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ame The Leader of a Girl Group Destined To Fail RAW novel - Chapter (113)
그랬다.
“언니. 제 눈이 잘못된 거 아니죠?”
“아님.”
스스로 눈을 찌르려는 연주홍의 손을 김금이 조용히 붙잡았다
그도 그럴 것이.
바로 스무 걸음 떨어진 곳에, 김려유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것도 스튜디오 한복판.
패널 의자에.
그 말은, 김려유가 [탑 오브 아이돌>의 출연자라는 뜻이었다.
“아니. 저 언니가 여기 왜 있어요? 데뷔도 못 했잖아요?”
프로그램 사전 미팅 때도 전혀 언질이 없었기 때문에, 출연자들 모두가 놀란 눈치였다.
“대애단하다. 대애단해. 뭔. 진짜 모기 새끼도 아니고 끊임없이 톡 튀어나오네.”
“모기 모욕하지 마.”
동생 라인 세 명은 김려유의 등장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러나 언니 라인 두 명은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었기에 별말이 없었다.
***
“청아.”
“네.”
“내일 촬영하는 서바이벌. 거기에 려유도 나올 거래.”
어제 새벽.
모두가 잠든 시간에 서백영이 맞은편 침대에 앉아 내게 말했다.
“…아아.”
“알고 있었어?”
“대충 눈치는 까고 있었어요.”
“진짜?”
“해명문인지 사과문인지 모를 그 공지, 타이밍이 너무 절묘하잖아요. 분명 어디다 꽂아 넣겠구나 싶었죠. 때마침 [탑 오브 아이돌>은 컬러즈에서도 투자한 거니까 김 이사님이 꽂아 넣기 딱 좋겠다 싶었고.”
솜 뭉탱이가 알려 준 건 아니었다.
그놈은 요즘 뭘 하고 다니는지 아예 소식도 없었다.
쓸데없이 보내 오던 알림도 뚝 끊긴 채였다
그러나 이 정도는 솜 뭉탱이의 알람이 없이도 짐작할 수 있었다.
사회악인 인간을 종류별로 하도 많이 만나서 그런가, 내게도 학습 능력이 생겼다.
행동 양식이 대충 눈에 보인다고 해야 하나.
“그럼 어떡하지?”
“걔를 뺄 방법은 없어요. 그냥 실력으로 정면 승부하는 수밖에. 이참에 걔는 절대로 우릴 이길 수도, 우리와 섞일 수도 없다는 것을 확실하게 하고 가면 돼요.”
서백영은 나를 걱정스러운 눈으로 보았다.
“청이 너는 괜찮아?”
“네?”
“가장 큰 피해자는 너였잖아. 나는 다른 것보다도 네 마음이 걱정돼.”
솔직히 말해서 괜찮다.
별생각도 없고.
그냥 자꾸 눈앞에서 날파리가 날아다니네, 싶은 정도의 감정이었다.
하지만 여기서 아무렇지 않은 티를 내면 그건 그거대로 이상해 보이겠지.
“저는 괜찮아요. 차라리 잘됐다 싶기도 해요. 이참에 못다 한 매듭을 짓고 넘어갈 수 있을 것 같아서.”
“청아. 너는 그 매듭을 지을 의무가 없어. 그냥 편하게 해도-”
“주홍이 때문이에요.”
“!”
서백영의 눈이 처음에는 놀람으로 커졌다가, 근심으로 작아졌다가, 또 슬픔으로 가라앉았다.
“주홍이가 지금까지도 계속해서 사람들의 눈치를 보는 건, 본인이 6위인데 운이 좋게 들어왔다는 생각 때문이에요. 정정당당히 들어온 게 아니라는 그 생각이 걔를 너무 붙잡아 두고 있어요. 가끔씩은 멤버들의 눈치도 보잖아요.”
“자존감이 너무 낮아진 것 같긴 했어….”
원래 그런 애가 아니었는데.
처음 메뉴컬을 시작할 때만 해도 어땠던가.
연주홍은 눈 땡그랗게 뜨고 자기 할 말 다 하는, 살짝 돌아 버린 막내였다.
그게 그 애의 매력이었고.
하지만 지금은 너무 풀이 죽어서 자기 할 말도 다 못 할 때가 많았다.
장기적으로 보았을 때, 그건 그 애의 재능을 개화시키지 못하게 만들 수도 있었다.
지금 해결하고 넘어가야 한다.
“그럴 이유가 없어요, 사실. 김려유가 5위라는 순위를 받은 것도 오 PD님과 김 이사님이 편집점을 전부 다 김려유 위주로 잡았기 때문이니까. 서바이벌 프로그램에선 작정하고 밀어주는 연습생을 이길 방법이 거의 없어요. 특히나 정정당당하게 싸우는 사람한테는 더더욱.”
“그래. 그것 때문에… 우리 모두가 전부 힘들었었지.”
“하지만 이런 얘길 주홍이한테 해 줘도 지금은 그냥 뻔한 위로로 들릴 거예요.”
자존감이 깎여 버린 사람한테는 아무리 진실을 얘기해 줘도, 사랑에서 비롯된 거짓으로 들린다.
애초에 진실 자체가 사랑에서 비롯된 것임에도 불구하고.
연주홍은 본인이 사랑받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사랑받을 가치가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그 마음은 이해된다.
나도 그랬다.
하지만 그 애가 모르는 게 하나 있다.
사랑은 어디서 갑자기 뚝 떨어지지 않는다.
그 애는 사랑받을 만한 사람이니까 사랑받고 있는 거다.
“그러니까 저희가 증명을 해 주면 되겠죠.”
“증명….”
“아예 걔 눈앞에다가 김려유는 그냥 아무것도 아니라는 증거를 갖다 대 주자고요. 그러고도 본인이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 모르기만 해 봐. 덕질 논문 2탄 열 장씩 필사시키는 수가 있어.”
내 말에, 서백영은 씨익 웃어 버렸다.
뭘 보세요.
제가 덕질 논문 또 준비해 놓은 사람처럼 보인다면 맞습니다.
아주 혼쭐을 내주자고.
“그런데요, 언니.”
“응.”
“언니는 자꾸 어디서 그렇게 소식들을 물어 와요?”
“!”
연주홍은 연주홍이고.
서백영 너는 또 다른 문제지.
여기 또 풀어야 할 문제가 있었다.
***
“다들 그냥 거리 두고, 절대로 적대적인 반응 보이지 말고. 표정 관리하자.”
스틸블루의 대기실.
다행히 각 팀별로 개인 대기실이 주어졌다.
혹시나 다른 팀과 같이 쓰게 할까 걱정했는데.
“그게 될까요?!”
연주홍이 여전히 씩씩거리며 말했다.
“그 언니 본 순간 우와, 순간 욱해서 면전에다 대고, 우와 할 뻔했어요!”
“그러니까, 그냥 없는 사람처럼 대해. 엮이지 않는 게 최선이야. 친하게 대하는 것도 안 좋아. 그냥 아예 비즈니스적으로 대해.”
“비즈니스? 그거 어떻게 하는 겁니까.”
김금이 진지한 눈빛으로 물어 왔다.
입에 물고 있는 아이스크림은 좀 내려놓고 말해라.
“남돌 대하듯이 대해.”
“이해 완.”
모두 깔끔하게 이해했다는 표정이었다.
“저기 있는 건 김려유도 아니고, 사람도 아니야. 그냥 사람 모양 소품이라고 생각해. 그걸 깨부수면 돈 물어 줘야 하니까 손대면 안 되겠지? 예의만 갖춰서 대하자. 스블.”
“넵.”
대충 알아들은 것 같으니 잔소리는 여기까지만 하자.
“하나 더.”
나는 이제 꺼내기 참 뭐한 주제에 대해서 말해야 했다.
“우리 MC 말인데.”
“아이, 남돌이랑 안 엮인다니까용.”
“그 정도가 아니야.”
나는 정말로 심각하게 걱정 중이었다.
“그 사람이랑 아예 같은 공간에 있지도 말고, 단둘이 있을 기회조차 주지 마. 어디 가야 할 때는 두세 명이서 움직이고. 혼자 단독 행동하면 안 돼.”
“…언니 무슨 살인마 만나러 가요?”
“거의 그 급으로 생각해야 해.”
그 자식은 걸그룹 살인마란 말이다.
하이하이호 피아랑은 어디서 엮였나 의문이었는데, [탑 오브 아이돌> 출연자에 피아가 있는 것을 보고 모든 게 설명이 되었다.
신유화는 여기서 피아와 조희온을 동시에 만났던 것이다.
나는 멤버들을 둘러보았다.
미성년자 세 명은 건드릴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을 것이다.
미성년자로 언론 플레이 해 봤자 본인만 쓰레기 될 거 뻔하거든.
좀 찔러볼 순 있어도, 심하게는 못 할 거다.
그렇다면 진짜 위험군은-
“백영 언니.”
“응.”
“언니는 특히나 두 배로 조심해야 해요.”
“나? 왜?”
“언니가 너무 예쁜 죄.”
“가… 갑자기?”
서백영 너는 사람이 너무 착하고 예쁘게 생겼단 말이다.
서백영을 아는 사람이야 저 맑은 눈이, 맑은 눈의 광기라는 것을 알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모르는 사람이 보면 그저 반짝반짝 빛나는 사람으로 보일 것이다.
“잠만요, 청청.”
연주홍이 눈을 가늘게 떴다.
핫.
뭔가 내가 의심을 살 만한 이야기를 한 건가?
“근데 왜 본인은 안전하다고 생각해요?!”
“?”
“맞네. 우리 셋이야 미성년자니까 그렇다 치고. 주홍이 말대로 청청도 위험한데요?”
“어?”
멤버들이 나를 포위하고 서서히 숨통을 조이듯 다가왔다.
“안 되겠다. 이제 호위대 만들어.”
“…뭔 호위대?”
“주홍주홍!”
“금김금김!”
연주홍과 김금이 자신의 이름을 외친 후, 류보라를 뚫어져라 보았다.
“…보… 보라보라….”
“크로스!”
“우리는 청청백백 수호대!”
…못살겠다.
차라리 나를 죽여 줘라.
문득 내가 얼마나 어린 동생들과 같은 팀을 하게 된 건지 느껴졌다…….
***
그 이후로도 김금과 연주홍은 나와 서백영을 지켜야 한다며 눈에 불을 켠 채 우리 뒤를 졸졸 따라다녔다.
결국 나는 연주홍을 달고 잠시 방송국 내의 매점에 가기 위해 밖으로 나왔다.
멤버들 줄 샌드위치를 사기 위해서였다.
그때.
“청아!”
뒤에서 날 부르는 목소리가 들렸다.
누구지?
“진짜 오랜만이다, 야. 너무너무 반가워!”
익숙한 듯 익숙하지 않은 얼굴.
나는 윤청의 기억을 더듬다가 그제야 떠올렸다.
하이하이호의 멤버 중 하나였다.
이름이… 루미였지?
하이하이호는 멤버가 총 네 명이다.
비주얼 및 센터 멤버 피아.
메인 보컬 루미.
메인 래퍼 나리.
서브 보컬 진아.
얘는 그중에서도 메인 보컬인 루미였다.
하이하이호의 ‘메인 보컬’이라는 수식어는 사실 많은 것을 설명한다.
원래 하이하이호의 메인 보컬은 윤청이 되었어야 했으니까.
그 말은 즉, 얘가 윤청을 밀어낸 장본인이라는 뜻이다.
“뭐야, 청이 넌 내가 안 반갑나 보네?”
당연히 안 반갑지.
알레르기 사건에 엮여 있는 사람 중 하나인데.
사실은 얼마 전.
나는 조희온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조희온
야
왜…
알레르기 그때 누가 말했다고?
[탑 오브 아이돌>의 공개 캐스팅 그룹 목록이 떴기 때문이었다.사실 하이하이호에 큰 관심이 있는 건 아니었다.
걔네가 내 정보를 팔고 다니는 거야 알았지만, 너무 조무래기들이라 거기까지 신경 쓸 시간도 없었다.
하지만 같은 프로그램에 나오면 이야기가 달라지지.
조희온
아…….
그.. 서랑 언니라고 지금은 일반인이야
그래?
근데 난 그 언니랑 친했던 적이 없는데
나한테 알레르기가 있는 건 어떻게 알았대?
그 언니도 전해들었다 들었어
너도 알지?
하이하이호의…
내 뒷담을 까다가 그렇게 얻어걸리게 된 거다.
물론 루미가 고의적으로 날 괴롭히기 위해 알레르기가 있다는 사실을 말하고 다닌 건 아닐 것이다.
그냥 아무 생각도 없이 뒷말을 하다가 일이 이렇게 된 거겠지.
그래도 기분이 별로 좋지는 않았다.
“아, 네. 안녕하세요. 오랜만에 뵙네요. 잘 지내셨죠?”
나는 대충 대답하고 떠나려 했다.
저쪽은 말을 놨지만, 나는 말을 놓고 싶지도 않았다.
어쨌든 저쪽이 선배니까 굳이 트집 잡히고 싶지도 않았고.
“야.”
그러나 루미는 날 내버려 둘 생각이 없는 듯했다.
“좀 떴다고, 눈깔에 영혼도 없는 거 봐라. 진짜 싸가지가…. 많이 컸다, 윤청?”
적당히 상대하고 넘어가려 했는데.
초장부터 이렇게 나오면 나도 어쩔 수가-
“우와. 누구세요?!”
“?!”
엇?
“저희 청이 언니를 아시는 거 보면… 스태프세요?! 메뉴컬 스태프셨나?!”
“…뭐?”
비아냥 가득하던 루미의 눈이, 이제 아예 분노로 뒤집어지기 일보 직전이었다.
나는 그저 오랜만에 보는 연주홍의 모습에 입만 벌리고 있었다.
맞다….
“그러니까. 누구신데 저희 언니한테 싸가지가 없다고 하세요? 진짜 싸가지 없는 쪽이 누구인지. 저는 의견이 좀 다른데요?”
얘도 깡패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