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ame a mythical shepherd slave RAW novel - Chapter 441
클레이다이오스는 벌벌 떨듯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러자 그 주위의 존재들은 웃었다.
아니, 인간이 아니니 웃었다거나 미소지었다고는 말할 수 없었다. 대신 클레이다이오스는 이렇게 표현하고 싶었다.
‘우주’가, 살짝 흔들렸다.
회의
오랜만에 다시 둘러본 트로이아도 상황이 만만치는 않았다.
새로 확장한 시가지 쪽으로 사람들이 몰려들어 건설할 때는 ‘파리스 님, 왜 이렇게까지 많은 집을 지으십니까? 사람이 살지 않으면 몇 년 안에 폐허가 될 텐데요.’ 같은 소리를 들었던 곳들까지 가득가득하게 찼다.
그곳에서는 이전에 트로이아인들이 들어보지 못한 언어들이 들려왔는데, 금발 벽안에 얼굴이 새하얀 전형적인 야만인들도 머리를 땋으며 자기들끼리 다가오는 위험에 대해 속삭였다.
나와 카산드라는 그들의 시선을 뚫고 곧장 왕궁으로 향했다. 오랜만에 내가 돌아왔다는 소식에 장로들과 시민들이 함께 몰려왔다.
그곳에서 프리아모스는 말했다.
“적들이··· 스파르타로 온다?”
“예.”
“그렇다면 네가 말하는 ‘적’이란 무엇이더냐?”
프리아모스의 눈빛이 날카롭게 변한다. 주위의 여러 장로들이 수근거리다가 그 눈빛에 저도 모르게 침묵한다.
차갑고, 단단하고, 묵직하게 이 공간을 지배한다.
가족들을 바라볼 때의 자상함은 위엄이 되었고, 무엇이든 납득하려 하는 이해심은 꿰뚫어보는 통찰이 되었다.
그는 ‘좋은 아버지’가 되기 이전에, ‘위대한 왕’이었다. 수년 동안 피비린내 나는 폐허를 다시금 트로아스 일대에서 군림하는 왕도(王都)로 만들어놓기 위해 갖은 애를 썼었다.
나는 그 시절의 프리아모스가 어땠을지 잠시 들여다볼 수 있었다.
“제가 말하는 적이란··· 도리아인과 켄타우로스입니다. 그들이 아카이아를 노립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아카이아의 패권을 노리는 것이지요. 무력으로써 우리의 영향력을 제거하려 할 것입니다.”
내가 말을 꺼내자 다시 장로들 사이에 웅성임이 일어났다가, 프리아모스의 손짓에 또 한 번 가라앉는다.
실종되었다던 도리아인들이 켄타우로스와 함께 전면적인 침공을 준비하고 있다. 분명 충격적인 소식이지만 트로이아의 왕중왕 프리아모스는 전혀 놀라지 않았다.
프리아모스가 대범한 왕이라서? 아니면 어렴풋이 짐작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럴 리가.
아무리 대범해도 이런 예상 밖의 상황에서는 놀랄 수밖에 없고, 합리적인 추론을 따르자면 이런 상황에서 도리아인들과 켄타우로스들의 자원으로 전면전을 준비한다는 생각은 망상에 가깝다.
그럼에도 프리아모스가 놀라지 않은 이유는 의외로 단순했다.
***
“맙소사··· 안키세스, 들었나?”
“제 두 귀로 똑똑이 들었지요, 주군. 결국 도리아인들이 오는군요. 헤라클레스의 후예들이 옵니다.”
***
이미 들었으니까.
···원래 그렇다. 공개적인 정상회담에서 실무가 이뤄지는 경우는 극히 드물지 않던가.
그 이전에 미리 실무진들이 이리저리 오가며 세부 사항들을 정리하고 수뇌들은 공개적인 자리에서 대중들에게 노출될 정치적인 제스처를 취하며 그 모든 일에 화려한 종지부를 찍는 역할을 수행할 뿐.
그와 비슷하게, 지금 우리가 일종의 정치적 프로레슬링을 진행하고 있다고 보면 되었다.
이 쇼 엔터테인먼트의 마니아 정도 되는 장로들과 여러 시민들은 우리 사이에서 쓰인 각본의 내용과 의미를 음미하며, 이를 잘 알지 못하거나 알 필요 없는 일반 대중들은 들리는 그대로의 내용을 받아들인다.
“카산드라, 그게 사실이더냐? 너는 얼마 전에 안탄드로스에 가지 않았더냐?”
안키세스가 묻자 카산드라는 조용히, 그러나 단호하게 고개를 끄덕인다.
“예. 아버지께서 제게 명하시기를 파리스 오라버니가 어떤 도리아인 포로를 심문하는 과정에 도움을 달라 하셨어요. 제 ‘능력’이 필요하다고요.”
카산드라의 ‘예언’ 또는 ‘광기’에 대해 잘 아는 시민들과 장로들이 자기들끼리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쑥덕거린다. 프리아모스가 흥분하여 앞으로 걸어나온 안키세스를 붙잡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그 말이 맞네, 나의 사촌이여. 내 딸을 너무 괴롭히지 말게나. 나의 명령에 따라주었을 뿐이니.”
물론 아니다.
카산드라는 개인적인 자격으로 왔고, 나는 혹시나 난민들을 심문하면서 지난번과 같은 사건이 일어날까 싶어 카산드라와 함께 있기를 청한 것이었다.
하지만 이 편이 훨씬 사람들이 보기에 덜 의심스럽다.
이로써 카산드라는 왕중왕이 인증한 증인이 되었고, 나는 아버지 몰래 사사로이 공주를 불러다 뭔가 몰래 작당했을지 모른다는 의혹을 차단할 수 있다.
“내 남편의 사촌이여, 물러나시오. 그대가 흥분한 모습을 보이면 시민들이 보기에 좋지 않을 것이오.”
“알겠습니다, 나의 주군이시여. 명에 따르겠습니다.”
헤카베의 말에 안키세스는 미리 약속했던 대로 두 타일 뒤로 자연스럽게 걸어 물러선다. 이렇듯, 왕중왕의 가장 총애하는 장로가 검증하기를 파리스와 카산드라의 말은 진실이었다.
···그래.
모든 경우에 이런 귀찮은 짓을 벌이지는 않는다. 하지만···
***
“군사에 관련한 사무가 아니냐? 조심하는 편이 좋을 것 같은데···.”
내가 처음 미래의 침공을 보고하던 그때, 안키세스는 한참동안 미간을 찌푸리다가 입을 열었다.
그 말에 대해서 나는 답하고 싶은 바가 많았다.
“트로이아 시민들이 아직도 저를 의심하겠습니까? 지난 전쟁에서 확실히 저라는 존재가 안전함을 증명했다고 생각합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이 도시의 시민들은 오라버니를 존경하잖아요. 아니, 사랑하기까지 하죠.”
“그래. 물론 나도 파리스를 사랑하지, 카산드라. 그리고 이 트로이아의 시민들은 파리스를 사랑하다 못해 숭배하기까지 한다. 파리스의 우상을 집 한 구석에 새기고 그 입에 입맞출 정도로.
어··· 사실 조금 더 민망한 짓거리를 하는 이들도 보기는 했지. 파리스, 절대로 이 도시에서 초대받았을 때 실수로라도 집주인의 침실로 들어가지 말거라. 너를 닮은 목상을 그곳에서 발견했고 거기서 튀어나온 부분이나 수상한 구멍을 발견한다면···”
“크흠.”
“너무 나갔습니까?”
“···너무 나갔네, 사촌이여.”
역시, 프리아모스다.
나와 카산드라의 얼굴이 시뻘개지고 머리가 새하얘질 때쯤 그가 적절히 개입해 안키세스의 말을 막았다. 안키세스는 머쓱한 듯 어색한 웃음을 날린다.
“여하튼 사랑만으로는 부족하다. 아, 당신께 드리는 말씀은 아닙니다. 위대한 나의 연인이시여.”
안키세스는 잠시 품에서 꺼낸 아프로디테 조각상에 입을 맞춘 다음 이야기를 이어갔다.
“그래. 트로이아의 시민들은 파리스를 사랑한다. 파리스가 그들을 지켰고, 파리스가 그들의 도시를 번듯하게 새로 지어줬고, 파리스가 그들에게 먹을 것과 입을 것을 싼 값에 가져다주니까.
하지만 사랑을 주는 이가 꼭 사랑을 받는 이가 원하는 선물만을 보내지는 않는단다.”
“···예?”
“사랑하는 이에게는 모든 걸 주고 싶어지지. 자신의 몸과 마음, 줄 수 있는 모든 걸 말이다.”
“···예, 알겠습니다.”
“오라버니? 저게 무슨 말이죠?”
나는 입을 다물었다. 내가 설명할 만한 주제가 아니었다. 다시 안키세스가 입을 열었다.
“예를 들면, 트로이아의 시민들이 트로이아의 왕위를 주고 싶어한다면 어떻게 되겠느냐.”
“···.”
“···.”
아.
이제 나는 트로이아의 시민들에게 의심받는 게 문제가 아니었다. 오히려 안키세스의 말처럼 사랑받는 게 문제였다.
이미 크레타라는 선례도 있었다.
나는 내가 트로이아를 원한다는 의혹조차 사지 않도록 움직여야 했다.
“그러니, 파리스 네가 괜한 의혹을 사지 않게 움직여야 한다. 게다가 네가 어떻게 움직이든 적이 알아챈다면 다르게 움직일 게다. 너무 많은 걸 동원할 수도 없지 않겠느냐?”
“적들은 아카이아가 어떻게 바뀌었는지 잘 모릅니다. 어떻게든 스파르타를 먼저 노릴 겁니다.”
“그 말에 대헤서.”
마지막 말은 프리아모스가 꺼낸 것이었다.
“···장담할 수 있느냐?”
“그건···”
“네가 적들의 정보를 어떻게 알게 되었는지는 상관 없다. 적들이, 반드시 그렇게만 움직이리라는 장담이 있느냐?”
“···.”
나는 장담할 수 없었다.
***
“네 말은··· 분명치 못하구나.”
프리아모스가 천천히 고개를 까딱거리며 말했다.
“적들이 반드시 오리라 확신하면서도, 그 경로는 알지 못한다니?
그뿐이더냐? 적들의 최종적인 목적지가 미케네라 말하면서도 그들이 북쪽의 코린토스 만이나 그 옆의 지협을 건너오는 게 아니라 남쪽으로 빙 돌아와서 북진한다고 말했다. 맞느냐?”
“···그렇습니다. 포로가 심문을 진행하던 끝에 병사해버리기는 했지만 그 말뜻은 분명했습니다.”
내 말에 프리아모스는 수염을 쓰다듬으며 눈에 힘을 준다. 고개를 뒤로 젖히고 헛기침 소리를 낸다.
전형적인 불신의 제스처에 이 공간의 긴장도가 높아진다.
“그렇다 해서 적들이 에게 해나 이오니아 해로 오는 것도 아니고 말이다.”
“예. 얼마 전에 오디세우스의 딸이 태어났다는 소식에 축하하러 가면서 확인했습니다. 제가 이름도 지어줬지요.”
“흠. 그때 이타카의 방비가 허술해보였더냐? 아니면 해적들을 잡아내는 소임을 오디세우스가 소홀히 하고 있더냐?”
“···둘 다 아니었습니다.”
“그렇다면 적들이 어떻게 몰래 이오니아 해를 건너오겠느냐?”
“···.”
“우선은 신빙성이 의심되는구나. 네가 심문한 포로의 말이 거짓일 확률을 나는 높게 본다.”
“역시, 그렇습니까?”
“그래. 너 역시 총명하니 이해해주리라 믿는다.”
프리아모스는 한숨을 내쉬며 손을 내젓는다.
“게다가 만일 그 말이 사실이라 하더라도 대군이 건너올 수는 없다. 저들에게 카라보스가 있는 것도 아니고, 결국 반인반마의 족속을 배에 가득 태우고서 온다 해도 그 수효가 시원치 않을 터.
거기에 우리의 눈을 피하려 기이한 행군로를 짰다면 사람조차도 많이 보내지 못할 것이다.”
“···.”
이건, 단지 대본이 아니다.
실제로 프리아모스와 안키세스가 내게 제기했던 의문이고 내가 끝내 반박하지 못했던 문제들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