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ame a mythical shepherd slave RAW novel - Chapter 440
그것도 특히나, 언제나 반역에 대한 의심이 꼬리표처럼 따라붙는 내가 ‘군사적 움직임’을 제안하면 프리아모스 주위의 장로들 중 누가 의심하는 마음을 품지 않을 수 있겠나.
···안키세스만 빼고. 그 양반은 논외다.
그냥 논외다.
아무튼 카산드라의 말은 사리에 맞는 듯보인다.
“별다른 정보가 왜 없어?”
“어··· 무슨 정보가 있죠?”
하지만 한 가지 빼먹은 게 있다.
“적들의 진격로를 파악했고, 적들이 어떻게 들어오는지를 알았으니 그것만이라도 ‘상세하게’ 전해드리면 되는 거 아니야?”
“음?”
카산드라의 눈이 커진다.
“그, 그걸 어떻게··· 아니, 언제?”
“오디세우스와 아킬레우스와 네스토르는 살았고, 디오메데스와 오레스테스와 헬··· 스파르타의 여왕은 죽었지.
내가 그렇게 말했는데, 클레이다이오스는 반박하지 않았잖아.”
그러자, 카산드라는 살짝 입을 벌리고 눈을 크게 뜬다.
이제야 내가 무의미하게 꺼낸 듯하던 말들이 의미하는 바를 알아챈 모양이었다.
오디세우스와 아킬레우스와 네스토르는 살았다.
즉, 적들은 이타카와 프티아, 필로스 인근을 지나지 않았다. 그래. 페넬로페가 얼마 전에 딸을 낳아서 축제 분위기고 내가 이름까지 지어줬는데. 어린 자식을 둔 부모가 죽어버리면 안 되지.
“특히 서쪽의 이오니아 해를 거치지 않았다고밖에는 볼 수가 없어. 만일 그 근방을 지났다면 결국 이타카인들의 눈에 띄었을 테니까.”
그렇다면 서쪽 바다나 육로로 왔을까?
“아니. 아킬레우스가 통치하는 프티아와 펠라스기콘 아르고스는 에게 해에 닿아있지. 게다가 테살리아 남부에 있으니 적들이 육로로 왔다면 빠르게 합류해 적들과 싸웠을 거야.”
“그러면··· 미케네 북쪽의 코린토스 만을 건너 오지도 않았겠네요.”
“아마도, 그렇겠지. 저들은 남쪽의 스파르타를 거쳐 미케네로 북상했으니까.”
적들은 스파르타를 치면 우리가 아카이아에 대한 통제력을 잃으리라 생각했던 모양이다.
사실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다.
아카이아가 형식적으로는 우리에게 왕중왕의 지위를 넘기고 충성을 맹세했지만 스파르타에 친(親)트로이아적인 여왕을 옹립한 것을 제하면 아카이아를 통제할 방안이 없었을 테니.
만약, 곡물 유통과 그들의 해적 경제를 손에 쥐어잡지 않았더라면 말이다.
“저들은 스파르타를 친 다음, 디오메데스가 다스리는 아르고스로 가서 디오메데스를 죽이고 미케네로 향했어.”
그리고 오레스테스와 클리타임네스트라까지 살해했다.
스파르타, 아르고스, 미케네.
그렇게 세 왕국을 무너뜨리고 마침내 먼 옛날 신들에게 약속받았던 영광된 왕좌를 되찾는다.
다른 아카이아인들은 신경쓰지 않으리라. 원래 아카이아의 왕들 사이의 관계란 그랬으니까. 아마 스파르타를 치면서 바로 배후의 곡창지대인 메세니아를 치지 않은 걸 보면 그런 생각을 한 모양이었다.
먼저 네스토르를 치지만 않으면, 네스토르는 헬레네와 디오메데스가 어떻게 되든 신경쓰지 않고 가만히 있으리라고 말이다. 다른 왕들도 그럴 것이고.
어쩌면 자신들은 공격당한 바 없으니만큼 새 도리아인 왕중왕을 트로이아의 멍에를 벗겨줄 구원자로 취급해줄지도 모른다.
···라는 일이 일어날 리는 없겠지만.
“아마, 지금 아카이아가 어떻게 변했는지 모를 작자에게는 현실적인 전략으로 보이겠지.
이 내용을 아버지에게 전달할 거야. 첩보를 통해 전해들었다고 전달할 거고. 같이 트로이아로 가자.”
“···잠시만요.”
“무슨 일이야?”
“한 가지, 알 수 없는 부분이 남았잖아요.”
“···.”
아.
그 얘기를 하려고 하는군.
“북쪽의 코린토스만으로도, 서쪽의 이오니아 해로도, 동쪽의 에게 해나 육로로도 접근하지 않았다면···
그럼 저들은 어떻게 스파르타에서 미케네까지 간 거죠?”
“그건, 나도 몰라.”
쓴웃음이 나오는 사실이다.
그럼 어떻게?
어떻게 이타카와 다른 아카이아 여러 나라들의 시선을 피해 스파르타에 상륙했을까?
“뭐··· 약간의 빈틈 정도는 있어주면 이야기의 신빙성을 높이지 않겠어?”
“···.”
“가자, 트로이아로.”
내가 볼 때는, 더 지체할 시간 따위 없었다.
***
[헤라클레스의 손자여···.]클레이다이오스는 자신을 둘러싼 존재들이 말을 걸어오는 것을 느꼈다.
그가 고개를 들자 치렁치렁한 망토를 두른 여성의 초상이 나타났다가 흩어진다. 바로 옆을 보자 중후한 반백의 남성이 수염을 쓰다듬으며 이어서 말을 걸어온다.
[‘우리’들은 무언가를 느꼈다. 아마 우리가 힘을 내어준 너 역시 그러하겠지.]남성의 말에 클레이다이오스는 잠시 생각하다가 곧 고개를 주억거린다.
[···예. 실로 그러합니다, 위대한 분들이시여. 누군가 저와 당신들을 ‘엿보는’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그 감각이 너무도 기이하여 무엇인지 제대로 해석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렇겠지.]빛나는 두 눈을 번뜩이는 남성의 형상이 다시, 클레이다이오스의 앞에 다가선다.
[너는 우리의 힘을 받았으되 근본적으로 필멸자가 아니더냐.] [···.] [아직도 부족해보이는군. 우리의 왕이여, 어떤 식으로든 좀 손을 써보는 게 어떻겠습니까?]그러나 다시 방금 입을 열었던 남성의 형상이 공기 중으로 흩어져 사라진다.
분명 수많은 이들이 이곳에 그와 함께 있는 것 같은데, 그의 눈에는 한둘만이 드러났다가 사라진다.
마치 2차원 평면 위의 존재에게 평면 위아래를 오가는 3차원의 존재가 나타났다 사라지는 것처럼 보이듯이.
클레이다이오스는 자기 존재의 저열함에 열등감을 느끼면서도, 자신에게 힘을 허락해준 존재들이 이토록 놀랍고도 경이로운 존재라는 사실에 묘한 자긍심을 얻었다.
그리고 그런 그의 앞에.
[···손을, 써보라 하였느냐?]음울한 인상의 한 남자가 모습을 드러낸다.
그의 눈 밑으로는 짙은 그늘이 드리워져 있고, 그의 얼굴에는 차분한 냉소가 씌워져 있다. 그의 머리칼은 풀어헤쳐진 백발인데 그 위에는 왕관이 씌워져 있다.
아주 늙은 노인의 모습 같기도 하면서, 그 눈빛에는 오래되었으면서도 젊은 힘이 깃들어있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왕이여. 힐로스의 아들이 아직도 우리와 같은 느낌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사오니···] [기다려보라.]노인 남성은 천천히 클레이다이오스의 앞으로 걸어온다. 클레이다이오스는 그 위압감에 뒷걸음질칠 뻔했으나 결국 움직이지 않았다.
[퍽, 용맹하구나.]그 모습에 노인은 웃었다.
웃으며 그의 이마에 대낫을 박아넣었다.
[끄아아아아아아아악!!!!] [육신의 고통에 얽메이지 말아라, 필멸자여!! 그 고통, 그 파산(破散) 속에서 새로운 시야를 얻어라!]클레이다이오스는 견딜 수 없는 고통에 바닥에 무릎 꿇고 쓰러진다. 얼굴을 찡그리고 두 손으로 눈과 이마를 감싸쥐었다.
[끄으으윽! 으으으으으으···!!!!!!] [넌 이미 에트나 산의 불길을 뚫고 티폰을 해방시켰다. 무엇이 더 두려우냐? 더 두려워할 게 남았느냐?]클레이다이오스는 고통에 이를 악물고 파르르 떨었다. 그의 몸에 상처 따위는 없었다. 그러나 노인의, ‘왕’의 대낫은 마치 그의 영혼을 갈라내기라도 한 듯 끔찍한 고통을 안겼다.
그리고.
클레이다이오스는 눈을 감은 채로 무언가를 봤다.
[으, 으어, 으어아아아아!!!! 보입니다!!!!!] [무어가 보이느냐!!] [와, 왕자가, 트로이아의 왕자가 우리의 미래를 보았습니다! 어떤 미래를 보고, 그 틈으로 좀먹으며 들어와 비열하게도 우리를 훔쳐보았습니다!!] [···좋다.] [그, 그런데, 그, 그 미래가 어떤 미래인지 알 수가···] [신경 끄거라. 이제는 네가 알 필요 없다. 이제 존재하지 않는 가능성일 뿐이니까.]‘왕’은 웃으며 대낫을 거둔다. 그리고 자신이 쪼갰던, 상처 하나 없는 클레이다이오스의 이마를 어루만지며 입을 열었다.
[그냥, 계획을 앞당기면 그만이다.저들이 대비하기 전에 말이다.]
클레이다이오스는 그 뒤에 다시 눈을 뜬다.
그러자 그의 주위에 떠오른 수많은 ‘존재’들을 느꼈다.
그들은 더 이상 인간의 형상이 아니었다.
그리고 그들 뒤로 어떤 존재가 꿈틀거리는 것을 느꼈다.
‘그것’은 공포였다. 클레이다이오스가 다시 눈을 깜빡이자 그의 눈앞에는 음울하면서도 인자한 노인의 얼굴이 드러나있었다.
하지만 클레이다이오스 자신이 만들어낸, 얄팍한 인간의 자아감을 유지하기 위한 겉껍질일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