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ame The Leader of a Girl Group Destined To Fail RAW novel - Chapter (110)
욕설이 나올 뻔한 것을 간신히 참았다.
“어느 윗선이요?”
나는 물어보면서도 바보 같은 질문이었다고 후회했다.
당연히 한 사람밖에 없지 않은가.
“김 이사님이…. 데뷔 앨범 활동 중에 개인 활동을 하는 건 좋지 않다고 말씀하시더라. 그래도 솔로곡은 간신히 허락을 받았는데, 선공개는 안 된대.”
“그런 반응은 이미 예상해서, 김 이사님이 아니라 홍 사장님 라인으로 직접 결재 올려 달라고 부탁드렸던 건데요.”
나도 김 이사의 방해를 예상하지 못한 게 아니었던지라, 나름 그 방해물을 피해 가려 했다.
홍 사장이라면 귀찮아서 대충 읽고 허가를 내줄 것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말이 새어 나가다니.
누가 감히 발설을 했지?
“그리고… 그게 전부가 아냐….”
매니저 언니는 상당히 불안해 보이는 얼굴로 나를 보았다.
“그… 청아.”
“네.”
“우리 쪽으로 예능 프로그램 고정 섭외가 하나 들어왔는데….”
“누구한테요?”
“전원 모두. 다섯 명이 함께 나가야 해.”
느낌이 좋지 않은데.
이 시기에 다섯 명 모두 고정?
그룹 전체를 섭외하는 건 분명히-
“걸그룹… 서바이벌 프로그램이야.”
“설마 [탑 오브 아이돌>?”
“어떻게 알았어?”
장난하나.
내가 그걸 모를 리가 없었다.
전생에서 얼마나 논란이 되었던 프로그램인데.
“절대 안 나가요.”
“오 PD님이 말씀해 주신 거야?”
“절대 안 나간다고 말씀드려 주세요.”
“아니, 왜?”
매니저는 처음으로 화가 난 표정이었다.
“언니, 그거 MC, [제트에이> 신유화죠?”
“어, 어떻게 알았어…? 그거 확정된 지도 얼마 안 됐는데…!”
역시나.
시작되고 있었던 것이다.
전생에서 스틸블루를 해체시킨, 두 번째 이유가.
싸늘한 분노가 심장을 쥐고 흔들었다.
속이 울렁거리고, 입안에선 떨떠름한 피맛이 느껴졌다.
자각하고 보니, 입안 살을 깨물어서 나는 피였다.
“그 인간 소문 안 좋은 거 제가 모를 줄 아세요? 저 같은 신인도 알 정도로, 얼마나 지독한 인간인지 아시잖아요. 그리고 그 자식이-“
그 자식이, 신인 여자 아이돌을 얼마나 건드려 대는지 뻔히 알면서.
그딴 프로그램에 우리를 밀어 넣으려 해?
“그리고 이미 다른 서바이벌에 제가 나가기로 되어 있잖아요. 걸그룹 메인 보컬들 모아다가 한다면서요. [디어 마이 디바>. 그거만 나가도 충분한데, 왜 그것까지 나가라고 하세요?”
“그게….”
매니저는 땀을 뻘뻘 흘리기 시작했다.
“그거… 김 이사님이 취소하라고 하셨어….”
“!”
하.
절로 탄식이 나왔다. 아니면, 끓어오르는 감정을 참지 못해 토해 낸 거던가.
방해를 할 거라고 예상하긴 했지만, 이렇게까지 한다고?
“이 프로그램 들어가야 한다고…. [디어 마이 디바>는 취소하라고 하셨어. 미안해, 얘들아. 나도 정말로 막아 보고 싶었는데, 쉽지가 않더라.”
내가 [디어 마이 디바>에 기대를 걸고 있었다는 건, 멤버들 모두 아는 사실이었다.
[디어 마이 디바>에 기대를 건 이유는, 내 인기를 위해서가 아니었다.스틸블루가 지상파를 뚫을 수 있는 기회였는데, 이게 이렇게 날아가다니.
고작 엠텐에서 하는, 쓰레기 MC가 진행하는 서바이벌 따위보단 훨씬 나은 기회였단 말이다.
“언니가 미안해하실 건 아니죠.”
멤버들이 모두 나의 눈치를 봤지만, 나는 사실 그렇게까지 마음이 아프진 않았다.
“이솔 프로듀서님은 이 사실을 아시나요?”
“내가 아까 전에 전화로 말씀드렸어.”
“뭐라고 하시던가요?”
“[탑 오브 아이돌>… 이번에 홍 사장님이 투자 직접 지시하신 거라서. 설령 [디어 마이 디바>에 나가더라도, 나가야 한대.”
“!”
“오히려, [디어 마이 디바>에 나가고 싶으면… 차라리 [탑 오브 아이돌>에 나갈 테니까 그거라도 나가게 해 달라고 설득해 보겠다 했어. 그게… 지금으로선 최선이라더라.”
폐가 부풀어 올라 온 숨통이 틀어막히는 기분이었다.
누군가가 물가에 나를 밀어 넣어도 이런 기분은 아니었을 것 같다.
“이번 거는 회사의 윗분들이 모두 오케이를 한 건이라…. 회사가 직접 제작에 참여한 프로그램은… 거절하기가 쉽지 않아, 청아. 너는 아직 신인이라 잘 모르겠지만… 세상이 그래.”
세상이 그러긴 개뿔이.
컬러즈가 그러는 거겠죠.
백녹하의 소속사도 세상에 둘째가라면 서러울 작은 기업이었지만.
해 주는 것도 쥐뿔도 없었지만.
이렇게 치사하고 더럽게 나오지는 않았다.
대형이면 다인가.
“그러면.”
나는 매니저를 똑바로 보았다.
가만 보니까, 이 사람도 그다지… 믿음직하진 않았다,
계속해서 회사의 의견을 받아들이길 내게 종용하는 것까진, 그래. 그렇다 치자.
그런데 은근히 내가 아무것도 모르는 거라고 세뇌하는 건 쎄했다.
그래도 이솔을 오래 봐 왔다고 해서 괜찮은 사람인가 했는데.
다르게 생각하면 김 이사를 오래 봐 왔다는 뜻도 되지 않겠는가.
어쩌면, 쥐새끼는-
“김 이사님께 말씀 전해 주세요.”
생각보다 훨씬 더 가까이 있었던 걸지도 모르지.
“어?”
“솔로곡 선공개해 주면, 나간다고.”
그렇다면 그 쥐새끼를 어떻게 이용하는 게 좋을까?
***
“수고하셨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오늘 자로, 2주 차 음방이 마무리되었다.
다섯 개의 음악 방송 중 네 개의 음악 방송에서 1위를 했다.
멤버들은 매일매일 행복해했다.
다들 주변 시선 때문에 대놓고 티를 내진 않지만, 숙소에만 오면 웃음소리가 끊이질 않았다.
“후배님!”
아.
별로 안 반가운 목소리….
“네, 한재이 선배님.”
번애쉬의 한재이였다.
맨날 달고 다니는 단하는 어디다 두고 혼자 왔지?
“1위 축하해요!”
“…이번 활동 마지막 1위기도 하죠.”
“에이~ 다음 주에 후배님이 1위를 할 수도 있죠~”
“마음에도 없는 소리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한재이는 너무 유들유들해서 별로였다.
눈깔에 야망이 그득한데 어딜 순진한 척이야.
이런 놈이 더 위험하다.
처음에는 그저 평범한, 사회성 좋은 멤버 정도로 생각했다.
원래 각 그룹마다 그런 멤버들이 하나씩은 있다.
사회성이 좋아서 어딜 가든 두루두루 친한.
전생에서도 한재이는 딱 그 정도의 느낌이었다.
하지만 생각해 보니, 뭔가 그 이상의 것이 있겠구나 싶었다.
번애쉬의 프런트 맨은 단하였다.
그러나 번애쉬에서 가장 스케줄이 많은 멤버는 한재이였다.
언제나.
“하하하. 우리 후배님은 메뉴컬 때도 생각한 거지만 정말 똑 부러져서 좋아요.”
“…용건이 있으세요, 선배님?”
여긴 방송국이다.
난 남자 아이돌이라면 아주 학을 떼는 사람이고.
“네, 있어요.”
“말씀하세요, 그럼.”
“그, 백영 후배님이랑 나랑 챌린지 찍어도 될까요? 나는 ‘파란’ 춤 같이 추고, 백영 후배님은 ‘Bury Me’ 같이 추고! 톡틱에 올리게요.”
톡틱은, 짧은 영상(숏폼)을 공유하는 플랫폼이다.
아이돌들이라면 모두 이 톡틱을 적극 활용하는 게 일종의 유행이 되었다.
30초가량, 다른 아이돌의 춤을 커버해서 같이 춰 주는 것을 챌린지라고 한다.
짧게 커버하는 거라 아이돌도 부담이 적었고, 팬들도 아이돌의 다양한 모습을 볼 수 있어 좋아했다.
근데 그건 그거고.
“죄송합니다. 안 됩니다. 저희 그룹 정책상 당분간은 여자 아이돌 챌린지만 하고 싶어서요.”
“아, 이해해요. 원래 저도 여돌이랑은 굳이 안 하는걸요. 근데.”
“?”
한재이의 눈이 가늘게 접혔다.
“우리는 같은 소속사고, 같은 시기에 활동하고 있는데 안 하면. 무슨 얘기가 돌지 알 텐데요, 후배님도?”
“…불화설 말씀하시는 거군요.”
“네. 후배님도 굳이 선배와의 불화설이라는 구설수를 하나 더 달고 싶진 않잖아요?”
그건 그렇다.
저기 팬덤이랑 더 얽히는 것도 싫은데.
“그러면.”
“응?”
“백영 언니 말고, 금이를 데려가십시오.”
“어어?! 금 후배님도 대, 대단한 친구긴 하지만… 댄스멤은 아니지 않아요…?”
한재이는 당황한 눈치였다.
“아니죠.”
금이의 댄스 능력치는 현재 100점 만점에 72점.
아이돌 중에서 딱히 눈에 띄지 않을 정도로 한다는 뜻이었다.
엄청 잘하는 것도 아니고, 못하는 것도 아닌.
중상위.
그나마도 원래 70점이었던 걸 서백영이 죽어라 굴려서 72점으로라도 올려놓은 거다.
“걔는 누구도 열애설의 ‘열’ 자도 생각 안 할 거라서 괜찮아요.”
“어어어어?!”
“그리고 설마 아픈 애를 욕하겠어요? 부상 투혼 해시태그라도 달고 나가게 하겠습니다. ‘선배님’이 금이에게 아주 ‘간곡히’ 부탁해서 ‘부상’에도 불구하고 어쩔 수 없이 열정 있게 나갔다고 하죠. 그러면 그림이 아주 딱 적절할 것 같네요.”
“…후배님 원래 이렇게 무서운 사람이었나?”
미안하다, 금아.
그룹을 살리기 위해선 어쩔 수 없다.
“아니면 안 합니다. 사실 불화설 터지면, 선배님이 더 손해잖아요. 저희가 아니라.”
“…그건 왜 그렇게 생각하실까요?”
한재이의 미소가 묘하게 냉기를 머금었다.
“왜냐하면, 상대를 짓밟으러 나온 쪽은, 우리가 아니라 선배님 쪽이니까.”
“….”
한재이는 그제야, ‘너도 알고 있었구나?’ 하는 눈빛이었다.
자꾸 신인 털어 드시려고 하면 곤란합니다, 선배 놈아.
이럴 때는 그냥 내가 리더를 한 것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백영이 리더를 해 이런 제안을 받았으면, 해맑게 그냥 자기가 하겠다 했겠지.
“후배님 되게 재미있는 사람이네요?”
한재이가 진짜 ‘나쁜 놈’인 건 아니었다.
그냥 연예계의 흔한, 머리 굴릴 줄 아는 놈일 뿐인 거지.
2~3년 차에 이런 놈이 나오는 게 좀 신기하긴 하다만.
“절박한 사람이라 치죠.”
최소한 내가 너만큼은 절박하다.
너도 절박하니까 위험을 무릅쓰고 나한테 온 거겠지.
“…우리 단하. 사회성이 없어요. 알죠?”
“모르는 게 더 이상할 것 같은데요….”
“그래서 항상 내가 걔 대신 사람들 사이에서 구르거든? 근데 그게 꼭 좋은 건 아닌 것 같아. 걔는 그냥, 너무 아무것도 모르는 채 음악만 하게 돼서.”
당신도 극한 직업이었구만.
이쪽도 극한 직업이라 이해가 안 되는 건 아니었다.
“그러니까 당부 좀 할게요. 걔랑 엮이지 마세요. 걔가 연애를 할 거라곤 생각 안 해. 근데. 뭐라도 한번 잘못 엮이면 좋을 게 없잖아. 단하는 그나마 후배님이 제일 편해서, 방송에서 무의식적으로 후배님한테는 편하게 굴 수도 있거든. 다른 멤버였으면 그래도 문제가 없었을 거예요. 같은 소속사인데 편할 수도 있지. 근데 단하는… 아니거든요.”
얼마나 사회성이 없으면 같은 소속사 후배랑 조금 편한 사이라고 그런 말이 나오냐.
이쯤 되면 애를 좀 잘못 키우고 있는 것 같은데.
“그럼 그 선배님을 단속하셔야지, 저를 단속하실 일이 아닌 것 같은데요.”
“사석에서도 걔한테 불편하게 대해 달란 거지. 걔가 방심하지 않게.”
“저는 한 번도 편하게 대한 적이 없는데요….”
지금 너도 불편한데요….
나는 최대한 불편한 표정을 짓기 위해 노력했다.
“아무튼 부탁 좀 할게요. 대신 내가 배도라지즙 보내 줄게요. 그거 좋아한다면서요?”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이놈의 그룹이 단체로 날 배도라지즙으로 조련하려 드네.
…한 번만 봐준다.
“숙소로 보내세요.”
“오키오키.”
“그리고 저야말로 진짜, 정말, 진심으로 엮이고 싶지 않으니까 제발 각자 갈 길 좀 가요. 제발.”
그렇게 말하고 돌아서려는 순간.
“후배님, 서바이벌 나가지? 우리 사장님이 투자한 그거. [탑 오브 아이돌>이었나?”
벌써 온 동네에 소문이 났나 보군.
“…네.”
“거기 또라이 하나 있는 건 알아요?”
“압니다.”
“어? 신유화도 알아? 우와. 걔도 진짜 갈 데까지 갔나 봐요? 신인이 알 정도면? 걔 되게 치밀한 새끼인데. 아니었나?”
그건 아니다.
치밀한 새끼 맞다.
다만 내가 아는 건, 윤청이 아는 게 아니라 백녹하가 아는 거거든.
“아무튼, 그건 왜 물어보시죠?”
“그 새끼 피하라고.”
“….”
“후배님 성격 보니까, 맞서 싸울 사람 같아서 그래. 그러지 말고 피해요. 연예계는 원래 그래. 맞서 싸울 생각 해서 좋을 게 없어. 그냥 피해 가요.”
기분이 나쁘긴 하지만 틀린 말은 아니다.
똥이 무서워서 피하나.
더러워서 피하지.
“그럴 생각입니다.”
단.
내가 아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