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ame The Leader of a Girl Group Destined To Fail RAW novel - Chapter (139)
“아. 다흰 씨. 안녕하세요. 신곡 잘 듣고 있습니다.”
나도 바로 고개 숙여 인사했다.
그리고 대기실 앞의 이름표를 다시 확인했다.
[윤청(스틸블루)] [다흰(인라이븐]같이 쓰는 대기실이었구나.
신인에겐 흔한 일이었다.
“저도 선배님 노래 [파란> 너무 좋아합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네. 저도 잘 부탁드려요. 오늘 녹화 파이팅입니다.”
대기실을 같이 쓰든 말든 별로 상관은 없었기에, 나는 인사를 한 후 소파에 앉았다.
그러나 다흰의 시선이 계속해서 느껴졌다.
할 말이라도 있나?
다흰 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다흰은 곧바로 시선을 거두었다.
…뭐지?
나는 신경을 끄기로 결정하고, 오늘 불러야 할 노래를 듣기 위해 이어폰을 귀에 꼈다.
[디어 마이 디바>는 여태 했던 서바이벌과는 결이 조금 달랐다.서바이벌이긴 한데… 차라리 무대 경연에 더 가깝달까.
노래만 딱 부르고 딱 내려오는 형식이었다.
연습 과정이나 곡 선정 과정 등등 잡다한 장면은 거의 다 생략.
그도 그럴 게, 여기 출연하는 가수가 나를 포함해서 총 열 명이나 됐다.
열 명의 무대와 그 무대에 대한 평가를 짧은 시간 내에 보여 주려니 시간 배분이 만만치 않을 거다.
경연의 방식은 토너먼트.
가수들은 랜덤으로 토너먼트 상대를 뽑아 무대 경연을 펼친다.
각 경연 별로 두 개의 무대 중, 방청객들의 표를 더 많이 받은 무대가 다음 라운드로 올라간다.
그렇게 다섯 명의 승리자가 정해지면, 가장 높은 표를 받은 한 명은 부전승으로 자동 결승 진출하고 나머지 네 사람은 다시 준결승 무대를 치르게 된다.
그 후 마지막 세 사람이 결승 무대까지 치른 뒤, 우승자가 결정되는 형식이었다.
최소 한 개, 최대 세 개의 무대를 하게 될 수 있는 것이다.
마음 같아선 그냥 예선부터 탈락하고 싶었다.
그랬다간 팀의 이름에 먹칠을 하게 되는 셈이니, 그런 일은 없어야 하겠지만.
아무튼 이기든 지든 썩 기쁘진 않다는 말이다.
무대 세 개가 말이 세 개지, 하나를 준비하는 데 최소 일주일은 걸린다.
완성도를 생각하면 당연한 일이다.
다행히 나 같은 경우, 전생에서 이런 무대를 준비한 적이 많으니 그나마 좀 수월했다.
옛날에 했던 무대를 무한히 재탕하면 되니까.
하지만 다른 출연진들은 아마 좀 힘들어 할 거다. 체력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아무튼.
오늘 부르게 될 노래는 [O Sole Mio>.
이탈리아의 가곡 중 하나다.
갑자기 웬 가곡이냐고 의아할 수도 있겠다.
내 나름대로는 회심의 선택이었다.
어차피 여기 나오는 가수들은 전부 다 기본적으로 가창력이 뛰어나다.
방청객들도 거의 대부분 특정 아이돌의 팬이 아니라, ‘머글’에 가까운 사람들로 뽑은 것 같았고.
그렇다면, 너무 안전한 선택보다는 조금 모험을 해 봐도 좋을 것 같았다.
아예 광고, 영화, 온갖 미디어 매체에서 한 번쯤 접해 봤을 ‘그 가곡’을 불러 보는 것이다.
아마 여기서 가곡을 선택한 사람은 없을 테니까.
“선배님은 오늘 어떤 노래 부르시나요?”
그때, 다흰이 말을 걸어왔다.
“아, 저는….”
나는 대답하려다가 잠시 멈칫했다.
이거 뭔가 순순히 대답해 주면 안 될 것 같은 기분이 드는데.
“다흰 씨는요?”
“저는, [La vita> 부릅니다.”
“아.”
저쪽도 이탈리아 가곡을 선택하다니.
매우 낭패였다.
안 그래도 방송국 측에서 라이벌 구도를 잡으려고 호시탐탐 노리는 중이었다.
첫 방송부터 둘 다 이탈리아 가곡을 부르면… 라이벌 이미지가 너무 강하게 박힐 텐데.
인터넷에 돌아다닐 제목이 벌써부터 눈에 선하다.
첫방부터 라이벌 구도 씨게 잡힌 여돌.jpg
이탈리아 가곡 선택한 신인 여돌 메보(주어: 윤청vs다흰)
윤청 다흰 가창력 비교 분석글(차세대 여돌 탑 가창력은?)
어휴.
어느 것 하나 달갑지 않은 수식어들이었다.
그나저나 우연이라기엔 너무 말이 안 되지 않나.
나는 조용히 다흰을 보았다.
혹시… 내가 뭘 선택할지 이미 알고 있었던 건가?
이런 걸 의심하고 싶지는 않지만, 이미 타이틀 컨셉 키워드를 따라 한 전적도 있으니.
노이즈 마케팅을 노리고 들어왔을 가능성이 없다곤 못 하겠다.
“무슨… 문제라도 있으실까요, 선배님?”
그러나.
다흰은 내 의문을 눈치챘는지, 조심스럽게 물어왔다.
…일부러 따라 한 게 아니었나?
하도 이상한 놈들한테 데이다 보니, 모든 게 의심된단 말이다.
나는 다흰의 눈을 면밀히 보았다.
“선배…님?”
딱히 거짓을 말하는 눈은 아닌데.
일단 껄끄러운 기색은 최대한 숨겨 보자.
“아니에요. 그 곡, 잘 어울릴 것 같아요. 기대되는걸요.”
내 말에 다흰은 환히 웃었다.
“감사합니다! 선배님께서는 어떤 걸 부르시나요…?”
맞다.
그걸 아직 대답 안 했네.
나는 고민했다.
정면 대결을 하겠다고 생각은 했지만, 이렇게까지 똑같은 장르로 맞붙고 싶진 않았는데.
피할까, 말까.
나는 고민하다가, 문득 살짝 열이 받았다.
잠깐.
만약에 저쪽 소속사에서 내 미션곡을 미리 알고 일부러 똑같은 장르로 도전해 온 거라면….
날 완전히 무시하고 있다는 거 아냐?
아니면 다흰이 이길 거라고 확신하고 있는 거거나?
어느 쪽이든 꽤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었다.
나를 만만하게 봤단 말이지.
그렇다면, 그 눈이 잘못되었음을 증명해야지.
“저는 원래 [O Sole Mio>를 부르기로 했어요.”
내 말에, 다흰의 눈이 잠시 죽었다가, 간신히 피어올랐다.
“그 말씀은….”
“우리, 생각보다 컨셉이 조금 겹치네요. 더군다나 제가 알기로 다흰 씨랑 제가 이번에 대결 상대인 걸로 알고 있는데. 원래는 이렇게까지 겹칠 경우에는 조정이 들어가거든요. 그런데 뭔가 착오가 있었나 봐요.”
나는 그렇게 말하고 몸을 일으켰다.
“잠시 확인하고 와도 될까요?”
“아, 네! 선배님…. 제가 생각하기에도… 뭔가 착오가 있었던 듯합니다….”
그랬겠지.
다만 그 착오가 다흰의 소속사와 PD가 고의로 빚어낸 착오라는 것만 다를 뿐.
나는 대기실을 나와서 홍 사장의 비서에게 전화를 걸었다.
다행히 비서는 바로 전화를 받았다.
“비서님. 혹시 지금 사장님과 전화 연결 가능하실까요?”
-네, 청 씨. 바로 연결해 드리겠습니다.
***
당연히 홍 사장은 자초지종을 듣자마자 노발대발했다.
심지어 본인이 직접 SWC로 찾아오겠다는 것을 간신히 말렸다.
MC로 자기네 아이돌을 둘이나 보내 주었더니, 이런 식으로 뒷통수를 맞은 게 어지간히 분했던 모양이었다.
사실 컬러즈 측에서는 단하와 한재이에게 온 MC 섭외를 다섯 번이나 거절했다나, 뭐라나.
해외 투어나 음악 활동에 집중해야 할 시기에, 굳이 서바이벌 MC를 보게 해야 할 필요성을 못 느낀 것이다.
나도 사실 그 생각에 동의했다. 지금 번애쉬는 예능 활동보다는 해외 팬덤을 다지는 데에 집중할 필요가 있었다.
그러나 어쨌든 지상파 측에서 끈질기게 섭외를 해 오는데, 계속 거절하는 것도 난감했을 테니 어쩔 수 없이 받아들였던 모양이다.
그런데 거기에 딸려 들어간 나에게 푸대접을 넘어서서, 배신을 한 수준까지 오니까 화가 났겠지.
홍 사장은 결국 PD와 모종의 대화에 들어간 듯했다.
곧이어, PD가 나를 부른 걸 보면.
“윤청 씨.”
“네, PD님.”
“내가 원래 이렇게 당일에 무대 바꾸는 거, 절대로 안 해 주는 사람이에요. 알아요?”
저라고 애써 준비한 무대를 날려 버리고 싶었겠어요…?
당신이 모먼트랑 짝짜꿍하며 사람 농락하려 드니까 바꾸는 거지…?
나는 오히려 뻔뻔하게 나오는 PD의 모습에 황당함까지 느꼈다.
“그래도, 홍 사장님이 간곡하게 부탁해 오니까. 내가, 이번 딱 한 번만 무대 바꾸는 거 봐주는 거예요.”
“네. 감사합니다, PD님. 사정 봐주신 만큼 열심히 하겠습니다.”
“무대 동선 깔끔하게 하세요. 뭐 거창한 거 하려 하지 말고.”
“…그렇게 하겠습니다.”
“준비 시간 얼마 없는 거 알죠? 내가 순서는 다른 출연자랑 합의해서 좀 뒤로 뺐어요. 원래는 다흰 씨와 붙는 거였는데. 다흰 씨 말고 [노리미트>의 유인 씨와 붙을 거예요.”
이것도 희소식이었다.
다흰과 굳이 처음부터 붙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감사합니다.”
“다음부터는 이런 일 없게 하세요.”
세상엔 뻔뻔한 놈이 이렇게 많구나, 다시 한번 느끼면서.
나는 조용히 회의실을 나왔다.
지금부터 내 무대를 다시 준비해야 하니까.
해야 할 일이 많다.
***
대기실로 돌아오니, 다흰이 비 맞은 동물처럼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날 기다리고 있었던 모양이다.
…요즘 들어 왜 이렇게 보모라도 된 기분이지.
안 된다. 내가 먹여 살려야 할 소동물들이 이미 네 마리나 있단 말이다. 여기서 다른 애들을 더 주워 올 순 없어.
나는 애써 그 시선을 모른 척하고, 내 자리에 앉았다.
사실 다흰의 노래와 내 노래의 장르가 겹친다는 것을 알게 되자마자 떠올린 아이디어가 있었다.
“선배님, 어떻게 되셨…나요?”
“내가 노래를 바꾸기로 했어요.”
“!”
어차피 PD가 말한 대로 동선을 크게 바꿀 수 없다면, 아예 다른 장르로 변경하는 것 또한 불가능했다.
그러니 아주 조금, 방향만 틀어서-
“다흰 씨도 들어본 적 있나요? [낙화>라는 노래예요.”
내가 무대를 잡아먹어야 했다.
결국 다른 노래를 선택하기로 했지만.
대결을 피하는 쪽이 되어선 안 된다.
대결을 집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