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ame The Leader of a Girl Group Destined To Fail RAW novel - Chapter (43)
43화.
녹음이 모두 끝나고, 안무 제작도 모두 끝났다.
안무 구성은 누구 하나가 주도적으로 이끌기보단, 다 같이 머리를 쥐어짜 냈다.
기본적인 컨셉은 내가 잡아 온 거니, 아무래도 내가 가장 아이디어를 많이 내긴 했다.
“아, 피곤하다.”
“내일 평가 전까지 안무 완성해서 다행이다, 그래도.”
“…밤샐까요.”
“아서라, 내일 목 나갈 일 있어?”
퇴근길.
오랜만에 카메라가 따라붙었다.
중간 평가 전날이라, 연습생들의 심경도 엿들을 겸 촬영하는 것 같았다.
“청아, 솔직히 말해 봐.”
“…?”
이경아의 뜬금없는 말에 나는 눈썹만 치켜올렸다.
“너, 그, 뭐. 힘숨찐. 그런 컨셉이야?”
힘… 뭐?
내 입장에선 10년 전의 유행어가 나오자, 인지 부조화가 왔다.
“힘 숨긴 찐따. 아니, 너 원래 춤 아예 못 추지 않았어? 그런데 이번에 안무 짤 때 보니까, 메댄 급은 아니어도… 춤멤 정도는 충분히 가능할 것 같은데.”
“에이, 그 정도는 아니에요.”
나는 손사래를 쳤다.
과거의 윤청이 워낙 못했다 보니, 내 평범한 실력도 비교적 엄청나 보이는 효과가 있었다.
덕분에 나는 알차게 주변인들의 의문을 샀다.
나 참.
윤청에게 고마워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아무튼 청이 덕분에 컨셉도 수월하게 잡고, 안무도 수월하게 잘 짰다.”
“정말로요.”
가만히 있던 류보라가 고개를 끄덕였다.
넌 왜 또 낯설게 거기서 동의를 해 주고 그러냐.
“…이번엔 청이가 확실히 잘해 줬죠.”
분위기가 이러니, 조희온도 입을 다물긴 좀 그랬는지 한마디 했다.
억지로 하는 티는 났지만, 뭐 어때.
“평소에도 좀 이렇게 잘해 주면, 응? 얼마나 좋아!”
…취소.
넌 그냥 입을 다무는 게 낫겠다.
“그래두, 청이 덕분에 우리 우승할 확률 높아졌네. 청이 너만 믿고 갈게, 난.”
“응?”
“저번에도 1위 했으니까, 이번에도 1위 하겠지. 더군다나 이번엔 전부 다 네 아이디어잖아.”
…이거.
날 띄워 주는 척하지만, 사실 굉장히 부담 주는 말이다.
지금 상황에서 1위 수식어를 별로 원하지 않는 내겐 더더욱.
일부러 김려유 팬들이랑 싸움이라도 붙이고 싶다, 이건가?
“에이. 저번에 1위는 려유였지. 나야 우리 팀 덕분에 1위 했던 거고.”
나는 그렇게 말하고 덧붙였다.
“그러니까, 이번엔 우리가 서로를 밀어주자. 누구든 간에 MVP of MVP로 뽑힐 수 있도록. 그만큼 팀이라는 건 중요한 거니까.”
조희온은 어깨를 으쓱였다.
“그래. 누구든 우승해야 될 텐데.”
“일단 내일 중간 평가부터 잘해 보죠.”
그때, 류보라가 조용히 한마디를 던졌다.
“팀원 중 누구 하나라도 실수하면 솔직히 MVP of MVP는 날아간 거라고 봐야 하는 거니까.”
오.
웬일로 네가 이렇게 말을 길게 하니.
나는 생경스러워서, 류보라를 힐끔 보았다.
조희온도 류보라가 이렇게 나올 줄은 몰랐는지, 얼굴이 붉어졌다.
사실 오늘 연습에서 가장 실수가 잦았던 건, 조희온이었으니까.
“그거 나 들으라고 한 얘기야?”
“어머.”
류보라는, 생긋 미소 지었다.
“MVP of MVP 얘기 하시기에. 베네핏이 간절하면 보탬은 못 되더라도, 폐는 끼치지 말잔 뜻이었는데. 언니랑 제가 실수 가장 많이 하니까. 조심하잔 거였어요.”
침묵이 잠시 감돌았다.
‘언니랑 제가’라고 말해 주긴 했지만, 사실상 너 실수 작작 하라는 소리였다.
카메라 앞에선 언제나 천사 모드였던 류보라였던지라, 모두들 당황했다.
“연습한 지 얼마 안 됐는데 실수가 있는 건 어쩔 수 없잖아. 노래가 이렇게 어려운 데다가 안무까지 있는데.”
“그렇죠. 힘들죠. 저도 힘든데요. 뭐, 그렇다고 실수해도 되는 건 아니니까요. 저희 같이 정신 차리고 힘내잔 거였어요.”
어우.
“너, 말이 좀 세다?”
류보라는 어깨를 으쓱했다.
아까 조희온과 똑같은 제스처였다.
“기분 나쁘셨어요, 언니? 내일 잘하자는 게 기분 나쁘셨다면, 죄송해요. 제가 사과드릴게요.”
“아니, 보라야. 그게-”
“그래, 희온아. 보라가 그런 뜻으로 말한 거 아닌 거 알잖아.”
보다 못한 이경아가 끼어들었다.
“그냥 다들 내일 정신 차리고 가자. 오케이? 너네 못하면 욕먹는 건 나다.”
“넵.”
나는 잽싸게 대답했다.
“내일 혼신의 힘을 다해 볼게요. 다들 힘냅시다. 하하.”
조희온은 여전히 씩씩거렸고, 류보라는 여전히 ‘전 아무것도 몰라요’ 표정으로 딴청 피우고 있었다.
…내 편일 땐 이렇게 든든한데.
쟤가 적이 되면….
어휴.
그나저나 적응이 안 되네.
류보라가, 내 편을 들어 주는 게.
나는 류보라의 어깨를 내 어깨로 슥 밀었다.
나름 고마움의 표시였다.
그러나 류보라는 대체 왜 이러냔 얼굴로 내게서 멀어졌다.
…아닌가?
내 편인 게 아니라 그냥 조희온의 적이었던 건가?
하여간 속을 알 수가 없는 애였다.
***
“먼저, 댄스 포지션 A. 나와서 해 볼게.”
중간 평가 날.
오랜만에 또 카메라가 총집합했다.
우리는 연습실 한구석에 앉아서 평가 시간만 기다렸다.
첫 번째는 댄스 포지션 A. 연주홍, 서백영, 김려유 팀이었다.
완전히 쉽게 변해 버린 [The Pendulum>은 어떤지 볼 수 있는 기회였다.
사실 가장 궁금하기도 했다.
셋의 조합이 좀 재밌을 것 같기도 했고.
세 사람은 어느새 대형을 취하고 있었다.
그런데 어째….
“싸웠나 본데?”
이경아가 나한테 귓속말로 속삭였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저들과 조금이라도 아는 사이라면 알 수 있었다.
볼이 튀어나온 연주홍, 눈썹이 올라간 서백영, 혼자 태연한 얼굴의 김려유.
저거.
대판 싸웠다.
그러나 싸운 건 싸운 거고, 노래는 그들을 기다려 주지 않는다.
Pit, Pit
너는 날 위해 준비된 함정이야
Shh, Shh
우리 사이가 추처럼 흔들려
I can’t run away from you
노래가 진행될수록 연습생들은 서로의 눈치를 보았다.
이거, 우리가 들었던 그 노래 아니지?
아니지.
노래가 왜 저렇게 됐지?
심사 위원들도 비슷한 생각이었는지, 안색이 좋지 않았다.
“얘들아.”
강순화 트레이너가 심각한 얼굴로 말했다.
“니네 왜 그러니? 노래를 왜 이렇게 가위질을 해 놨어?”
할 말이 많은 건 보컬 트레이너만이 아니었다.
조원호도 이마에 실금이 가 있을 정도였다.
“노래를 다운그레이드하는 것도 이해 안 되는데. 너네 댄스 포지션이야. 안무 이 수준으로 되겠어? 임팩트 하나도 없는데? 안무 누가 짰어?”
연주홍과 서백영의 시선이 김려유를 스쳤다가, 돌아온다.
“저희 다 같이 짰습니다.”
서백영이 대답했다.
정석적인 대답이다.
정석적으로 별로인 대답이기도 했고.
“얘들아. 너네 이대로 가면… 드림 팀 수식어 떼고 악몽 수식어 달아야 돼. 그래도 괜찮겠어?”
“아뇨….”
“지금 너네 심각해. 진심이야. 노래는 왜 이렇게 됐어? 단하가 노래 이렇게 만들어도 된대?”
그러게.
나도 그게 의문이다.
그 깐깐쟁이가 대체 어떻게 허락을…?
이번에는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심지어는 서백영조차도.
그러나 연주홍이 입술만 깨무는 걸 보면, 할 말이 없어서 안 하는 게 아니다.
많은데 할 수가 없는 거지.
“백영아, 대답을 해 봐.”
두 트레이너가 서백영을 닦달한다.
치사해 죽겠네.
저 짬밥으로 모를 리도 없다. 서백영이 원해서 저렇게 편곡한 게 아니라는 것을.
당연히 이 모든 것의 원인은-
“죄송합니다.”
김려유, 저 애일 텐데.
“노래 편곡 다시 상의해서 고쳐 와. 지금은 너무 심심해서 들어 주기가 힘들 정도야.”
“난 진짜 듣다 자는 줄 알았어.”
“그리고 안무 제발, 그렇게 쉽고 편하게 가려고 하지 좀 마. 니네 그럴 거면 컬러즈 말고 다른 데서 데뷔해. 우리 이름에 먹칠하지 말고.”
세게 나오네.
그럴 법도 하다. 셋 중 둘이 데뷔권인 데다가, 서백영은 컬러즈의 에이스로 유명한 연습생이다.
그런 애들이 모였는데도 저렇게 쉽게 가려고 하니, 좋게 보일 수가 없다.
차라리 버거워 보이더라도, 모험을 해야 했다.
“쟤네 진짜 왜 저러지? 사람 미치는 꼴 보고 싶나 봐.”
“데뷔하기 싫은가 보지.”
오디션 프로그램이라면 응당 나와야 할 멘트들 나오고.
오 PD의 입이 찢어지는 게 보인다.
저건 무시하자.
이어서 댄스 포지션 B의 무대가 시작되었다.
We stuck in love maze
내 운명아
그렇게 날 보지 마
네가 날 이렇게 만들었잖아
이주선….
잘하는데?
의외의 선전에 놀란 건 연습생들만이 아니었다.
트레이너들도 놀랍다는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
하위권 셋의 조합.
오히려 너무 기대가 없었던 팀이라, 효과는 탁월했다.
댄스 A 팀에게서 원했던 모습이 전부 B 팀에 있었던 것이다.
잃을 게 없으니 전부 다 질러 버린 것이다.
끝도 없이 올라가는 고음, 그리고 숨 가쁘게 몰아치는 안무.
“야, 주선아. 다시 봤다 진짜.”
“내 말이.”
트레이너들도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니까. 내 말이.
내가 키운 것도 아닌데, 왜 내가 뿌듯하고 그러지?
사계절 팀은 모두 흐뭇한 얼굴로 이주선을 보았다.
우리 빌런이… 성장했어요.
“감사합니다!”
“그래도 방심하지 말고, 이 텐션 유지하고.”
“네!”
이주선도 뿌듯한 얼굴로 돌아왔다.
나는 이주선에게 조용히 따봉 두 개를 날렸다.
이주선도 의기양양하게 씩 웃고 앉았다.
댄스 포지션의 중간 평가가 모두 끝났다.
그럼 아마 이제 돌아오는 건….
“보컬 포지션, 나와 주세요.”
우리 차례겠지.
우리는 바로 도입부 대형대로 섰다.
그러자 오, 하는 소리가 터져 나왔다.
아무래도 보컬 포지션이다 보니, 그냥 서서 부를 줄 알았던 모양이었다.
하지만, 우리가 원하는 건 그 이상이었다.
우리는 서로 눈짓했다.
그리고 이제,
임이여
만월마저 희짓는 밤에
어디로 가고 있는지
내 차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