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ame a mythical shepherd slave RAW novel - Chapter 256
위대한 광기의 시간이 돌아왔다.
온갖 금지된 행위들이 곳곳에서 횡행했다. 고상한 척 눈을 돌리던 이들도 이내 군중의 흥분 속에서 새롭게 거듭났다.
시끄러운 피리소리와 서로의 맨 등짝을 북처럼 두드리는 소리가 즐거운 박자를 이루며 숲을 울렸다.
그들은 금지된 이름을 불렀다.
“두 번 태어난 자여! 두 번 태어난 자여!”
“찬송받으사!! 찬미받으사!!”
그들은 금지된 제례를 올렸다.
“이 닭의 모가지를 비튼 뒤 그 생살을 씹으리라!!”
“뼈째로 씹어 삼킨 뒤 그분의 제단에서 그 피를 쏟아내리라!!!!”
그들은 금지된 음료를 마셨고, 금지된 깨달음을 얻으며, 금지된 고양감에 빠졌다.
그들이 트로이아의 깊은 숲과 계곡을 지배했다.
그들은 가장 고결한 이들 중에서도, 가장 천대받던 젊은이를 둘러싸고서 춤을 추고 절을 올렸다.
그 아름다운 젊은이, 남자인지 여자인지도 알 수 없는 우윳빛 피부의 젊은이가 손짓하자 땅에서 포도덩쿨이 솟아올라와 신도들의 종아리와 허벅지를 간지럽힌다.
젊은이는 몸을 일으킨 다음, 자줏빛 천으로 간단하게 알몸을 감싸고는 주위를 둘러본다. 온통 흥겨운 축제가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처럼 계속되고 있다.
그러나 젊은이는 그 속에서 반쯤 게슴츠레하게 뜬 눈으로도 불청객을 감지할 수 있었다. 젊은이에게는 그럴 만한 권능이 있었다.
두 번 태어난 자, 음탕한 자, 황홀경과 끝나지 않을 축제를 다스리는 자는 춤추듯 휘청휘청 걸어나간다. 그러자 신도들이 그의 몸을 쓰다듬으며 그의 뺨에 쉴새없이 입을 맞추어댔다.
그리고, 그가 다시 손짓하자.
신도들은 모두들 그 자리에서 허물어지듯 쓰러진다.
모두가 깊고 꿈 없는 잠에 빠진 것이다.
저기 멀리서, 그의 신도들의 몸을 밟지 않으려 애쓰며 한 청년과 반인반수가 그를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그러다 도저히 못 참겠다는 듯 청년은 제자리에서 날아오른 뒤 그의 앞에 곧장 내려앉는다.
둘은 서로를 어머니의 이름으로 불렀다. 그들은 아버지가 같기 때문이었다.
[너를 오랫동안 찾았는데, 이제야 이리 모습을 드러내다니. 숲을 다스리는 내 아들녀석도 너를 찾지 못했는데, 대체 어떻게?] [그야, 간단하지···?]아름다운 젊은이, 세멜레의 아들 디오니소스는 한쪽 입꼬리를 들어올리며 주위를 가리킨다. 곳곳에 사티로스들이 취하여 널부러져 있었다.
[그대의 아들이 다스리는 권속들도, 나의 가르침을 받아 나와 한 몸이 되었으니.] [맙소사··· 숲의 자식들에게 무슨 일을 한 것이오.] [아, 숲을 다스리는 판이여.]디오니소스는 아버지 헤르메스의 뒤에서 걸어오는 판에게 웃으며 말한다.
[별 건 없네. 나는 그들에게 자유를 주었을 뿐.] [무엇으로부터의 자유를 말하는 것이오?] [모든 것. 말 그대로일세.] [···.] [···.] [아무튼, 나를 찾았다지?]수없이 많은 벌거벗은 몸뚱아리들을 보고 경악하던 헤르메스와 판은 겨우 그들이 찾아온 용건을 떠올려낸다. 헤르메스는 애써 위엄을 갖추며 뱀이 휘감은 지팡이를 휘두른다.
[아버지께서 너를 부르신다.] [나를? 어째서지?] [그야 네 힘이 필요해졌으니까. 너도 상황을 알지 않나?]헤르메스는 무심한 듯 자신의 지팡이를 바라보면서, 뱀들과 침묵의 대화를 나눈다. 쉿쉿거리는 그 소리가 사실 자신을 향한 경계의 말임을 디오니소스는 안다.
이해할 수 없는 것은, 모두가 경계하니까.
[나의 힘이 필요해졌다? 하아, 아버지께서 드디어 연회의 여흥거리가 다 떨어졌다 여기시나 보군. 그럼 내가 아버지께 즐거움을 보태드릴 수 있는데···.] [허튼 소리. 너뿐만을 부르신 게 아니다.]헤르메스가 다시 한 번 지팡이를 바닥에 부드럽게 부딪히자 갑자기 주위의 빛이 왜곡되기 시작한다.
빛의 왜곡은 어느 한 평면으로 뭉쳤는데, 곧 그 평면은 거울처럼 주위의 빛을 반사하더니 나중에 가서야 머나먼 땅과 머나먼 족속의 형상을 비추어 주었다.
올림포스로 급히 달려들어가는 온갖 신들의 모습이, 그 거울을 통해 보였다.
키벨레와 다른 소아시아 땅의 수호신들, 수많은 강의 지배자들, 잠과 꿈을 다스리는 모르페우스와 온갖 주술을 부리는 헤카테, 아름다움과 우아함을 관장하는 세 여신 카리스···.
그들이 위대한 올림포스의 문 앞에 나아가 당당히 그 화려한 궁정에 입성한다.
[보았나?]헤르메스가 그 광경을 비춰주고는 디오니소스에게 말했다.
[아버지께서는 너만을 부르신 게 아니다. 올림포스 안팎의 온갖 크고 작은 신들을 불러모으신다. 지하세계의 하데스 역시 그분의 요청을 받아 힘을 모으고 계시지. 온 세상의 신들이 그분의 부름에 응하고 있다.] [허어? 그래서?] [너도 잘 알겠지. 이제 이 세상의 권력이 다시 분배될 거다. 작은 신들 역시 다가올 위대한 전쟁을 맞이해 우리 위대한 열두 신들과 함께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될 텐데.]헤르메스는 신발의 날개를 퍼덕여 공중을 스치듯 걸어오른다. 디오니소스의 주위를 한 바퀴 돌고는 그의 귓가에 훅, 하고 바람을 불어넣으며 속삭인다.
[너 역시 마찬가지다, 세멜레의 아들이여. 아버지의 부름에 응하고, 너의 신도와 너의 신앙을 핍박에서 구할 수 있게 될 거다.] [핍박에서 구한다, 라?] [···네가 갖춘 정도의 권능과 위엄이라면 그에 마땅한 존중을 받을 만하지. 아버지의 부름에 응해라. 너도 올림포스를 향해 나아가는 게 좋을 거다.] [누구에게 좋은 일이지?] [우리 모두에게.] [흠··· 우리 모두에게 좋은 일이라.]디오니소스가 고민하는 척 고개를 이리저리 갸우뚱거린다. 그러다 갑자기 쪼그려 앉아 평화로이 잠든 신도들에게 입을 맞춰주거나 그들의 몸을 쓰다듬어 주면서 휘파람을 분다.
참을성 있게 그의 답변을 기다리던 헤르메스가 결국 팔짱을 끼고 뭐라 쏘아붙이려던 차에, 디오니소스는 휙 고개를 돌려 헤르메스에게 웃어보인다.
[모르겠는데?] [···뭘 모르겠다는 거지?] [나는 당장은 아무것도 모르겠네. 내가 지금 올림포스로 간다면 아버지의 명령에 순순히 따라야 할 테고, 이 즐거운 일도 많이 못 즐기게 될 텐데···그건 싫단 말이야. 안 될 말이지. 절대로 안 될 말이야.] [···왜지? 이제까지 다른 신들이 너를 견제해온 것 때문인가? 네 신앙을 이단시해온 것 때문에?] [아니. 내 신도들이 박해받은 게 마음 아프기는 하지만 그 때문은 아니야.
아직 나한테는 즐기고픈 일들이 더 많아서.]
디오니소스는 헤르메스에게 흐릿한 미소를 지어보이며 말한다.
[일어나거라.]그러자, 방금 전까지 잠들어 있던 신도들이 다시 몸을 일으켜 춤을 추기 시작한다. 마치 쓰러진 적 따위 없었던 것처럼 자연스럽게 방금 전의 혼란을 되살려낸다.
당황한 헤르메스가 그 흐름에 휩쓸리지 않으려 높이 날아오르고, 판 역시 디오니소스 신도들의 뒤엉킴 사이에서 벗어난다. 그러자 그들의 코를 찌르는 알싸한 향내와 함께 귓가에 메아리가 들려온다.
나중에, 내가 알아서 잘 하겠다고 말이야.]
헤르메스는 열심히 눈으로 디오니소스의 모습을 살폈지만, 이미 신도들 사이에 완전히 섞여들어갔는지 그를 찾아낼 수는 없었다.
“디오니소스! 디오니소스! 디오니소스! 디오니소스!”
그저 그의 이름을 연호하는 벌거벗은 대중의 광기만을 볼 수 있을 뿐이었다.
포세이돈이 불러낸 집채만 한 파도만큼이나 거대한, 격렬한 감정의 파도를.
상륙 (1)
계절들이 스쳐지나가면서, 다시금 풀들이 자라나는 봄철이 돌아왔다. 아카이아인들은 이때만을 기다려왔다.
왜냐하면 가을에 심어놓았던 밀들을 수확하는 철이 바로 봄이기 때문이었다.
봄이 오면 노랗게 익은 밀이삭들이 바람에 따라 아폴론의 금발처럼 이리저리 흩날리니. 아카이아인들은 구태여 무겁게 식량을 지고 나를 필요 없이 현지에서 곧장 그를 취하면 되는 것이었다.
이미 트로이아와 그 동맹시들 쪽으로 향하기로 한 메넬라오스와 아킬레우스의 무리들은 분주한 상태였다. 그들은 트로이아인들이 그 식량을 태워 없애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서는 부리나케 회의에 들어갔다.
마음이 급한 것은 그들에게 끼지 않은 필록테테스와 여타 군주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자기들끼리 모여 회의를 열었다. 필록테테스가 가장 상석에 자리잡았고, 다른 이들은 기다랗게 이어붙인 탁자 위에서 지도를 내려다보며 각자 쑥덕거렸다.
그리고.
“오··· 제기랄.”
개중에서도 아이아스의 반응은 특히 명쾌했다.
“우리 군을 전부 굶겨 죽일 셈인가?”
그 말에 이견은 없었다. 이곳에 모인 왕과 족장들은 제각기 고개를 끄덕이거나 한숨으로 동의를 표했다.
하필 다른 곳보다도 안탄드로스의 초토화 작전은 철저했다.
모든 마을이 파리스의 말 한 마디에 아무 불만도 없이 휙 하고 옮겨간 것은 아니지만, 트로이아의 영향권에서보다 작전에 있어 잡음도 적었고 성과도 확실했다.
지도 위에 표시된 마을들의 개수만 보아도 트로이아 쪽보다 훨씬 듬성듬성했다. 이 역시 수 차례에 걸쳐 보낸 척후들이 목숨을 걸고 밝혀낸 것이었다.
이 한숨 나오는 상황에, 어느덧 모두가 침묵으로 지도를 내다볼 뿐이었다.
“···그래도, 모든 마을이 적들에게 초토화된 것은 아니오. 게다가 우리만 이 꼴인 것도 아니고.”
그 침묵에 제동을 건 것은 필록테테스였다. 이 무리에서 주도권을 놓치지 않기 위해 그는 주위의 눈치를 보며 조심스레 의견을 피력했다.
“트로이아 쪽은 사정이 더 낫다지만 그래도 그쪽에는 아마존인들이 있지 않소? 아마존인들이 돌아다니면서 불바다로 만든 저 북쪽보다는 이쪽의 형편이 더 나을 수도 있겠지.”
“확실히···.”
“그 말에도 일리가 있소.”
“뭣보다도.”
필록테테스는 지도를 손가락으로 톡톡 두드려대며 지도를 내다보았다.
“더 지체할 시간은 없소. 이미 메넬라오스가 이끄는 이들도, 아킬레우스가 이끄는 이들도 이미 출항을 결정했다 들었으니.”
“그건 나도 동의하는 바요, 필록테테스. 로크리스의 왕자로서 나 아이아스 역시 지금 당장 상륙을 실행하는 데는 찬성하오.”
“아테네 역시 마찬가지요.”
“우리 족속들 역시 찬성이오.”
별 수가 있나. 다른 이들은 전부 출발한 상태인데.
다만 다같이 우르르 몰려다니다 식량이 없어 굶어죽는 불상사는 벌어지면 안 되니, 그들은 대전략을 정비했다.
“일단은 군을 둘로 나눕시다.”
“흠··· 확실히 군량을 모으기 편하려면 군을 나눠야 하기는 하니.”
“좋은 생각이오.”
“한쪽은 나, 필록테테스나 오일레우스의 아들 아이아스와 함께 1군을 이루어 움직이는 게 어떻겠소? 그리고 나머지는 2군을 이루어 움직이는 것이오.”
“동의하오.”
“우리로서는 반대할 이유가 없군.”
메넬라오스와 아킬레우스 어느 한 쪽의 편을 들지 못한 이 제3세력··· 일단 ‘필록테테스 파’라 불리는 이들은 그렇게 상륙을 결의한다.
곧 백수십 척의 대함대가 십수 척씩 쪼개져 조금씩, 조금씩 트로아스 반도 남쪽에 흩어져 상륙했다.
-쿵!!!!
“다, 다들 널빤지 쥐고 배에서 뛰어내려!! 배랑 함께 침몰하고 싶은 게 아니면!!!!”
“크허, 헉··· 컥···.”
당연하지만 못해도 10척에서 20척 중 1척은 바다에 수장시켜야 했지만.
몇 킬로미터 되지 않는 항해거리에 비해 가혹할 정도로 커다란 손실이었다.
그러나 그 또한 감수할 만했다.
잔혹할지 몰라도, 어차피 보급도 힘든 상황이다. 이미 군주들은 군입을 줄인다 생각하고 과감히 트로아스 반도의 해안으로 나아갔다.
그 뒤로 크게 어려운 일은 없었다.
“허··· 정말 말끔하게 청소해버렸군.”
“사람이든 가축이든 눈 씻고 봐도 찾아볼 수 없소.”
“메네스테우스 님! 저쪽이 집결지 입니다!!”
“알겠다! 전원 저 바위를 향해 움직인다!!”
눈앞에 거칠 게 아무것도 없으니, 일단 해안에 각자 상륙한 뒤로는 며칠만에 약속한 그대로 빠르게 모일 수 있었다. 십수 척씩 쪼개져 있던 세력들이 다시 두 덩어리로 뭉친다.
아테네인들의 왕 메네스테우스와 둘리키온인들의 왕 메게스 등 2군을 지휘하게 된 이들은 다시 한 자리에 모여 회의에 돌입했다.
“메네스테우스여, 1군은 어찌 된 것 같소?”
“아마 슬슬 집결하고 있는 중인 듯하오만··· 우선은 우리 2군끼리 먼저 움직입시다.”
“좋소. 군량을 위해서든 무훈을 위해서든 일단 이 자리에 머무를 수는 없으니.”
“허나 우리 중 누가 선봉에 선단 말이오? 필록테테스와 아이아스 둘 모두 1군에 속하지 않소?”
“어차피 근방의 마을 정도를 약탈하는 일인데 그런 대단한 무장들까지 필요하지는 않을 테요.”
“맞소. 일단은 우리끼리 힘으로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게 맞겠지. 이 대군으로 무얼 못 하겠소?”
집결지에 대군이 모이고 나자 일단 그 위용만큼은 봐줄 만했다. 2군의 군주들은 거기서 자신감을 얻은 뒤, 척후를 사방에 뿌려 아직 남아있는 마을들을 찾아 더듬더듬 나아갔다.
그런데···
“···어째서 척후병들이 돌아오지 않지?”
“우리 쪽도 그렇소. 정찰을 나갔다 하면 다섯 중 두서넛은 그대로 소식이 끊기니.”
“···.”
“···.”
에이, 설마.
그들은 불길한 예감을 느끼면서도 일단 나아갔다. 최대한 무리하게 실어온 건식량을 씹고, 여기저기 개울을 마주할 때마다 허겁지겁 목을 축이고 물통을 가득 채우면서.
허나 불길한 예감을 무시한 대가는 곧바로 찾아왔다.
“이쪽 길이 맞는 건가?”
“맞습니다. 바로 저 언덕배기 너머에 기백 명이 사는 마을이···”
-피쉬쉬쉬쉬쉿!!!!
“컥, 커헉···.”
“젠장!! 적습이다!!!! 적습이야!!!!”
역시나.
척후를 보내면 보내는 족족 잡아내며 아군의 눈과 귀를 가린다? 그게 가능하려면, 적이 아군의 위치를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
그것도 아주 정확하게.
그리고 적군이 아군의 동태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다면, 이런 때아닌 기습은 언제든 닥쳐올 수 있는 일이었다.
“젠장!! 또 놓쳤다고!! 또!!!!”
“그, 적들이 워낙에 빠르게 움직이는 탓에···”
“우리는 괜히 죽을 위험을 무릅쓰고 배에 그 무거운 전차들을 실어왔나!! 전차병들은 무얼 했나!!”
메네스테우스가 성을 내도 바뀌는 것은 없었다.
“그, 적들이 말등 위에 직접 탄 채 달리니 전차로는 속도로 쫓아갈 수가 없었습니다. 그건···”
-깡! 깡! 깡! 깡!
“적습이다!!!! 적습이다!!!!”
“철쇄대가 온다!!!! 미, 미시아인들도 온다!! 에우리필로스 왕자다!!!!”
“제기랄, 이번에는 내가 직접 나가서 적들을 죽여버리겠어!!”
“아테네의 왕이여, 참으시오! 그대가 본대에서 벗어나면 군의 대오가 어떻게 되겠소?”
“허면, 보고만 있자는 말이오? 적들의 목숨을 취하지도 못하는 상태로 당하기만 하면 군의 사기는 어찌 되겠소!”
그렇게 그들이 입씨름을 하는 동안에도 아카이아인들은 죽어갔다.
지쳐셔, 굶주려서, 언덕을 넘다가 시야 바깥에서 날아오는 투창과 화살세례에 맞아서.
이쯤 되니 그들은 질문을 던질 수밖에 없었다.
···어떻게?
어떻게 적들은 이리도 정확하게 아군의 움직임을 읽어낼 수 있단 말인가?
***
“여기쯤일 거야.”
“알겠습니다, 오이노네 님.”
이노의 손가락이 지도의 어드메를 짚자마자 철쇄대원들은 의심도 없이 군막을 나섰다. 나는 그래도 혹시 몰라 이노에게 되물었다.
“확실해?”
“확실해. 이 강가에 머무른 다음에는 여기··· 북동쪽의 마을로 향할 거라 했잖아?”
“그렇지.”
“적들의 행군 속도는 점점 느려지고 있어. 계속 습격이 반복되니 몸을 사리는 거야. 그런 상황에서 여기서 여기까지 움직이는데 이동에 이틀 이상을 소요하지 않을 리가 없어.”
머잖아 이노의 확신은 성과로 증명되었다.
“아군 모두 생환하였습니다! 적들의 수레를 3대 부수고 적들을 40명 정도 도살했습니다!”
“말씀해주신 곳에서 적 분견대를 마주했습니다. 적들을 몰살한 뒤 곧장 돌아왔습니다.”
이노가 무슨 예언이라도 받아 적들의 행선지를 예측한 건 아니었다. 당장 진짜 예언자들도 예언을 못하는 상황에 그럴 리가 없지.
계산이다.
아무리 나라도 서쪽의 모든 마을들을 하나도 남김없이 쳐부수거나 할 수는 없었다. 내 명령에 따르지 않겠다고 저들이 뻗댄다면 나로서는 명령할 명분도 없었고. 아마존? 걔넨 트로이아 주변을 치우느라 바쁘다.
아무튼 그렇게 하나둘씩 점점이 남은 마을들이 있었다. 처음에는 그를 눈엣가시처럼 여겼는데···
···지금은 아니다.
그들 덕에 적들의 경로가, 선택지가 명확하게 제한된다.
만일 청야 전술을 시행하지 않았더라면 적들에게는 수많은 선택지가 주어졌을 것이고.
하나도 남김없이 모든 마을을 지도상에서 지워버렸다면 굶주린 적들이 무슨 짓을 할지 우린 파악할 수 없었으리라.
그러나 지금은 마치 하늘의 몇 안 되는 별들을 이어 별자리로 만들 듯, 지도에 몇 남지 않은 마을 중 아카이아인들이 택할 경로를 대강 그려볼 수 있었다.
원래 100가지, 1,000가지의 경우의 수를 고려해야 했다면 지금은 그 10분의 1도 안 된다고 하면 이해할 수 있을까.
물론 그렇다 하더라도 적의 동향을 완벽하게 파악할 수 있던 건···
“···여기서 반드시 적들은 반으로 쪼개질 거야.”
“근거는?”
“두 마을로 향하는 거리는 비슷하고, 슬슬 적들이 한 데 뭉쳐 있으면 자원이 떨어질 때가 됐거든.”
순전히 이노 덕분이었다.
적들의 침공이 시작되자마자 급하게 안탄드로스로 돌아와 작전을 수립했는데도, 이노는 망설임 없이 적들의 의중을 읽고 기민하게 판단했다.
이노는 거침 없이 지도를 펼쳐본 뒤 적들의 상륙 지점들을 살피고, 곧장 그들의 집결지부터 그 다음 행선지까지 예측해냈다.
“파리스? 지금 당장 철쇄대원들을 움직여야 할 것 같은데? 병사들을 조금씩 나눠서 언덕이랑 계곡마다 정찰조를 흩뜨려 놓고 적들이 오면 습격할 수 있도록.”
“유격전을 하라는 거구나.”
“···유격전? 그게 뭐야?”
“네가 지금 하려는 거.”
거기다 그에 맞춘 최적화된 전략까지, 뚝딱 나온다.
이노가 없으면 어쩔 뻔했는지.
-“정말로, 그대의 말을 우리가 믿어도 되겠소?”
이렇게 말하던 텔레포스도 이제는.
-“안탄드로스의 위대한 군주여, 그대의 혜안이 필요하오. 적들의 다음 경로를 알려주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