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ame The Leader of a Girl Group Destined To Fail RAW novel - Chapter (42)
42화.
“….”
한재이와 단하는, 사실 류보라의 녹음에 난감하던 차였다.
첫 녹음이야 어려운 노래니 헤맬 수 있더라도, 두 번째 녹음도 이렇게 어려워하면 힘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일부러 더 냉정하게 몰아세운 것도 있었다.
앞으로도 어려운 노래야 많을 테니까.
여기서 무너져선 안 된다. 버텨 내야 한다. 그렇게.
그러나 영 풀리지 않는 녹음에, 아이디어를 떠올린 건 단하였다.
번애쉬에서도 사실 비슷한 케이스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때는, 승민이라는 멤버가 헤매고 있었다.
한참 애를 먹던 중 우연히 스튜디오 근처를 지나가던 홍 사장이 툭, 한마디를 던졌다.
‘승민이랑 가장 친한 멤버, 들어가서 같이 불러.’
그때는 뜬금없는 지시라 생각했다.
그러나 막상 녹음을 시작해 보니-
운명을 뻗어
닿는 것은 그대의 손끝
인연을 뻗어
얽힐 수만 있다면 손끝
이렇게, 말이 안 나오는 결과가 나왔다.
류보라의 조심스러운 시작에, 윤청이 묵묵히 류보라의 손을 잡는다.
잡을게 내가
어떤 미망 속에서라도
잡을게 그댈
그리고 답하듯이 노래를 이어 부른다.
두 사람은 계속해서 남은 노래를 함께 부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적응하지 못하는 듯 흔들리던 류보라의 호흡도, 점점 제자리로 돌아오기 시작했다.
윤청이 류보라의 손을 잡아 같이 박자를 짚어 주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잘하네.”
“….”
“처음엔 눈도 안 마주치더니, 이젠 우리가 안 보이나 본데? 서로만 보고 있잖아.”
한재이의 말에도, 단하는 대답하지 않았다.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바로 이런 것을 원했던 건데.
단하는 그저 씨익 미소 지었다.
“그때… 승민이랑 같이 부른 거.”
“….”
“너였잖아.”
단하는 여전히 대꾸 없이 녹음실 안에 있는 두 사람만 응시했다.
한재이는 그런 단하를 보면서 묘한 미소를 지었다.
“노답 새끼…. 대답도 안 하는 거 봐.”
“노래 끝났다.”
“앗.”
한재이는 녹음실 바깥과 안을 연결해 주는 마이크를 켰다.
“두 분, 수고하셨습니다.”
“수고하셨어요.”
단하도 짤막하게 한마디를 덧붙였다.
“잘하셨어요, 두 분 다. 저희가 기대한 것보다 훨씬 더 잘해 내셨는데요?”
한재이의 칭찬에, 윤청과 류보라는 바로 손을 뗐다.
“잘하셨습니다. 준비되셨으면 한 번 더 갈게요.”
“?!”
“윤청 연습생, 이번엔 싸비만 부르는 걸로 하겠습니다.”
-넵.
“류보라 연습생, 성량 그게 최대 아니죠?”
-…더 해 보겠습니다.
“네, 바로 갈게요.”
단하의 말에 나머지 세 사람은 눈을 가늘게 떴다. 쉴 시간은 줘야지, 인마.
그러나 세 사람의 입술만큼은 정직하게 올라가 있었다.
특히, 류보라의 입술이.
***
“수고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
“네, 들어가세요. 고생하셨습니다.”
녹음이 끝나고 간단한 인사치레가 오갔다.
밖으로 나오니, 해가 저물어 있었다.
“와, 하루가 꼬박 그냥 다 갔네.”
“…저 때문에 고생 많으셨어요.”
류보라는 어쩐지… 멋쩍어 보였다.
네가 멋쩍을 줄도 알았니.
“뭘. 드디어 녹음 다 끝냈으니 됐지.”
“…그래도 죄송해요. 제가 더 잘했으면….”
“넌 잘했어.”
“?”
“저 양반들이 너무 까다로워서 그렇지.”
나는 이를 부득, 갈았다.
뭔 놈의 애들이 저렇게 완벽주의자야?
좀 쉬엄쉬엄 가지.
어쩐지 나는 울컥했다.
중간부터는 류보라도 충분히 잘했는데, 저들의 눈이 과하게 높았다.
“넌 잘했어. 하여간 컬러즈 돌들…. 눈만 높아 갖곤…. 뭐, 어? 도라지즙이라도 하나 주고 시키든가….”
카메라도 없겠다, 나는 마음껏 툴툴댔다.
아직 데뷔도 안 한 애한테 20년 차 정도의 수준을 원하면 대체 어쩌자는 거냐.
애 성대라도 상하면 책임질 건가?
괜한 짜증에 씩씩거리고 있는데, 류보라가 나를 빤히 보았다.
…너무 혼자 씩씩댔나?
“왜.”
“아녜요. 뭐, 먹고 싶은 거 있어요?”
“배고프긴 하네.”
하도 오래 서 있었더니.
진이 다 빠져서 배가 고파.
“제가 사 드릴게요.”
“됐다. 네가 돈이-”
나는 괜찮다고 손을 저으려다가, 급정거했다.
근데, 얘 그렇게 아역 생활 오랫동안 했으면 돈 많지 않나?
“아니지, 너 돈 많지?”
“….”
류보라는 황당한 눈치였다.
“야, 오랜만에 우리 참치회 좀 먹자.”
“…돈 안 많거든요?”
“왜? 너 일 오래 했잖아.”
“진작에 다 썼죠.”
“그 많은 걸?”
대체 어디다?
나는 돈 쓸 시간도 없어서 그대로 남아 있던 통장 잔고를 떠올렸다.
그립다, 백녹하 시절.
“제가 굳이 연습생 생활 하는 거 보면 모르시겠어요?”
“어라, 돈 없어서 아이돌 하려는 거였어?”
“그거 말고 무슨 이유가 있죠, 대체?”
“이유야 많지. 네 이유가 그거인 것뿐이고.”
“….”
딱히 반박할 말은 없었는지, 류보라는 어깨만 으쓱였다.
“그렇구나. 그럼 소소한 거 먹자.”
“뭐 먹고 싶은데요.”
“참치김밥.”
“….”
왜, 인마.
난 참치 좋아해.
“그래요, 그건 사 드릴 수 있어요. 가요.”
“오예.”
나는 실실 웃으며 류보라를 따라갔다.
미안하지만 윤청은 정말 돈이 없거든….
참치김밥 사는 것도 약간 망설여질 정도로….
다이어트 음식을 살 돈은 회사에서 지원해 주지만, 이런 거 살 돈은 지원 안 해 준단 말이다.
그렇게 들어간 분식집.
“참치김밥 하나 부탁드려요.”
류보라는 참치김밥 하나만 덜렁 시켰다.
얘가 미쳤나…?
“넌 안 먹어?”
“먹죠.”
“근데 왜 하나만 시켜?”
“…한 줄이면 둘이서 먹기 충분하니까?”
“미쳤냐?”
나는 그제야 류보라의 마른 몸을 보았다.
하여간 마른 놈들은 나랑 기준이 달라, 기준이.
“사장님, 참치김밥 한 줄 더요.”
나는 바로 주문 추가를 했다.
마음 같아선 떡볶이 하나, 라면 하나, 김치볶음밥 하나도 시키고 싶은데 참는 거다, 내가.
내일 촬영 있으니까 참는 거라고.
“참치김밥 나왔습니다.”
“감사합니다.”
“근데 아가씨들.”
“넵?”
“그, 거기 나온 아가씨들 아냐?”
헉.
벌써 우리를 알아보는 사람이 있다니.
윤청의 몸에 너무 익숙해져 있었다.
필사적으로 부정하려는 그 순간,
“그, 드라마 나온 아가씨 맞지?”
사장님이 먼저 류보라를 보며 선수 쳤다.
앗.
내가 아니라 류보라였군.
“네, 맞아요.”
“이야, 내가 아가씨 드라마, 그거, 제목 뭐지? 그 케이디씨에서 하던 그거.”
“아, 한 지붕 세 가족. 말씀하시는….”
“그래요, 그거! 내가 거기에서 아가씨 진짜 좋아했는데. 봉심이!”
푸흡.
봉심이.
류보라랑 정말 안 어울리는 순박하고 귀여운 이름이었다.
“요즘은 왜 연기 안 해요?”
“아….”
류보라가 우물쭈물했다.
“아, 얘 아이돌 준비하느라 그래요, 사장님. 얘가 연기도 잘하는데, 또 노래도 기막히게 잘해서.”
결국 침묵을 못 참는 내가 끼어들었다.
“어머! 그래요? 난 몰랐지.”
“춤도 잘 춘다니까요. 한번 보셔야 되는데.”
“아이고, 대박이네. 요즘 배우들은 못하는 게 없긴 하더라.”
“그렇죠? 얘 아이돌 해도 잘하겠죠?”
“그치. 워낙 예뻐서는. 뭘 해도 다 되지. 이런 얼굴이면. 근데 아가씨도 예쁜데?”
“저도 얘 옆에서 같이 아이돌 하려고요. 응원해 주세요. 저희가 그, 금요일 밤 10시에 엠텐에서 하는 프로그램에 나오는데….”
사장님과의 짤막하지만 투 머치 인포메이션 대잔치였던 대화가 끝났다.
야무지게 우리한테 투표하는 방법까지 다 알려 드릴 정도였다.
…이게 문제다. 이게 문제야.
우리 엄마뻘 어른을 보면 입이 자동으로 나불대는 게 문제다.
“언니 친화력 되게 좋네요?”
“조용히 해.”
“원래 이런 캐릭터 아니었던 것 같은데. 희온 언니 말대로.”
“사람은 변해.”
아무 말로 대충 넘어가려는데, 류보라의 표정이 쓸쓸해졌다.
“그렇죠. 사람은 변하죠.”
“아니, 그렇다고 내 말을 그렇게 받아들이라는 건 아니었는데.”
“가족들도 변하더라고요. 돈맛 보니까.”
류보라는 입에 참치김밥 하나를 넣었다.
“돈을 벌어 오면, 더 큰돈을 원하게 되고. 더 큰돈을 벌어 오면 더더 큰돈을 원하게 되고.”
“….”
“남동생, 처음엔 중국 유학으로 한두 달 간다더니, 갑자기 미국 유학 10년 되고. 아빠는 사업병 걸리고. 엄마는 갑자기 부동산에 욕심 생기고.”
류보라는 계속해서 참치김밥을 욱여넣기 시작했다.
“뭐, 다 그런 거 아니겠어요? 김금은 저한테 K 장녀라 그러더라고요. 어이가 없어서.”
피식, 웃는데도 그 웃음이 웃는 게 아니었다.
“그렇게 속이 답답해지니까, 난독증이 생겼어요. 글을 읽어도 눈에 들어오질 않더라고요. 그러니까 당연히 대본도 못 읽겠고.”
그랬구나.
나는 그제야 류보라의 행동들이 하나씩 이해되기 시작했다.
“대본을 못 읽는데 연기가 가능하겠어요? 당연히 안 되지. 근데 이미 가족들 씀씀이는 다 커졌으니까. 돈은 계속 벌어 와야겠고. 그때 컬러즈가 아이돌 해 보지 않겠냐고 그랬어요. 당연히 우리 부모님은 쌍수 들고 환영했죠. 제가 버리는 패가 되는 줄 알았는데, 그래도 희망이 생겼으니까.”
“버리는 패라니. 그럴 리가 없지.”
“….”
“너는 우리의 우승 패야.”
나는 조용히 손을 들었다.
“사장님, 저희 라면도 주세요.”
이렇게 잘 먹을 수 있는데 뭔 참치김밥 한 줄 타령이야.
나는 어느새 깨끗하게 비워진 접시를 보며 눈썹을 꿈틀거렸다.
“난독증은 그래도 많이 나아진 것 같던데. 가사지 보니까.”
“회사에서 치료 지원을 많이 해 줘서요. 지금은 좀 괜찮아졌어요. 애초에 스트레스 때문에 갑자기 생긴 거라. 계속 치료받고 스트레스 줄이면 나아질 수도 있다네요.”
“스트레스를 덜 받는 게 포인트네.”
“…그렇죠.”
순식간에 라면이 나왔다.
나는 앞접시에 라면을 덜어서 류보라에게 건넸다.
“일단 탄수화물이 스트레스 저하에 도움이 되는 건 매우 과학적인 사실이야.”
“…확실해요?”
“연주홍 봐라. 걔 맨날 탄수화물 먹으니까 애가 해맑잖아.”
어쩐지 류보라는 납득한 것 같았다.
바로 라면을 입에 넣는 것을 보면.
“밥 벌어먹으려면, 아이돌 되어야겠네.”
“그렇죠.”
“그럼 하면 되지.”
“…언니는 되게… 사람이….”
류보라는 혼란스러운 얼굴이었다.
“제가 별로 안 불쌍한가 봐요?”
“왜 불쌍해야 되는데?”
난 정말로 의아했다.
“사람은 다 돈 벌려고 일하는 거야. 너도 돈 벌려고 일하고 있는 건데, 그게 불쌍할 게 뭐가 있어.”
“…가족들… 때문에 돈 벌려고 하는 거니까?”
“아, 그거.”
나는 라면 국물을 한 입 떠서 먹었다.
이 집 라면 잘하네.
주홍이 데려와야겠다.
라면 장인은 이런 것을 두고 말하는 거라고 알려 줘야겠어.
“곧 성인 되니까. 그때 연 끊으면 돼.”
“그게 말이 쉽-”
“쉽지 않지. 근데 하면 돼.”
나는 류보라의 앞접시에도 국물을 떠 주었다.
“뭐든, 하면 돼. 안 하면 안 되고. 하면 돼.”
“….”
“옳은 건 없어. 내가 옳은 걸 말해 줄 수도 없고. 네 마음 가는 대로 하는 거야.”
나는 멍 때리는 류보라의 숟가락 위에, 김치도 얹어 주었다.
“그래도 하나 확실한 건 있어. 하면 된다는 거야. 네가 결정한 게 뭐든 간에.”
그리고 류보라의 손을 들어서 류보라의 입에 숟가락을 넣었다.
사람이 일단 먹어야 기운 차리지.
“처음엔 안 될 수도 있어. 하지만 또 하다 보면 언젠간 돼. 너 연예계 공식 규칙 몰라? ‘존버는 성공한다.’”
“…참 나.”
류보라는 김치를 다 먹더니, 라면을 노려보았다.
…더 먹고 싶다는 건가?
나는 라면을 한 술 더 떠서 류보라의 앞접시에 두었다.
그럼 먹으면 되지, 왜 먹을 걸 노려봐.
“일단 아이돌… 해 봐. 하다 보면 또, 괜찮을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지. 아니면 또 어때.”
“그럼 기껏 데뷔했는데 제가 탈퇴한다 하면 어쩌게요?”
“그땐 또 내가 라면을 사 줘야겠지.”
“….”
“나도 네 앞에서 버텨야지. 안 돼, 인마. 탈퇴는 절대 안 돼, 하고.”
“허.”
류보라는 피식, 웃었다.
“데뷔나 해요, 언니.”
“니도 데뷔나 하고 탈퇴 얘기를 해라. 순위도 나보다 낮은 게.”
흥.
우리는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그냥 라면만 먹었다.
물론 계산은 류보라가 다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