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ame a chef of the constellations RAW novel - Chapter 149
149화. 남매의 정체
“난 너희에게 들을 말이 없다.”
차갑게 굳어버린 미야의 마음을 반영하듯, 어느새 미야의 얼굴은 다시 매부리코에 주름진 마녀의 얼굴이 되었고 목소리도 노파의 것으로 변해 있었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 싸늘한 것이 바로 그녀의 두 눈빛이었다.
시선이 닿는 것만으로도 상대를 얼려버릴 것 같은 극광과도 같은 차가운 눈빛.
거기다 실제로 주변의 온도가 떨어졌다고 느끼는 건 내 착각이 아닌 거 같고.
······가게 창문에 성에가 끼고 있네, 한여름에 이거 실화냐.
“그러니 돌아가.”
“자, 잠깐······.”
미야는 그 말만 남기고 홱 몸을 돌려 가게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그러자 안타까운 얼굴로 헨젤과 그레텔 남매가 손을 뻗으려 할 때였다.
“그쯤 하지 그래?”
돌아온 건 마찬가지로 싸늘한 천오의 목소리였다.
“기껏 미야의 상황을 좋게 만들었는데, 미야를 저렇게 만든 너희가 찾아와서 다 망칠 일 있어? 꺼져.”
내로라하는 요괴들도 벌벌 떨었던 제천대성의 분노에 헨젤과 그레텔이 뻗었던 손을 주춤거리며 회수했다.
하지만 떠나지도 못하고 눈치만 보며 어쩔 줄을 몰라 하는 남매의 모습에 나는 한숨을 내쉴 수밖에 없었다.
“천오야, 먼저 들어가 있어.”
“사장, 쟤들 이야기 들어주려고?”
놀라는 천오를 보며 나는 고개를 저었다.
“좋은 말로 돌려보내려고 그러는 거야.”
“알겠어. 사장이 그렇게까지 말하면 믿어야지.”
천오는 내 말에 순순히 미야를 따라 가게에 들어갔다.
나는 그런 천오를 보고 다시 헨젤과 그레텔 남매를 보며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나 역시 미야를 힘들게 했던 이 남매가 썩 좋게 보이진 않았다.
하지만 아직 애들로 보이는 남매에게 무작정 화를 내서 쫓아 보내는 것도 좋은 해결책은 아니었다.
설령 저 남매가 나보다 수백 년은 더 오래 산 동화 속 존재라고 할지라도 ‘연성이네’의 사장으로 가게에서 벌어진 일은 내가 책임지고 좋게 끝내야 하니까.
“무슨 생각으로 이제 와 사과를 하려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오늘은 일단 돌아가요.”
“하지만······.”
헨젤이 뭐라고 더 하고 싶은 말이 있어 보였지만, 나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미야와 두 사람, 아니 두 분 사이에 있던 일을 내가 다 알지는 못해요. 꼭 할 말이 있을 수도 있겠죠.”
“그렇다면!”
“하지만 미야가 싫어하는데 내가 당신들을 들여보내 주진 않을 겁니다.”
그건 내가 미야의 상사라는 입장을 이용해서 만남을 강요하는 거나 마찬가지니까.
미야의 성좌 복귀를 위해서 몰래 계획을 짰던 때는 그녀의 자신감을 올려서 스스로의 망설임을 없애주고 싶었던 거였다.
트라우마가 있는 사람에게 트라우마를 해결해주겠다며 원인을 들이미는 건 해결책이 아니라 폭력이었다.
그러니 나는 그 원인이 되는 이 남매를 미야와 만나게 할 생각이 없었다.
“그리고 이제 우리 가게가 영업 준비를 해야 할 시간이에요. 더이상은 영업 방해입니다.”
“하지만!”
거듭된 내 거부에 그레텔이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목소리를 높였다.
“우리에겐 시간이 없어요······.”
“시간?”
갑자기 무슨 소리지?
저 남매가 진짜 그림 형제의 동화 속 그 헨젤과 그레텔이라면 수백 년이라는 시간이 있었을 텐데 이제 와서 시간이 없다고 하다니.
어이가 없네.
내 미간이 찌푸려지자, 오빠인 헨젤이 그레텔을 말렸다.
“그레텔, 그만 해.”
“하지만, 오빠!”
“우리가 그럴 자격 없다는 거, 너도 알잖아.”
“······.”
헨젤의 말에 입술을 꼭 다무는 그레텔의 눈가엔 눈물이 그렁그렁 차올라 있었다.
······확실히 뭔가 사연이 있긴 한가 보네.
하지만 그렇다고 이 남매의 편을 들어줄 생각은 없었기에, 나는 팔짱을 끼고 차분히 헨젤과 그레텔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헨젤이 단념한 표정으로 잠깐 눈을 감았다 뜨고는 고개를 꾸벅 숙였다.
“다음에 혹시라도 허락을 받을 수 있다면, 그때 찾아오겠습니다. 불쾌한 경험을 해드리게 해서 죄송합니다.”
그렇게 헨젤은 눈물을 흘리기 시작한 동생 그레텔의 손을 잡고 가게 밖으로 나갔다.
가게 밖으로 나가자마자 신기루처럼 모습이 흐려지며 사라졌지만, 그 둘이 인간이 아니란 걸 아는 내겐 크게 놀라운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마음에 걸리는 건 있었다.
“그러고 보니 저 남매, 그림자가 없네.”
뭔가 처음 볼 때부터 부자연스러웠는데 마지막에 사라질 때 확실하게 느낄 수 있었다.
이 여름 아침의 강렬한 태양 아래에서도 헨젤과 그레텔은 그림자가 없었다.
“권속이나 성좌라고 그림자가 없을 리는 없는데 말이지.”
수많은 성좌와 권속을 봐왔던 나였기에 확신할 수 있었다.
어떤 신화 속 성좌나 권속도 지구에서 활동하기 위해서는 육체가 필요했고 당연히 정상적으로 그림자가 있었다.
“아니지, 그러고 보니 그림자가 없는 존재도 있긴 있던가.”
전설 속 흡혈귀는 영혼이 없는 존재기에 거울에 비치지도 않고 그림자도 없다고 하던가.
그리고 마침 내게는 흡혈귀의 전문가가 있지.
바로 최초의 흡혈귀 에녹이 우리 식당의 접객 담당이었으니까.
* * *
“그런 일이 있었군요.”
저녁 장사가 끝난 후, 나는 빵집 공사를 하러 온 에녹에게 오늘 있었던 일을 설명해 주었다.
에녹은 짧게 한숨을 쉬곤 [도원향]이 있는 아공간 게이트 쪽을 바라보았다.
“그래서 오늘 분위기가 다들 별로였군요.”
“좀 어둡긴 했죠.”
미야는 하루 종일 입을 열지 않고 묵묵히 요리만 하다 퇴근했다.
그 모습을 보는 나와 천오는 안절부절못했고 말이다.
다행히 미야가 접객을 하지 않아서 장사에는 큰 문제가 없었지만.
내가 쓴웃음을 짓자, 에녹이 되려 사과를 해왔다.
“자느라고 전혀 도움이 되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아니에요. 에녹은 밤마다 공사하느라 바쁘잖아요. 거기다가 이런 일이 생길 거라곤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고.”
나는 여전히 미안해하는 에녹의 사과를 말리며 황급히 화제를 전환했다.
“그나저나 역시 그림자가 없으면 흡혈귀인가요?”
환한 아침 햇살에도 그림자가 전혀 없던 헨젤과 그레텔.
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두 남매가 흡혈귀가 된 거라면 오늘의 이상한 태도들도 설명이 되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하는 내게 에녹이 웃으며 자신의 발밑을 가리켰다.
“사장님, 저는 그림자가 있습니다만?”
“······아?”
그랬다.
이미 해가 진 저녁이었지만, 공사를 위해 조명을 환하게 켜둔 에녹의 발밑에는 나랑 다를 바 없이 진하디진한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
“잠깐, 그러면 흡혈귀가 그림자가 없다는 소리는 뭐지?”
“아마 그런 흡혈귀도 있을 겁니다.”
에녹이 설명하길, 현대 사람들이 전형적인 흡혈귀라고 인식하고 있는 ‘드라큘라’ 혹은 ‘뱀파이어’는 동유럽 쪽의 흡혈귀인 ‘밤피르’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그리고 밤피르의 전형적인 특징이 영혼이 없기에 거울에 비치지 않고 그림자도 생기지 않는 것이라고.
“그래서 사실 저랑은 많이 다른 존재입니다.”
에녹은 중동, 그것도 기독교에서 기원한 흡혈귀였고 뱀파이어는 유럽의 민간 설화에서 유래한 괴물이었으니까.
거기까지 말한 에녹은 어깨를 으쓱였다.
“그래도 결국 모든 흡혈귀는 제게서 비롯됐습니다.”
“그래요?”
“신에게서 버림받은 괴물은 모두 ‘카인의 후예’라고 불렸기에 모든 흡혈귀 역시 제 영향력 아래에 있습니다.”
역시 최초의 흡혈귀인 진조(眞祖)다운 에녹의 말이었다.
그는 그렇게 말하면서 턱을 쓰다듬으며 눈을 가늘게 떴다.
“그런 제게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으니 오늘 온 그 헨젤과 그레텔이라는 남매는 흡혈귀는 아닐 겁니다.”
“그렇군요.”
진조인 에녹이 감지하지 못했다면 확실히 흡혈귀는 아닌 모양이었다.
그 사실에 내가 안도하고 있자, 에녹이 한층 심각한 표정으로 이야기했다.
“사실 그림자가 없는 건 일부 흡혈귀들의 특징이기도 하지만, 원혼들의 특징이기도 합니다.”
“원혼이라면, 귀신을 말하는 건가요?”
“네, 맞습니다. 원혼들은 실체가 없으니 당연히 그림자가 없습니다.”
대낮에 나온 귀신이라니. 그것도 육체가 뚜렷하게 보였는데?
대낮에 나온 흡혈귀처럼 당황스러운 말이었지만, 에녹은 내가 생각하지 못한 점을 지적했다.
“사장님은 아마 헨젤과 그레텔이 권속이라고 생각하셨을 겁니다. 아닙니까?”
“네. 그렇게 유명한 동화의 주인공이니까요.”
그 정도면 충분히 권속 정도는 되지 않았을까?
그러나 그런 내 말에 에녹은 고개를 저었다.
“권속은 그렇게 쉽게 될 수 있는 존재가 아닙니다. 태생이 기이하거나 죽은 후에 다른 이들에게 추종을 받아야 겨우 될까 말까한 존재입니다.”
평범한 마을 사람의 자녀로 태어난 헨젤과 그레텔은 재치로 마녀를 물리친 유명한 동화의 주인공이었지만, 그들이 특별한 능력을 가진 건 아니었다.
그랬기에 평범하게 마을에서 살아가다 죽었을 테니 권속이 되기엔 무리가 있다는 것이 에녹의 말이었다.
그러고 보니 지금까지 만났던 권속들은 대부분 역사 속 위인이거나 인간이 아닌 존재들이었다.
딱 하나 예외를 꼽자면 프로듀스 알바 플래닛 999에서 접객 파트에 지원했던 점소이, 왕시 정도네.
그 권속을 언급하자 경쟁자였던 에녹이 쓴웃음을 지었다.
“그자는 조군(灶君) 장단의 눈에 들어 성좌의 힘으로 권속이 된 겁니다.”
간혹 권속이 되기에 격이 모자라는 존재들이 성좌의 힘으로 권속이 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그럼, 결국 그 남매는 권속이 아니라 원혼일 가능성이 큰 거군요.”
“네. 시간이 없다는 말도 그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실체가 없는 존재인 원혼은 권속이나 성좌가 되지 못하면 자신의 존재를 유지할 방법이 없다고 한다.
“두 남매가 워낙 유명한 존재라 그 인지도가 그들을 버티게 해줬을 테지만, 이제 그게 한계가 온 것 같습니다. 확실하진 않습니다만······.”
에녹의 말은 일리가 있었다.
만약 두 남매가 원혼이고 이제 그 존재를 유지할 수 없어서 마지막으로 한을 풀기 위해 미야에게 사과하러 온 것이라면 급한 것도 이해는 갔다.
하지만 아직 남은 의문점도 있었다.
왜 그 이후 수백 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미야를 찾아가 사과하지 않은 건지.
그리고 대체 뭐 때문에 그들에게 친절하게 대해준 미야를 미워하고 공격했는지 말이다.
“천오야, 미야는 좀 어때?”
“저녁도 안 먹고 자기 오두막으로 돌아갔어. 밥 먹을 기분이 아니래.”
에녹과 이야기를 끝내고 [도원향]으로 돌아오자마자 나는 천오에게 미야의 상태를 물었다.
하지만 역시나 심란한 건지 미야는 혼자 있길 원했다.
나는 에녹에게 들었던 이야기를 천오에게도 해주면서 물었다.
“너는 어떻게 생각해?”
“글쎄. 나는 서역 쪽 이야기는 잘 몰라서.”
천오는 머리를 벅벅 긁으며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하긴 서유기에서 나온 서쪽도 결국 인도가 끝이었으니까.
유럽 쪽 이야기는 잘 모르겠지.
“누가 알려줄 사람이 없으려나.”
나는 천오 외에 내게 도움을 줄 성좌들을 떠올려 보았다.
“헤르메스 님은 그리스 신화의 성좌니까 잘 모르실 테고. 스루드 님은 유럽의 성좌지만, 북유럽 쪽이라 역시 잘 모르시겠지.”
같은 아시아라도 한중일의 신화가 다 다르듯이 유럽도 서유럽, 중앙유럽, 동유럽, 남유럽, 북유럽의 신화가 모두 달랐다.
나중에야 기독교로 통일된다지만, 내가 아는 성좌 중 헨젤과 그레텔의 배경이 된 독일의 성좌는 없었다.
유일하게 그쪽 출신이 미야인데 미야에게는 도저히 물어볼 수가 없고.
“어렵네. 누가 도와주면 좋겠는데.”
나는 답답함에 머리를 벅벅 긁으며 한숨을 토했다.
그때였다.
[‘시간이 없는 꿀벌의 여주인’이 자신이 도와줄 수 있다고 말해옵니다.]던전 보석벌의 양육을 부탁해온 꿀벌의 여신, 아우스테야가 내게 말을 걸어왔다.
그러고 보니 아우스테야는 그나마 독일과 가까운 발트 신화 출신의 성좌였지.
발트족은 리투아니아부터 현재 독일 동북부 지역인 프로이센에 걸쳐 살았던 민족.
게르만족보다는 슬라브족에 더 가까운 민족이 발트족이었지만, 지리적으로는 가깝다고 할 수 있었다.
그래서 나는 반색하며 아우스테야에게 되물었다.
“정말 도와주실 수 있으신가요?”
[‘시간이 없는 꿀벌의 여주인’이 자신의 꿀벌들은 꽤 넓은 곳에 퍼져 있었다며 고개를 끄덕입니다.]하긴 정부웅이 말하길, 꿀벌들은 조금만 세력이 불어나도 분봉을 하며 널리, 그리고 많이 퍼지는 게 종족의 목적이라고 했던가.
덕분에 아우스테야는 독일에서 꿀벌이 다니는 곳에 일어났던 일이라면 어느 정도 알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리고 다행히도 헨젤과 그레텔의 사연도 꿀벌을 통해 들을 수 있었고 말이다.
“알려주시면 제가 꼭 보답 드리겠습니다. 식당으로 오시면 맛있는 밥을 해드릴게요.”
내가 해줄 수 있는 보상은 맛있는 요리 정도가 다니까.
그러자 아우스테야가 다시 메시지를 보내왔다.
[‘시간이 없는 꿀벌의 여주인’이 지금까지 자신의 부탁을 들어준 것과 던전 보석벌들을 돌봐준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합니다.] [‘시간이 없는 꿀벌의 여주인’이 그렇지만 꼭 식사를 주겠다면 거절은 하지 않겠다고 서둘러 말합니다.] [‘시간이 없는 꿀벌의 여주인’이 사실 꼭 한 번쯤 먹어보고 싶었다고 수줍어합니다.]꼭 맛있는 걸로 해드려야겠네.
나는 피식 웃으며 식사 약속을 하고 아우스테야의 설명을 기다렸다.
그리고 그녀가 내게 들려준 건,
“······그런 일이 있었군요.”
알고 보면 너무나도 잔혹한 어른들의 동화였다.
숲 속의 마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