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ame The Leader of a Girl Group Destined To Fail RAW novel - Chapter (46)
46화.
“저희 왔어요. 아이스크림 드세요!”
“늦었네? 둘이 뭐, 노가리 까다 왔어?”
“음. 그냥 친목 도모 정도?”
“…니네가?”
이경아는 그럴 리가 없는데, 하는 눈으로 우리 둘을 번갈아 봤다.
조희온은 입만 꾹 다문 채 씩씩거리고 있었고, 나는 상쾌한 기분으로 웃고 있었다.
“누가 샀어, 이거?”
“희온이가 샀죠. 희온아, 고마워.”
“….”
“오, 희온이가 샀어? 잘 먹을게.”
“…네.”
류보라는 조희온의 얼굴을 보고, 무언가를 직감한 눈치였다.
수박 맛 아이스크림을 하나 입에 넣으면서 묘하게 입꼬리를 끌어 올리는 것이, 꽤나 의미심장해 보였다.
뭘 또 저렇게 히죽대니. 무섭게.
그렇게 아이스크림을 하나씩 먹고 나서, 우리는 다시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연습으로 돌아갔다.
이어지지 못한 약속
미어지는 마음으로
그대를
나는
조희온은 내 말이 어지간히도 분했는지, 아까보다 훨씬 이 악물고 노래를 불렀다.
진작 저렇게 좀 하지.
그럼 중간 평가 때 그렇게 까이진 않았을 텐데.
“와, 희온아. 아이스크림 먹더니 뭔 득음이라도 한 거야? 아까보다 훨씬 나은데?”
이경아도 비슷한 생각이었는지, 정말 감탄한 목소리였다.
“좋아, 이 느낌 살려서 다시 한번 가 보자!”
아이고, 뿌듯해라.
나는 조용히 웃었다.
그러나 아직 완전히 웃을 수는 없었다.
나는 핸드폰을 꺼내 오늘 날짜를 보았다.
오늘은 8월 3일.
본무대까지 이틀이 남았다.
그리고 원래 윤청의 운명대로라면, 내일 바로 ‘그 일’이 터진다.
윤청이 본무대를 완전히 망치게 되고, 재기할 수 없을 정도로 이미지가 망가진 그 일이.
띠링!
[‘메뉴컬’ 윤청, 세 번째 미션 실수 남발… 대체 언제까지?] [윤청, 완벽히 관리하지 못한 성대, 왜?] [‘메뉴컬’ 최저 득표수 기록한 윤청&보컬 포지션. 비난 쏟아져…]그래.
원래대로라면 이런 기사들이 쏟아질 그 일 말이다.
나는 조희온을 슬쩍 보았다.
과연 이번에도 똑같은 일이 반복될까?
“청아, 아이스크림 뭐뭐 남았어? 하나 더 먹고 하자. 덥다.”
이경아가 냉장고에 넣어 둔 아이스크림을 마저 살폈다.
“아이스크림 콘 있네? 나 이거 먹어도 돼?”
“네, 그거 어차피 땅콩 올라가 있는 거라, 저는 못 먹어요.”
“왜? 너 땅콩 못 먹어?”
“알레르기가 있어 가지구.”
“헉.”
이경아는 살짝 놀라며 아이스크림을 다시 냉장고에 넣었다.
“청이 네가 알레르기 있는 줄은 몰랐네. 땅콩만 조심하면 돼?”
“네, 다른 건 알레르기가 없는데 유난히 땅콩에만 알레르기가 있네요.”
조희온과 류보라도 아이스크림을 하나씩 집어 들었다.
“이상하다. 너 알레르기, 복숭아에 있는 거 아니었어?”
“응? 아닌데? 땅콩이야.”
조희온은, 고개를 갸웃했다.
뭔가 이상하다는 듯이.
“그래?”
“응. 아까도 나 복숭아 아이스크림 먹었잖아.”
나는 먹다 남은 복숭아 아이스크림 쓰레기를 가리켰다.
그제야 조희온은 고개를 끄덕였다.
“나 근데 알레르기 있다고 말한 적 없는데. 어떻게 알았어?”
내 질문에 조희온은 흠칫했다가 어깨를 으쓱였다.
“너 숙소에서 말했었어. 네가 말해 놓고 잊었나 보지.”
“…그래?”
나는 그냥 넘어갔다.
“청이 뭐 먹을 때 땅콩 조심해야 되겠네. 우리도 땅콩 없는 거 먹자.”
“그럼 언니 탄탄멘 못 먹어요?”
류보라가 물끄러미 나를 보았다.
“못 먹지.”
“땅콩버터도?”
“못 먹지.”
“…불쌍하네요. 땅콩버터 토스트 맛있는데.”
“…나도 슬퍼.”
우리는 사이좋게 아이스크림을 하나씩 나눠 먹었다.
그리고 다시 연습에 돌입했다.
정말로, 이틀밖에 남지 않았으니까.
***
“…복숭아가 아니라 땅콩에 알레르기가 있었다고?”
고급 세단.
차 뒷좌석에는 아직 앳된 티가 나는 두 여자가 앉아 있었다.
그리고 운전석에는 제법 성공한 티가 나는 여자가 앉아 있었다.
운전석에 앉은 여자는 백미러로 뒤에 앉은 여자들을 살폈다.
“네, 복숭아 아이스크림 잘만 먹던데요?”
“…이상하네.”
운전석의 여자는 나직하게 중얼거렸다.
“그때 전 소속사 같이 연습했던 언니는, 걔가 복숭아 알레르기 있다고 하지 않았어?”
뒷좌석에 앉은 검은색 긴 머리의 여자가 말했다.
그녀는 운전석에 앉은 여자와 꽤 긴밀한 사이였다.
그리고, ‘메뉴컬’에 참여하고 있는 연습생이기도 했다.
“희온이 너, 제대로 들은 거 맞지?”
“맞다니까. 몇 번을 말해. 정 헷갈리면 네가 물어보든가.”
조희온은 김려유의 의심에 짜증 가득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러자, 바로 운전석에 앉아 있던 김 이사의 눈썹이 치켜 올라갔다.
조희온은 움찔, 하며 고개를 창밖으로 돌렸다.
“그럼 복숭아 껍질 가루가 아니라, 땅콩 가루로 해야겠네.”
김 이사는 핸들을 돌리며 말했다.
“걔 어차피 매일 아침마다 닭 가슴살만 먹어서 그렇게 어렵지도 않을 것 같아요. 숙소에서 걔만 닭 가슴살 먹기도 하고.”
김려유는 실시간 SNS 타임라인 반응을 살피며 말했다.
방송에서는 아직 두 번째 미션 무대가 방영 중이었다.
그러나 벌써부터 김려유에 대한 비난이 커지고 있었다.
날이 가면 갈수록, 김려유에 대한 여론은 불리해졌다.
이대로 가다간, 1위 자리는커녕 데뷔권 안에 안착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김려유는 계속해서 차오르는 분노를 꾹 눌렀다.
이게 다 윤청 때문이었다.
별것도 아닌 게, 갑자기 머리를 굴리니 화가 나 미칠 것 같다.
차라리 류보라나 서백영, 김금이 선전했다면 별 타격이 없었을 것이다.
그들은 원래부터가 데뷔 유력 후보였으니까.
그러나 윤청은, 정말 12위나 하지 않으면 다행인 수준이었다.
컬러즈 월말 평가 때마다 남들한테 민폐나 끼쳐서 모두에게 무시받던 애가.
이젠 1위 유력 후보 중 하나였다.
아무리 베네핏 때문이라곤 하지만, 순위 발표식에서는 1위까지 차지했다.
이대로 둘 순 없었다.
어떻게든 저지해야 했다.
“내일 땅콩 가루 닭 가슴살 사이에 조금 넣죠. 걔 알레르기 심해서 조금만 먹어도 온몸에 두드러기 나고 성대 다 붓는다던데.”
땅콩 가루를 넣겠다고?
조희온은 조금 당황해서 김려유를 보았다.
설마설마했는데 진짜로 하는 건가?
조희온은 김려유의 실체를 아는 몇 없는 사람 중 하나였다.
연습생들도 막연히 김려유를 두려워하긴 하지만, 그냥 기가 많이 센 언니 정도로만 알고 있었다.
그러나 김려유는 그 이상이었다.
자신의 목표를 위해서라면 남을 해치는 것 정도는 ‘당연히’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
그게 김려유였다.
혹시나 데뷔 후 인성 논란이라도 터질까, 김 이사가 김려유를 억눌렀기 때문에 그나마 아직까지 큰 문제가 터지지 않은 것뿐이었다.
하지만 김려유는 조희온에게만큼은 여과 없이 자신의 진짜 성격을 드러냈다.
‘물론 그렇다고 자기 인성을 완전히 감춘 건 아니지만….’
김려유는 김 이사가 모르는 곳에선 온갖 악행을 저지르고 다녔다.
약해 보인다 싶으면 괴롭히는 게 그녀의 취미였다.
고된 연습생 생활을 하며 얻은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서가 그 이유였다.
그리고 김려유는 조희온이 그런 제 모습을 폭로하지 못하도록, 자신의 만행에 동참하게 했다.
이를테면, 윤청에게 벌레를 먹이는 것과 같은 것들.
“근데 어차피 약 먹으면 다 낫지 않아?”
조희온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렇지도 않아. 미리 약을 먹어야 금방 가라앉지, 한번 알레르기가 나기 시작하면 최소 며칠은 있어야 완전히 회복해. 무대 이틀 남았으니까 내일 먹으면 하루 이틀 정도는 완전히 맛 가겠지.”
“….”
조희온은 떨떠름한 표정이었다.
“왜?”
그걸 눈치 챈 김려유가 날카롭게 물었다.
“아니, 근데 들키면 어떡해?”
“뭐 어떻게 들킬 건데. 국과수에 맡기기라도 할 거야?”
김려유는 피식, 비웃었다.
“지가 어디서 잘못 처먹은 거 아니냐고 몰아가면 되지.”
“아니면 자신 없어서 자작극 한 거라고 몰면 돼.”
김 이사도 냉정하게 말했다.
“그런 연습생들 있어. 연습 안 해 놓고 월말 평가 때 욕 덜 먹으려고 아프다고 거짓말하는 애들.”
“그래. 걔 그리고 원래 월말 평가 때도 죽 쒔잖아. 그때 기록 가져와서 그냥 평가 때마다 같은 핑계 대는 거 아니냐고 하면 되지.”
“프로가 되고 싶다면 핑계가 안 먹힌다고 말해야겠지. 만약 분위기 이상하다 싶으면 내가 개입해서 적당히 흐름 조성하면 돼.”
조희온은 두 사람의 대화에 점점 안색이 새파래졌다.
핏줄 아니랄까 봐, 정말이지 둘이 말하는 거나 생각하는 게 완전히 똑같았다.
똑같이 소름끼쳤다.
“조금… 위험하지 않을까요? 그거 죽을 수도 있다고, 인터넷에서 그러던데….”
“사람 그렇게 쉽게 안 죽어. 많이 뿌리는 것도 아니고, 조금만 뿌릴 거야.”
그러니까 그걸 어떻게 아냐니까.
치사량을 정확하게 아는 것도 아니고.
조희온은 질리기 시작했다.
이러다가 진짜 죽이기라도 하는 거 아냐?
“희온이 무서워?”
김려유는 낄낄대며 조희온을 비웃었다.
“아니 뭐 이렇게 겁이 많아. 그냥 조금만 뿌리면 되지. 그리고 걔 당연히 약 가지고 있을걸. 알레르기 있는 애들은 다 들고 다니잖아.”
“만약 없으면…?”
“그럼 지가 조심 못 한 탓이지.”
그게 어떻게 그렇게 된다는 건지.
조희온은 대답하지 못했다.
김려유는 그런 조희온의 흔들림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김려유는 동시에, 그런 조희온을 다잡을 무기도 알고 있었다.
“희온아, 너 데뷔 안 해? 너 나이가 20살이야. 이거 떨어지면 뭐, 다른 소속사에서 너 받아 줄 것 같아? 아이돌 나이 마지노선 20살인 거 알잖아.”
김 이사도 고개를 끄덕이며 동조했다.
“아이돌 안 되면 네가 뭐 할 건 있니? 배우 생각하는 건 아니지? 네가 류보라급 얼굴도 아니고.”
“아 걔는 그 얼굴 들고 왜 아이돌판 들어왔대요?”
두 사람은 비웃음만 흘렸다.
그러나 조희온은 웃을 수 없었다.
슬슬 가족들도 그녀에게 지원을 끊겠다고 통보했기 때문이었다.
이번에 데뷔하지 못하면, 연예인의 길은 꼼짝없이 포기해야 한다.
10년 이상을 연습했는데도, 이렇게 덧없이.
“…정말로 저 심사 위원 픽으로 넣어 주시는 거 맞죠?”
“컬러즈 내 손에 있어. 그거 하나 못 해 주겠어, 내가?”
김 이사는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결국 그 말에 조희온은 무너졌다.
그래.
딱 한 번만 눈 감으면 데뷔할 수 있다.
그것도 컬러즈의 아이돌로.
설마 죽기야 하겠는가. 양을 조절하면 될 것이다.
“근데… 그럼 어떻게 넣으시게요?”
조희온의 질문에, 김 이사는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김려유도 마찬가지였다.
이상한 분위기에, 조희온은 눈살을 찌푸렸다.
뭐지?
“희온아, 내가 너네 숙소에 뭐, 도둑처럼 숨어들어 갈 순 없잖아.”
김 이사의 말에 조희온은 침묵했다.
그럼 그 말은…
“당연히 너가 해야지.”
“뭐?”
김려유가 쐐기를 아예 박아 버렸다.
조희온은 황당해서 입을 벌렸다.
“왜 나야? 너도 있잖아. 너도 같은 숙소 살면서 왜…!”
“내가 하면 너무 티나. 근데 너는 같은 팀이잖아. 윤청이 골로 가면 너도 베네핏 잃어버리는 건데. 굳이 같은 팀을 의심하겠어?”
김려유는 생글생글 웃었다.
“이번 한 번만 부탁할게. 내가 알리바이 없으면 다들 당연히 나부터 의심할걸.”
그야 당연하지.
네가 제일 미친년인 건 다들 아는 사실이니까.
조희온은 어이가 없어서 부들부들 떨기만 했다.
“대신 땅콩 가루는 지금 내가 구해다 줄게.”
김 이사는 시계를 힐끗 보았다.
새벽이라 구하긴 힘들겠지만, 불가능할 건 없다.
“어차피 3시에서 7시 사이는, 별다른 얘기가 없을 땐 카메라가 켜지지 않는 시간이야. 촬영하겠다는 말도 따로 없었으니까 카메라는 꺼져 있어. 알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
“….”
조희온은 고개를 떨궜다.
기분이 매우 복잡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