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ame a super-class hunter with 10 times the experience RAW novel - Chapter 143
143화 환상을 가르는 빛(3)
항마의 활에서 뿜어져 나오는 밝은 빛이 주변의 풍경을 바꾸었다.
드러나는 세계는 더 이상 붉은 하늘이 아니다.
그러나 내가 본래 있던 환상 밖의 세계도 아니었다.
산뜻한 바람이 스쳐가는 평원 위.
푸른 하늘 위로 새하얀 구름이 빠르게 흘러간다.
‘여기는······.’
한 그루의 푸르른 나무.
그 아래 서 있는 한 남자.
갈색의 탄탄한 상반신을 드러낸 그의 몸에는 기하학적인 문신이 새겨져 있었다.
그의 외관보다도 눈에 띄는 것은 손목에 찬 팔찌다.
검은색 팔찌 위에 음각으로 새겨진 문양.
내가 차고 있는 것과 완전히 동일한 생김새였다.
그의 손에도 내가 들고 있는 것과 동일한 활이 들려있었다.
‘항마의 활이 만들어내는 환상인가.’
환상의 마족의 힘을 빌어 무언가를 내게 전달하려 하고 있는 것이리라.
그리고 눈 앞의 남자.
‘이 자가 벽화 속의 인물.’
잊혀진 종족의 구원자.
이미 멸망한 세계의 유일했던 희망.
나와 그 남자를 제외한 배경의 시간이 빠르게 흐르고 있다.
거대한 나무를 중심으로 작은 판잣집이 생겨나고, 어느새 마을을 이룬다. 마을은 도시가 되고 도시는 국가로서 번영한다.
번영한 세계에 나타나기 시작하는 게이트.
그 게이트를 통해 이들도 기술의 발전을 이룬다. 국가는 끊임 없이 발전한다.
비행선이 하늘을 날고, 기관차가 질서 있게 놓인 철도를 달려나간다.
자원은 풍족하고, 기술은 어느때보다 발전해 있다.
스쳐지나가는 사람들의 얼굴에는 근심이 없다. 그들의 세계는 어느때보다 풍요롭고, 평화롭다.
그러나 그러한 평화는 한순간 뿐이었다.
불현듯 하늘이 붉어지기 시작했다.
멸망의 때가 찾아 온 것이다.
그 모든 것을 쓸쓸하게 지켜보던 남자가 입을 열었다.
“우리의 유산을 찾아낸 존재여. 일족의 마지막 숙원을 이뤄낼 것은 그대다. 이 환상을 빌어 그대에게 전하노라.”
그는 천천히 손가락을 들어 올렸다. 내가 든 활을 가리켰다. 화살이 비어 있다.
“항마의 화살은 통했는가?”
“통했다면······. 내가 이 환상을 볼 일도 없었겠지.”
애초에 항마의 술은 미완성.
내가 아니었다면 다룰 수도 없는 실패작이었다.
남자는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 그런가.”
“그런가가 아니잖냐.”
“외지인이 다루기엔 어려웠을지도 모르지. 확실히 항마의 술은 미완성이었다. 다만, 항마의 활과 화살만큼은 완벽했다. 거기에 문제는 없다네. 부족한 것이 있다면······.”
남자는 의미심장하게 말했다.
“그대의 능력이겠지. 일족 최후의 용사이자 선택 받은 존재였던 나에 비하면, 그대의 출신과 재능은 너무도 평범하다.”
“그런 뻔한 말이나 할 거면 빨리 사라져라. 바쁘니까.”
“하하, 오해하지 말게. 나는 진심으로 자네를 돕고 싶으니까. 아니, 증오스런 마족을 멸하고 싶다는 게 맞겠군.”
남자의 손에서 녹색의 빛이 뻗어져 나갔다. 나무의 가지처럼 솟아난 기운은 이윽고 내 몸에 닿았다.
“우연이 겹쳐 일어난 이 모든 것은 기적. 출신은 평범하나 그대가 보여준 업적은 기적을 아득히 뛰어넘었지. 그러니 이 순간, 그대에게 내 자질을 건네주겠네.”
『 레전더리 스킬 ‘영웅의 격 Lv.1’을 전수받습니다. 』
『 당신이 소유한 격의 수준이 상승합니다. 』
『 레전더리 스킬 ‘항마지체 Lv.1’를 전수받습니다. 』
『 항마 관련 기술의 효과가 50% 상승합니다. 』
두 개의 메시지가 떠오른다.
“나는 일족을 구하는데 실패했지만, 자네는 다를지도 모르겠지.”
마족의 출현과 함께 급속도로 무너지기 시작하는 문명.
세계는 붕괴하고, 붉은 하늘과 검은 구름이 세상을 뒤덮는다.
씁쓸한 표정으로 그것을 지켜보던 남자의 시선이 내가 차고 있는 팔찌로 향했다.
그는 희미한 미소와 함께 말했다.
“반드시 초월의 좌에 오르게나. 그때까지 지켜보고 있을테니.”
『 초월의 존재가 당신을 주시합니다. 』
화아악—!
그 메시지를 마지막으로 세계가 일변했다.
환상 속에 존재하던 세상은 사라지고 검은 안개가 나를 덮쳤다.
거센 바람이 휘몰아치며 시야를 막아섰다.
‘크윽.’
끈적이는 마기가 내 전신을 파고든다. 나를 다시금 환상 속으로 잡아 끌려하고 있다. 그러나 이제는 당하지 않는다.
꽈악.
나는 항마의 활을 움켜쥐었다.
새하얀 빛이 전신을 타고 흐르기 시작했다.
마기의 격류를 떨쳐내는 견고한 힘이 내게 깃든다.
『 스킬 ‘항마지체 Lv.1’를 발휘합니다. 』
『 스킬 ‘항마의 술 Lv.12’를 발휘합니다. 』
휘몰아치는 검은 안개의 폭풍 속에서 나는 가까스로 고개를 들어 올렸다.
“!”
환상의 마족이 만들어낸 안개.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칠흑.
어둠 속에 파묻혀 사라진 줄로만 알았던 항마의 화살이.
샤아아—!
다시금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가슴시리도록 아름다운 새하얀 빛줄기가 되어.
어둠을 가르며 나아가고 있었다.
* * *
마족의 수식어를 정하는 기준은 두 개다.
첫번째로 마족 특유의 제약에 따른 명명법.
불사의 마족이 가진 제약은 주변의 어떤 생물도 죽게 하지 않는다.
성장의 마족의 제약은 어떠한 생물도 성장 시키지 않는다.
선혈의 마족은 제약으로 모든 생물의 피를 붉게 만든다.
이런 식이다.
두번째로 마족이 가진 특기에 따라 수식어가 붙는 경우다.
전투의 마족은 강력한 전투 능력을 가지고 있어 그 능력이 마계에서도 인정 받는다.
발전의 마족은 마도지식이 풍부하고 다양한 마도병기를 제작하는데 특기가 있다.
환상의 마족은 두번째에 해당한다.
진짜보다 더욱 진짜 같은 환상을 퍼뜨리고 조종한다.
“크아악! 제발, 제발 살려주세요······!”
“어머니, 잡아요! 어머니!!!”
“죽어, 죽으라고!”
그가 만들어내는 환상의 안개를 걷어낼 수 있는 존재는 마계에도 몇 존재하지 않는다.
하물며 S급에 불과한 인간들이 그의 환상을 견뎌 낼 수 있을 리가 만무하다.
짧은 순간에 퍼져나간 검은 안개는 헌터들을 완전히 잠식했다.
“이 개새끼야······! 너는 절대로 용서 못해······!”
“미안해요. 정말 미안해······.”
“돌아 온 거야. 돌아왔어. 다시는 떠나지 않을 거야.”
증오와 분노.
슬픔과 후회.
환상은 대상의 트라우마를 자극해 더욱 깊숙히 끌고 들어간다.
환상임을 알아채도 빠져나올 방도는 없다.
환상의 마족이 만들어낸 환상은 적어도 해당 인물에게 있어선 진짜처럼 느껴지기에.
SSS급 헌터도 상상 속의 공포도 전부 진실이 되어 구현된다. 모두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일이니 무엇이 어려우랴.
“크윽, 어째서······. ”
“여기서 끝내야 해.”
“떨어져, 떨어져라!”
그러나 그 완벽한 환상이 지금 깨어졌다.
샤아아—!
새하얀 빛줄기가 어두운 안개를 순식간에 걷어냈다. 항마의 화살은 환상을 없애고, 그들을 현실로 불러 왔다.
그 뿐이 아니었다.
【 뭐냐, 대체 무엇이······?! 】
자신의 승리를 확신하던 환상의 마족.
그는 두 눈을 의심했다.
환상을 몰아내는 빛.
그런 일은 한 번도 경험한 적이 없었다.
아니,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기억하지 못했다는 것만큼은 확실하다.
잊혀진 종족이 만들어낸 비전의 화살.
콰아아앙—!
그것이 그의 가슴을 꿰뚫었다. 가슴 주변이 순식간에 석화되며 갈라진 틈에서 하얀 빛이 새어나왔다.
【 크아아아악! 】
불의의 일격을 당한 환상의 마족이 공중에서 몸부림쳤다. 날개짓을 하지도 못할 정도로 치명적인 상처였다.
쿠우웅!
환상의 마족은 땅 위로 추락했다.
더 이상 검은 안개는 없었다. 헌터들이 하나둘씩 고개를 들었다.
“커허억······. 뭐, 뭐가 어떻게 된거야······?”
“그래, 나는 공략을 하고 있었어. 수호 길드에서.”
그들의 반응은 제각각이었다.
실제로는 짧은 순간에 불과한 환상이었지만, 그들을 옭아맨 환상의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았다.
“내, 내가 왜 이런 곳에 있는거야? 돌려 보내줘!”
환상 속에서 많게는 한 달의 시간을 보낸 이도 있었다.
“빠져나온건가······. 어떻게?”
사최헌의 몸에서도 비오듯 땀이 쏟아지고 있었다. 그는 힘이 들어가지 않는 몸을 억지로 일으켰다.
주변의 다른 사람들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그 중에는 목숨을 잃은 사람도 있었다.
환상 속에서 죽은 자는 다시 돌아오지 못한다.
그러나 지금 해야 할 일은 명확했다.
이지한은 다시금 활을 들어 올렸다.
“사부님······.”
엘리스의 이마에도 땀이 한 방울 흘러내리고 있었다. 윤서현도 곧장 이지한의 근처로 다가왔다.
“······지한씨가 한거죠?”
“진짜 열 받네······.”
진세아도 자리에서 일어나 단검을 들어 올렸다.
그들 뿐이 아니었다.
“도저히 용서 못해요.”
“빌어먹을 마족 자식······!”
“······이번에도 도움을 받았네요.”
신아람, 천성호, 윤지은, 신태양······.
최후의 10인이었던 모두가 무기를 들고 일어났다.
그들은 환상 속에서도 살아남았다.
살아남았다 뿐이겠는가.
그들의 눈에 서린 의지는 한층 더 강해져 있었다. 아무런 희망이 남아 있지 않던 멸망한 세계에서도 살아남았던 이들이다.
그 찰나의 환상 속에서 그들은 더욱 견고해져 있었다.
【 대적자, 이 빌어먹을 대적자! 기어코 네 놈이 나를 방해하는구나! 이 모든 계획이 네 놈의 짓이었겠다! 】
격이 섞인 노성을 뱉어내는 환상의 마족.
자리에 있는 헌터들의 정신을 뒤흔들기에 충분한 위력이었다.
【 감히······. 】
환상의 마족의 보랏빛 피부에선 검은 피가 울컥울컥 솟아나고 있었다. 마기로도 회복되지 않는 치명상이었다.
콰득!
환상의 마족이 가슴팍에 박힌 화살을 뽑아냈다.
【 이딴 잔재주로 나를 능멸하려 들어? 어림도 없다! 】
분노와 함께 손에 쥔 항마의 화살을 부러뜨리려는 찰나.
물컹!
손에 있던 화살이 은광택을 띄는 액체처럼 변해 버렸다. 그 정체는 다름 아닌 슬라임 오르티마.
【 뭣?! 】
환상의 마족이 당황하는 틈, 오르티마는 자그마한 드래곤으로 변해 그의 손을 물었다.
동시에 입에서 뿜어내는 강력한 브레스가 마족의 손을 태웠다.
【 크아아아! 】
마족의 괴성이 협곡 전체에 울려퍼졌다. 그가 고통에 몸부림치는 동안 오르티마는 재빨리 이지한의 손으로 돌아왔다.
『 형상기억마수 ‘오르티마’가 항마의 화살로 변합니다. 』
슬라임은 또다시 화살로 변했다. 단 한 번을 위해 존재했던 화살이, 오르티마와 함께라면 몇 번이고도 재사용할 수 있게 변한 것이다.
시위에 매겨진 항마의 화살이 새하얀 광채를 발했다.
환상의 마족은 포기하지 않았다.
【 반드시 후회하게 해주마······. 네 놈을 영원한 환상 속에서 고통 받게 해주마······. 】
그의 주변으로 퍼져나가는 검은 안개.
이미 치명상을 입었기에 이전과 같은 힘은 낼 수 없었으나.
주변에 환상을 구현하기엔 충분했다.
순식간에 마족 병사들이 협곡을 빼곡히 뒤덮었다. 그 수는 눈으로 헤아리기 힘들 정도였다.
200명 남짓한 헌터들을 완전히 포위할 정도였으니까.
그러나 이지한은 무표정했다.
조용히 활을 들어 올리고 조준할 뿐이었다.
파직, 파지직!
활에 매긴 화살 위로 압축된 마력이 모여들고 있다.
“스승님, 길을 만들겠습니다!”
“다 비켜!”
콰아앙! 콰앙!
최후의 10인이 이지한의 화살이 나아갈 길을 만들어냈다. 말하지 않아도 그들은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다.
검과 화살이 어지러히 뒤섞이며 환상이 빚어낸 병사들을 단숨에 몰아낸다. 그들은 연기가 되어 허무하게 흩어졌다.
【 어리석기는······! 다시 맞을 성 싶으냐! 】
환상의 마족은 몸에서 끊임없이 마기를 쏟아냈다. 오래 전부터 인간의 세계에 섞여들어 힘을 비축한 상위 마족.
그가 가진 마력양은 차원이 달랐다.
그러나 상관없었다.
“그래? 근데 이미 한 번 맞았잖아. 엘리스.”
“네, 사부님.”
화살에 모인 힘은 충분하다.
이지한의 옆으로 성배를 든 엘리스가 붙었다.
카드득······!
빛의 화살 위로 엘리스가 손을 가져갔다. 항마력이 압축된 공간 위로 그녀의 새하얀 손이 찢겨지고 피가 새어나온다.
“으윽.”
그럼에도 엘리스는 내민 손을 거두지 않았다.
이윽고 그녀의 손이 화살에 닿았을 때.
『 동료 엘리스가 스킬 ‘시간조작 Lv.8’을 발휘합니다. 』
콰아아아—!
화살은 시간을 역행하여 왔던 길을 되돌아간다.
새하얀 빛줄기가 뻥 뚫린 길로 쏘아지듯 나아갔다.
그 행선지는 환상의 마족.
“피할 수 있으면 피해봐라.”
이지한은 그리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