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autiful Top Star RAW novel - Chapter (175)
“세 작품을 다 하겠다고?”
백곰이 놀란 눈으로 우혁을 바라보았다.
“세 작품 모두 6개월 뒤에 크랭크인해야 돼. 두 작품도 동시에 하기 힘든데, 세 작품을 어떻게 해. 무리야.”
“그래요, 오빠! 한 작품만 하세요. 건강 해치면 어떡해요.”
송유미가 백곰을 거들었다.
“내가 하겠다는 게 아니라, 소속사 배우에게 줄 생각이야.”
우혁이 말했다.
“소속사 배우? 어느 소속사?”
“백동수가 대표로 있는 소속사.”
“백동수?”
백곰이 기획사 중에서 대표가 백동수인 곳을 떠올리느라 눈을 치떴다.
눈알을 데굴데굴 굴린다.
송유미도 검지를 깨문 채 백곰과 똑같은 모습을 취했다.
둘 다 왜 이렇게 귀여운 거냐!
“새로 생긴 소속사야?”
백곰이 물었고, 송유미는 눈을 깜빡이며 우혁을 쳐다보았다.
“곧 생길 소속사야.”
우혁의 말에 백곰과 송유미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왼쪽으로 5도 정도 갸웃.
눈을 깜빡 깜빡.
데칼코마니 같다.
우혁은 자신의 계획을 털어놓았다.
“배우 전문 기획사를 차릴 생각인데, 두 사람 생각은 어때?”
우혁의 말에 백곰과 송유미가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배우 전문 기획사?”
백곰이 되물었다.
“대표는 동수 네가 맡아줘.”
“내가 대표를? 말도 안 돼!”
백곰이 눈을 크게 떴다.
송유미는 우혁과 백곰을 번갈아보았다.
자기가 있어야 할 자리가 아닌지 가늠하느라 연신 눈을 깜빡이며.
“초기 투자금은 내가 댈 테니까, 네가 회사를 운영해 봐.”
우혁이 말했다.
송유미가 슬그머니 어깨를 움츠리며 소리가 나지 않게 조심하며 조용히 일어났다.
자기가 있을 자리가 아니라고 판단했던 것이다.
“유미 씨도 들어주세요. 부탁드릴 게 있습니다.”
우혁의 말에 송유미가 살금살금 나가다가 걸음을 딱 멈추고는 도로 의자에 가 앉았다.
이렇게 중요한 논의 자리에 자기를 끼워 줘서 몸 둘 바를 모르겠다는 표정이다.
“기획사를 차릴 거라면, 형이 대표를 해야지. 내가 무슨 대표야. 그럴 능력도 없고, 마음도 없어. 나는 형 매니저가 좋아. 이것도 벅차. 형이니까 날 데리고 있지, 다른 배우였으면 벌써 잘랐을 거야.”
백곰의 말에 송유미가 동의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잘래잘래 가로저었다.
“내가 지금 이만큼 클 수 있었던 건 동수 네 덕분이야. 유미 씨 덕분이기도 하고.”
송유미가 이번에는 더 크게 고개를 저었다. 그것으로 모자랐는지 손사래까지 쳤다.
“두 사람의 능력을 나 혼자 독점할 수는 없어. 두 사람이 힘을 합친다면 한국 최고의 기획사가 될 수 있을 거야.”
송유미는 민망하기도 하고, 고맙기도 해서 고개를 떨어뜨렸다. 잘래잘래 가로저으며.
“한국 최고는커녕 1년도 못 버티고 말아먹을 거야. 전혀 자신이 없어. 형한테도 손해야. 돈도 날릴 테고, 이것저것 신경 쓰다 보면, 연기 생활에도 지장을 줄 게 뻔해. 기획사 차리는 거, 난 반대야. 형 그렇지 않아도 일 많아. 작품도 줄여야 할 마당에 무슨 기획사. 이러다 건강 해치면 어쩌려구. 지금까지 형 말이라면 다 따랐지만, 이건 따를 수 없어. 보나마나 형이 수습하느라 애를 먹을 게 뻔해. 기획사가 얼마나 힘든 건데 그걸 하겠다는 거야. 만약 정말 하고 싶다면, 능력 있는 대표랑 본부장을 구해. 난 아니야. 능력이 안 돼. 한 달 만에 말아먹을 거야.”
백곰이 우혁을 바라보았다.
애원하는 표정으로.
슬픈 강아지 같다.
송유미도 백곰과 똑같은 표정을 지었다.
그렇다고 물러날 우혁이 아니다.
이미 오래 전부터 생각해왔던 일이 아닌가.
때가 왔다.
이번에 백곰이 세 작품을 골라 왔을 때 느꼈다.
세 작품 모두 놓치기 아까웠다.
[플럼범 바이러스>를 촬영하는 동안, 많은 영화사와 배급사, 감독으로부터 캐스팅 제의가 들어왔다.모든 제의는 백곰을 거쳐야 했다.
최근에 송유미와 백곰이 사귀게 되면서, 시놉시스나 시나리오가 들어오면 송유미가 먼저 읽고, 백곰에게 들려주었다.
그동안 백곰의 눈높이를 통과한 작품이 없다가 며칠 전에 마음에 드는 작품이 들어왔던 것이다.
그것도 세 편이나.
우혁은 그 세 편을 모두 읽고 나서 결심했다.
[어메이징 라이프> 촬영 후에 돌아와서 시작하려고 했는데, 시작 시기를 조금 앞당기기로.기획사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가 핵심 요소이다.
좋은 배우.
좋은 작품.
두 가지만 갖춰지면 승부는 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지금, 좋은 작품을 확보했다.
이제 좋은 배우만 확보하면 된다.
백곰은 성공할 연예인인지 아닌지 알아볼 수 있는 사람이 아닌가.
지금까지는 그것을 활용하지 않았을 뿐이다.
우혁에게 돌아오기 전, 백곰은 어느 아이돌은 뜰 거고, 어느 배우는 성공할 거라는 말을 하고 다니다가 ‘주제 파악 못하는 미친놈’ 취급을 받았고, 결국은 회사에서 쫓겨났다.
물론 그 문제 때문만은 아니었지만.
그때 호되게 당한 뒤로, 백곰은 결코 연예인의 성공 여부를 입 밖에 꺼내지 않는다.
오직 우혁에게만 말했다.
우혁은 백곰의 말을 믿어 주었으니까.
사실대로 말하자면, 우혁도 100프로 믿은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 이제는 믿는다.
왜냐?
백곰 말대로 되었으니까.
백곰이 성공한다고 꼽은 친구는 성공가도를 달리고 있다.
물론 한 배우의 성공 여부는 평생을 지켜보아야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혁은 백곰의 말을 의심하지 않는다.
백곰이 성공한다고 했던 작품은 모두 성공하지 않았던가.
이런 재주를 썩히는 건, 신에 대한 결례다.
우혁은 신이 백곰에게 준 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은 것이다.
백곰은 자신의 능력이 얼마나 놀라운 것인지 깨닫지 못하고 있다.
좋은 배우와 좋은 작품을 알아볼 수 있는 능력이라니!
백곰의 능력은 배우들과 수많은 관객들에게 삶의 기쁨과 의미를 찾아줄 것이다.
백곰 본인 스스로도 그럴 것이고.
우혁은 백곰의 능력을 발휘하게 하는 것이 백곰에게 그가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이라고 생각했다.
백곰을 언제까지 자신의 개인 매니저로 독점할 수는 없는 일이다.
개인 매니저만 하기에는 백곰의 능력이 너무 아깝다.
백곰은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지만.
개인 매니저도 감지덕지라고 생각한다.
자신이 백조인 줄 모르는 미운 오리 새끼처럼.
우혁은 백곰이 백조처럼 우아하게 하늘을 날 수 있게 도와주고 싶다.
그렇게 하는 것이 백곰에게만 좋은 일은 아니다.
우혁에게도 엄청난 이익을 줄 것이다.
기획사가 사업적으로 성공을 하면 투자자로서 경제적 이익을 취하게 된다.
사업이 실패하게 된다면 손실 또한 우혁이 감수해야 하겠지만.
“투자금은 전액 내가 내지만, 그중 50%는 동수 지분이야.”
“그건 또 무슨 말이야?”
“회사 지분의 반은 네 거라는 말이지. 네 돈!”
“그게 왜 내 돈이야. 형 돈이지.”
“네 돈이야. 특별 보너스 같은 거랄까.”
“무슨 보너스를 또 줘! 형이 그동안 나한테 준 보너스가 얼만데! 매니저 생활을 하면서 나만큼 돈을 많이 받는 사람 있으면 나와 보라고 그래. 지구를 탈탈 털어도 없을걸.”
송유미가 맞는 말이라는 듯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송유미는 백곰이 얼마나 많은 돈을 저축하고 있는지 모른다.
매니저가 받아봤자 거기서 거기니까.
우혁의 전담 스타일리스트가 된 뒤로 받게 된 급여를 기준으로 백곰의 급여와 보너스를 짐작했다.
그러나 송유미가 생각하고 있는 것보다 훨씬 많은 돈이었다. 알게 된다면 깜짝 놀랄 만큼.
송유미는 백곰이 가난한 줄 안다.
사실 백곰은 아직 집도 없이 우혁의 부모님 집 2층에 얹혀살고 있는 처지다.
만약 백곰과 결혼을 한다면 작은 전셋집을 얻어 신혼살림을 시작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그런 일은 없을 것이다.
백곰에게는 우혁의 부모님이 살고 있는 집 한 채 정도 구입할 돈은 있으니까.
“정말 형 말대로 기획사를 차리고, 내가 그 회사의 대표가 된다면, 내 돈을 낼게. 그게 공평해. 망할 게 뻔한데, 형만 손해 보게 할 수는 없어.”
백곰이 팔짱을 꼈다.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겠다는 뜻이었다.
“알았어. 그렇게 하자. 기획사 차리는 거, 네가 대표로 참여하는 거, 동의하는 거지?”
우혁은 그렇게 말했다.
“형 고집을 어떻게 꺾겠어. 그렇게 해.”
“그럼! 당장 시작하자.”
우혁은 백곰의 통장으로 기획사 설립에 필요한 자금을 예상해 그 반절을 송금했다.
특별 보너스 명목으로.
백곰이 그 사실을 알고 펄쩍 뛰었으나 우혁의 뜻을 꺾을 수는 없었다.
2014년 대중문화예술산업발전법이 시행되기 전까지만 해도 아무런 자격 요건 없이 누구나 연예 기획사를 설립할 수 있었으나 운영된 시행 이후로 등록제로 전환됨에 따라 연예기획사를 차리려면 4년 이상 관련업 종사 이력이 있어야 하고 독립 사무소 보유 등 조건을 갖춰야 했다.
백곰은 그 조건을 갖추고 있었기 때문에 사업자 등록은 어렵지 않다.
기획사명은 ‘K&B 엔터테인먼트’.
약칭 ‘K&B 엔터’.
또는 ‘K&B’.
K&B의 K는 강우혁, B는 백동수의 이니셜이다.
계획은 오래 전부터 해왔으나 실행은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이 후닥닥 해치웠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어메이징 라이프>를 촬영하기 위해 프랑스로 떠나야 했기 때문이다.
사실 사업자 등록에 들어가는 돈은 거의 없었다.
독립 사무소는 한국에 돌아오자마자 마련한 오피스텔을 신고했다.
K&B 사업자 등록을 하던 날, 백곰과 함께 ‘나무’의 정의찬 대표를 찾아갔다.
연예인 기획사를 차리기로 했다고 사실대로 말했다.
한때 몸 담았던 소속사였고, 이제 경쟁 관계가 될 텐데, 인사는 하는 게 도리일 것 같아서.
“정신 똑바로 차려야겠는데요. 막강한 경쟁자가 나타났으니 말입니다.”
정 대표가 엄살을 부렸다.
“막강한 경쟁자라니요. 저희는 이제 막 시작했고, 나무는 국내 3대 기획사인 걸요. 저희는 망하지나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
백곰이 울상을 지었다.
정 대표가 민망해하며 우혁의 눈치를 살폈다.
사업을 시작도 하기 전에 망할 걱정부터 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우혁은 빙그레 웃을 뿐이었다.
백곰의 걱정은 매우 이성적이고, 현실적이었으며, 지극히 타당했기에.
이 바닥 생존 경쟁이 얼마나 심한지 우혁은 잘 알고 있었다. 자고 일어나면 기획사가 우후죽순처럼 생겨나지만, 그중에서 성공하는 기획사는 극히 드물다. 겁 없이 달려들었다가 전 재산을 날리고 빚더미에 올라앉기 십상이다.
하지만 우혁은 전혀 걱정하지 않았다.
충분히 승산이 있었으니까.
신생 소속사이지만 K&B는 거물 배우가 소속되어 있다.
바로 자기 자신.
그것으로 배우 모집은 어렵지 않을 것이다.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
“잘될 겁니다. 유능한 매니저가 있고, 최고의 배우를 보유하고 있으니까요.”
정 대표가 정확하게 짚었다.
정 대표는 우혁과 백곰의 기획사 설립을 예상했다.
신생이지만 무시할 수 없는 경쟁사가 될 것이다.
그렇다고 망하길 바라는 건 아니다.
잘되길 바란다.
우혁이나 백곰은 도움이 되면 됐지, 나무에 해를 끼칠 사람은 아니니까.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지점이 있을 것이다.
“많이 도와주십시오, 대표님!”
우혁이 정 대표에게 부탁했다.
“도와드릴 일이 있으면 성심껏 도와드리겠습니다.”
***
윤대성 실장은 오늘도 본부장에게 호된 질책을 받았다.
질책을 받는 이유라도 타당하면 받아들이겠는데, 이유 같지도 않은 이유로 당하니까 미치고 환장하겠다.
보기 싫으니까, 나가라 이거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 때려치우고 싶다.
하지만 그럴 수 없다.
버티는 데까지 버텨야 한다.
결혼도 했고, 얼마 전에 아내가 임신까지 했다.
벌어 놓은 돈이라도 있으면 기획사를 차리겠는데, 돈도 없고, 자신도 없다.
혼자라면 죽이 되든 밥이 되든 회사를 박차고 나갔을 것이다.
애사심?
한때는 ‘WOW’ 매니저라는 것에 자부심을 느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매니저 일이 좋을 뿐.
담당 연예인이 성장해 가는 모습을 보는 일이 좋다.
일이 좋아서 버틴다.
벌써 1년째 본부장과 그의 졸개들에게 온갖 멸시와 괄시를 당하고 있지만 참고 견뎌 왔다.
그런데 한 달 전부터 맡게 된 팀원인 박 대리 때문에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고문관도 그런 고문관이 없다.
그래서 다들 그를 ‘박 또라이’라고 부른다.
그런 친구를 본부장이 윤 실장의 팀원으로 꽂았다.
뺀질거리면서 일은 하지 않고, 지시를 하면 듣는 둥 마는 둥, 사고를 치고 와서도 당당하고, 야단이라도 치면 눈을 부라리며 개기기까지.
본부장이 박 대리를 부추기면서 요즘에는 사사건건 말썽이다.
본부장이 갈구는 건 참겠는데, 박 대리가 개기는 건 참기 힘들다.
박 대리와 마주치기 싫고 무서워서 회사에 들어가기 싫을 정도였다.
현장에 있을 때가 편하다.
퇴근이 기다려진다.
하지만 오늘은 퇴근길임에도 마음이 무겁다.
내일 출근할 생각을 하니 앞이 캄캄하다.
내일은 회의가 있는 날이라 사무실로 곧장 출근해야 된다.
전화가 걸려왔다.
깜짝이야!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본부장인가?
아니면 박 대리?
본부장이라면 퇴근 때 전화를 걸어 회사로 들어오라고 할 것이고, 박 대리라면 사고를 치고서 전화를 했을 것이다.
휴대전화를 보기가 무섭다.
담당 연예인이나 방송국 PD나 작가의 전화일 수도 있으니 확인은 해야겠지.
정의찬 대표였다.
그나마 다행이다.
옛날 같으면 퇴근하고 소주 한잔하면서 이런저런 얘기라도 나눌 텐데···.
차라리 눈 딱 감고 정의찬 밑으로 들어가?
설마 여기보다 못할까.
그깟 자존심이 뭐라고.
괜찮은 친구인데···.
계급장 떼고 술이나 한잔할까?
“대표님! 어쩐 일이십니까?”
– 그러지 좀 마라. 왜 그러니. 그래도 오늘은 전화를 받네. 술 한 잔 하자.
[ K&B 엔터테인먼트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