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autiful Top Star RAW novel - Chapter (91)
“고맙긴요. 기사거리 주셔서 제가 고맙죠.”
나윤희 기자는 서울 서교동의 5층짜리 건물 3층에 입주해 있는 소규모 인터넷신문사 ‘Star Life News’ 사무실로 가기 위해 계단을 빠르게 올라가며 전화통화를 했다.
“배우님 덕분에 제 기사가 포털사이트 실시간 검색 순위 1위에 올랐습니다. 배우님도 보셨어요? 배우님이 알려주신 기사만 썼다 하면 검색 순위에 오르네요. 앞으로도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꿩닭!”
나 기자는 늘 그렇듯 ‘꿩닭’ 구호를 마지막으로 통화를 끝냈다.
‘꿩닭’은 강우혁과 통화를 할 때마다 붙이는 경례 구호이다.
우혁은 나 기자를 꿩닭 기자라고 부른다.
이메일이나 문자를 보낼 때마다 ‘잘 부탁드립니다, 꿩닭 기자님!’이라고 했다.
우혁이 ‘꿩닭 기자님’이라는 호칭을 처음 썼을 때 나 기자는 우혁에게 물어 보았다.
“왜 저를 꿩닭 기자라고 부르시는 거예요? 제 이름은 나윤희거든요!”
“[생강> 시사회 때, 꿩 대신 닭이나 취재할까 하면서 저한테 오신 거 기억 안 나세요?”
“그 말 들으셨어요? 으으으! 죄송합니다.”
그 뒤부터 우혁과 전화통화를 하거나 이메일, 메시지를 주고받을 때 마지막에 ‘꿩닭!’이라는 경례 구호를 붙였다.
통화를 끝내고서 휴대전화 화면을 바라보며 혼잣말을 했다.
“강우혁! 너란 배우! 어쩜 이렇게 멋있는 거니?”
강우혁 덕분에 포털사이트 실시간 검색 순위에 몇 차례 오르면서 동료 기자의 부러움도 사고, 편집장님의 칭찬도 들었다. 월급도 올랐고.
이번 기사는 권선자 배우의 암 투병 특종이었다.
강우혁한테 받은 제보였다.
제보를 받는 순간, 실검 1위에 오르겠구나, 감이 왔다.
예상대로였다.
기사를 올린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실검 1위에 오르더니 하루가 지난 지금에도 실검 순위에 남아 있다.
꿩닭 기자는 가벼운 발걸음으로 계단을 올라 복도를 걸었다.
‘Star Life News’는 소규모 인터넷신문사였다.
취재 기자는 달랑 다섯.
비록 작은 회사이지만 꿩닭 기자에게는 엄연한 직장이다.
급여가 높은 것도 아니고 미래가 안정적인 것도 아니지만 적성에 딱 맞다.
좋아하는 영화, 연극, 뮤지컬, 드라마 등을 보고 그에 대한 감상문을 적는 일도 재미있고, 연예인들을 직접 만나 인터뷰를 하거나 그들의 사생활을 추적하는 일도 흥미롭다.
메이저 신문사처럼 일이 빡센 것도 아니다.
메이저 신문사에 다니는 기자 친구가 있는데, 그들이 수습기자 때 겪었던 얘기를 들으면 끔찍하다.
수습기자 생활이 끝난 뒤에도 야근을 밥 먹듯이 하는 걸 보면 결코 부럽지가 않다.
메이저 신문사는 급여가 훨씬 많기는 하지만 꿩닭 기자는 그들이 결코 부럽지 않았다.
지금 생활에 만족한다.
강창준 편집장을 제외하고 나머지 기자들은 모두 비슷한 시기에 입사해서 친구처럼 지낸다.
강 편집장도 살벌한 선후배의 위계 같은 걸 요구하는 사람이 아니다.
꿩닭 기자는 국문학과를 졸업해 출판사의 편집자 길을 가려다가 이쪽으로 방향을 틀게 되었다.
가지 않은 길에 대한 미련이 조금 남아 있지만, 어차피 가지 않은 길이니 안 좋은 소식이 있으면 열심히 챙겨 읽는다.
출판사의 도산과 감원 소식을 들을 때마다 안타까우면서도 안도감이 든다.
그렇다고 이 바닥은 잘 돌아가고 있느냐?
그건 또 아니다.
아슬아슬하다.
수많은 인터넷신문사가 생겨났다가 소리 소문 없이 사라졌다.
하지만 꿩닭 기자는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매일매일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할 뿐.
말이 최선이지 정말 최선을 다하지는 않는다.
적당히 적당히!
오늘처럼 자신이 쓴 기사가 실검 순위에 오르내리는 날이면 의욕이 샘솟는다.
보람도 느끼고 기분도 좋고 뿌듯하기도 하다.
경쾌한 걸음으로 복도를 걷는데 꿩닭 기자의 휴대전화 착신음이 울렸다.
발신자 번호가 뜨지 않는다.
기자 생활을 하면서 흔하게 겪는 일이었다.
“스타라이프뉴스의 나윤희 기자입니다.”
– 나윤희 기자님이십니까?
좀 전에 밝혔건만 상대가 이름을 확인했다.
상대는 30대쯤으로 여겨지는 남자였다.
“네 그렇습니다만. 누구시죠?”
– 전달드릴 게 있어서 전화드렸습니다.
“무슨 부탁인데요?”
– 전화상으로 말씀드리기는 곤란하고요. 직접 뵙고 전달드려야 할 것 같은데 괜찮으실까요?
감이 왔다.
기사 의뢰.
실시간 검색 순위에 몇 번 오른 뒤로 연예인 기사를 쓴 뒤로 연예인 기획사와 소속사, 매니저, 또는 연예인의 가족이나 연예인 당사자로부터 여러 차례 청탁 기사를 써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반대로 기사를 쓰고 나서 해당 연예인의 소속사로부터 감사 전화나 작은 선물을 받을 때도 있었다.
가끔은 선물에 상품권이 끼워져 있기도 했다.
신입 기자에게는 아예 그런 제안 자체가 들어오지 않는다.
실검 순위에 오른 기자에게나 일어나는 일.
이제 기자로서 글 좀 쓰는구나, 인정받는 지표 같은 것이랄까.
처음에는 선물과 상품권을 무서워 쓰지도 못하고 모아두었다.
“모아두면 어떡해. 빨리 사용하는 게 좋아. 아예 받지를 말던가.”
선배 기자가 꿩닭 기자에게 귀띔했다.
그 말을 들은 뒤로 꿩닭 기자는 상품권을 후딱 써버렸다. 청탁 기사를 쓴 대가로 받은 선물은 다른 사람 줘버리고.
그렇게 몇 번 하고 나니까 별일이 아니었다.
영양가 없는 선물은 부담스럽기만 하고 상품권이 좋았다.
사실 선물은 부담스럽기만 했다. 꼭 필요한 물건일 때도 있었지만 대체로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물건일 때가 많았다.
그래서 상품권이 반갑다.
“그러시죠 뭐.”
꿩닭 기자는 전화를 건 상대에게 대답했다.
상대와 약속 장소와 시간을 장소를 정하고 전화를 끊었다.
***
약속 시간에 맞춰 약속 장소로 나갔다.
그곳에는 퀵서비스 배달 직원이 기다리고 있었다.
간단하게 인사를 나누자마자 배달 직원이 꿩닭 기자에게 서류 봉투를 건넸다.
퀵서비스 직원이면 회사로 찾아올 것이지 회사에서 도보로 10분이나 떨어진 곳까지 나오라고 하는 게 조금 이상했다.
“이게 뭐죠?”
“저도 잘 모릅니다. 손님의 의뢰를 받고 전달하는 거라서요. 봉투를 열어 보시면 내용이 있을 거라고 하더라구요. 일반 배달을 하면 봉투를 열어보지 않을 것 같다면서 이렇게 전달해 달라고 부탁을 해서요.”
“알겠습니다.”
“외뢰인이 이 말씀도 전해 달라고 하셨는데요, 이 서류 다른 사람 눈에 띄지 않는 곳에서 검토해 달라고 하셨어요. 그럼 전 이만 가보겠습니다.”
배달 직원은 그렇게 말하고는 가버렸다.
떨떠름하고 께름칙했다.
근처 카페로 들어가 봉투를 열어보았다.
봉투는 평범했지만 비밀 테이프로 입구가 꼼꼼하게 봉해져 있었다.
봉투를 열자 A4 프린트 용지 두 장이 나왔다.
용지에는 레이저 프린터로 출력한 듯 보이는 글자가 보였다.
그리고 흰 봉투 하나.
흰 봉투부터 살펴보았다.
꿩닭 기자는 얼른 흰 봉투를 서류 봉투 속에 도로 집어넣고 주위를 살폈다.
아무도 자기를 보는 사람은 없었다.
상품권이 들어 있을 줄 알았는데 현금이 보였다.
잘못 본 건가?
주위를 살피며 흰 봉투를 꺼내 봉투 안을 살펴보았다.
5만 원짜리 20여 장.
100만 원.
얼른 봉투를 서류 봉투 속에 넣고, 서류 봉투는 늘 들고 다니는 가방 속에 넣었다.
기사 의뢰가 분명했다.
부담스럽다.
어떻게 해야 할지 판단이 서지 않는다.
돌려주려고 해도 주소도 전화번호도 없었다.
일단 무슨 내용인지 확인해 보기로 했다.
프린트 용지에 인쇄되어 있는 글을 읽었다.
**
나윤희 기자님! 안녕하십니까?
한 가지 부탁드릴 게 있어서 연락을 드리게 되었습니다.
직접 뵙고 말씀드려야 하는 게 도리인 줄 알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아 이런 식으로 인사드리게 된 점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눈치 채셨겠지만 기사 하나 부탁드리려고 합니다.
그동안 기자님께서 이런 식의 의뢰 기사를 여러 차례 쓰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오해는 하지 마십시오.
협박하는 거 절대 아닙니다.
부디 끝까지 읽어 주시기 바랍니다.
제가 이 바닥을 잘 알고 있는 사람으로 말씀드리자면 의뢰 기사 쓰는 기자님들 많이 계십니다.
그러니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된다는 말씀 먼저 드립니다.
이런 의뢰가 있다는 건 인기 기자님이 되셨다는 반증이라고 생각하셔도 무방합니다.
축하드릴 일이라고 하면 화를 내시려나요? ㅎㅎ
지금까지 나윤희 기자님께서 받았던 의뢰를 어떻게 알고 있는지는 말씀드리지 않겠습니다.
넘겨짚는 건 아닙니다. 자료를 가지고 있습니다.
아까도 말씀드렸습니다만 협박이 절대 아닙니다.
사실을 말씀드릴 뿐입니다.
이 말씀을 드리는 이유는 저희 의뢰도 꼭 들어주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앙탈을 부리는 거라고 여겨 주시면 되겠습니다.
다른 의뢰는 들어주시고 저희 의뢰는 외면하신다 해도 괜찮습니다.
물론 조금 섭섭하기는 할 것 같습니다만. ㅎㅎ
의뢰를 들어주실 거라고 믿고 말씀드리겠습니다.
기사를 쓰는 수고를 하실 필요도 없습니다.
기사는 저희가 모두 썼습니다.
기자님의 문체를 그대로 반영한 기사입니다.
기사를 읽어 보시고 교정을 보시는 건 상관없습니다만 내용을 수정하거나 주요 문장을 삭제하는 일은 하지 않기를 부탁드립니다.
노골적으로 말씀드리자면, 기자님의 성함을 빌리고 싶습니다.
약소하지만 사례금을 보냅니다.
요긴하게 쓰시기 바랍니다.
1주일 안으로 올려 주실 것을 부탁드립니다.
앞으로 10회 정도의 기사를 더 부탁드릴 예정입니다.
그럴 일은 없으시겠지만 만약 1주일 안에 첫 번째 기사를 올리지 않으신다면 더 이상의 의뢰는 없을 것입니다.
100만 원을 돌려주고 싶으시다고요?
그러실 필요 없습니다.
살다 보면 급하게 돈을 써야 할 일이 생길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세상이 하도 험해서 말이에요.
예기치 않은 사고를 당하는 경우가 좀 많아야지요.
그럼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
꿩닭 기자의 손이 덜덜덜 떨렸다.
꿩닭 기자는 프린트 용지를 얼른 가방 속에 집어넣었다.
심장이 쿵쾅쿵쾅 뛰었다.
침착!
침착하자!
꿩닭 기자는 심호흡을 하며 마음을 가라앉히려 애를 썼다.
카페 안을 다시 한 번 유심히 살펴보았다.
아무도 자기에게 관심을 가지는 사람은 없었다.
편지 글만 읽고 심장이 벌렁거려 의뢰인이 썼다는 기사를 읽지 않았다.
기사를 꺼내 읽어 보았다.
“말도 안 돼!”
꿩닭 기자는 기사를 읽고 나서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찢어버리려다 차마 용기가 나지 않았다.
기사를 가방 속에 도로 집어넣고 카페 밖으로 나갔다.
어떻게 해야 하지?
왜 나한테 이런 일이 일어난 거지?
경찰에 신고부터 해야 되는 거 아닐까?
신고하면?
그동안 청탁 기사 쓴 거 다 밝혀야 한다.
회사에서 쫓겨날 수도 있다.
회사에서 쫓겨나는 게 문제가 아니다.
언론에 기사가 나고 잘못하면 법정에 서야 할 수도 있고.
그보다 무서운 건 보복이다.
100만 원을 치료비로 써야 하는 일이 벌어질 수도 있다.
청탁 기사 의뢰인의 편지 글 말미에 적힌 내용은 분명 협박이었다.
“어떡하지?! 어떡하지?!”
꿩닭 기자는 어쩔 줄 몰라 하며 길을 걸었다.
회사까지 빨리 갈 수 있는 골목 지름길이 있었으나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큰길을 택했다.
회사를 향해 가고 있었으나 회사에 가서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편집장님한테 도움을 청할까?
아니면 기사 내용의 당사자인 강우혁 씨에게 사실을 말하고 대책을 강구해?
편집장님에게 얘기를 하려면 청탁 기사 얘기를 털어놓아야 한다.
도저히 입이 떨어질 것 같지 않다.
강우혁 씨!
강우혁 씨에게 전화를 걸어 이 문제를 상의하는 게 좋을 것 같다.
기사가 나간다면 가장 많은 피해를 입을 수 있는 사람이 아닌가.
강우혁에게 전화를 걸었다.
– 예, 기자님! 강우혁입니다.
“상의 드릴 게 있습니다. 지금 좀 뵐 수 있을까요?”
– 촬영 중이라 지금은 곤란한데요. 왜 그러시죠?
“제가 촬영장으로 찾아뵙겠습니다. 촬영장이 어디시죠?”
– 목소리가 안 좋으시네요. 무슨 일 있나요?
“뵙고 말씀드리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보여드릴 것도 있구요.”
강우혁이 촬영 장소를 알려주었다.
꿩닭 기자는 택시를 잡아타고 강우혁의 촬영장으로 향했다.
[ 청탁 기사 > 끝ⓒ 길밖의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