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ame The Leader of a Girl Group Destined To Fail RAW novel - Chapter (114)
“…아.”
분노와 수치심으로 얼굴이 붉어진 루미가, 1분이라는 침묵 후에 뱉어 낸 건 저게 다였다.
아마도 자기보다 어리고, 또 후배인 애가 ‘누구세요!?’라고 몇 번씩이나 물어봤으니 자존심이 상해도 엄청 상했겠지.
“너 걔구나? 그, 6위로 추가 합격한 애. 그나마 그 6위도 동정표 받아서 올라간 거라고 했지?”
“…!”
이건 위험하다.
나는 연주홍과 루미 사이를 가로막으려 했다.
그러나 그 순간.
“네, 맞는데요?”
연주홍은 눈을 더욱더 휘며 웃었다.
주홍아 너 무서워….
“…진짜 선배한테 버르장머리가 없네? 나 니 선배야. 음방 1위 찍으면 연차가 10년씩 오르기라도 하는 줄 알아? 니네는 데뷔한 지 몇 달도 안 됐지만 우리는 벌써 2년 차-”
루미는 나름대로 악을 쓰며 연주홍을 찍어 누르려 했다.
“아하! 선배님이셨구나!”
그러나 루미가 모르는 게 있었다.
연주홍은 자기를 대놓고 찍어 누르려 하는 사람한테는-
“우와아. 죄송해요! 몰랐어요. 무려 2년 차 선배님이셨구나~ 아니, 뭐… 네에. 선배님!”
절대 눌리지 않았다.
연주홍을 누르는 사람은 오로지 연주홍 자신뿐이었다.
“2년 차면 누구시지? 아, 그 하이하이호 선배님이시구나! 아니, 실물이 훠얼씬 예쁘셔서 제가 못 알아봤어요. 선배님 진짜 너무 아름다우세요! 선배님을 만나서 정말 너무너무 영광이에요!”
연주홍은 루미의 얼굴이 붉어지든 말든 꿋꿋이 자신의 말만 했다.
보통 고단수가 아니었다.
주변에서 아무 오해도 못 하게 칭찬으로 후딱 커버치는 거 봐.
물론 장본인인 루미야… 저게 진심이 아니라는 게 느껴지겠지.
“제가 너무 긴장해서 선배님을 못 알아봤지 뭐예요. 아니, 이렇게 실물도 너무 빛이 나시니까.”
연주홍은 누구보다 넉살 좋고 태연해 보였다.
하지만 나는 알 수 있었다.
지금의 연주홍은 완전히 돌아 버린 폭주 기관차라는 것을.
“그, 선배님! 저희가 샌드위치를 먹어야 해서요! 저 어제 저녁부터 굶은 바람에! 이따 뵐게요!”
연주홍은 그렇게 자기 마음대로 대화를 끝내 버리고 나를 질질 끌고 나왔다.
세상에서 제일 폭풍 같았던 대화였다.
물론 이쪽이 일방적으로 폭풍을 날려 때려 부순 수준이었지만….
“연주홍.”
“예의 없었다고 혼내지 마세요. 저 지금 개빡쳐서 퍼블에다가 루미인지 루지인지 하는 언니 뒷담 까기 일보 직전임.”
“…으응….”
“저 버르장머리 없는 애 아닌 거 알잖아요.”
“알지.”
“저 선배가 저한테 그런 거였으면 저도 예의 바르게 굴었을 거예요.”
“알지 알지.”
“언니는 사람한테 나쁜 말 못 하는 거 아니까… 그러니까 그냥 제가 대신한 거예요. 뭐라 하지 마요.”
“안 해.”
“…진짜요?”
“응, 안 해.”
좋은 의도에서 한 거니까.
뒷일이 걱정되긴 하지만, 그런 건 괜찮다.
앞일은 네가 생각해 주었으니까 뒷일은 내가 생각하면 되지.
그래도.
우리 뱁새 공격력 다시 돌아왔네.
웃으면 안 되는 상황인데 왜 이렇게 뿌듯한지 모르겠다.
***
방송국의 한 회의실.
샌드위치를 두 개씩 먹고 나온 우리는, [탑 오브 아이돌>의 작가에게 프로그램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었다.
“저희가 바라는 건, 아주 약간의 자극적인. 뭔지 아시죠? 피 튀기는 경쟁. 그런 거요. 지금 우리 스틸블루는~ 경쟁 구도 만들기 딱 좋은 패기 있는 신인이잖아. 특히나 려유 양도 있고, 하이하이호도 있고.”
“…네?”
‘패기 있는’은 무슨.
딱 두드려 패기 좋은 신인 되겠수다.
“아이. 많은 걸 바라는 건 아니고~ 저희가 우리 스틸블루 이미지를 안 좋게 만들겠어요? 안심해요, 안심. 저희는 믿어도 돼요. 편집 예쁘게 잘 다듬어 줄게.”
그렇게 말하시는 분치고는 눈에 탐욕이 너무 그득하십니다만….
“그냥, 대본 잘 보시고 저희가 시키는 대로 옆 사람들이랑 몇 마디 논쟁만 조금 하면 돼요. 오케이? 오케이~ 바로 들어가실게요.”
그렇게 뭐라 거절할 틈새도 없이 스튜디오로 밀려 들어왔다.
솔직히 말해서 강 작가가 간절히 그리워지는 순간이었다.
시청률을 뽑아야 하니까 자극적인 걸 원하는 건 알겠지만.
이렇게 너무 어린 애들 데리고는 그러지 맙시다.
나는 주변에 사람이 없다는 확신이 들자마자 멤버들에게 조용히 말을 해 두었다.
“대본대로 말하지 마. 저쪽이 시키는 대로 할 필요 없어.”
“엥. 그래도 돼요?”
“응.”
“저희 혼나는 거 아니에요? 엄청 혼날 것 같은데….”
멤버들은 내 말에 불안함이 커 보였다.
신인이 어디 감히 하늘같은 방송국의 말을 거역하겠냐는 표정이었다.
“혼나겠지.”
“그러면-”
“그래 봤자 혼나는 게 전부야. 혼 좀 나는 건 상관없어. 우리 이미지 안 좋아지는 것보다는 그냥 우물쭈물 소심해서 방송 잘 못하는 아이돌인 게 훨씬 나아.”
“!”
노잼 이미지는 나쁠 것 없다.
오히려 과하게 뛰어난 예능감은 추후 아이돌 활동에 방해가 될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김금의 높은 예능감 수치에도 불구하고 모든 예능 출연에 제한을 둔 것이었다.
아이돌이 예능에 나가는 이유는 인지도를 쌓기 위해서다.
하지만 우리는 이미 메뉴컬로 인해서 신인 아이돌치고 인지도가 높은 편.
굳이 이미지를 소모해 가면서까지 예능 출연에 목숨 걸 필요는 없다.
물론 김금의 불만은 조금 있어 보이지만.
“그냥 멀티 안 돼서 못 했다고 해. 잘 몰라서 못 했다고. 신인이라 이런 거 잘 모른다고 딱 잡아떼면 지들도 어쩔 수 없어. 애초에 신인한테 무리한 요구를 한 건 저쪽이니까.”
익숙했다.
신인이라는 이유로 사람을 마음대로 조종할 수 있다고 착각하는 시선들이.
신인이니까 마음대로 조종해도 된다는 그 악의가.
그러나 악의를 거절하는 것을 겁낼 필요는 없다.
악의를 받아 준다고 해서 이익으로 돌아오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그냥 또 다른 악의로 돌아올 뿐이지.
“기껏해야 다시 방송에 안 부르는 게 전부야. 어차피 이건 컬러즈에서도 투자한 방송이라서 우리한테 대놓고 뭐라 하지도 못할 거고.”
컬러즈 투자 방송이라서 출연을 피할 수 없다면.
역으로 컬러즈 투자인 점을 이용해야 한다.
죽어도 하기 싫다는 서바이벌 방송에 나를 밀어 넣었으면 이 정도는 각오해야지, 김모경.
“그럼 안 되는 거 아니에요?! 저희 노잼이라서 또 안 불러 주시면….”
“주홍아.”
나는 정말 오랜만에 확신을 갖고 웃을 수 있었다.
“일단 우리가 뜨잖아?”
“네에…?”
“그럼 부르기 싫어도 불러.”
“!”
“우리가 너무너무, 진짜 너무 싫어서 부르기 싫어도, 악착같이 불러.”
연예계의 제일 최악인 점이지.
“여긴 인성과 실력으로 판단받는 곳이 아니고,”
어떤 의미에선 공정한 점이고.
“인기로만 판단받는 곳이야. 그거 절대 잊지 마.”
또 어떤 의미에선 가장 나를 환멸 나게 만드는 점이었다.
***
“아이돌이라면 마땅히 정상을 노려라. [탑 오브 아이돌>. 저는 MC, 제트에이의 신유화입니다.”
본격적으로 녹화가 시작되었다.
제작진은 우리의 자리를 김려유와 하이하이호 사이에 배치해 두었다.
누가 봐도 싸움 나기를 기다리는 게 느껴지는군.
나는 고개를 들어 오로지 MC만 보았다.
하이하이호나 김려유와 눈이라도 마주치는 순간, 그 장면을 따 가서 예고편으로 쓸 게 분명했으니까.
특히나 김려유와 하이하이호는 모두 ‘윤청’과 악연인 이들이다.
지금 가장 조심해야 할 사람은 멤버들이 아니라, 나였다.
빌미를 주어선 안 된다.
그나저나 신유화의 낯짝을 보려니까 그건 그거대로 기분이 안 좋네.
백녹하 시절에도 신유화는 유명했다.
처음엔 독보적인 1군으로 활약했으나, 온갖 사건 사고를 몰고 다니다가 결국 마약 사건으로 연예계에서 사라진 사람.
나한테 신유화는 딱 그 정도 이미지였다.
너무 조무래기라 오히려 더 화가 날 지경이었다.
저런 조무래기가 여러 사람 인생 망쳤다는 게.
“…해서, 경연은 총 세 번 이루어질 예정입니다. 두 번의 예선 경연과, 파이널 경연.”
[탑 오브 아이돌>의 규칙은 다음과 같았다.1. 경연은 총 세 번이다.
2. 각 팀은 경연 주제에 맞는 무대를 준비한다.
3. 각 예선 경연마다 투표를 진행한다. (사전 대중 투표 50%, 라이벌 투표 50%)
4. 각 예선 경연마다 탈락 팀이 발생한다.
5. 파이널 경연은 생방송으로 진행한다. (문자 투표 100%)
“라이벌 투표 방식이 어떤 것인지 궁금하신 분들이 계실 겁니다.”
신유화는 예의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대중들의 투표는, ‘사전 투표’이기 때문에 무대를 보지 않고 오로지 팀에 대한 기대감으로만 뽑는 투표입니다.”
한마디로 무대 퀄리티와 상관없는, 대중들의 인기투표라는 말이다.
물론 두 번째 경연에서는 얘기가 달라질 수 있다.
첫 번째 경연의 무대가 실망스러웠거나 만족스러웠다면 투표 결과에 변동이 생길 수도 있으니까.
하지만 첫 번째 경연의 사전 투표는 오로지 인기로만 결정되었다.
잔인한 시스템이고, 논란을 유도하는 시스템이었다.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아.
“하지만 라이벌 투표는 다릅니다. 그 무대를 본! 여러분의 라이벌들이 직접 투표합니다. 각 팀마다 자신의 팀을 제외한, 가장 잘한 한 팀에 투표할 수 있습니다. 한 팀당 투표권은 하나입니다. 그러니까 가장 많이 투표를 받는다면 최대 다섯 표까지 가능하겠죠.”
그리고 이건….
우리가 너무 불리한데.
김려유와 하이하이호라는 적을 이미 가지고 시작하는 우리로선, 불리한 시스템이었다.
팀들이 직접 투표하는 방식이라.
생각이 많아졌다.
“그렇게 해서 점수를 합산하여, 1위부터 6위까지의 점수가 발표됩니다. 그리고 가장 낮은 순위의 팀이 매 경연마다 탈락합니다.”
그 말은 파이널 경연에 나가는 팀이 결국 네 팀이라는 뜻이다.
…이거 정말로 쉽지 않겠다.
사실, 포인트고 뭐고 첫 번째 경연에서 장렬하게 탈락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하지만 그랬다간…
“언니, 우리 꼭 1등 해요!”
“1등1등1등1등1등1등1등….”
“다들 열심히 하자.”
“…열심히는 당연하고, 잘해 내야죠.”
지금 눈을 활활 불태우는 이 네 사람을 실망시키겠지.
…그래.
데뷔가 걸린 그 지독한 서바이벌에서도 살아남은 우리다.
“해 보자.”
그래도 위안이 되는 것은 이제 이 말을 소리 내어 꺼낼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럼 이제 첫 번째 경연의 주제를 발표하겠습니다.”
이젠 들어 줄 사람이 있으니까.
“‘상대 팀의 대표곡을 뺏어라’”
해 보자.
같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