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ame a mythical shepherd slave RAW novel - Chapter 46
46화. 서로의
프리아모스라는 인간은 단순성과는 거리가 멀었다.
하다 못해 빵 한 덩어리를 먹더라도 그는 그 속에 건포도나 렌틸 콩이 박혀 있지 않는다면,
그리하여 처음 씹었을 때는 밍밍하고 오래 씹으면 달달한 그 단순한 밀의 탄수화물 맛만 느껴진다면,
그는 식사를 하지 못했다.
그런 것은 싫증나는 데서 그치는 게 아니라, 비참하게까지 느껴지는 것이었다.
그의 삶은 언제나 복잡미묘함을 추구해왔다.
그 기벽의 시작점을 굳이 따지자면, 떠올리기도 싫은 그 망국의 순간, 헤라클레스에 의해 고향과 가족이 모두 짓밟히고 누이가 원수의 아내로 팔려가던 그 순간이었을 것이다.
그때 그의 눈에 보인 풍경은 아주 소박하고, 분명한 폐허와 죽음이었다.
살 타는 냄새, 피웅덩이에서 벌레가 끓는 소리, 발 아래에서 어미 잃은 아기가 나오지 않을 젖을 빠는 풍경, 그 모든 것은 이해하기에 그닥 어렵지 않았다.
성곽과 저택과 신전과 궁전으로 복잡하게 이어지던 축복받은 일리오스(Ίλιος, 트로이아의 별칭)의 지평선은 텅 빈 수평선으로 단숨에 평평해졌다.
수많은 언어와 억양으로 이어지던 외침과 속삭임과 잡담들은 단 하나의 소음으로, 피 끓는 비명으로 간소화되었다.
그에게 단순성이란 곧 죽음이었고,
야만이었으며,
상실의 기억이었다.
부모, 형제, 친척, 집, 이웃, 아랫사람, 윗사람, 재산, 명예, 살아갈 이유 등등.
그가 가진 것이 아무것도 없어졌을 때, 그의 세상은 아주 간단해졌다.
그리고 그의 곁에는 마찬가지로 간단해진 삶에 내던져져버린 수천 명이 남아 있었다.
나라가 약하고 가난하고 비참하고 야만화될 때 사람들의 삶은 단순해진다.
하룻밤의 먹을거리를 위해서 제 자식을 죽여서 구워버릴 정도로 말이다.
그러나 나라가 강하고 부유하고 융성하고 그 문명이 드높을 때면 그제야 사람들은 사유에 가까운 행위를 하기 시작한다. 사교를 누리며, 정치를 하고, 우정과 사랑을 누린다.
그의 소임은,
그의 소원은
자신의 세계가 늘 복잡하도록 유지하는 것이었다.
들판에 가득하던 비명소리가, 다시 저자에 널린 십수 개 언어의 왁자지껄함으로 재건되기까지는 아주, 아주 오랜 시간이 걸렸다.
궁성이 다시 일어났고 법률과 관습과 품위와 문명 역시 그러하였다. 모두 프리아모스라는 남자의 피땀이 어린 결과물이었다.
그리고 그가 일생을 다 바쳐 가꿔 놓은 평화롭고 아름다운 복잡성 속으로,
아주 치명적인 장침이 찔러들어왔다.
성문 너머에서 들어오는 안키세스의 일행을 확인하며 프리아모스는 신음하듯 그 치명적인 이름을 말했다.
“···파리스.”
아이가 온다.
***
아주 오랫동안 내 소원은 간단했다.
내 작은 세상이 계속 단순하게 유지되는 것.
서울은 천만 명이 살던 도시였다.
한글로 간결하게 쓰면 실감이 나지 않겠지만, 천만이란 곧 10,000,000이다.
0이 일곱 개.
서울시민들이 모두 서로에게 악수를 하려면 우주가 끝나는 날까지 기다려야 하리라.
그렇게 많은 이들이 전철에서 서로 부대꼈고, 대학과 회사에서 서로 부딪혔으며, 횡단보도와 갓길에서 서로 부닥쳤다.
하루라도 소음이 끊이지를 않았다. 서로 밀어내고 밀쳐지는 악다구니를 반복했다.
나는 그 속에서 누군가를 악착 같이 밀어내며 버티려던 인간이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에는 밀려나버리던 인간이었다.
밀려나고 밀려나다 못해 결국 저 촌구석에 숨어산다는 요상한 생태주의자 시인에게 강연 한 번 해달라 읍소하려다 결국 골로 갔다.
그리고 내게 남은 건, 생각보다 나쁘지 않았다.
노예의 삶은 간단했다.
내가 가진 모든 것을 합쳐도 한때 내가 한 손에 쥐고 있던 스마트폰의 기능보다 다양하지 못했지만, 그래도 살 만했다.
쭉 뻗은 지평선 위로 양을 몰고 다니다 이노와 노닥거리고, 낮잠을 자고, 마을 사람들과 노닥거리다 보면 하루가 끝났다.
내게는 이 하루를 유지하려 버둥거려야 할 의무도 없었다.
다만, 이 하루가 내일도 모레도 10년 뒤도 이어지리라는 확신은 있었다.
나는 내가 죽을 때까지 이 작은 세상의 평화가 유지되리라 믿었다.
헤파이스토스를 마주하기 전까진.
운명의 여신들과 대면하기 전까진.
황금 사과의 주인을 정하기 전까진.
내 출생의 비밀과, 내 삶의 이면에 도사리고 있던 또 다른 세계를 알기 전까진.
아무튼 이제 나는 이곳에 있다.
운명이 이끄는 길에 따라, 결국에는 돌고 돌아 내가 태어난 장소로 귀환했다.
저 멀리, 화려하게 장식된 대리석 기둥의 건물이 아마 궁전이리라.
저곳에 있다.
“프리아모스···.”
내 단순하던 삶에 끼어든 복잡한 운명의 타래가.
***
프리아모스는 어떻게 아들을 마주해야 할지 밤새도록 고민했다.
달빛이 기둥과 바닥에 튕겨 이지러지는 알현실에 홀로 남아, 상상 속의 안키세스와 아이네이아스가 하는 절을 받고 그들과 대화를 나누며 다음날의 대면을 연습했다.
-“왕이시여, 명령에 따라 안탄드로스를 여행하고 돌아왔습니다. 아름답고, 따뜻하고, 사람과 문물이 모두 문명한 도시였습니다.”
“그래···.”
귓가에 환청으로 들리는, 오직 상상 속에서만 울려퍼지는 안키세스의 말에 대답하며 프리아모스는 옆을 돌아보았다.
그 수줍은 아이, 내 사촌의 아들이 자신없는 눈빛으로 나를 잠시 바라보고는 꾸벅 절한다.
나는 손짓으로 그 아이에게 절을 멈추도록 지시하고서 어깨를 잡고 말한다.
“그동안의 여정이 너를 더욱 단단한 사내로 키워주었기를 바란다. 너는 언젠가 네 훌륭한 아버지의 뒤를 이어 다르다노스의 주인이 될 사내니까.”
아이네이아스는 머뭇거리다, ‘감사합니다.’라고 속삭이듯 말하며 눈을 내리깐다.
두 사람과 이런저런 해후를 나누고, 잡담을 나누고, 멀지 않은 남쪽의 짐승과 풀들은 이 북쪽의 것들과 무엇이 다른지에 대해 꼬치꼬치 파고든다.
시간이 지나 좀더 중요한 이야기로 넘어가서는 그 근처의 동맹 도시들이 어떻게 움직이고 있는지, 그 동향에 대해 안키세스와 자뭇 심각한 대화를 나눈다.
그러다, 저 알현실의 대문에서 다시 똑똑 두드리는 소리가 난다.
안키세스가 비로소 생각났다는 듯,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다시 절한다.
-“주군, 소개해드릴 사람이 있습니다.”
프리아모스는 그 ‘소개해드릴 사람’이 누군지 알기에 긴장한다.
문이 열리고,
그리고 그의 머리가 하얘진다.
“···젠장.”
다시, 다시 생각해보자.
나는 내 아들을, 그립고도 두려운 내 아들을 다시 마주한다.
내가 버린 아들, 죽여야 했으나 차마 죽이지 못한 아들, 어딘가 다치고 찢길까 두려워 아끼는 무사를 곁에 붙여놓아야 했던 아들.
그 아들이 나를 원망할까? 증오할까? 아니면 이해해줄까?
상상할 수 있는 경우의 수들이 무한히 뻗어나가고, 그것이 그리는 수형도(樹形圖)가 다시 복잡하게 얽히고 설켜 결국 그의 팔과 다리를 덩쿨처럼 묶어버린다.
아들에게, 파리스에게 건넬 첫 마디는 무엇이 되어야 할까?
어떤 정치적 함의를, 어떤 감정적 태도를 말에 담아내야 할까?
서 있을 위치는? 지어야 할 표정은? 갖추어야 할 자세와 손짓은 무엇일까?
신하를 대하는 격식으로, 왕족의 일원을 대하는 듯이? 아니면 노예나 반역자를 대우하는 것처럼?
그가 평생 동안 세심하게 익혀온 어떤 예식과 예법도 지금의 상황에서는 알맞지 않았다.
그렇게 세분화되고 세심해진 이 궁전의 규율 속에서, 파리스는 어디에도 제대로 속하지 않았다.
프리아모스는 마치 사막에 홀로 남은 여행자처럼 괴로움에 허덕이며 고뇌했다.
그런 고뇌 속에서 저 멀리 동이 터왔고, 이제는 머리 위로 태양이 점차 솟아올랐다.
생각할 시간이 더는 남지 않았다.
***
친아버지를 만나는 거라지만 사실 아무 감흥도 없다.
전생의 아버지, 나를 길러준 양치기 양아버지까지 합하면 어차피 나는 아버지 갯수로는 이미 여포와 동률이다.
물론 내가 여포처럼 그 이전에 있던 아버지를 환불 및 교환, 반품하거나 한 것은 아니지만.
남들이 느낄 감정의 3분의 1도 느끼지 못한다는 소리다.
게다가 내가 친부와 함께한 순간이 인생에서 얼마쯤 되려나? 1퍼센트? 0.1퍼센트? 하루이틀 정도, 길게는 일주일에서 열흘 정도 같이 있었을 수 있겠다만 죄다 기억에도 없다.
내가 지금 만나러 가는 라오메돈의 아들 프리아모스라는 인간은 내게 친아버지이기에 앞서 트로이아의 왕이다.
내게는 아무런, 아무런 감정도···
시발.
없을 리가 있나.
-“작별이구나.”
자식을 노예에게 넘기기로 결정하면서 짓던 그 애처로운 표정이 머릿속에서 윙윙 울리면서 벗어나지 않는다.
-‘나의 둘째 왕자 파리스를 ‘즉시’ 트로이아의 궁정으로 소환한다.’
나를 죽이지 못해, 대신 평생 떠나보내기로 결심을 내렸던 그가 나를 다시 불렀다.
뭘 위해서일까?
내가 태어났을 때 다 해내지 못한 일을 마무리하기 위해서?
그러니까, 날 죽이기 위해서?
사실 그쪽도 가능성이 높을지 모른다.
누가 봐도 지역에서 반란을 일으키는 것 같은 왕자를 처리하고, 다시 왕국의 평화를 되찾는 게 그의 최선일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그럴 거면 니키스 총독에게 명령을 내렸어도 되잖아?’
그동안 허위 보고를 올리며 나를 두둔했던 테오가 이미 내게 포섭되었을까 걱정된다면, 총독에게라도 나를 척살하라고 명령을 내리면 그만이다.
총독도 의심스럽다? 그러면 진작 안키세스에게라도 지시해서 나를 죽이게 시켰겠지.
아니, 아니다.
생각해보면 히타이트보다도 앞선 제철기술이 탐이 날 수도 있지.
어떻게 탐이 나지 않을 수 있겠나? 이 시기의 중요 전략자원이자 귀금속을 양산할 수 있는 기술인데.
그걸 빼내기 위해서 나를 수도로 불러들인 걸 수도 있다.
나를 사정없이 고문한 다음, 모든 정보를 쥐어짠 뒤 죽이려고.
뭐, 그 다음은 어떻게든 예언이 실현되겠지.
아폴론과 포세이돈이 자신들이 성벽을 건설한 데 품삯을 제대로 주지 않은 선왕 라오메돈 분노하여, 헤라클레스와 함께 트로이아를 멸망시켰더랬다.
바로 그때처럼, 나를 총애하는 헤파이스토스와, 왠지 모르게 나를 돕는 헤르메스나, 내가 가장 아름다운 여신으로 뽑아준 아프로디테가 트로이아에 신벌을 내린다면 멸망은 금방이다.
그런 결론이 날 수도 있다.
하지만 어쩌면,
‘정말로 나를 만나고 싶어서일 수도 있다.’
아들을 보고 싶어서.
그걸 확정짓지 못했으니 안키세스도 나를 죄인이든 정식 왕자든 둘 중 하나로 대우하지 못하고 이렇게 힘들게 귀향한 것 아니겠나?
그렇게 모두가 나를 애매하게 대하는 상황이다. 나도 이 애매한 상황에서 방침을 정하지 못하고, 계속 애매한 채로 남아 있는 중이고.
머리가 어지러운데, 지난 며칠 동안의 여정 동안 그 머리를 식힐 돌파구 따위는 없었다.
지금 나는 어디로 도망칠 방법도 없이, 내 친아버지가 기거하는 궁전을 향해 똑바로 걸어가고 있었다.
***
어떻게 해야 하는가?
***
아버지는 어떤 생각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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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아들 파리스는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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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이 궁궐로 걸어들어오는 길이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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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을 살려두고, 심지어 수도로 데려와 내 앞에 대면하게 하는 일이 파멸을 불러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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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버지를 만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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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아들을 만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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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해야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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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해야 하는가?
***
이윽고 내 앞에 궁전이 가까워진다. 대리석과 온갖 잡다한 염료와 귀금속으로 화려하게 꾸며진 궁전이다.
***
환관들이 문을 열고 들어와 내게 고한다. 안키세스와 일행이 궁전의 문턱을 넘었다고 한다.
***
이 많은 방들 중, 내가 태어난 방도 있겠지.
***
저 많은 복도들 중, 아이를 수도에서 떠나보내던 그 길도 있을 터다.
***
하인들이 나와 안키세스와 아이네이아스를 각기 다른 방으로 안내한다.
맑은 물로 나를 씻기고 좋은 옷으로 나를 갈아입힌다.
***
환관들과 다른 시종들이 내게 왕홀을 쥐여주고 나를 옥좌로 인도한다.
나는 천천히, 내가 취할 수 있는 가장 왕답고 위엄 있는 자세와 표정을 취하며 착좌한다.
***
나와보니 나머지 두 사람도 마찬가지로 더러워진 여행복을 벗고 때묻은 얼굴을 박박 문질러 씻은 채다.
신의 연인과 신의 아들과 신의 사랑을 받는 소년이 이렇게 나란히 걸어간다.
***
슬슬 저 멀리서 많은 사람들의 발걸음 소리가 다가온다.
다르다노스의 군주와 그와 아프로디테가 낳은 거룩한 후계자와··· 내 아들이 걸어온다.
***
점점 더 머리가 복잡해진다.
***
아무런 생각도 할 수가 없다.
***
숨이 차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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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만히 앉아 있는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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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가슴속에서 무언가가 끓어오른다.
***
울음 같기도 하고, 환희나 격분 같기도 한 그 감정의 덩어리를 겨우 목 아래로 눌러넣는다.
***
나는 알현실의 문앞에 선다.
***
그 아이가 알현실의 문앞에 섰다.
***
하인이 문을 밀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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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너머의 풍경이 서서히 눈에 들어오면서,
***
네 개의 눈이 서로를 마주친다.
···
수많은 사람들이 서로를 둘러싸고 있고,
수많은 나날들이 우리가 처음 만난 그 날로부터 이어졌다.
그럼에도 우리는 서로를 알아볼 수가 있었다.
우리는 서로의 이름을 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