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ame a mythical shepherd slave RAW novel - Chapter 314
오래 살 수 없다.
몸에서 힘이 빠져나가고 그의 다리에서 저절로 힘이 풀린다. 도무지 이겨낼 수 없는 봄날의 졸음처럼 죽음이 가까워오는 것을 느낀다.
영혼이 그의 몸에서 점차 분리되어가는 듯 시야가 흐려진다. 소리들이 멀어지고 피부에 직접 닿는 감촉조차도 둔해진다.
부관들이 경악하여 그의 양어깨를 쥐고 흔들어 정신을 일깨워보려 애써도 소용 없다.
이미 죽음의 길목 초입에 들어선 그다. 전투 중이라 응급처치가 불가능하다면 어떻게 정신을 다시 차릴 수가 있겠는가?
그렇게 그가 패배의 굴욕과 신체의 고통을 곱씹으며, 짤막하게 남은 순간 동안 지난 생애를 정리하기로 마음 먹었을 때쯤이었다.
[무릎 꿇지 말라.]···신기한 일이다.
갑자기 왜 무릎에 힘이 들어가는지 모르겠다. 갑자기 왜 시야가 다시 또렷해지고 가슴에서 알 수 없는 기력이 뿜어져나오는지 모르겠다.
아.
알겠다.
그가 몸을 돌아보니 여전히 피는 흐르고 있고, 여전히 통증에 온몸이 저릿저릿하다. 그가 곧 죽을 몸임은 변하지 않았다.
그러나 아까와 뭔가 다르다.
거룩한 생기가 온몸에 넘쳐흐른다.
죽음이 가까웠다 믿었던 다른 병사들도 벌떡벌떡 몸을 일으키더니 거대한 고양감과 함께 가슴속에 차오르는 감투정신을 느낀다.
대장선의 선수에, 어떤 고귀한 남자가 서 있다. 전투용 도끼를 흔들며 그들을 향해 부르짖는다.
[나는 파라오에 맞서 승리한 자다!! 나는 무르실리의 아들 무와탈리다!!!!]그 외침을 듣는 것만으로도 마치 인공호흡을 받은 듯 그들의 폐에 신선한 공기를 불어넣어진다.
[하티 땅의 아들들아!! 영광이 저 땅에 있다!! 여기서 드러누울 테냐!!!!]“우와아아아아아!!!!!!”
환성이 울린다. 노잡이들은 다시, 아니 이전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노를 젓고 전사들 역시 날래진 다리와 강해진 팔을 느끼며 전투의 함성을 부르짖는다.
이미 아군 군선의 반수 이상은 고꾸라졌다. 짓부숴지고, 가라앉고, 산산조각이 났다.
그러나 아직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 그 생각만이 그들의 머릿속에서 요동친다.
그들은 해안을 향해 질주하고.
-쿠쿠쿠쿵!!!!
그들을 기다리고 있던 나무 말뚝이 그들의 배를 완전히 파괴한다.
그러나 아무 상관 없다는 듯 하티 땅의 아들들은 이를 갈며, 몸 곳곳에 박힌 배의 잔해들을 떼어내며 전진한다.
그들은 기어코 칼리폴리아 반도의 흙을 두 발로 밟았다.
수백의 사내들이 적들이 다스리는 땅 위에 올라섰다.
반쯤 시체가 된 채로.
그리고 그들을 향해 화살이 비오듯 쏟아진다.
***
“철쇄대와 근위대가 준비되었습니다.”
“그래, 테오.”
헥토르는 곳곳에 성인의 어깨 높이 정도로 낮게 세워진 목책들을 둘러보며 말한다.
“일단 일제사격부터 한다.”
“사격! 사격하라!!”
헥토르의 말을 들은 부관들이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외치자, 고향을 버리고 이곳에 온 트로이아의 시민들이 적들을 향해 일제히 석궁을 들어올린다.
그들이 방아쇠를 당긴다.
-탈칵!
-팅!!
화살은 사람의 손으로 쏘는 것보다 곡률이 낮은, 보다 일직선에 가까운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간다.
즉, 훨씬 빠르게.
-콰드득!!
-콱!!!!
막 상륙한 병사들의 팔이 부러지고, 목이 꺾인다. 갑옷에 물이 들어차 무게 때문에 허우적대던 이들도 역시 목덜미를 맞아 쓰러진다.
목을, 심장을, 머리를 맞은 이들은 머잖아 죽었다.
그러나 나머지는 아니었다.
[하티 땅의 자식들아!!!!]하늘에서 울려오는 장중한 목소리와 함께, 팔다리가 부러지거나 어깨에 화살이 박힌 병사들이 마치 홀린 듯 용기를 얻어 몸을 일으킨다.
“끄우으으으으아아아아악!!!!”
“하, 하아투우샤아아아!!!!!!”
단말마의 비명 같은 것을 내지르나, 쓰러지지 않고 내달린다.
그 모습에 질려버렸다거나, 아니면 화살이 떨어졌다거나 하는 이유로 각 진지에서 사격을 하나하나 멈춘다.
“근위대, 그리고 철쇄대.”
그러자 테오는 때가 되었음을 깨닫는다.
그의 곁에 있던 검은 형체가··· 마치 날아가는 새의 그림자처럼 빠르게 지상을 스치듯 도약하는 것을 보고 칼을 뽑는다.
“진격한다!! 적들을 죽여라!!”
그리 말하며 앞을 보니 헥토르는··· 폭풍을 일으키고 있었다.
-콰드드드득!!!!
“크, 크아아악!!”
“괴물!! 괴물!!!!”
헥토르는 마치 수확철의 농부가 밀이삭을 베어내듯 적들의 머리를 거침없이 거두었다.
적들이 사지가 찢기는 고통마저 이겨낸다면, 이길 수 없는 죽음을 그들에게 선사해주면 될 일이었다.
피보라가 검은 사자의 주위로 일어나니 바닷바람에 순간 쇠와 유혈이 풍기는 비린내가 훅 끼쳐온다.
그러나 헥토르는 그 또한 신경 쓰지 않았다.
그의 주위로 일어나는 피안개, 그 너머의 적들, 그리고 그들이 노리는 시민들과 도시.
그것 말고는 아무것도 중요하지 않다는 듯 움직였다.
-콰득!!
방패로 적의 두개골을 으깬다.
-카지직!!!
투창으로 적의 청동 흉갑을 꿰뚫는다.
-쿵!!!!
아니면 단순히 투창으로 내리쳐 뇌를 뒤죽박죽으로 만들어주기도 한다.
헥토르는 그렇게 나아가며 적들을 죽인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그는 생각한다.
‘···어렵다.’
아카이아의 단순한 잡병들을 쓰러뜨리는 것보다 훨씬 어렵다.
제대로 된 무장에, 최소한의 훈련이라도 받은 이들이 벌이는 싸움은 단순히 경험만 쌓인 도적 무리의 싸움과는 격이 달랐다.
기껏해야 한두 번의 칼질로 죽일 상대와 서너덧 번으로 죽일 상대의 차이 아니냐고 물을 수 있겠지만.
-서걱.
다르다.
그렇게 또 하나의 목을 날리며 생각할 때쯤이었다.
저 멀리서 헥토르는 저 멀리서 다가오는 무언가를 본다.
심상찮은 분위기가 느껴진다. 남들보다 훨씬 화려한 갑옷과 정련된 몸놀림을 지니고 그에게 걸어오는 누군가.
[나, 나는··· 제국의 왕실 전차대장.]이미 몸은 만신창이지만, 그의 숨결에서부터 ‘힘’이 느껴진다.
[네놈을, 죽인다.]필멸자의 것이 아닌 힘이다.
그것은 짐승처럼 달려들어온다. 헥토르는 본능적으로 아까와는 다른 싸움이 이어지리라 생각하며 창을 들었고.
-쾅!!!!!!
그 순간 거대한 충격이 그 ‘무언가’의 옆구리를 때린다.
왕실 전차대장이라는 자의 몸이 기억자로 꺾이며 날아가자 다른 누군가가 약숙이라도 한 듯 그의 벌어진 갑옷 틈으로 창을 찔러넣는다.
공중에서, 한 번, 두 번, 세 번···
네 번.
-푸슉.
그렇게 네 번째 창질에 그는 쓰러졌다. 마치 원래부터 죽어 널부러져 있던 시체 같았다.
헥토르는 멍하니··· 그를 죽인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뭘 하십니까? 어서 더 많이 죽이지요.”
“죽여야 할 이들이 아직 많이 남았습니다.”
아킬레우스와 파트로클로스, 두 소년의 눈이 핏빛으로 빛난다. 그 투지에 헥토르는 잠시 주춤거린다.
“아, 잠시.”
그렇게 고개를 돌린 두 사람이 다른 상륙해오는 병사들을 죽이려 할 때쯤, 헥토르가 그들을 막아선다.
“아직이오.”
[그래···.]널부러진 시체처럼 보이던 그 몸이, 일어난다.
[아직···이다.]우리는 해변에서 싸울 것입니다 (5)
헥토르는 다시 일어서는 하투샤의 장군을 보며 눈을 찌푸린다.
지금 그의 눈에 들어온 광경이 대단한 기적은··· 아니었다.
장군이 아까보다 훨씬 강해진 것도 아니었다. 해봐야 두서너 명으로 철쇄대원 하나와 겨우 맞설 정도의 기세.
그러나 헥토르가 주위를 둘러보니.
“하투샤아아아!!!!”
“대왕을 위하여!!!!”
주위의 모든 적병들이 그러하다. 피투성이가 되도록 살이 찢기고, 팔다리를 하나씩 잃어라도 그들은 투지를 잃어버리지 않았다.
어떤 ‘힘’이 배후에서 개입하기라도 한 듯이.
두서너 명으로 불사조 근위대원이나 철쇄대원에게 맞설 병사가, 수백 명.
해안에 겨우 올라서서 싸울 역량을 유지해낸 병사가, 수백 명.
이런 게 수천 명이 된다면?
“뭐, 뭐야? 죽었다 살아난 건가?”
“아니, 아킬레우스. 정신력이오.”
헥토르는 아킬레우스의 혼잣말에 답하며 말한다.
죽음으로부터 생명을 소생시키는 것은 디오니소스 같은 장대한 신이나 오르페우스, 헤라클레스 같은 찬란한 영웅들에게나 허락될 권능이다.
이런 전장에서 발휘될 것이 아니다.
“다른 이들이었다면 신음한 채 정신을 잃었을 위력의 공격에도, ‘아직’ 죽지 않을 채 서있을 뿐이지.”
아직.
그러니까 죽어가는 몸이라는 뜻이다.
헥토르의 말을 증명하듯 하투샤의 장군은 피를 쿨럭인다. 내상이 이미 심각한 듯하나, 그의 눈에는 광채가 어린다.
그리고, 그가 헥토르를 향해 달려든다.
헥토르는 그의 비틀린 동작 사이를 비집고 들어갈 경로를 머릿속으로 그려내고, 그대로 칼을 내리긋는다.
-캉!!
막힌다.
막아냈다.
다 죽어가는 남자가 그의 공격을 막아냈다.
그 사실에 헥토르는 놀랐고.
놀란 상태 그대로 다시 장군의 목을 베었다.
“···.”
“···.”
“···.”
아킬레우스와 파트로클로스도 방금 이어진 2번의 합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깨닫고 몸을 굳힌다.
[이방인들은, 여기서 모두 죽으리라!!!!]천상의 음성이 들려오자 그들은 무심코 하늘을 올려다보았고.
한 위대한 대장장이와, 무수한 신령들이 서로 권능을 겨루는 모습을 지켜본다.
거대한 태양과 무수한 별들이 부딪히는 듯했다.
그 광휘를 못 이겨 다시 지상을 돌아보니 반쯤 물에 불은 시체처럼, 히타이트 제국의 병사들이 해안을 향해 올라오고 있었다.
그 사이에서 이국의 신들이 그들의 의지와 영웅적인 투쟁을 축복했다.
***
“아니··· 이런 말도 안 되는 짓거리를 벌여?”
해전에서 우리가 승리를 거둔 게 명확하다. 그것도 이도메네우스와 맞붙었을 때를 연상케 하는 대승이다.
대부분의 배들을 깨부쉈고, 수많은 병사들을 물귀신으로 만들었으며, 아이네이아스의 투창 역시 무수히 많은 적들을 죽였다.
그런데도 기어코 상륙을 했다?
말도 안 되는 상황이다.
포세이돈이나 다른 족속들의 해신(海神)들은 역시 서로 힘을 겨루는 중인지 이 전장에서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혹시나 싶어 걱정했던 인어떼의 준동도 일어나지 않았다.
헌데 전혀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적들은 우리들 사이로 꾸역꾸역 밀려들어왔다.
죽어가면서도 덤벼드는 방식으로.
석궁을 들고 해안을 수비하던 일반 시민병들은 빠르게 후방으로 후퇴 중이고, 철쇄대원들과 불사조 근위대원들이 여러 영웅들과 분전하며 적들을 도살 중이다.
헥토르, 아킬레우스, 파트로클로스, 펜테실레이아, 텔레포스.
한 명이서 수백을 죽이고 남을 이들이 차고 넘친다. 그런 이들이 우리 해안에서 적들을 학살한다.
그리고, 그 광경을 보고도 적들은 달려들고 있다. 가끔씩 우리에게 경미한 피해를 주고, 아주 조금씩이나마 전진하면서.
물론 칼리폴리스를 뚫을 수는 없겠고, 승리의 가망 역시 보이지 않지만.
그래도 저들은 진격을 멈추지 않는다.
이런 움직임은 평범한 상황이라면 절대 시도할 수 없다.
광신에 가까울 정도의 충성심과 어마어마한 훈련이 동반되지 않고서야, 절대로 불가능하다.
해봐야 철쇄대원들? 그것도 내게 광신적인 믿음을 가진 이들만 따로 추려내야 할지도 모르겠다.
적의 병사들이 괜찮게 조련된 것 같았지만 그 정도는 분명 아니었다.
“저, 저기!! 잘생긴 남자!!”
“파리스다!! 적장 파리스다!!!!”
이렇게나 강렬한 투기로 무장하고 덤벼들 정도는 아니었단 말이다.
기어코 배의 높은 난간을 넘어 다가오는 둘에게 화살을 먹이자, 다른 이들도 백병전을 강요하러 기어올라오고 있다.
다행히 다른 트리에레스들은 소임을 다한 뒤 전역을 빠져나가고 있어 위험이 덜하지만, 여전히 우리 대장선은 적들 한복판으로 뛰어들어 싸우고 있으니 모두가 노리고 있다.
물론.
“아이네이아스?”
“예!”
“화살로 견제해줄 테니까, 배에 올라오는 놈들 전부 죽여버려.”
나도 믿는 바가 있으니 이렇게 하는 거지만.
나는 다시 시위를 당기며 주위를 둘러본다.
이제 십수 척 정도. 해봐야 바다 위에 남은 이들은 기백 명 수준이다.
그리고 이들이 남아 있는 이유는 더 이상 ‘아직 상륙하지 못해서’가 아니다.
명백히, 이 대장선을 노리고 있는 거다.
아무리 봐도 이미 전세는 확고히 기울었고 그들이 전부 덤벼들어도 해안 너머 칼리폴리스로 진입할 수는 없을 테니까.
그러니까, 나와 아이네이아스를 죽이기 위해서다.
-쿵!!!!
배 하나를 더 쪼개고 나니, 갑자기 양옆에 달라붙는 적선들 때문에 노잡이들이 노가 부러지지 않도록 배 안쪽으로 들어온다. 옴싹달싹 못하게 되었다는 소리다.
“파리스 님! 적들이 올라옵니다!!”
“아노이토스? 네가 ‘그것’을 쥐고 쏴라!”
-피시시싯!!
방금 내가 쏜 화살에 나란히 달려오던 병사들 두 명이 사이좋게 꼬치가 되어 죽었다. 그 모습을 보며 잠시 멍하니 있던 아노이토스는 바보 같이 되묻는다.
“···예?”
“‘그것’을 만져보고 싶어하지 않았나? 네가 쏴라.”
어차피 나는 일반적인 화살만으로도 다른 궁수들보다 몇 배로 잘 싸울 수 있다. ‘그것’ 자체는 누가 쓰든 역량 차이가 크지 않으니 아노이토스가 쓰는 게 맞다.
다만 아노이토스를 지금껏 쓰지 않은 건···
“그, 그, 그렇다면야··· 흐하흑···흐극.”
저 인간이 좋아서 미치니까.
아노이토스는 기분 나쁜 소리를 내더니 바람처럼 내달려 ‘그것’의 조종간을 손에 쥔다.
“선원들!! 나를 호위하면서 지렛대를 당겨라!!!! 위대한 영웅의 무기가 우리 손안에서 위업을 이룰 것이다!!!!”
“우와아아아아!!!!!!”
물론 지금처럼 전장 한가운데서 저 광기는 곧 열정이고 감투정신이다. 아노이토스의 환호와 함께 피로해진 듯하던 병사들이 기운을 차리고 달려든다.
완전히 적선에 둘러싸여 포위된 가운데, 아노이토스는 희번득한 눈으로 적선 중 하나를 조준한다.
정확히는, 흘수선 아래를.
“내, 내, 내가 쏜다···. 내가, 쏜다!!!!”
그리고 방아쇠를 당긴다.
-쾅!!!!!
발리스타로 개조된 헤라클레스의 활이 굉음을 내며 거대한 전용 화살을 공중으로 내던진다. 화살이라고는 하지만 작은 미사일처럼 보인다.
-쿠쿠쿠쿵!!!!
정통으로 맞았다.
적선에 꽤 큼지막한 구멍이 나고, 적 수병들이 급히 움직이며 물을 퍼내기 시작하지만 이미 배는 가라앉고 있다.
그렇게 한 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