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ame a mythical shepherd slave RAW novel - Chapter 463
그 역사를 모르는 이는 아카이아에 없다.
“···이보게. 그게 정말로 사실인가?”
“신중하십시오. 그렇게 초조하게 굴어서는 될 일도 틀어질 것입니다.”
“지금 신중하게 생겼나! 자네 주인이 파리스에게 살해당해 스파르타 성벽에 내걸렸다는 소문이 파다한데!!”
“그거야 모르는 일입니다. 제 주인 클레이다이오스께서는 많은 재주와 권능을 부리시니 그 역시 눈속임일지···”
“눈속임? 눈속임이라 했나!!”
그리고 그 역사가 아직 끝나지 않았음을 모르는 이 역시 아카이아에 없다.
미케네 한 구석의 어두운 뒷골목에서 두 남자가 비밀스러운 내용을 속삭인다.
그 중 기골이 장대한 한 남자가 다른 누군가의 멱살을 쥐고 흔들기 시작한다. 그의 흥분한 눈빛에서는 이미 이성의 흔적마저 가신 지 오래다.
“도리아인들과 켄타우로스들의 연합군이 와해된 것도 그럼 눈속임인가! 그들이 지금 네스토르와 디오메데스에게 양떼처럼 도살당하고 있다는 것도!!”
“지, 진정하십시오. 전쟁에서 항상 승리만이 이어질 수는 없습니다.”
“그렇다 해서 패배만 이어져서도 안 되는 법이 아닌가! 이, 이걸, 어떻게 해야··· 제기랄! 내가, 바르바로이들과 손잡자고 생각한 내가 등신이지!”
“아이기스토스 님, 진정하십시오! 오레스테스도 자리를 비운 이 때가 기회 아니겠습니까?”
“기회는 무슨 기회! 밖에서 응할 병력도 없고 시민들의 지지도 아직 모으지 못했는데!”
“클리타임네스트라를 유혹하시지요. 그녀는 자신의 남편을 증오해왔다 하고 그 아들이 왕중왕위를 빼앗긴 것이나 다름 없으니 트로이아에 불만이 있을지도···”
“···.”
“···.”
“그런가?”
“예! 제가 궁전에 뒷구멍을 마련했으니 일단 클리타임네스트라의 내실로 들어가시지요.”
티에스테스의 아들 아이기스토스는 이 빌어먹을 전령이 속삭이는 작전이··· 놀랍게도 마음에 들었다.
증오스러운 사촌 아가멤논의 부인을 빼앗는다니, 근친과 불륜과 배우자 강탈이라는 이 집안의 거룩한 가풍에도 썩 어울리는 일이었다. (꼭 그게 아니더라도 이 유전자에 근친혼에 대한 강한 열망이 깔려 있긴 했다.)
분명 클리타임네스트라도 여동생 헬레네만큼은 아니더라도 미인이라 들었다. 아름다운 그녀를 유혹하여 미케네의 정당한 왕이 되고 사랑스러운 부인과 여생을 즐기는 모습이 자연스레 머릿속에 떠올랐다. (물론 망상증과 기이한 자기 확신도 이 집안 내력이다.)
고민은 길지 않았다.
“좋아. 가지.”
그리고 당연하지만.
“끄, 끄아아악! 날 속여! 이 버러지 같은 것들! 역겨운 것들!!”
“씁. 가만히 있어. 불륜에 근친상간까지 시도했던 새끼가 말이 많아.”
“안탄드로스의 왕이여, 저 불쾌한 것을 어찌 처리하면 좋겠나?”
“제게 적절한 생각이 있습니다, 클리타임네스트라 님. 산 채로 활활 태우는 겁니다.”
“이보게, 나의 벗이여! 태우는 김에 제사도 지내는 게 어떤가? 인신공양도 금지한 차에 마지막으로 한 번 신들께 사람 하나 태워 보낸다고 생각하고.”
부푼 꿈을 안고 서두르던 아이기스토스가 그 ‘뒷구멍’을 빠져나오자마자 사로잡히기까지도 그리 길지 않았다.
그제야 아이기스토스는 도리아인들이 보낸 전령이 평소와 생긴 거나 말씨가 달랐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리고 그 전령이 사실 파리스의 끄나풀이었다는 사실 역시 뒤늦게 알아챈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
내가 만약 클레이다이오스고, 아버지의 유산을 되찾으려 로마제국의 시조가 될 기회까지 차버린 인간이라면··· 흠, 무슨 수를 써서라도 승리를 확보해두려 했을 것이다.
자그마한 수단이라도 있으면 일단 쓰고 봤으리라는 말이다. 그런 점에서 미케네의 왕위 경쟁자라니 매력적인 카드가 아닌가? 그것도 ‘원래 역사’에서 실제로 수년간 승리까지 쟁취했던 자라면 더더욱.
“끄으윽··· 나, 날··· 태워 죽인다고? 감히? 너희가!!”
“그럼 누가 태워 죽이겠나. 왕중왕의 아들인 내가 자네에게 사형을 집행하면 되었지. 이 정도면 충분한 권위 아닌가?”
“와, 왕중왕은 나다!!”
“···.”
“···아, 아니, 프리아모스일 수도 있고··· 아니, 있고요. 충분한 자비만 베풀어진다면···.”
아이기스토스는 여전히 디오메데스와 네스토르의 밑에 깔려 아등바등거리고 있고, 클리타임네스트라는 자신을 ‘유혹’하려 했다는 소식을 듣고 아이기스토스를 혐오감에 찬 눈으로 내려다본다.
“어떻게··· 그런 말도 안 되는 계획이 성공하리라 믿었던 것이지? 내가 아들의 왕위를 뺏어서 자기한테 넘겨주리라 생각한 건가?”
어··· 사실 완전히 말도 안 되는 건 아니고···.
그렇게 왕위를 빼앗긴 아들이, 어쩌면 다른 세상에서는 당신을 죽였을···지도···?
“맞습니다. 저자의 방자함이 도를 지나쳤군요. 반드시 신들의 이름으로 징치해야만 합니다.”
당연히 나는 입을 다문 채 클리타임네스트라의 말에 맞장구쳤다. 여기서 이상한 말 꺼냈다가는 뺨 맞는다.
“그래서··· 내가 말한 안건은···”
“기각이오. 인신공양을 금지한 게 난데, 그걸 또 하자고?”
“아니. 그러면 그걸 또 아예 안 하자고?”
“···.”
“···거, 참, 알았소. 안 하면 되잖소.”
아무튼 내가 그렇게 고개를 끄덕거리고 있자 오디세우스는 인신공양의 장점에 대해 설파하기를 멈췄다. 하여간 미친놈은 한 군데만 곱게 미치지는 않는구나.
“다들! 그만 떠들고 이놈부터 같이 지하 감옥으로 옮기지! 붙들고 있기 힘드니까!!”
“허허, 디오메데스가 엄살이 심하군. 내 소싯적에는 이것보다 배는 커다란 멧돼지가 버둥거리는 것도 혼자서 붙들었는데. 어··· 아닐세. 생각보다 저항이 거세군.”
아무튼 간에 아이기스토스 하나 잡자고 영웅 세 명이나 데려오는 게 맞나 싶었는데 잘했다. 아이기스토스도 신의 핏줄 아니랄까봐 완력이 장난 아니었으니.
우리는 그렇게 놈을 미케네의 궁전 지하에 자리잡은 감옥에 쳐넣었다. 막 거세시술받은 짐승처럼 하도 구슬피 울기에 심문까지 들어가는 데만도 꽤 오래 걸렸다.
-쿵! 쿵!
“이보시오. 이제 진정이 되었나?”
“으흑··· 죽여버리겠다, 프리아모스의 아들 파리스! 반드시 여기서 나가서 네놈의 생살을 씹어먹겠다!!”
“파리스, 나의 벗. 저놈이 저렇게 울부짖는 걸 보시오. 내가 자비를 베풀면 안 된다 그랬잖소! 살려준다니!”
“···.”
오.
오디세우스 나이스. 역시 아가멤논 죽이는 것도 애인으로 만든 클리타임네스트라에게 일임했던 비겁한 새끼답게 목숨 갖고 들었다 놨다 하니 순식간에 조용해진다.
그제야 나는 쇠창살 너머로 의자를 끌고 와 앉은 다음 진정한 아이기스토스를 마주할 수 있었다.
“이보시오, 티에스테스의 아들.”
“···왜 부르시오?”
“묻는 말에만 순순히 답하면 살려줄 테니 진정 좀 하고 자리에 앉으시오. 여기, 마실 것도 가져다 줄 테니.”
그리 말하며 나는 유리병 하나를 그에게 내밀어보였다. 상처입은 개처럼 웅크리고 있던 아이기스토스는 낼름 유리병을 집어가고는 그 안의 내용물을 순식간에 비워버렸다.
···주량 세네. 그거 꽤 독한 포도주였는데.
“이보시오. 이제 정신이 좀 드시오?”
“···딸꾹, 말해보시오. 대체 뭘 물어보려고 하기에 반역자의 목숨까지 흥정이 가능한지.”
됐다. 이 쉬운 자식.
“얼음의 땅.”
“···.”
“그대의 동맹자에게서 관련한 내용을 전해 들은 적이 있소? ”
“···.”
“아니면 뭔가 이상한 자연환경에 대한 이야기라든가, 북쪽의 땅에 대한 이야기라든가?”
“아! 있소! 저 북쪽 흑해에서 자원을 끌어다 오겠다고···”
“지어낸 얘기로군. 그냥 죽여야겠소.”
“아니, 그걸 어떻게···!!”
그야 당연하지. 향해야 할 목적지가 아이슬란드인지 아닌지 확인하려는 차에 영 엉뚱한 데를 얘기하니까.
“사, 살려주시오! 아니. 살려주십시오, 파리스 님! 알렉산드로스께 찬미와 영광을! 사실 저도 당신의 신도입니다!!”
“신앙 간증은 필요 없으니 필요한 정보부터 꺼내놓으시오.”
한번 가라치다가 들킨 아이기스토스는 이제 뭔가를 필사적으로 기억해내려는 듯 머리를 움켜잡았다. 힘내라. 지금 네 머릿속에 아무것도 안 들었으면 그대로 그 머리가 날아갈 테니.
“어··· 어어··· 기억 나는 게, 없는데···.”
“역시 죽이지. 디오메데스? 제안 같은 거 없소?”
“있지. 뜨겁게 달군 철판 위에서 모두에게 사죄를 시키는···”
“아아아아!! 기억 나는 게 있소!!”
역시 죽이지 못하는 고통은 사람을 더 강하게 만드는 법. 아이기스토스의 기억력과 순발력은 지금 이 순간 최고조에 이르렀다.
나는 친히 귀를 그에게 가까이 가져다대었다.
“뭔지 말해보시오.”
“그, 그, 하늘에 뭔가 반짝이는 천 같은 게 보인다 했소! 그걸 뭐라 그랬더라? 아우루롸?”
“···.”
“···.”
“···파리스, 그냥 죽이는 게 맞지 않겠느냐?”
“한 가지 더 있소! 강이 끓어오르고 겨울에 밤이 오지 않는 땅이라 했소!!”
“아뇨. 이제는 유용하네요. 괜찮을 것 같습니다, 네스토르 님.”
고위도지역의 오로라. 화산지대의 온천. 개중에서도 극지방에서만 일어나는 극야 현상.
아이슬란드가 확실하다.
이 정도면 ‘얼음의 땅’이 어딜 가리키는지 더 찾아보지 않아도 될 듯싶었다.
나는 기지개를 켜며 몸을 일으켰다. 으아, 피곤한 하루였다.
“잘했네. 약속대로 목숨은 살려주지.”
그러자 아이기스토스의 얼굴이 밝아진다.
“아, 단 유배지는 내가 고르겠어.”
다시 아이기스토스의 얼굴이 어두워진다. 갑자기 주위에서 수근거리는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한다. 뭐야. 왜들 그래?
내가 의아해하고 있자니 오디세우스가 내 어깨를 툭 치며 답지 않게 진지한 목소리로 속닥거린다.
“···저기, 아무리 그래도 히오스 행은 좀 아닌 것 같은데. 너무 비인간적이지 않소?”
“죽이는 것보다야 낫지 않소?”
“죽이는 게 더 나을지도.”
“···.”
“워후, 그대의 의지가 그리 확고하다면야. 생각보다 내 벗은 훨씬 더 잔인한 사람이로군.”
“파리스, 실망이구나.”
“···역시 안탄드로스의 왕은 필요할 때면 누구보다도 잔혹해진다는 게 사실이었군.”
뭐야.
인신공양 얘기했던 인간들이 뭔 말을 하는 거야.
나는 그들의 헛소리를 물리치며 보다 더 중요한 주제에 천착한다..
아이슬란드.
북위 60도권에 위치한 고립된 섬나라. 토지는 척박하고 땅 자체가 고립되어 있어 10세기까지는 거의 무인도나 다름없었다.
뭣보다도···
아주 멀다.
심지어 지중해 바깥에 있기까지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