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ame a chef of the constellations RAW novel - Chapter 123
123화. 비너스의 탄생
“비너스의 탄생이요?”
이탈리아 르네상스 화가 산드로 보티첼리의 걸작, 비너스의 탄생.
바다에 떠 있는 조개 위에서 알몸의 아프로디테가 몸을 가리고 서 있고 서풍의 제피로스가 그녀를 조개 채로 키테라섬으로 불어 보내는, 호메로스의 시에 근거해 그린 그림이었다.
아마 신화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도 한 번쯤은 다 봤을 그 그림.
나는 그 그림을 접시 위에 재현시킬 생각이었다.
물론 그렇다고 거창하게 재현시킨다기보다는 모티브만 얻어올 생각이었지만.
“미야, 마들렌을 구워줄 수 있어요?”
“네. 물론이죠, 마스터.”
마들렌은 조개 모양의 작은 케이크.
비너스의 탄생에서 비너스, 즉 아프로디테가 올라타고 있는 조개를 표현하기에 딱 좋은 과자였다.
“보통 마들렌보다 조금 크게 구워줘요.”
“맡겨만 주세요.”
내게 힘차게 대답한 미야는 재빨리 마들렌 제작에 들어갔다.
마들렌에 들어가는 재료는 딱 5가지.
녹인 버터와 계란, 그리고 밀가루 박력분과 설탕, 레몬 껍질을 갈아 넣은 레몬 제스트였다.
현대 제과제빵에서는 베이킹파우더가 추가 되지만, 아쉽게도 던전산 재료로 만든 베이킹파우더가 없었다.
베이킹파우더는 마들렌 반죽을 구울 때 화학 작용으로 가스를 생성해서 수증기와 함께 쉽게 반죽이 부풀어 올라 모양을 잡는 데 도움을 주는 재료지만,
“옛날엔 그런 게 없어도 다 빵과 과자를 구웠으니까요.”
오히려 미야는 그런 게 없는 게 더 편하다는 듯 간편하게 마들렌 반죽을 만들어 나갔다.
하긴, 베이킹파우더가 처음 등장한 게 19세기 중반이었으니 미야에겐 베이킹파우더 없이 빵을 만드는 게 더 편할 터였다.
그렇게 미야가 마들렌을 만들 준비를 하는 동안, 나도 할 게 있었다.
“누가 그랬던가? 요리는 과학이고, 요리 시간은 재미있는 실험 시간이라고.”
베이킹파우더는 아쉽게도 대체할 재료를 찾지 못해 포기했지만, 다른 방법은 시도할 수 있단 말이지.
나는 일단 멜리멜론을 꺼내고 진짜 던전산 사과도 꺼냈다.
이건 마철성이 재배한 게 아니고 예전에 미야가 가져온 트렌트와 리빙 트리를 키워 딴 사과였다.
“일단 이 사과를 버터와 시나몬과 섞어서 졸이자.”
사과 설기에 들어간 사과 졸임은 단순히 던전 보석 벌꿀만 넣고 졸인 거라면, 이번에 만들 사과 졸임은 향과 풍미를 더 살리기 위해 버터와 시나몬 가루를 쓸 생각이었다.
물론 버터는 [에덴의 동쪽]에서 황금양 크리소말로스와 알콩달콩 시간을 보내고 있는 미리의 양젖으로 만든 버터였고 시나몬은 채하나의 약초상에서 산 던전산 대체품이었다.
“버터를 먼저 녹이고, 잘게 자른 멜리멜론과 사과를 잘 볶다가 시나몬 가루를 섞어 주면······.”
사과 자체의 단맛이 캐러멜화되고 익은 버터의 색으로 갈색으로 졸여진 사과 졸임이 완성되었다.
원래라면 여기에도 던전 보석 벌꿀을 갈아서 만든 던전산 설탕을 넣어줘야 하지만, 단맛은 다른 곳에서 얻어올 예정이라서 빼기로 했다.
“이제 이걸 갈아줘야지. 천오야, 부탁해.”
“맡겨줘!”
천오가 여의봉을 꺼내서 내가 만들어 놓은 사과 졸임을 곱게 갈기 시작했다.
믹서기를 쓰기 힘들 땐 역시 천오가 최고지.
이미 잘 익어서 충분히 물러진 사과 졸임이었기에 거의 액체처럼 갈아지는 데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미야, 마들렌은 어떻게 되어가요?”
“이제 굽기만 하면 돼요, 마스터.”
조개 모양의 틀에 반죽을 짜 넣은 미야가 막 마정석 오븐에 틀을 넣고 있었다.
“580도로 10분간 구울게요.”
보통 베이킹은 180~200도 사이로 굽는다.
아무리 마력이 깃든 재료라고 해도 그의 3배 가까운 온도라니, 너무 높은 거 아니냐고?
베이킹은 특히나 온도에 민감하므로, 미야가 그동안 적절한 온도를 찾는데 꽤 많은 고생을 해 온 걸 옆에서 지켜본 나였다.
그렇기에 미야가 고른 온도를 난 믿고 있었다.
“사장! 다 갈았어.”
“곱게 갈아졌네. 고마워.”
나는 천오가 갈아서 걸쭉한 액체가 된 사과 졸임에 미리의 양젖을 살짝 넣었다.
그러곤 그 혼합물을 특별히 제작된 케이스에 집어넣었다.
“그게 뭐야?”
“사이펀이라는 휘핑기로, 거품이나 크림을 만드는 데 쓰는 도구야.”
나는 사이펀에 캡슐 하나를 끼워 넣으며 천오에게 설명을 이어 나갔다.
“이 캡슐에 질소가스가 들어가 있어.”
“질소?”
“공기 중에도 있는 기체인데, 이걸 강제로 재료에 밀어 넣어서 거품을 만드는 거지.”
그렇게 되면 거품이 만들어지기 어려운 액체도 질소 기포로 인해 거품이 가득한 크림이 된다.
거기다 질소 자체에서 단맛이 살짝 나기에 단맛이 추가되는 건 덤.
“현대 분자요리에선 이런 걸 에스푸마라고 하지.”
에스푸마.
거품을 뜻하는 포르투갈어로 현대 분자요리에서 만들어내는 거품 요리를 통칭하는 말이었다.
나는 곱게 간 사과 졸임과 양젖의 혼합물을 거품이 풍부하고 부드러운 크림 형태로 만들어서 마들렌 속에 넣을 생각이었다.
“바다의 거품에서 태어나 조개를 타고 섬으로 떠내려온 아프로디테에게 딱 맞다고 생각되지 않아?”
내 아이디어는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나는 씨익 웃으며 설명을 이어 나갔다.
“그리고 마들렌 안을 둥글게 판 다음에 이 거품을 채워 넣으면 마치 진주처럼 보일 거야. 진주를 품은 조개가 되는 거지.”
“대단해요, 마스터.”
마정석 오븐에서 막 마들렌을 꺼내던 미야가 내 설명에 감탄을 터뜨렸다.
그녀가 보기에도 내 생각이 나쁘지 않은 모양이었다.
“나쁘지 않다뇨. 정말 멋진 발상이에요.”
“난 무슨 소린지 모르겠지만, 일단 맛있으면 된 거 아닐까?”
물론 천오처럼 맛만 추구하는 손님도 있을 테니 맛있게 만드는 건 필수였다.
“천오는 마들렌이 식으면 안을 둥글게 파줘. 할 수 있지?”
“몸을 작게 만들어서 여의봉으로 파면 금방이야.”
그렇게 대답한 천오는 천육, 천칠, 천팔을 불러내곤 몸을 줄여서 마들렌의 속을 파들어 가기 시작했다.
배꼽처럼 부풀어 오른 마들렌의 뒷면을 야금야금 정교하게 파는 걸 보니 믿고 맡겨도 될 것 같았다.
“그런 다음 안에 사과 에스푸마를 채워 넣으면 끝!”
남은 사과 졸임 소스는 마치 바다 거품처럼 조개 모양 마들렌 주위에 스푼으로 장식을 해준다.
그러자 바다 거품 속에서 진주를 품은 하나의 조개가 멋지게 완성되었다.
“이걸로 저 아프로디테가 만족할까요?”
“만족할걸요?”
미야의 물음에 나는 씨익 웃으며 대답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조개 속에 담긴 맛은 아프로디테 그 자체일 테니까.
“세상에 아름다움이 꼭 눈으로만 보이란 법은 없죠. 혀로도 아름다움을 느끼게 해줍시다.”
그리고 미야와 함께 분주하게 준비한 결과 헤라와 아테나에게 어울리는 요리들도 완성이 되었다.
나는 그렇게 완성된 요리를 들고 세 여신이 기다리는 주방으로 향했다.
* * *
내가 돌아오자 세 여신은 에녹과 조용히 담소를 나누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아프로디테는 아까 에녹이 잘생겼다고 싫어하더니 제일 즐겁게 얘기하고 있네?
어쨌든 요리하는 동안 에녹이 시간을 잘 끌어준 것 같아서 다행이었다.
“오래 걸렸구나.”
“그만큼 오랜 고민이 필요한 문제였다는 점을 이해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늦게 왔다는 헤라의 핀잔에 나는 웃으며 대답했다.
“세 분의 아름다움이 각자 다르고 모두 뛰어나니 고민하는 시간이 늘어날 수밖에 없더군요.”
“흥, 말은 잘해. 진짜 확 데려갈까 보다.”
입으로는 투덜대면서 아프로디테가 내 칭찬이 싫지는 않다는 듯 콧소리를 냈다.
아테나도 입꼬리가 살짝 올라가 있는 걸 보니 기분이 좋아 보이는 모양이네.
이렇게 손님들의 기분이 좋을 때 바로 요리가 나가야지.
“그래서, 고민 끝에 답은 정해진 건가?”
“제 답은 이 요리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요리로?”
“네. 전 요리사니까요.”
나는 의아해하는 세 여신에게 가장 먼저 사과 에스푸마를 넣은 마들렌을 내밀었다.
“페르세포네 님과 계약한 [성좌의 농부] 마철성이 정성스럽게 키워낸 쌀과 목자 카인이 키운 양, 양미리의 젖으로 만든 버터로 만든 마들렌에 특별한 크림으로 속을 채운 ‘비너스의 탄생’입니다.”
“역시 나를 선택했구나?”
요리에 관한 내 설명을 듣자 아프로디테의 얼굴이 환해졌다.
“이번에도 아프로디테인가.”
“인간 남자들이란······.”
반면, 다른 두 여신의 얼굴은 눈에 띄게 딱딱해졌다.
나는 그 모습을 보고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프로디테 님을 선택했다는 소리가 아닙니다. 요리를 드셔보시면 알게 될 겁니다.”
“······그래?”
내 말에 다시 환해지는 헤라와 아테나의 얼굴.
반대로 아프로디테는 살짝 뾰로통한 표정이 되었다.
“감히 나를 농락하는 거라면 용서하지 않겠어.”
나를 살짝 흘겨보곤 아프로디테가 조개 모양의 마들렌을 들어 입으로 가져갔다.
그리고 한 입 베어 무는 순간,
“으으음!”
내 천자로 구겨지는 진실의 미간.
불쾌한 것이 아니라 너무 맛있어서 저도 모르게 주름이 질 정도로 미간에 힘이 들어간 것이었다.
“이 과자는 엄청 촉촉하고 부드럽네. 마치 사랑하는 연인의 살결 같아.”
······비유는 참 사랑의 여신 답네.
그런 아프로디테의 평을 들은 헤라와 아테나도 자신의 입으로 마들렌을 가져갔다.
“확실히 우리가 먹던 빵과는 차원이 다를 정도로 부드럽고 맛있네. 달콤한 구름을 씹는 느낌이야.”
“양젖으로 만든 버터를 넣었다고 했나? 올리브유보다도 더 괜찮다.”
그리스인들은 압착만 해도 고품질의 기름이 흘러나오는 올리브가 있었기에 식용 기름으로 버터를 잘 쓰지 않았다.
그래서 지중해 쪽 빵을 보면 푹신하다기보다는 납작하고 쫄깃한 빵들이 더 많지.
마들렌처럼 부드럽고 푹신한 케이크류는 처음 봤을 터였다.
“어떤가요? 입에 맞으신가요?”
“아직, 아직 다 먹지 않았어.”
아프로디테는 내 질문이 성급하다며 서둘러 마들렌을 한입 더 물었다.
그리고 그 순간,
[‘거품에서 태어난 키프로스의 애욕’이 음식만으로 환희를 느낍니다.]아프로디테가 몸을 파르르 떨며 엄지를 치켜들었다.
“세상에, 이 안에 있는 크림은 뭐야? 이렇게 달콤하고 부드러우면서 맛있어도 되는 건가?”
아프로디테가 베어 문 마들렌 안에서 연한 갈색의 크림이 부드럽게 흘러나오고 있었다.
나는 웃으며 그 크림에 관해 설명해주었다.
“사이펀이라는 거품기로 만든 크림입니다. 거품을 만들 수 없는 재료도 크림으로 만들 수 있죠. 최근 인간들이 개발한 방법입니다.”
“이게 거품이라고?”
“네. 바다의 거품에서 태어난 아프로디테 님을 떠올리며 만든 크림입니다.”
“어머······.”
내 말에 감동한 듯 아프로디테가 볼에 홍조를 띠며 몸을 배배 꼬았다.
“역시 내가 마음에 든 거구나? 나를 선택한다는 소리로 받아들여도 되지?”
“그렇게 마음에 드셨나요?”
“물론! 이것만 먹고 살아도 되겠어. 아니, 나랑 같이 이걸 연인들의 음식으로 만들자. 요즘 발렌티노가 자꾸 자신이 더 사랑과 결혼의 성좌로 어울리지 않냐고 시비를 걸어온단 말이야.”
발렌티노라면 밸런타인데이의 기원이 된 그 성 발렌티노지?
이런 분야에서 아프로디테랑 경쟁하고 있을 줄은 몰랐는데.
“그 근본 없는 초콜릿보다 이게 낫겠다.”
“하하, 말씀만 해주셔도 감사하네요.”
“난 진심이야?”
그렇게 말한 아프로디테는 남은 마들렌을 남김없이 모두 먹어 치웠다.
나는 그 모습을 흐뭇하게 보며 눈앞에 떠오르는 메시지를 확인했다.
좋아, 아프로디테는 성공했고.
나는 남은 두 여신에게 고개를 돌렸다.
사과 에스푸마가 들어간 마들렌은 만족스러웠지만, 역시나 내가 아프로디테를 선택했다며 표정이 안 좋아 보이는 헤라와 아테네 역시 만족시킬 차례였다.
“다음은 헤라 님을 위한 음식입니다.”
“나를 위한 음식도 준비되어 있었나?”
“네. 헤라 님을 상징하는 공작의 꼬리를 음식으로 만들어봤습니다.”
그렇게 말하며 내가 내놓은 건,
“수리취 부침개와 송송이입니다.”
공작의 꼬리 형상으로 넓게 부쳐진 수리취 부침개와 궁중에서 먹었다는 깍두기와 비슷한 김치, 송송이였다.
눈과 방패, 그리고 황금 사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