어 올려 동영상을 끄기 위해 화면에 손가락을 대려다가 멈추었다.
배우의 눈빛이 강렬하다.
“이 친구가 강우혁인가? 눈빛은 좋네!”
소파에 털썩 주저앉아 특유의 시니컬한 표정을 지은 채 동영상을 보았다.
엄 피디의 표정이 조금씩 바뀌었다.
소파에 반쯤 누운 자세로 앉아 있다가 천천히 자세를 일으켰다.
“조연이 아니라 주인공 감이잖아! 정 실장이 시건방을 떨 만하네.”
정 실장이 보내 준 세 개의 동영상을 차례로 다 보았다.
동영상을 다 본 엄 피디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좁고 너저분한 사무실 안을 초조한 듯 왔다갔다했다.
문득 걸음을 멈추고서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유 작가, 내가 동영상 하나 보낼 테니까 봐봐요. 일단 보고 전화 줘요.”
전화를 끊자마자 메신저로 동영상을 보냈다.
그러고는 다시 사무실을 왔다갔다.
이쪽에서 저쪽으로.
다시 저쪽에서 이쪽으로.
그러더니 우뚝 멈춰 서서 혼잣말을 했다.
“큰일이네! 이 친구한테 꽂혀 버린 것 같단 말이지. 이러다 그 친구 놓치면 나 돌아버리는데. 이 아줌마는 왜 전화를 안 해. 동영상 몇 개 보는 데 뭐 이렇게 오래 걸려.”
엄 피디는 구시렁거리며 전화를 걸려는데 착신음이 울렸다.
“동영상 봤어요?”
– 봤어요.
“동영상에 찍힌 배우 어때요?”
– 설마 가로등지기?
“괜찮겠어요?”
– 헐! 대박! 어디서 찾았어요, 이런 보물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