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ame The Leader of a Girl Group Destined To Fail RAW novel - Chapter (35)
35화.
원래, [손끝>은 보컬 포지션의 미션곡이 아니었다.
댄스 포지션의 미션곡이었다.
당연히 우승자는 김려유였고.
윤청은 보컬 포지션 내에서 고작 3위에 그쳤다.
너무 긴장한 나머지, 삑사리를 냈다-는 게 방송에 나온 내용이었다.
하지만 진실은 조금 달랐다.
전날, 리허설 때까지만 해도 윤청은 보컬 포지션의 강력한 우승 후보였다.
오랜만에 약점인 댄스를 빼고 오로지 보컬에만 집중을 하니, 마음이 편해져서 본 실력이 나왔던 것이다.
당연히 다른 연습생들과 심사 위원들은 매우 놀랐다.
그리고 또 경계했다.
이미 그때부터 데뷔조는 윤곽이 거의 나온 상태였다.
윤청은 심사 위원 픽으로 데뷔하는, 욕받이 역할이어야 했고.
그런데 이렇게 실력 발휘를 해 버리면 변수가 너무 많이 생겨 버렸다.
대중들은 실력을 갖춘 아이돌을 원하니까.
그래서 그날, 김려유는 윤청에게 ‘무언가’를 했다.
처음엔 나도 명확하게 기억하지 못했다.
윤청의 기억이 워낙 방대하다 보니, 사건 하나하나를 모두 완전히 내 것으로 만드는 데에는 시간이 걸렸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번 미션 예고를 핸드폰으로 본 순간, 어떤 기억들이 밀려왔다.
마치 이 순간을 위해 기다렸다는 듯이.
그 기억은-
“손끝이라. 의외의 선택이네요. 완전히 보컬을 위한 곡이라기보단 퍼포먼스에 어울리는 노래라고 생각했는데 말이죠. 어떤 이유로 이 노래를 골랐나요?”
도희영은 의외라는 듯, 말했다.
그제야 내 정신도 돌아왔다.
“물론 댄스 포지션에게도 어울릴 노래라곤 생각합니다. 하지만 저는 보컬 포지션 또한 나름의 퍼포먼스를 보여 줄 수 있다고 생각해서요.”
나는 미리 생각해 두었던 답변을 했다.
아니나 다를까, 보컬 포지션 연습생들의 반응은 미묘했다.
그도 그럴 게 [손끝>은 동양풍의 선율이 독특한 노래였기 때문이었다.
일반적인 발라드에 가까운 노래는 [메데이아>였고.
아마 대부분의 연습생들은 내가 [메데이아>를 고를 거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부르기가 꽤 까다로운 데다가, 다양한 음역대가 있어서 보컬 실력을 확실하게 보여 줄 수 있는 노래였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꼭 그런 노래만이 보컬 실력을 보여 주는 건 아니다.
[손끝>도 부르기는 정말 까다로운 노래니까.“그건 물론 그렇죠. 손끝이라. 저는 윤청 연습생이 좋은 선택을 했다고 생각해요. 사실 노래 자체만으로 봤을 때, 가사도 그렇고 가장 매력 있는 노래라고 생각했거든요. 잘 선택했습니다. 윤청 연습생.”
도희영은 내게 부드럽게 웃어 주었다.
음.
내 선택은 틀리지 않았다니까.
하지만 다른 연습생들은 아직 내 선택을 이해하지 못한 듯했다.
류보라, 이경아, 조희온 모두 욕만 안 했지 매우 싸한 분위기였다.
…믿어 보라니까, 얘들아.
“…언니.”
그때, 류보라가 내 어깨에 손을 턱, 올렸다.
“응?”
“부디 이게 최선의 선택이었길 바라요.”
얘는 진짜 다른 의미로 섬뜩하다.
웃고는 있는데 동공이 살짝 돌아 있는 것 같다.
나는 떨리는 심장을 부여잡고 류보라의 손 위에 내 손을 올려놓았다.
“믿어 봐.”
어쩌면 나보다도 보라 네 매력을 최대로 끌어 올려 줄 수 있는 노래니까.
***
그렇게 다른 포지션들도 노래 선택을 모두 마쳤다.
보컬 포지션: 손끝
댄스 포지션 A(연주홍, 서백영, 김려유): The Pendulum
댄스 포지션 B(이주선, 방수인, 신유현): 메데이아
랩 포지션: 탄嘆
김금도 확실히 듣는 귀가 있다.
[탄嘆>을 고르다니.자기랑 딱 맞는 걸 골랐군.
“좋습니다. 다들 잘 어울리는 노래를 골라 갔군요.”
맞는 말이었다.
각자 어울리는 곡을 챙겨 간 것 같았다.
역시 연습한 짬밥이 있어서인가, 본인들의 매력 정도는 알고 있었다.
아무리 연습생이라 해도 실력은 그 이상이었으니까.
“그럼, 이제 파트 분배를 시작해 보죠. 꼭 공평하게 나눌 필요는 없지만, 어떤 게 결과에 좋을지 잘 생각해 보세요. 파트를 많이 가져간다고 해서 능사가 아니라는 건, 이미 저번 미션에서 깨달았을 테니까요.”
도희영의 날카로운 말에 김려유의 얼굴이 살짝 붉어졌다.
도희영은 만만한 사람이 아니었다.
할 말이 있는데 그걸 참는 사람은 아니라는 말이었다.
하긴 그러니 심사 위원으로 뽑힌 거겠지만.
“그럼, 파트 분배 시작해 주세요.”
우리 네 사람은 옹기종기 모여 앉아, 데모곡을 다시 한번 들어 보았다.
“진짜 노래가 어렵다.”
“느낌을 살리는 게 진짜 어려울 것 같아요. 국악 느낌이 조금 들어가서….”
“사극에 나올 법한 음악 같은 느낌?”
결론은 ‘어렵다.’였다.
“일단 파트를 나눠 볼까?”
이경아가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가장 연장자이니만큼, 뭔가 강제로 조별 과제 조장을 맡게 된 것처럼 책임감을 느끼는 듯했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다.
여기서 진정한 연장자는 나라는 것을.
…그러니 안심해도 된다고 말해 주고 싶다.
최연장자라는 책임감을 느끼는 사람은 너뿐만이 아냐….
“저는 파트를 공평하게 분배하고 싶어요. 모두의 매력이 다 드러나게끔. 다들 실력은 자신 있으니 보컬 포지션에 지원했다고 생각하거든요.”
어째 내 말에 조희온의 동공이 살짝 흔들리는 것 같지만, 무시하자.
“그래서! 이렇게 하면 어떨까 해요.”
나는 종이에, ‘파트 가, 파트 나, 파트 다, 파트 라’를 썼다.
“네 개의 파트로 나누어서 모든 파트에 공평하게 후렴을 넣은 다음에, 랜덤으로 파트를 가져가자!”
“…!”
내 제안에, 모두 흠칫하는 게 느껴졌다.
그럴 법도 하다.
이 방법은 어딘가에서 차용해 온 것이니까.
“자기가 어떤 포지션을 가져갈지 알 수 없으니 모두가 공평하게 파트를 분배하려 할 것이다… 맞나요?”
“맞아.”
류보라의 질문에 나는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거 완전히…? 고등학교 수업 때 들은…?”
“무지의 베일.”
고민에 잠긴 세 사람 앞에서 나는 말을 이어 갔다.
“개인적으로 파트를 공평하게 나눌 땐 이것만 한 게 없다고 생각합니다, 전.”
다들 잠깐 생각하더니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보다 더 공평한 방법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리라.
결국 우리는 마디마디별로 파트를 나누었다.
한 사람이 킬링 파트를 모두 가져가는 게 아니라, 각자 킬링 파트를 하나씩은 가져갈 수 있도록.
“자, 그러면 이제 사다리 타기로 정할게요.”
“넵.”
핸드폰 어플로 사다리 타기를 돌리자, 각자의 파트가 나뉘어졌다.
내 파트는 ‘파트 라’.
내가 해 보고 싶은 킬링 파트가 들어 있는 파트였다.
출발이 좋네.
“자, 여러분. 파트 분배를 모두 마치셨나요?”
때마침, 도희영이 시간 종료를 알렸다.
“그럼 지금부터 하루 동안 시간을 드리겠습니다. 개인 연습을 해 본 후에, 작곡진을 만나고 녹음을 진행하도록 할게요.”
“!”
연습생들의 눈에 긴장감이 번졌다.
이 노래의 작곡가는 단하.
요즘 가장 잘나가는 남자 아이돌 그룹에서도, 가장 잘나가는 멤버.
이게 여자 아이돌들에게는 어떻게 들리냐고?
‘기피 대상 1위…!’
엮이면 죽는다.
데뷔도 전에 일단 죽는 것부터 시작한다.
모두 뇌에 힘을 꽉 주고 있었다.
연애 감정?
그런 건 데뷔에 필요 없다.
쓸데없는 오해 받지 않으려면 눈도 마주치지 않아야지.
오로지 존경의 눈 외에 다른 건 필요 없다.
“자, 그럼 각자 연습 시간 가지시고. 내일 녹음실에서 다시 모일게요.”
도희영의 말에, 스태프들은 일사불란하게 이동 준비를 시작했다.
우리도 그건 마찬가지였다.
내일 있을 녹음을 위해 우리는 모두 연습실로 향해야 했다.
차에 타자마자, 류보라는 슬쩍 내 옆에 앉았다.
한 번도 가까이 온 적 없는 애가 웬일이래.
류보라는 김금을 제외하면 누구와도 특별히 친한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물론 팬들은 그것마저도 새침떼기 아기고영이라며 좋아하는 것 같았지만….
나도 그닥 사회성이 투철한 건 아니라, 어색한 건 어쩔 수 없었다.
“언니.”
“응.”
“무슨 생각으로 그걸 골랐어요?”
“재밌을 것 같아서.”
“…?”
류보라는 정말이지, 시종일관 적당한 표정이었다.
금이처럼 인상을 찌푸리지도 않았고, 주홍이처럼 애교가 넘치는 것도 아니었다.
그저 차분하면서도, 이성적이었다.
근데 그게 또 이상하게-
“왜, 자신 없어?”
“하하.”
웃겨.
“아뇨. 전 솔직히 무슨 노래든 별로 상관없어요. 그냥 궁금했을 뿐이에요. 데뷔하려면 언니 실력이 가장 돋보이는 노래를 골라야 하는 거 아닌가, 싶어서.”
“그렇지.”
“그런데 그건 대단히 화려한 스킬을 보여 주는 노래라기보단-”
“감정선을 보여 주는 노래에 가깝지.”
나도 알고 있다.
손끝이 엄청난 고음이나 가창력을 보여 주는 노래가 아니라는 것 정도는.
하지만 손끝에는 그걸 넘어서는 무언가가 있었다.
서사.
그리고 일회성 무대라면, 무엇보다 서사가 중요한 법이다.
“이번엔 재미있는 무대를 해 보고 싶었어.”
“재미있는 무대라.”
류보라는 잠깐 생각하더니 곧 말문을 열었다.
“언니는 무대가 재미있어요?”
이거 갑자기 어려운 질문을.
“재밌으니까 하지. 재미없으면 못 할 직업이잖아, 사실.”
“….”
류보라는 별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나도 류보라에게 대답을 기대하지 않았다.
말하고 싶었다면 내가 묻지 않아도 대답했을 것이다.
무언가 사정이 있으니 입을 다무는 거겠지.
처음부터 생각한 거지만, 대화하기엔 참 어려운 상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