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autiful Top Star RAW novel - Chapter (75)
“임신 축하드립니다.”
초음파 검사를 마친 여의사가 밝은 표정으로 말했다.
의사의 말에 아내가 우혁을 쳐다보며 환하게 웃었다.
“저···.”
아내가 주저하는 표정으로 여의사를 바라보았다.
“예, 말씀하세요.”
아내는 차마 얘기를 못 꺼내겠는지 우혁을 쳐다보았다.
“···작년에 아이를 잃은 적이 있습니다.”
우혁이 아내를 대신해 사실을 말했다.
“그러셨군요. 작년이 처음인가요? 아니면 그 전에도 그런 일이 있었나요?”
“처음이었습니다. 착상에 문제가 좀 있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잘 말씀해 주셨어요. 몇 가지 정밀 검사를 받아보도록 하죠.”
아내가 정밀 검사를 받는 동안 우혁은 아내와 함께 검사실을 오가거나 복도에서 기다렸다.
한 시간에 걸쳐 정밀 검사를 마친 뒤, 여의사의 진료실에서 마주앉았다.
“검사 잘 끝났습니다.”
“어떤가요?”
“검사 결과는 일주일 뒤쯤에 나올 거예요. 임신 경험이 있으시니까 아시겠지만, 매주 한 번씩 병원에 오셔야 합니다.”
여의사와 상담을 마친 뒤 병원에서 나왔다.
아내의 얼굴에는 근심이 가득했다.
“걱정 마. 아무 일 없을 거야.”
우혁이 위로했지만 큰 도움은 되지 못하는 것 같았다.
아내는 지난번처럼 실패하는 건 아닌지 두려운 모양이었다.
남자인 자신도 두렵고 걱정스러운데 아내는 오죽할까.
아내의 어깨를 감싸고서 차를 주차해둔 주차장으로 걸어갔다.
어머니와 아버지, 백곰에게는 데이트를 한다는 핑계를 대고 아내와 둘이 나왔다.
혹시라도 잘못될까 봐 부모님께는 당분간 알리지 않기로 했다.
지난번에도 크게 상심하지 않았던가.
부모님은 아내에게는 내색하지 않았으나 우혁 앞에서는 상심을 드러내곤 했다.
“얼마나 속이 상하겠니. 옆에서 잘 챙겨 줘라. 네가 잘해야 된다.”
어머니는 눈물을 보이며 우혁에게 거듭 당부했다.
당시 어머니와 아버지는 시골에 살고 우혁과 아내는 18평 다세대 주택 반지하에 살던 시절이었는데, 어머니는 사나흘에 한 번씩 올라와 아내와 지내다 가곤 했다.
어머니는 아내 앞에서는 밝은 표정을 지으시다가도 아내가 보이지 않거나 집으로 돌아갈 무렵이 되어 우혁의 배웅을 받을 때면 속내를 보였다.
“친정 엄마가 있었다면 이럴 때 의지도 되고 그랬을 텐데···. 불쌍한 것!”
두 번에 한 번은 아버지도 함께 오셨다. 1톤 트럭 똥차, 늙은 소를 몰고서.
어머니는 서울에 올라올 때마다 손수 만든 찬거리와 농작물들을 바리바리 싸들고 오셨는데, 짐이 많아 들고 올 수 없을 때면 아버지의 늙은 소가 위풍도 당당하게 짐을 싣고서 서울로 행차했다.
아버지는 며느리의 유산 소식을 듣고 어디서 목돈을 구해 와 어머니에게 내밀며 서울 올라가서 소고기라도 사 먹이라고 하셨다고 한다.
당시 우혁은 벌이가 시원치 않아 부모님께 용돈도 못 드릴 시절이었다.
어머니 아버지도 돈 나올 구석이 없었다.
땅뙈기가 있었지만 팔지 않는 이상 돈이 되는 게 아니었고, 은행에 저축한 돈이라고 해봐야 얼마 되지 않았다.
“그 소식 듣고 늬 아버지가 애지중지하던 차를 팔까말까 한참을 고심하더라. 그거 팔아봐야 고물 값이나 쳐주겠니? 차마 못 팔겠는지 차는 두고 어디 가서 돈 100만 원을 구해 왔지 뭐야. 은행에서 뽑아왔나 했더니 그건 아니더라. 어디서 구해 왔냐니까 통
말씀을 안 한다. 나 몰래 꿍쳐 논 돈이 있었던 모양이야.”
아버지는 무뚝뚝해 보여도 정이 많은 사람이었다.
그때 일을 겪고 나서 아내는 어머니 아버지와 함께 살겠다고 노래를 불렀다.
결국 아내의 설득으로 한집에 살게 되었고, 그 결정은 가족 모두에게 좋은 일이었다.
우혁에게는 특히.
부모님과 함께 살게 되면서 안심하고 일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양평으로 이사 온 뒤로 아내는 서울 반지하에서 살 때보다 훨씬 건강해졌다.
모든 점이 좋아졌지만 아내를 힘들게 하는 한 가지가 있었다.
임신이 되지 않는다는 것.
그런데 이번에 임신이 되었다.
드디어 아내가 원하는 일이 이루어진 것이다.
이루 말할 수 없는 기쁨과 감사를 느끼면서도 아내는 두려움과 걱정을 떨쳐 버리지 못했다.
우혁은 아내의 마음을 잘 알았지만 해줄 수 있는 게 별로 없었다.
1주일이 빨리 지나 아무 문제가 없다는 정밀 검사 결과가 나오기를 바랄 뿐.
그 결과가 나와야 아내가 안심할 것이다.
우혁도 그렇고.
***
[길 밖의 새> 개봉 나흘이 지났다.제작사 필름박스 흡연실에 김 실장과 이 과장이 낡은 소파에 앉아 담배를 피우며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길 밖의 새> 누적 관객 몇 명이지?”
“66만이 조금 안 됩니다.”
“예매율은?”
“32퍼센트. 좌석 점유율은 62퍼센트.”
“스크린 수는 800여 개지? 250만 넘을 수 있을까?”
“좀 더 지켜봐야 알겠지만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지방에서는 일주일도 못 채우고 내릴 것 같은 분위기가 감지되고 있습니다. 벌써 몇 군데는 퐁당퐁당하고 있다고 합니다.”
퐁당퐁당.
영화계 속어로 다른 영화와 교차 상영하는 것을 말한다.
관객이 적은 영화는 좋은 시간대를 배정하지 않는다. 손님이 가장 없을 시간에 하루 2회 정도 걸어둔다.
대형 극장들은 지난 2012년 7월 16일 영화 관련 26개 단체와 ‘한국 영화 동반 성장 이행 협약’을 체결하여 최소 1주일 이상의 상영 기간을 보장하기로 약속했다.
1주일 상영 기간을 보장하는 것처럼 보이려고 극장 측에서 쓰는 편법이 바로 퐁당퐁당이다.
그마저도 하지 않은 극장이 많다.
수많은 개봉작이 1주일을 채우지 못하고 내려간다.
[길 밖의 새>가 그런 수모를 당할 위기에 처한 것이다.목요일에 개봉했으니 주말도 지났는데 66만을 기록했다면 1주일에 100만을 넘기기는 어렵다.
최악은 면했다.
폭망 수준은 아니다.
하지만 폭망을 면했다고 좋아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서울과 전국의 대도시는 최소 열흘은 버틸 것 같습니다.”
“열흘이라···. 최대로 잡아도 120정도 나오겠구만.”
“손익분기점이 250만이니까 반도 안 되네요.”
“후하게 잡으면 220정도인데, 그래 봐야 손익분기에 훨씬 못친다는 게 변하는 건 아니고.”
“서울 쪽은 2주 정도 버틸 것 같기는 합니다.”
“잘하면 150은 넘기겠다만 나머지 70이 문제로구만.”
“이번에는 윤 이사님이 투자를 해서 좀 될 줄 알았는데 손익분기를 못 넘기네요.”
“그러게 말이에요. 이사님도 이제 감이 떨어지시는 건지, 옛날 같지 않으시네.”
“이렇게 되면 폭망은 아니지만 박 감독 두 번째 작품 하기 어려울 것 같은데요.”
“어렵지. 대박이 나도 쉽지 않은데 입봉작을 손익분기도 못 넘긴 감독한테 누가 다시 기회를 줘. 저예산으로 찍어서 대박을 치면 또 모를까.”
그때 흡연실 문이 벌컥 열리면서 여직원이 들어오며 다급하게 외쳤다.
“실장님!”
“왜? 무슨 일 있어?”
“[길 밖의 새>가 로카르노 국제영화제 공식 초청을 받았어요.”
“로카르노 영화제에 초청을 받았다고?! 정말이야?”
“예! 좀 전에 이메일 받았어요.”
“확실한 거지?”
“예예!”
“알았어. 이 과장! 한 시간, 아니 30분 뒤에 홍보 기획회의 시작할 테니까 회의 소집 좀 해줘.”
김 실장이 담배를 비벼 끄며 이 과장에게 지시했다.
“그리고 박 감독한테 전화해서 알려줘. 아니 그건 내가 할게. 그 전에 우선 윤 이사님께 보고부터 드려야겠다. 이게 무슨 일이야?! 박 감독, 홈런 쳤다! 홈런 쳤어!”
김 실장이 다급하게 흡연실을 빠져 나갔다.
***
그 시각 우혁은 아내와 마주앉아 차를 마시며 이런저런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우혁의 전화벨이 울렸다.
필름박스 윤 이사였다.
“예, 이사님!”
– 축하해요.
“?”
– [길 밖의 새>가 로카르노 영화제 초청을 받았어요.
“로카르노에 초청이 되었다구요?”
– 좀 전에 연락이 왔다고 합니다.
“기쁜 소식 알려주셔서 고맙습니다. 박 감독이 좋아하겠네요.”
– 박 감독이야 강 배우 덕분에 복 터진 거지. 강 배우 아니었으면 영화 찍을 수나 있었겠어요. 어림없지. 박 감독 인복이 많은 사람이요.
“박 감독 열심히 했습니다.”
– 당연히 그래야지. 어떻게 얻은 기회인데 열심히 안 하면 되겠어요. 감독상하고 남우주연상 후보에 올랐다니까 좋은 소식 기다려 봅시다.
윤 이사와 통화를 끝낸 뒤 아내에게 소식을 전해 주었다.
“정말 잘 됐다! 뉴스에 나올 소식 아니야?”
아내가 기뻐했다.
“녀석이 복덩어리인가 본데. 이렇게 좋은 일이 생기는 걸 보니 말이야.”
우혁이 아내의 배를 바라보며 말했다.
아내는 흐뭇해하며 배를 어루만졌다.
필름박스는 발 빠르게 주요 언론에 보도 자료를 뿌리고 홍보전을 펼치기 시작했다.
우혁도 발 벗고 나섰다.
특히 지상파 방송 연예인 소식 프로그램 인터뷰에 모두 응했다.
이 국장을 통해 SBC 연예인뉴스 출연도 자청했다.
방송은 효과가 좋기는 하지만 대부분 녹화였고 정해진 방송 날짜까지 기다려야 했다.
빠르기로는 인터넷 기사가 최고였다.
기사가 나간 뒤로 예매율과 좌석 점유율, 관객 수가 늘어나기 시작했다.
관객이 늘어날 조짐이 보이자 퐁당퐁당을 하던 지방 극장들도 상영 시간을 조정했다.
일주일밖에 못 버티고 내려지는 수모는 피한 것 같다.
제작사에서는 지상파 인터뷰 방송이 나가면 반응이 오지 않을까 기대했다.
***
개봉 일주일째 되는 날 아내와 병원에 갔다.
정밀 검사 결과가 나오는 날이다.
모든 게 잘 풀리고 있다.
[길 밖의 새>의 저조한 성적을 만회할 수 있는 호재가 찾아오면서 분위기 반전의 조짐이 보인다.로카르노 영화제에 초청받았고, 남우주연상 후보로 올랐다는 소식은 놀랍고 반가운 일이다.
하지만 아내와 아기에게 문제가 있다면 아무리 영화가 대박이 나고 좋은 상을 받는다 해도 기뻐하기 어렵다.
병원에 가는 내내 조마조마했다.
아내의 표정에는 근심과 걱정, 두려움으로 몹시 어두웠다.
제발 아무 문제가 없기를···.
진료실에 들어서자 여의사가 반갑게 맞아 주었다.
“정밀 검사 결과 나왔습니다.”
묻기도 전에 여의사가 먼저 말을 꺼냈다. 고맙게도.
“산모, 아기 모두 건강하네요. 착상도 아주 잘 되었어요.”
여의사의 말에 아내가 안도의 한숨을 몰아쉬며 우혁을 바라보았다.
아내의 표정에서 근심과 걱정, 두려움이 가셨다.
“임신 초기니까 조심해야 되겠지요?”
우혁이 여의사에게 물었다.
“평소처럼 생활하시면 됩니다. 조심한다고 너무 움직이지 않거나 위축되어 있으면 산모나 아이한테 오히려 안 좋아요. 약물, 카페인 음료를 음용한다거나 음주, 흡연을 한다던가, 격투기나 암벽 등반 같은 과격한 운동을 하는 것만 아니면 상관없어요.”
여의사가 서글서글한 눈매로 우혁과 아내를 번갈아보며 말했다.
“비행기 탑승은 안 되겠죠?”
“12주 이전, 36주 이상은 안 됩니다. 나머지 기간에는 크게 상관없습니다.”
“위험하지 않을까요?”
“버스나 택시, 자가용, 자전거, 오토바이를 타고 가다가 사고가 날 확률이 높을까요, 비행기가 높을까요?”
대답을 듣자고 묻는 게 아니었다. 답은 자명했으니까.
“비행기가 무서워서 못 타면 버스, 택시, 자가용, 자전거, 오토바이는 더 못 타지요. 해외에 가실 일이 있으세요?”
“스위스에 갈 일이 있는데 아내와 같이 갈까 해서요.”
“언제 갔다 언제 돌아오시는데요?”
“8월 5일경에 출발해서 닷새 정도 머물다 돌아올 것 같습니다.”
“8월 초라면 여행해도 큰 문제는 없을 시기입니다. 의사 소견서가 필요할 거예요. 제가 써드리죠. 좌석은 비즈니스 석이겠지요?”
“물론입니다.”
우혁과 여의사의 대화를 조용히 듣고 있던 아내가 우혁에게 말했다.
“스위스 안 갈 거야. 아기랑 집에 있을래.”
아내의 말을 들은 여의사가 말을 받았다.
“그러면 안 가는 게 좋습니다. 무조건 산모의 말에 따르세요. 산모가 가고 싶다면 가는 게 아기와 산모에게 좋지만 가기 싫다는데 가면 좋을 게 없으니까요.”
우혁은 아내를 바라보았다. ‘정말 안 갈 거야?’ 하는 눈빛으로.
아내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것으로 아내와 스위스를 가겠다는 생각은 접어야 했다.
“아기 상태 좀 볼까요?”
의사가 초음파 검사 준비를 했다.
모니터로 아기의 모습이 보였다.
1주일 전보다 조금 더 자란 것 같았다.
“튼튼하게 잘 자라고 있네요. 아주 건강합니다.”
여의사가 쾌활한 목소리로 말했다.
검사가 끝난 뒤 초음파 사진을 출력해 주었다.
출력한 초음파 사진을 아내는 신기하다는 듯 보고 또 보았다. 지난주에 받은 사진도 아내는 수시로 꺼내 들여다보았다.
“이제 돌아가시면 되는데, 가시기 전에 사인 하나 해주시면 안 될까요? 제가 강우혁 씨 팬이거든요. [알람> 세 번 봤습니다.”
여의사가 [알람> 팸플릿을 내밀며 말했다.
“감사합니다. 1주일 전에 제가 출연한 영화를 개봉했습니다.”
우혁은 흔쾌히 사인을 해주며 깨알 홍보를 했다.
“영화 제목이 [길 밖의 새>인가 그렇죠? 볼까 말까 망설였는데 사인까지 해주셨으니 안 볼 수가 없겠네요.”
“감사합니다.”
아내가 우혁 대신 인사를 했다.
병원 문을 나서는데 만세라도 외치고 싶은 충동이 일어났다.
기뻤다.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아이와 산모가 건강하다지 않는가!
로카르노 초청 받았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보다 정확히 천만 배 더 좋았다.
기분 같아서는 양평 행정구역을 전속력으로 한 바퀴 돌고 싶었다.
하다못해 집채만 한 돌이라도 한 번 들었다 내려놓으면 기쁨이 진정될 것 같은데, 돌이 안 보이네!
에라, 모르겠다.
“만세!!”
아내가 놀라지 않도록, 주위 사람들의 시선을 끌면 골치 아프니까, 목소리는 작게, 대신 액션을 크게 했다.
독립군이 독립의 기쁨을 외치듯이 두 팔을 번쩍 하늘로 뻗었다.
“어머니 아버지께 말씀드려야겠어. 어서 집에 가.”
아내가 만세 한 번 더 부르려는 우혁의 팔을 잡아끌었다.
며느리의 임신 소식을 들으면 어머니 아버지가 어떤 반응을 보이실지 궁금하다.
아내에게 차 문을 열어 주고 운전석에 올랐다.
시동을 켜고서 운전대를 잡는데 하늘에 떠 있는 구름 하나가 시야에 들어왔다.
인자하게 생긴 노부부처럼 보였다.
한 번도 뵌 적은 없지만 아내를 낳아주신 장모님과 장인어른 생각이 났다.
혹시 살아 계신 건 아닐까?
아내가 생활했던 보육원을 찾아가보면 혹시 단서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이 하늘 아래 살아 계시다면 좋을 텐데···.
이 소식을 들으면 그 누구보다 기뻐하실 텐데···.
어디에 계시든 기뻐해 주십시오.
어디에 계시든···.
[ 기뻐해 주십시오 > 끝ⓒ 길밖의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