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autiful Top Star RAW novel - Chapter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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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실한 대박각
정 실장은 유은아 작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안녕하세요, 작가님! 저는 강우혁 배우 소속사에서 근무하고 있는 정의찬 실장이라고 합니다.”
– 안녕하세요.
“드라마 잘 보고 있습니다. 시청률이 껑충 뛰었더라구요. 축하드립니다.”
– 우혁 씨가 잘해 준 덕분이죠 뭐. 좋은 배우를 소개시켜 주셔서 고마워요.
“아닙니다. 대본이 좋으니까 이런 결과가 나오는 거죠.”
–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 고맙네요. 하지만 어디 가서 그런 말씀하지 마세요. 돌 맞아요.
“별말씀을 다 하세요. 겸손이 과하십니다.”
– 진짜라니까요. 우리 딸한테 대본이 좋아서 반응이 좋은 거라고 했다가 한소리 들었어요. 재채기랑 가로등지기 때문에 반응이 좋은 거라고 하대요. 애들도 다 알더라구요. 호호호!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대본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사실이다.
시놉시스를 볼 때를 몰랐는데 드라마를 보면서 대본이 좋다는 걸 깨달았다.
물론 가로등지기와 재채기가 아니었으면 이렇게까지 반응이 좋을 수는 없었겠지만.
– 그런데 무슨 일로 전화를 주셨죠?
“다름이 아니라 재채기 인형에 대해서 여쭙고 싶어서입니다.”
– 재채기 인형요?
“캐릭터 저작권 등록할까 하구요.”
– 그거 좋은 생각이네요. 그런데 왜 저한테 전화를 거셨어요?
“재채기가 작가님 대본에 나온 이름이라서요.”
– 그거 제가 지은 이름 아니에요. 우혁 씨가 지었어요.
“아, 그런가요?”
– 그러니까 우혁 씨하고 얘기해 보세요. 그런데 그 저작권, 소속사에서 관여를 할 이유가 있나요? 우혁 씨가 이름을 지었고 인형은 우혁 씨 아내분이 만든 걸로 알고 있는데 말이에요. 소속사에서 재채기하고 전속 계약이라도 하셨나요?
“계약 안 했습니다. 작가님께서 뭘 염려하는지 잘 압니다. 저희 회사는 재채기 캐릭터 저작권료는 전혀 건드리지 않을 것입니다. 다만 소속사로서 저작권 등록에 도움을 드리고 싶을 뿐입니다.”
– 그러시군요. 제가 괜히 발끈했네요. 좋은 회사네요.
“아닙니다. 당연히 해야 할 일인걸요. 작가님 말씀 잘 들었습니다. 강우혁 씨와 논의해서 잘 정리하도록 하겠습니다.”
– 예예, 들어가세요.
통화를 끝낸 뒤 정 실장은 녹취 파일을 클라우드에 저장해 두었다.
유 작가를 못 믿어서 아니다. 기억과 시간이라는 변덕꾸러기를 못 믿어서다.
사람은 망각의 동물이 아닌가. 시간이 지나면 맹세와 다짐, 맹약조차 잊어버리는.
죽고 못 살 것처럼 서로를 사랑한다며 잠시도 떨어져 있기 싫어서 결혼을 하지만 몇 년이 지나면 사랑했던 사실을 깡그리 잊어버리고 마는 게 인간이다.
사랑의 감정은 탈색되어 원망과 미움, 혐오로 바뀌는 것이다.
그래서 유 작가와의 통화를 녹음했는데 괜한 짓을 한 것 같다. 유 작가는 시간이 지나도 우혁에 대한 신뢰를 저버릴 사람이 아니라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유 작가는 오히려 소속사에서 강우혁의 캐릭터 저작권료에 손을 댈까 봐 염려했다. 그 말을 할 때는 마치 강우혁의 변호사라도 되는 것처럼 목소리가 차가웠다. 유 작가가 강우혁을 아끼고 있다는 사실이 느껴졌다.
강우혁! 어느새 드라마 작가까지 자기편으로 만들었군.
그래서 기분 나쁘냐고?
천만에!
뿌듯하고 기분 좋다.
강우혁은 좋은 배우이기도 하지만 좋은 사람이다.
백 대리에게 하는 걸 보면 알 수 있다.
로드 때부터 지금껏 수많은 연예인들을 만나고 케어해 보았다.
별별 일이 다 있었다. 아픈 기억들이 너무 많다. 욕설은 물론이고 뺨을 맞은 적도 있고, 어느 날 별 이유 없이 교체를 당하기도 했다.
같은 매니저로서 백 대리를 아끼는 강우혁이 고맙다.
강우혁이라는 배우가 잘됐으면 좋겠다.
***
매직월드 광고 계약이 성사되었다.
정 실장은 속으로 환호성을 외쳤다.
푸시! 푸시! 푸시!
마구 밀어붙였다.
[서울 가로등> 시청률이 가파르게 올랐겠다, 댓글 난리 났겠다, 무서울 게 뭐가 있어.계약하기 싫으면 관둬라, 조만간 더 큰 곳에서 몰려들 거다, 하는 배짱으로 마구 밀어붙였다.
협상의 달인, 밀당의 고수, 상대 약점 잡기의 일인자, 아부의 천재, 공갈 협박의 전문가인 이 변호사가 혀를 내두를 정도로.
결국 계약 성사시켰다.
이번 성과에 안창현 대표도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한 건 했구나야! 배우를 알아보는 안목도 생기고, 협상가 기질까지 습득했어. 요즘 아주 맘에 들어.”
1년 가전속계약.
출연료 4억!
전속 계약에는 두 가지가 있다. 가전속과 완전전속.
가전속은 같은 업종의 다른 광고에는 출연할 수 없는 계약을 말한다.
예컨대 A라는 이동통신과 가전속 계약을 맺을 경우 A 이외의 이동통신사의 광고에는 출연하지 못한다.
완전전속은 계약을 맺은 업체의 상품 광고에만 출연하는 계약이다.
광고 출연료 4억은 지명도가 높지 않은 연기자에게는 이례적인 금액이다.
최고 등급은 아니지만 유명 연예인 못지않은 대우였다.
수익금 배분이 5 대 5니까, 회사와 강우혁이 2억씩 나눠 가지게 된다.
우혁과 계약한다고 했을 때, 몇몇 직원들은 계약금 3억이 너무 많은 거 아니냐고 우려했다. 계약 기간이 끝날 때까지 계약금을 뽑지 못할 수도 있다고 염려했다. 그럴 경우 계약금을 날리게 된다.
하지만 우려는 기우에 불과했다. 우혁과 계약한 지 한 달도 지나지 않아 계약금의 3분의 2를 회수했으니까.
앞으로 광고 한 편만 더 찍으면 계약금을 회수하고도 남는다.
지금 분위기로 보면 조만간 광고 몇 편이 더 들어올 것 같다.
차기작 섭외도 들어오겠지?
[서울 가로등>에 출연하지 않았으면 어쩔 뻔했어.“난 아직 멀었다니까! 이렇게 성공할 작품인데 우혁 씨한테 출연하지 말라고 설득을 했으니 원.”
그러고 보면 대표님이 대단한 양반이다.
직원들 모두 [서울 가로등> 안 된다고 했는데 혼자 된다고 하시더니 정말 됐다.
물론 아직 종방까지 지켜봐야 하겠지만 이 추세가 바뀔 것 같지는 않다. 흐름을 탔다. 아무리 감이 무디지만 이 흐름이 쉽게 꺾이지 않을 것이라는 것쯤은 안다.
“가만! 백 대리도 [서울 가로등>이 잘된다고 하지 않았나? 백 대리, 아무리 봐도 천재 같단 말이야. 녹차를 마시고서 ‘싱그러운 바람 맛’이라고 표현하는 걸 보면 뭐가 있어. 백 대리 불러서 녹차나 한잔할까.”
그때 휴대전화 착신음이 울렸다.
홍보실 김 대리였다.
“예, 김 대리.”
– 영화사와 드라마 외주제작사에서 강우혁 캐스팅 제의가 들어왔습니다. 시놉시스와 시나리오는 파일로 받았습니다.
차기작은 영화가 좋겠는데···.
결정은 우혁 씨에게 맡기고.
“시놉시스 전송해 줘요. 백 대리한테도요.”
– 예, 알겠습니다. 그리고 강우혁 씨, 인터뷰 요청이 쇄도하는데 어쩌죠?
“목록 정리해서 보내 줘요.”
– 예능 프로 섭외가 또 들어왔습니다.
들어와! 들어와! 다 들어와!
“그것도 내용 정리해서 주세요. 강우혁 씨 관련 자료는 항상 백 대리한테도 전달해야 합니다.”
– 알겠습니다, 실장님! 참 그리고, 캐릭터 인형 제작업체 두 군데에서 강우혁 씨가 [서울 가로등>에서 들고 다니는 인형 캐릭터 저작권을 사고 싶다고 연락이 왔습니다.
“그래요? 업체 이름이 뭡니까? 전화번호 알려주세요.”
정 실장은 전화를 끊고 나서 목을 좌우로 한 번 흔들었다.
오도독!
깍두기들은 이렇게 하면 우두두둑 근사한 소리가 나던데, 거 참!
“자, 이번에도 내가 좀 나서 볼까!”
김 대리가 알려준 업체 두 군데 중 한 곳으로 전화를 걸었다.
***
“2회 시청률 나왔어?”
엄 피디가 이 과장에게 물었다.
시청률 확인은 일반인도 쉽게 할 수 있다. TnmS와 닐슨 사이트에 접속하면 된다.
드라마 제작업체는 조사 기관이 사이트에 시청률을 공개하기 전에 자료를 받아볼 수 있다.
“예, 피디님! 보십시오.”
5.7프로!
첫 방보다 거의 2배.
오를 거라고 예상은 했지만 이렇게 많이 뛸 줄이야.
“됐어!”
춤이라도 추고 싶지만 이 과장 앞이라 참는다.
‘나 엄승태, 아직 죽지 않았다 이거야.’
메신저 ‘서울가로등’ 방에 들어갔다.
벌써 출연 배우들이 시청률에 대해 대화를 주고받고 있었다.
-정윤정(달재처) : 시청률 나올 때가 되지 않았나요? 피디니임!
-박예진(서정) : 왜 아직 안 올려 주실까? 나올 때가 되었는데. ㅠㅠ
-오승연(옥자) : ㅠㅠ
-민달수(달재) : 자자, 울지들 말고 기다려 보자구요.
-최봉구(옥자부) : 설마 첫 방 시청률로 곤두박질치는 건 아니겠지?
-송은자(옥자모) : 옥자 아부지, 뭐라 캐쌌능교. 재수 없구로…
-유은아작가 : 안 되겠다. 피디님한테 전화 걸어볼게요.
엄 피디는 유 작가의 전화가 걸려오기 전에 글을 올렸다.
-2회 시청률을 발표하겠습니다!
-최봉구(옥자부) : 두구두구두구
-정윤정(달재처) : 피디님, 빨리요.
-송은자(옥자모) : 심장 떨려서 못 보겠다.
-오승연(옥자) : 으으으으
-5.7입니다!
느낌표를 찍고 전송을 누른 뒤 반응을 기다렸다.
-데이빗(민준) : wow!!!!!!
-오승연(옥자) : 꺄아아아악!
-최봉구(옥자부) : 이거 실화냐?
-송은자(옥자모) : 나 기절했으요.
-박예진(서정) : 야호!
-유은아작가 : 하하하! 기쁜 소식이네요~~~
-강우혁(가로등지기) : 모두 축하합니다. ^^
-오승연(옥자) : 가로등지기 아저씨다!
-민달수(달재) : 그나저나 별일일세. 어쩐 일로 우리 아들 민준이가 글을 다 남겼으까? 근디 저거시 뭐라고 쓴 거여?
-정윤정(달재처) : 으이그 ‘와우’도 몰라요? 번역 해줘요? 헐! 대박! 아싸가오리!
-민달수(달재) : 고마워 마누라. 흐흐!
-권여사님(달재모) : 마ㄴ세
-민달수(달재) : 아이고 우리 엄니도 들어오셨네. 눈팅만 하시지 글까지 남기셨어요. 눈물 나잖애.
엄 피디는 마른세수를 했다.
코끝이 찡하다. 데이빗과 권 여사님이 올린 글 때문에.
데이빗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글을 남긴 적이 없다.
‘wow!!!!!!’ 단 한 글자이지만 반갑고 고맙다.
권 여사님의 ‘만세’ 두 글자를 보는 순간 눈물이 핑 돌았다.
‘만세’ 두 글자를 찍기 위해 손가락을 꾹꾹 누르셨을 권 여사님의 모습이 눈앞에 아른거렸던 것이다.
어머니 같은 분.
어린 시절 계모에게 모진 구박을 받았던 기억 때문일까, 계모 또래와 비슷한 연배의 어른을 보면 거부감부터 들었다.
권 여사 덕분에 그 생각이 바뀌었다.
권 여사를 처음 뵌 것은 10년 전.
그때도 권 여사는 욕을 잘하는 할머니 역이었다. 며느리를 모질게 구박하는 시어머니 역할.
공중파를 박차고 나와서 만든 첫 번째 드라마가 폭망한 데다가 욕을 얻어먹을 수도 있는 악역임에도 권 여사는 선뜻 출연을 수락하셨다.
하지만 시청률은 엉망이고, 드라마 방영 중간에 사이가 나빴던 아내와 끝내 이혼까지 하면서 실의에 빠져 있을 때 권 여사가 큰 힘이 되어 주었다.
실망에 빠진 배우들을 다독이고 때론 꾸짖으며 종방까지 끌고 가 주셨다.
이혼 사실을 배우들에게 알리지 않았는데 어떻게 아시고, 사무실로 찾아오셔서 손수 준비해 오신 도시락을 펼쳤다.
밥과 국은 김이 모락모락 났고, 반찬들은 먹음직스러웠다.
며칠째 밥다운 밥을 먹지 못해서인지 따뜻한 집밥을 보자 군침이 돌았다.
“어여 먹어. 밥심으로 버티는 거여. 떠나간 건 후딱 잊어뿌러.”
권 여사님이 숟가락을 손에 쥐어 주고, 김치를 손으로 찢어 밥 위에 올려주실 때, 울음이 터지고 말았다.
“그려그려! 실컷 울어. 참지 말고 울어. 참으면 병 되는겨.”
등을 하염없이 쓰다듬어 주시던 그 손길을 잊을 수가 없다.
처음으로 어머니의 정을 느꼈다.
신기하게도 그 밥 먹고, 기운을 차렸다.
강우혁은 식사 시간이 되면 항상 데이빗을 챙겼다.
그 모습을 지켜보면서 데이빗이 강우혁에 느끼는 감정이 과거 권 여사님께 느꼈던 감정과 비슷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데이빗은 어린 시절 계부의 폭행에 시달리며 아버지의 정에 목말랐을 것이다.
그 목마름, 어떤 갈증인지 잘 알지.
데이빗의 아버지 노릇을 해주고 싶었으나 다른 배우들 눈 때문에 그럴 수 없었다.
그런데 강우혁이 오면서 그 역할을 해주고 있다.
얼마나 든든한지.
사람이 참 이쁘다.
마음 같아선 등에 업고서 여의도를 한 바퀴 돌고 싶지만 보는 눈들이 많아서 참는다.
시청률이 껑충 뛴 것도 따지고 보면 강우혁이 반은 견인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가로등지기를 강우혁만큼 잘 소화할 수 있는 배우가 있을까?
단언컨대, 없다!
천군만마를 얻었다.
함부로 설레발을 치고 싶지는 않지만 오랜 피디 생활 경험으로 예상하건대, 확실한 대박각이다.
“여기서 패배하면 모든 건 내 탓이지! 천군만마를 얻고도 패배하면, 코 박고 죽어야지! 달려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