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ame The Leader of a Girl Group Destined To Fail RAW novel - Chapter (36)
36화.
“단하 선배님은 어떤 분이셔요?”
다음 날 아침.
우리는 이른 새벽부터 일어나 녹음실로 향했다.
졸린 눈을 비비며 쪽잠이라도 자려 하는데, 흥미로운 질문에 다들 들썩이는 분위기였다.
조희온이 서백영에게 단하에 대해 물어본 것이다.
아무래도 가장 오래 소속사에 있었던 서백영이었으니, 잘 알겠거니 한 모양이다.
“나도 잘 몰라.”
“엥?”
“원래 다른 사람이랑 교류를 안 하는 분이셔서….”
그건 그랬지.
연예계에서도 유명했다.
그의 낯가림은.
“멤버들 외에는 사적인 연락 절대 거절, 인사만 받아 주는 정도…. 애초에 본인 작업실이랑 연습실 외엔 아무 데도 안 가는 분이라 들었어.”
“…그 정도는 해야 뜨는군요.”
“그렇지. 본받아야 돼.”
결론 하나는 진짜 기특하게 내는 애들이다.
“기자들이 뭐라도 건수 잡아 보려고 데뷔하자마자 따라다녔는데, 진짜 아무것도 없었대.”
“오죽하면 멤버들이랑도 안 놀아서 불화설 있을 정도였어….”
이경아도 뭔가 들은 게 있는지 말을 얹었다.
“우와우.”
연주홍이 신기하다는 듯 감탄사를 내뱉었다.
“그건 별로 안 본받고 싶어요. 전 멤버들이랑 제일 친한 사이 되고 싶으니까!”
“데뷔부터 해라.”
들떠서 말하는 연주홍에게, 김금이 찬물을 슥 끼얹었다.
분노한 연주홍이 씩씩거리자, 김금은 슬쩍 한마디를 덧붙였다.
“근데 뭐, 데뷔할 것 같긴 하지만.”
“진짜? 진짜요?”
“몰라, 인마. 열심히 해!”
…잘들 논다.
***
“만나서 반갑습니다.”
그렇게 도착한 녹음실에는, 번애쉬 멤버 두 명이 기다리고 있었다.
단하와 한재이.
한재이는 번애쉬의 메인 보컬이자 작사에 많이 참여하는 멤버였다.
저쪽도 실력 하나는 탄탄하다.
말 그대로 그도 컬러즈의 ‘비주얼 되는 메보’ 계열을 잇는 멤버였으니까.
…컬러즈의 인복이란….
내 전생 소속사 대표에게 컬러즈의 인복 절반만 있었어도 내가 그렇게 개고생을 하진 않았을 텐데.
“안녕하세요, 여러분!”
한재이는 좀 더 밝은 성격 같았다.
단하는… 그렇게 부드러운 성격처럼 보이진 않았다.
카메라가 켜져 있으니 당연히 예의 바르긴 했다.
하지만 밝다거나, 적극적으로 우리를 반겨 주는 느낌은 아니었다.
무뚝뚝함 그 자체.
전생에서 봤던 모습 그대로였다.
“안녕하십니까!”
하지만 우리 쪽도 완전히 굳어 있었으니, 할 말이 없긴 하다.
“파트 분배는 다 하셨다고 들었습니다. 본격적으로 녹음 들어가기 전에 컨셉 설명해 드리고, 여러분의 해석을 들어 볼 예정입니다. 혹시나 편곡 아이디어가 있는 분께서는 말씀해 주세요. 아이디어가 좋다고 생각되면 적극적으로 반영하겠습니다.”
‘좋다고 생각되면’.
듣기만 해도 기준 까다롭고 냉정할 건 알겠다.
우리의 해석을 듣겠다는 말도 꽤 긴장되는 말이었다.
하지만, 그래도 본인의 노래에 진심이라는 건 좋게 보였다.
건성으로 임하는 사람보다야 훨씬 낫지.
곡을 만든 사람, 그 곡을 부르는 사람 모두 진심이면 진심일수록 더 훌륭한 결과가 나오니까.
“먼저, 보컬 포지션 여러분부터 시작하겠습니다.”
우리를 제외한 연습생들은 다른 방으로 이동했다.
단하와 재이는 우리 네 사람의 맞은편에 앉았다.
“[손끝>을 선택하셨다고요.”
단하는 제작진에게 미리 전달받았는지,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넵.”
“누가 고르셨죠?”
“제가 골랐습니다.”
나는 조심스럽게 손을 들었다.
설마 댄스 포지션이 아니라 우리가 골랐다고 화내는 건 아니겠지.
“…보컬 포지션분들이 해 주시길 바랐는데, 다행이네요.”
아니군.
다행이다.
“파트 분배지, 보여 주세요.”
이경아가 단하와 한재이에게 파트 분배지를 하나씩 주었다.
두 사람은 아주 유심히 파트 분배지를 보더니, 서로 눈을 마주쳤다.
“굉장히 공평하게 나누셨네요. 후렴구 부분도 돌아가면서 한 번씩 부를 수 있게 하셨고. 왜 이렇게 하셨죠?”
사실 질문 자체만 들으면 충분히 할 법한 질문이었다.
미리 대비한 질문이기도 했고.
그런데…
얘가 너무 무섭게 나와!
김금이랑은 또 다른 버전의 호랑이 교관이었다.
그러다 보니 연습생들은 모두 겁먹어서 제대로 말할 생각도 못 했다.
“저희 모두의 매력을 최대로 끌어 올려서 보여 드리고 싶었습니다.”
결국 내가 나서야 했다.
“흠.”
단하는 심드렁한 눈이었다.
“이 노래 고르신 분이네요. 성함이?”
“윤청입니다.”
“파트는 어떻게 되죠?”
“파트 라입니다.”
“그렇군요. 왜 이 노래를 고르셨나요?”
압박… 면접…?
졸지에 취업 준비생이라도 된 기분이었다.
“저는 이 노래가 고유의 서사를 가지고 있는 게 좋았습니다. 노래를 부르는 사람이라면, 단순히 기술이 좋은 것뿐만 아니라 노래 안에 잠들어 있는 감정을 끌어 올릴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이 노래의 감정은 뭐라고 보셨죠?”
어려운 질문이네.
“한 가지만이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일단 제가 가장 크게 느낀 감정은-”
나는 가사지를 한번 힐끗 보았다.
“억압 속에서도 피어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의외로 표정이 변하는 건, 단하 쪽이 아니라 한재이 쪽이었다.
“사랑이 아니라, 사람이요?”
“네. 사랑도 분명히 있었지만… 저는 사람이 더 와닿았습니다.”
“재밌네요.”
한재이는 씨익 웃었다.
“이건, 다섯 곡 중에서 유일하게 제가 작사한 게 아니에요.”
“!”
“단하가 전부 작사하고 작곡한 노래죠. 처음부터 끝까지.”
그건 몰랐다.
“저는 사랑이라 해석했거든요. 그런데 단하는 사랑만이 전부는 아니라 해석했어요. 그런 의미에서-”
“정답은 없어. 내가 만든 노래지만 네 해석도 옳아.”
그때, 단하가 한재이의 해석을 끊었다.
싱겁긴.
난 카메라를 슬쩍 보았다.
좋은 인상을 심어 줄 수 있는 기회 중 하나였는데.
바로 그렇게 맥을 끊어 버리냐.
“가사를 보고 대충은 유추하셨겠지만, 이건 두 사람의 이야기입니다.”
단하는 낮으면서도 어조 없는 목소리로 설명했다.
“그 두 사람의 관계가 무엇인지는 여러분의 해석에 맡기죠. 여러분이 느낀 것을 노래로 표현해 주세요.”
…본인 해석은 끝까지 안 알려 주네.
“고전 소설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하셨는데, 이 노래는 어떤 소설에서 영감을 받으신 건가요?”
류보라였다.
역시 배우 출신답게 분석을 본격적으로 잘하는구나.
“그건-”
“비밀입니다.”
한재이가 말하려는데, 단하가 막았다.
“여러분이 그걸 알기보단, 모르고 불러 주셨으면 좋겠어요. 아니면 다 부르시고 난 다음에 알게 되시든가.”
“이유가 있으신가요?”
“그냥 그게 더 재밌을 것 같아서요.”
“….”
…진짜 보통 미친놈은 아닌 것 같았다.
예술 하는 사람들이 살짝 미쳐 있다곤 하지만, 얘는 그 이상이었다.
팬도 많지만 안티도 정말 많다던데, 왜인지 알 것 같았다.
사석이면 모를까, 카메라 앞에서도 이렇게 대쪽 같으면 쉽지 않지.
“그런 의미에서, 파트 변경을 조금 해 보고 싶은데요.”
단하는 슥슥 종이에 무언가를 써 내려갔다.
“이 후렴구는 한 번에 한 명씩만 부르는 것보다, 두 명씩 불러 주시면 좋겠어요. 두 명씩 두 번. 대신 같은 후렴구라고 해도 같은 느낌보다는 다른 느낌으로 불러 주시는 게 좋아요. 1절과 2절은 또 다른 전개니까.”
“어떤 느낌…으로…?”
“그건 자유롭게.”
이익.
우리 네 사람의 뒷골이 조금씩 당겨지는 게 느껴졌다.
그 이후에도 그의 요구는 아주 길게 이어졌다.
우리의 목소리를 들어 보고선 파트를 바꿔 버린다거나, 각 파트의 느낌을 모호하게 말한다거나.
그러나 그가 한 지적은 상당 부분 일리가 있었다.
그리고 우리의 아이디어보다 나은 것도 많았다.
그렇게 많은 피드백이 오간 후, 본격적인 녹음이 시작되었다.
“리허설 한번 하고 그다음에 녹음 들어갈게요.”
“넵!”
“파트 가, 류보라 연습생부터 할게요.”
“네.”
단하와 한재이는 둘 다 프로듀싱 경험이 있는 멤버들이었다.
“본인 파트만 부르지 말고, 일단 노래 전체 부르고 가 볼게요.”
“네.”
류보라는 헤드폰을 쓰고, 리듬을 타다가 노래를 시작했다.
“…쟨 얼굴이 헤드폰만 하네.”
옆에서 이경아가 작게 읊조렸다.
나도 사실 그 생각 중이었어서 할 말은 없었다.
뭔가 억울해지는 순간이었다.
“거기 음정 틀렸어요. 다시.”
가녹음인데도 굉장히 빡셌다.
두 사람은 류보라가 아주 조금만 어긋나도 다시 부르게 했다.
문제는, 처음부터.
“원래… 저렇게 처음부터 다 다시 부르게 해요?”
“그렇진 않지.”
조희온이 이경아에게 귓속말로 물어보았다.
그래.
그렇진 않았다.
“류보라 연습생.”
“네.”
“연기하려고 하지 마세요. 여기는 드라마 현장 아닙니다.”
헉.
옆에서 두 사람이 확 놀란 음성을 내뱉었다.
정작 류보라는 별 타격이 없는 것 같았다.
매우 덤덤한 걸 보면.
“네. 죄송합니다. 다시 하겠습니다.”
“각 파트마다 감정선이 다른 거, 맞아요. 그런데 그걸 억지로 다른 척하려 하지 마시고 정말로 다르다는 것을 이해했으면 좋겠어요. 저희가 어렵게 설명해 드리긴 하지만, 류보라 연습생은 경력자니까.”
한재이도 조금 미안한 얼굴이었다.
“네, 반영하겠습니다.”
쟤는 진짜 누가 칼로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나겠다.
어쩐지 조금 멋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가녹음 끝내고, 첫 번째 파트 부분부터 갈게요.”
“네.”
본격적으로 녹음 시작이군.
조희온과 이경아는 드디어, 라며 안심하는 눈치였다.
그러나 나는 별로 안심되지 않았다.
이제 시작이지. 이건….
“다시 갈게요.”
“네.”
“다시.”
“죄송합니다.”
“다시 갈게요. 거기 끝에 올리지 마세요.”
“네.”
“호흡 신경 쓰세요.”
“네.”
아니나 다를까.
무한히 반복되는… 피드백 지옥….
우리는 이제 슬슬 류보라를 걱정하기 시작했다.
멘탈이 문제가 아니라, 체력적으로 너무 힘들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류보라 연습생.”
“네.”
“솔직히 말할게요. 발성, 음정, 발음, 다 좋아요. 나쁘지 않거든요.”
“네.”
“그런데 별로예요. 왠지는 본인도 알죠?”
단하가 감정 하나 안 들어 있는 눈으로 말했다.
“네, 알고 있습니다.”
그야말로 얼음과 얼음이 서로 대화하는 기분이었다.
“듣는 내가 더 상처다…. 보라는 타격이 없는데 내가 타격받았어….”
“저도요….”
이경아와 조희온의 말에 나는 한숨을 쉬었다.
녹음, 진짜 쉽지 않겠다.
“윤청 연습생.”
그때, 한재이가 나를 불렀다.
“제 생각에는 윤청 연습생이 노래를 골랐으니까 먼저 한번 해 보고, 류보라 연습생이 하면 어떨까 하는데.”
“전 좋습니다.”
나도 차라리 그게 나았다.
괜히 어려운 거 골라서 애들 고생시키고 있나, 라는 생각이 들던 참이었으니까.
“류보라 연습생, 나와 주세요.”
“…네.”
류보라가 녹음실에서 나왔다.
그리고 내가 이어서 녹음실로 들어갔다.
그 순간에 나는 보았다.
그렇게 아무렇지도 않아 보였던 류보라의 손이,
“….”
떨리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