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autiful Top Star RAW novel - Chapter (76)
집 앞에 도착했다.
“내리지 말고 잠시만 앉아 계십시오, 사모님!”
우혁이 시동을 끄며 아내에게 말했다.
차에서 내려 아내를 에스코트했다. 보디가드처럼.
이왕 하는 거 영화에 나오는 보디가드 흉내를 제대로 냈다.
아내는 그 모습이 재미있는지 미소를 지었다.
행동과 태도가 진중한 우혁이지만 아내 앞에서는 종종 장난을 치곤 한다.
우혁은 누군가를 웃기는 데는 소질이 없는 사람이다.
하지만 아내는 우혁의 썰렁한 개그와 몸짓을 보고 잘 웃어 준다.
웃어 주니 신이 나서 더 하게 되고.
우혁의 전화벨이 울렸다.
박 감독이었다.
아내는 우혁에게 전화 받고 들어오라고 입 모양을 만들어 보인 뒤 집으로 들어갔다.
“축하합니다!”
우혁이 전화를 받자마자 박 감독에게 축하 말을 건넸다.
– 로카르노 소식 들으셨어요?
“예, 감독님!”
– 꿈은 아니죠, 배우님?
“아마 아닐걸요.”
혁신적이고 전복적인 장르 영화들을 발굴해온 스위스 로카르노 국제 영화제는 두 편 이내의 영화를 만든 신인 감독들의 세계무대 등용문 역할을 해 왔다.
많지는 않지만 한국 영화도 로카르노 영화제에 초대받은 적이 있고, 감독이나 배우가 심사위원으로 참가하기도 했다.
“제작사를 잘 만난 것 같습니다. 제작사에서 영화제 접수하느라 고생 많았을 거예요. 직원 분들한테 전화 한 번 돌리시죠.”
– 배우님 덕분입니다. 배우님 아니었으면 필름박스 못 만났을 거예요. 투자자 구하기도 어려웠을 거고, 배우님 연기 아니었으면 이 정도 완성도 얻기 힘들었을 거구요.
“한국에 박 감독님 같은 연출 스타일 없습니다. 외국에서도 흔치 않았을 거구요. 자부심을 가지십시오. 앞으로 더 좋은 영화제에도 초청받으실 겁니다.”
– 배우님이 도와주신다면요.
“···.”
– 배우님하고 다시 작업하고 싶습니다.
“제가 아니어도 로카르노 초청받았으니 앞으로 감독님 작품에 출연하고 싶어 하는 배우들 줄을 설 겁니다.”
– 하지만 저는 배우님하고 계속하고 싶습니다. 모든 작품을 배우님하고 할 수야 없겠지만요.
“작품이 저하고 맞다면 당연히 해야지요.”
– 끄적거려 놓은 시나리오들이 여러 편 있습니다. 잘 다듬어서 가장 먼저 배우님께 드리겠습니다.
“알겠습니다.”
– 배우님만 도와주시면 칸도 자신 있습니다.
박 감독이 의욕을 불태웠다.
“감독님이라면 가실 수 있을 겁니다. 칸이 대수겠습니까.”
우혁이 박 감독의 장단에 맞춰 주었다.
박 감독은 자신을 다소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여전히 위축되어 있고. 조금만 더 자신감을 가졌으면 좋겠다.
우혁은 박 감독과 작업을 하면서 세계적인 감독이 될 만한 역량이 있다는 걸 확인했다.
첫 작품이라 아쉬운 점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차차 단점들을 보완해 나간다면 세계적인 감독으로 성장할 잠재 능력이 있는 사람이다.
– 고맙습니다, 배우님!
배우님!
박 감독은 우혁을 그렇게 호칭했다.
이름을 부르거나 우혁 씨라고 해도 되건만 좀처럼 그렇게 하지 않았다.
***
박 감독과 통화를 끝내고 현관문 쪽으로 걸어갔다.
부모님께 아내의 임신 소식을 전하기 위해 서둘러 걸었다.
아내가 먼저 들어가서 얘기를 하고 있는 모양이다.
현관문 앞에 다다랐을 때 현관문이 열렸다.
아버지가 문을 열고 나오셨다.
아버지는 우혁을 발견하고는 슬그머니 시선을 돌렸다.
하지만 우혁은 아버지의 눈가에 맺힌 이슬을 보았다.
아버지도 늙으셨구나.
최근 들어 눈물을 자주 흘리시네.
영화관에서 [길 밖의 새> 영화를 보다가 권혁철이 서럽게 울 때 눈물을 흘리시더니.
“어디 가세요?”
“요 앞에 좀 다녀오마.”
“소식 들으셨어요?”
“잘해라. 네가 잘해야 돼.”
“예, 아버지!”
아버지는 마당을 가로질러 아버지의 똥차, 늙은 소에게 걸어갔다.
어디 가시려나?
“아버지, 차 쓰실 일 있으면 제 차 쓰세요. 저 오늘 안 나갈 거예요.”
“일없다. 난 내 차가 편해.”
아버지는 뒤도 안 돌아보고 얼른 안으로 들어가라는 손짓을 하며 걸어갔다.
고집쟁이 노인.
아버지는 늙은 소가 들려주는 뽕짝을 들으며 터덜터덜 달리는 게 좋으신 모양이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갔다.
백곰이 눈물을 철철 흘리고 있다.
쟤 왜 저래?
“형이 형수님 걱정 엄청 많이 했거든요. 형은 술에 취해서 기억 못하는데 아기가 안 생겨서 걱정이라면서, 형수님 안쓰럽다면서 울었어요.”
저 놈 봐라. 그 얘길 왜 지금 떠들고 그래? 이 기쁜 날.
그리고, 울었던 기억 전혀 없다.
[길 밖의 새> 제주도 촬영을 갔을 때, 술에 취한 적이 있다.서럽게 울어야 하는 신을 촬영한 날 밤이었다.
그 신을 촬영할 때 우혁은 잠시 머물다 떠나간 아이를 생각하며 울었다.
정작 아이가 떠났을 때는 울지도 못했다.
슬픔을 억눌렀다.
울 수도 없었고, 울어서도 안 되는 상황이었다.
아내 앞에서 울 수도 없고, 어머니 앞에서 울 수도 없었다.
친구를 만나 소주라도 마시며 울적한 기분을 달래고 싶은 마음도 있었으나 그럴 시간에 아내 옆에 있어 주었다.
그렇게 안으로만 억눌러 놓았던 슬픔이 촬영을 하며 터져 나왔다.
진이 빠지도록 울었건만 촬영이 끝난 뒤에도 좀처럼 감정을 진정시킬 수 없었다.
촬영이 끝난 뒤 숙소에서 혼자 술잔을 기울였다.
처음에는 맥주로 시작했는데 성이 차지 않아 술을 사러 나가다가 백곰과 마주쳤다.
백곰이 양주 한 병과 안주를 구해왔다.
우혁 혼자 양주 한 병을 다 마셨다.
그러고는 취해서 얌전히 잤다.
우혁이 기억하는 건 술 얌전히 마시고, 얌전히 잤다는 사실.
그런데 다음날 아침 백곰이 술에 취해 울었다는 말했다.
우혁이 믿지 않자 휴대전화로 찍은 동영상을 보여 주었다.
동영상을 지워 증거를 없애 버렸다.
“아범이 속이 상했겠지. 자기 마누라가 아이를 갖고 싶어 하는데 안 생기니까 옆에서 보기 얼마나 안쓰러웠겠어.”
어머니가 우혁의 역성을 들었다.
어머니도 한바탕 우셨는지 코맹맹이 소리를 내신다.
헛기침을 하며 신발을 벗었다.
“형, 축하해! 흑흑흑!”
백곰이 축하 인사를 건네고는 흐느꼈다.
“나 왜 자꾸 눈물이 나지. 이 좋은 날 왜 이래?”
백곰은 스스로 생각해도 이상하다고 생각했는지 자신을 책망하며 욕실로 들어갔다.
“사람이 어쩜 저렇게 정이 많을꼬!”
어머니가 욕실에 들어간 백곰을 두고 한마디했다.
아내는 환한 표정으로 우혁을 바라보았다.
어머니는 아내의 손을 꼭 부여잡고서 소파에 앉히고는 그 옆에 앉아 아내의 손과 등을 하염없이 쓰다듬었다.
20분쯤 뒤에 아버지가 돌아오셨다.
마당으로 들어서는 아버지 손에는 소고기와 미역 한 꾸러미가 들려 있었다.
***
연예인 소식을 전하는 지상파 방송 인터뷰 방송을 모니터했다.
조용한 카페에서 진행한 인터뷰였다.
“저쪽에 앉아 계시네요. 과연 누굴까요?”
여자 리포터가 조심조심 카페로 들어서 등을 돌리고 앉아 있는 남자에게 다가간다.
“남자 분 같죠? 누군지 아시겠어요?”
남자는 등을 보인 채 의자에 앉아 있다.
실루엣 화면이라 누군지 알아볼 수 없다.
“오늘 제가 여러분께 소개할 분은 바로!”
리포터가 남자 앞으로 다가가 남자를 가리킨다.
리포터를 뒤쫓던 카메라가 남자를 비춘다.
“강우혁 씨입니다.”
리포터가 박수를 친다.
“안녕하세요!”
우혁이 카메라를 향해 인사를 한다.
“반갑습니다, 강우혁 씨! 뵙고 싶었어요. 요즘 어떻게 지내세요?”
리포터가 우혁 맞은편에 앉으며 질문을 던졌다.
이미 세팅되어 있던 서너 대의 카메라가 다양한 각도에서 우혁을 비춘다.
“잘 지내고 있습니다.”
“영화 [길 밖의 새> 재미있게 잘 봤습니다. 연기를 어쩌면 그렇게 잘하세요. 혹시 함경도에서 태어나셨어요?”
“함경도는 가본 적도 없습니다. 혹시 가보셨나요?”
“아뇨. 이북 땅이라 못 가봤습니다. 가본 적도 없는데 어떻게 그렇게 함경도 사투리를 잘 쓰시냐구요.”
“함경도 분께 배웠습니다.”
“주인공이 북한 고향 땅에 가려고 날개를 만들어 달고 날다가 엉뚱하게 한라산 정상에 불시착하잖아요. 화면은 정말 아름다운데 너무 웃긴 거예요. 키득키득 웃었죠. 그러다가 1분도 안 돼서 울었어요. 웃다가 울면 안 되지 안 되는데 그날 그래 버렸다니까
요. 정말 서럽게 우시더라구요. 영화 소개 프로그램에서 우는 연기의 명장면 3위에 뽑힌 거 아세요?”
“그랬나요? 영광입니다.”
“영화가 좀 독특하더라구요. 하얀 날개를 만들어 하늘을 날고, 삽 한 자루로 땅굴을 파면서 다니고 막 그러더라구요. 어느 영화평론가가 마술적 리얼리즘이라고 하던데 그게 뭔가요?”
“[길 밖의 새>의 모든 장면은 현실과 상상의 경계가 모호합니다. 리얼리즘 영화를 보던 관객에게는 어이없을 수도 있고 황당하기도 할 거예요. 노벨문학상을 수상작인 [백 년 동안의 고독>이라는 소설을 보면 현실과 상상이 교묘하게 섞여 있습니다. 그
때 등장한 용어가 마술적 리얼리즘이죠. 현실의 공간인데 비현실적인, 또는 마술적인 일들이 아무렇지 않게 묘사되고 일어납니다. 현실의 이면에 숨어 있는 진실을 드러내는 기법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렇군요. 우리나라 관객들한테는 조금 낯설기는 한 것 같아요. 하지만 예술 영화처럼 낯설거나 어렵지는 않았어요. 일단 재미있고, 골치 아프지 않더라구요.”
“고맙습니다.”
“그런데 [길 밖의 새>가 큰 상을 받았다면서요? 로카르노 영화제에 초청받았다고 들었습니다. 사실인가요?”
“예, 그렇습니다. 소식 듣고 저도 깜짝 놀랐습니다.”
“우선 축하드립니다.”
리포터가 물개 박수를 쳤다.
“영화에 관심 있는 분들은 이 영화제가 얼마나 유명하고 권위 있는 상인지 알겠지만 영화제 소개 좀 부탁드립니다.”
“로카르노 영화제는 70년 역사를 가진 영화인의 축제입니다. 2편 이내의 작품을 발표한 전 세계의 내로라하는 신인 감독이 작품을 출품하고 엄정한 심사를 거쳐 영화제에 초청하게 됩니다.”
“그러니까 전 세계 신인 감독들이 출품한 작품들 중에 [길 밖의 새>가 뽑힌 거로군요.”
“그렇습니다. 초청된 작품들은 다시 전 세계의 유명한 감독이나 배우의 심사를 거쳐 황금표범상 등을 수여하게 됩니다.”
“배우한테 주는 상은 없나요?”
“초청작 영화에 출연한 배우 중에서 주연상을 뽑아서 상을 수여한다고 들었습니다.”
“강우혁 씨가 받을 수도 있겠네요?”
“그럴 수도 있겠습니다만 초청작으로 선정되었다는 것만으로도 영광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결과는 언제 나오나요?”
“8월 초순이 영화제 기간이니까 그 전에는 나오지 않을까 싶습니다.”
“강우혁 씨가 남우주연상을 받았으면 좋겠네요. 꼭요!”
“고맙습니다.”
지상파 방송 3사에서 로카르노 초청 인터뷰와 소식이 방송되자 [길 밖의 새> 예매율과 관객수가 껑충 뛰어올랐다.
개봉작 중 6위까지 떨어졌던 순위가 4위로 역주행했다.
개봉 2주가 되자 누적관객수 250만을 넘겼다.
이로서 손익분기점을 넘긴 것이다.
“250만 넘겼습니다.”
제작사 필름박스의 김 실장이 흥분한 목소리로 우혁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소식 알려주셔서 고맙습니다. 좋은 제작사를 만난 덕분에 세계적인 영화제에 초청도 되고 그 덕분에 영화도 흥행이 되었습니다.”
“공치사입니다만 해외 영화제 출품하느라 고생 좀 했습니다. 하하하! 사실 이 정도는 다른 제작사도 다 하는 겁니다. 강 배우님이 [길 밖의 새>에 쏟아 부은 시간과 열정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죠. 아는 사람은 다 아는 얘기지만, [길 밖의 새>는 강 배우
님 아니었으면 탄생하지 못했을 겁니다.”
“회식 한번 쏘라는 얘기처럼 들리네요.”
“들켰나요? 하하하하! 투자금도 회수하셨고, 조금 더 지나면 이익도 생길 것 같은데 한 턱 쏘십시오.”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이사님이 강 배우님 뵙고 싶어 하십니다. 저도 그렇고, 직원들 모두 그렇습니다. 다들 백 대리 보고 싶다고 난리예요.”
“조만간 백 대리하고 사무실 들르겠습니다.”
“그동안 고생하셨으니까 푹 쉬시고, 여유 되실 때 나오십시오. 나오실 때 연락 주시고요. 그럼 들어가십시오.”
김 실장과 통화를 마친 뒤 거실로 나갔다.
***
아내는 소파에 앉아 책을 읽고 있었다.
우혁은 팔짱을 끼고서 방 문틀에 기대어 아내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우혁의 시선을 느낀 아내가 우혁을 바라보았다.
아내가 옆에 와서 앉으라는 듯 옆자리를 손바닥으로 먼지를 털어 냈다.
아내 옆으로 가서 앉았다.
“왜 그러고 폼을 잡고 서 있었어?”
“방에서 나오니까 우리 집 거실에 웬 천사가 소파에 앉아서 책을 읽고 있지 뭐야.”
아내가 피식 웃었다.
“무슨 책이야?”
우혁이 묻지 아내가 대답 대신 책을 보여 주었다.
그림책 ‘눈사람 아저씨’.
아내는 그림책과 동화를 즐겨 읽는다.
그중에서 ‘눈사람 아저씨’는 아내가 가장 좋아하는 책이다.
텍스트 없이 파스텔톤 그림만 있는 그림책.
눈이 내리는 어느 날.
소년은 집 앞마당에 눈사람을 만든다. 눈, 코, 입을 만들어 주고, 목에는 목도리, 머리에는 모자도 씌워 준다.
그러자 인자하게 생긴 눈사람 아저씨가 생겨난다.
그날 밤, 잠에서 깨어나 문득 창밖을 보다가 눈사람 아저씨를 집으로 초대하기로 한다.
밖으로 나가 눈사람 아저씨를 집 안으로 초대하고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그림책에서는 이 장면이 꽤 길고 자세하게 묘사되어 있는데 아내는 이 장면을 볼 때마다 밝은 표정을 짓는다.
소년에게 식사까지 대접받은 눈사람 아저씨는 보답으로 소년과 함께 밤하늘을 날아다니며 소년에게 신기하고 놀라운 추억을 만들어 준다.
하늘을 날아 다시 소년의 집에 도착해 소년은 집으로 들어가고 눈사람 아저씨는 원래 있던 자리인 집 안마당에 서 있는다.
다음날 아침, 소년은 잠자리에서 일어나자마자 밖으로 나가 눈사람 아저씨를 확인한다.
안타깝게도 눈사람 아저씨는 목도리와 모자를 남긴 채 녹아 버렸다.
아내는 마지막 장면이 그려진 페이지를 읽지 않고 책을 덮는다.
“[눈사람 아저씨> 영화 볼까?”
“응!”
우혁은 그림책보다 영화 [눈사람 아저씨>를 좋아했다.
반면 아내는 영화보다 그림책 ‘눈사람 아저씨’를 훨씬, 비교 자체가 의미가 없을 만큼 좋아했다.
아내는 독서를 좋아하고, 보물처럼 아끼는 책들이 100여 권 정도 되지만 그중에서도 유독 ‘눈사람 아저씨’를 좋아했다.
단순히 좋아하는 정도가 아니라 애착에 가까웠다.
우혁은 ‘눈사람 아저씨’에게 약간의 질투심마저 느낄 정도였다.
한번은 아내에게 물어본 적이 있다.
“이 책이 그렇게 좋아? 첫사랑이 선물한 책인가?”
“풋! 첫사랑이 선물한 책은 따로 있지요.”
“뭔데?”
“말해야 돼?”
“하기 싫으면 말고.”
아내가 일어나서 서가에 꽂혀 있는 책 한 권을 꺼내왔다.
우혁이 아내에게 선물한 책이었다.
아내를 만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 서점에 가서 사준 책.
아내가 골랐고, 우혁은 책값을 지불했을 뿐이다.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
아내가 세상에서 두 번째로 좋아하는 책이다.
우혁은 그 책이 첫 번째가 아니어서 아쉽다. 한 번도 내색한 적은 없지만.
아내와 나란히 앉아 영화를 보았다.
우혁이 가장 좋아하는 신은 소년이 눈사람 아저씨의 손을 잡고 밤하늘을 날아오르는 장면이다.
그 장면과 함께 하워드 블레이크의 ‘Walking in the Air’가 흐를 때,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동이 전해진다.
아내도 그 장면을 영화에서 가장 좋아했다.
그 장면이 시작되자 아내는 우혁의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
어깨를 빌려주는 일.
아무 일도 아닐지 모르겠지만 우혁은 오직 한 여자, 아내에게만 어깨를 빌려 주었다.
지금까지 그래 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아내는 영화를 보면서도 그림책 ‘눈사람 아저씨’를 품에 안고 있었다.
[ 어깨를 빌려주는 일 > 끝ⓒ 길밖의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