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 Hunter Killer RAW novel - Chapter 109
109
109. 환상의 힘
저벅저벅.
여울은 한쪽 어깨에 유리관을 짊어지고 그 방 안으로 들어왔다. 가로 2미터, 세로 1.5미터에 폭은 70센티미터 정도 되는 유리관이다.
그 안에는 흙이 반쯤 채워져 있고 붉은 개미들이 가득하다. 그곳에는 누구의 것인지 모르는 팔 하나가 들어 있었고 개미들이 달라붙자 빠르게 뼈가 드러났다.
이 회장과 오 실장은 그 유리관을 보고는 공포에 질렸다.
“아, 안 돼! 제발!”
보라는 방 밖으로 걸음을 옮기며 말했다.
“던져 주세요.”
여울은 고개를 한 번 끄덕이고는 유리관을 방 안에 강하게 던졌다.
와장창!!
단단한 벽에 부딪친 유리관은 산산조각이 나면서 수천 마리의 붉은 개미들이 튀어나와 이 회장과 오 실장의 몸을 뒤덮었다. 여울은 자신에게도 오는 개미들을 보며 바로 문을 닫았다.
“크아아악!!”
“끄르륵, 끄으으아아!”
방 안에서는 그들의 해괴한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여울은 아직도 그 방문을 분노의 눈으로 쳐다보고 있는 보라의 어깨를 돌려세우고는 걸음을 옮겼다.
“메티, 여기 다 태워 버려.”
여울의 말과 함께 안주머니에서 작은 불꽃 하나가 튀어나와 뒤로 날아갔다. 복도에 널려 있는 시체들은 메티에 의해 화악 타올랐다.
보라는 몇 걸음 가지 못해 다리가 풀려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여울은 담담하게 그녀를 안아 들고는 지하 주차장 쪽으로 나왔다.
“구해 냈군요.”
“보라…….”
뒤쪽 입구를 지키고 있던 지천욱, 한지연과 마주쳤다. 여울은 그들에게 눈인사를 하고는 발걸음을 옮겼다.
* * *
보라는 신체적으로는 문제가 없으나 정신적으로는 불안한 상태이기에 며칠간 휴양소에 머물면서 전문적인 정신과 치료를 받기로 했다. 치료가 필요한 자들 몇 명이 머무는 기관, 즉, 정신요양원이다.
여울은 그곳에 보라를 맡기고 뒤돌아섰다. 며칠 동안 혼자 수언을 간호하고 있었을 은서에게 가려는 것이다. 그때, 미세하게 물리적인 간섭이 느껴졌다. 뒤돌아보니 보라가 가녀린 손가락으로 자신의 옷자락 끝을 잡고 있는 것이 보였다.
“가지…… 마요…….”
도도하고 당찼던 보라의 한없이 연약한 모습이 마음을 사정없이 흔든다. 여울은 고개를 살짝 숙이고 가만히 있다가 휴대전화를 꺼내었다.
신한병원 수언의 병실, 은서는 여울의 전화를 받고 있다.
“후우…… 다행이다. 아빠는 다친 데 없고? 보라 언니 얼른 보고 싶다. 응! 알았어, 천천히 와!”
은서는 전화를 끊고는 미동도 없이 누워 있는 수언을 내려다보았다. 그동안 영양제는 충분히 투여하고 있지만 운동량이 없으니 전보다 수척해 보이는 것은 사실이다.
“수언 오빠, 아빠가 보라 언니 구했대. 내가 말한 대로지? 역시 아빠는 마음먹으면 뭐든 다 해낸다니까.”
쿠우우우우웅!
그때, 거대한 진동이 느껴졌다. 요즘은 이런 진동이 느껴지면 지진보다는 게이트를 먼저 의심하게 된다. 몬스터들이 달라붙어 건물을 닥치는 대로 두들기고 부수기 때문이다.
은서는 창문을 열어 병원 밖을 확인했다. 몬스터나 게이트는 보이지 않고 사람들은 미친 듯이 뛰어나오고 있다. 이런 경우에는 더 위험하다. 병원 안쪽에 게이트가 생겼다는 뜻이다.
은서는 오우거 주머니에서 검을 뽑아 들며 병실 문을 열었다.
“꺄아아악!!”
“으허억!!”
콰광! 콰광!
복도에 여기저기 사람이 찢겨 있고 비명 소리가 난무한다. 예상 이상으로 패닉 상태다. 이럴 경우를 대비해서 병원이나 학교 등 유동 인구가 많은 곳에는 그만한 대비 인력이 경계하고 있다. 그런데 이 정도라면 최소한 B등급 이상의 게이트라는 것이다.
쿵! 쿵! 쿠웅!
육중한 진동과 함께 한 몬스터가 복도에 모습을 드러냈다. 병실 천장을 뚫을 듯한 덩치, 두께가 1미터는 될 법한 주먹, 그 주먹에서 피어오르는 용광로 같은 불빛과 아찔한 열기, 케라브에서 본 적이 없는 몬스터다. 즉, 31층 이상에서 보이는 몬스터라는 뜻이다.
은서는 바로 뒤돌아서 병실 안으로 들어가 문을 닫았다. 그러고는 간이침대와 서랍장 등 병실에 있는 모든 물건으로 입구를 막았다.
쿵! 쿵! 쿵!
진동이 점점 더 가까워지고 있다. 놈은 이쪽으로 오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은서는 검을 앞세우고 병실 문을 바라보고 있었다. 진동 소리에 따라 두려움도 점점 더 가증되었다.
“수언…… 수언 오빠를 지켜야 해…….”
은서는 검을 더욱 강하게 말아 쥐었다. 그 힘을 써야 한다. 하지만 그때 마주했던 얼굴과 기운이 떠올라 두려움이 온몸을 감싼다.
콰직!!
병실 문이 종이처럼 구겨졌다.
콰앙!
문이 날아가며 아까 봤던 그 고릴라 같은 괴물이 모습을 드러냈다.
“크하아아!!”
놈은 입을 쩌억 벌리며 포효를 하고는 두 앞발을 바닥에 강하게 내려찍으며 은서를 덮쳐 왔다. 그녀는 불타오르는 놈의 주먹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환상…… 사 와코.”
콰아아아앙!!
공중에서 검은 원이 생겨나며 자주색 코트를 입고 매끈한 일본도를 든 묘령의 여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녀는 내려오면서 바로 그 괴물의 머리통을 하이힐로 밟아 바닥에 찍었다.
“클렉, 케헥!”
무서운 기세로 자신을 덮쳐 오던 괴물이 지금은 은서의 발밑에 누워 있다. 하이힐 사이로 피어오르는 연기와 함께 그녀 특유의 압도적인 포스가 병실 전체를 뒤덮었다.
사 와코는 느릿하게 고개를 돌려 은서를 바라보았다. 환상이 독자적인 행동을? 의문과 함께 은서의 몸은 빳빳하게 굳어 아무런 말도 행동도 하지 못했다.
그때, 사 와코가 앞을 보지도 않고 일본도를 아래로 가볍게 휘둘렀다.
서걱!
촤아아아악!
그러자 괴물의 두꺼운 목이 깔끔하게 잘리며 검붉은 피와 함께 후끈한 열기가 뿜어져 나왔다.
아래에서부터 올라오는 희뿌연 연기를 온몸으로 아무렇지도 않게 맞고 있는 사 와코의 모습에서 감히 범접할 수 없는 기운이 느껴졌다. 무언가 이상하다. 실체감이 30퍼센트라면 수언과 비슷할 텐데 전혀 그렇게 보이지가 않는다.
환상 소환 시간은 6분, 지금도 시간은 흐르고 있다. 은서는 절대 명령을 기다리는 모습으로 느껴지지 않는 사 와코를 보며 입을 열었다.
“이 상황을…… 정리해 줘.”
사와코는 일본도를 옆으로 뻗고는 눈앞에서 사라졌다. 그와 동시에 숨 막힐 듯한 기운도 거짓말처럼 없어졌다.
“하아, 하아, 후우…….”
은서는 두 손을 무릎에 대고 몸을 숙인 채 답답했던 숨을 몰아쉬었다.
후우우웅!
그때였다. 앞에 있는 주변 집기들이 공중에 천천히 떠오르고 있다. 은서는 그 모습을 보고는 온몸에서 소름이 확 돋아났다.
‘설마…….’
뒤돌아서니 상체를 일으키고 흐리멍덩한 눈으로 두 손을 뻗고 있는 수언이 보였다.
“헙!”
은서는 헛바람을 집어삼키며 수언을 확 끌어안았다. 수언은 그 상태로 은서의 귓가에 중얼거렸다.
“지켜 줄게, 내가 지키기로 약속…….”
“흐읍, 오빠아…….”
은서는 지금 수언이가 무의식중에 하는 말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다.
‘으, 은서야, 내가 지켜 줄게, 여울 아저씨랑 약속했으니까.’
그가 버릇처럼 자주 하던 말이다.
수언은 갑자기 느껴지는 위험한 기운을 감지하고 몸이 먼저 반응하여 자동적으로 일어나게 되었다. 결과적으로 사 와코의 환상이 수언을 깨운 것이다.
* * *
그 시각, 여울은 보라와 함께 요양원 TV로 특별드라마를 보고 있었다. 제목은 ‘사랑과 전투’로 딸을 버린 엄마가 다시 딸을 찾아왔는데 아빠가 다른 여자와 같이 살고 있어서 피눈물을 흘리는 내용이었다. 엄마가 복수를 다짐하는 중에 갑자기 화면이 바뀌며 뉴스 속보가 떴다.
-신한병원 내부 A등급 게이트 출현, 현재 배치된 대원들로는 진압 불가, 길드 지원 지연.
여울은 뉴스를 보고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가 멈칫했다. 그때, 보라가 등을 떠밀며 말했다.
“뭐 해요? 진짜 나 신경 쓰여서 그래요? 설레려고 그러네. 얼른 가요!”
보라의 말에 여울은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대답했다.
“금방 오겠다.”
보라는 빠르게 사라지는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가슴에 한 손을 올렸다. 심장이 비정상적으로 빠르게 뛰고 있다.
“아…… 진짜.”
* * *
요양원과 신한병원은 여울이 전속력으로 달린다면 5분도 되지 않는 거리다. 그러나 그가 도착했을 때는 이미 상황이 정리되어 있는 상태였다.
‘화염고릴라와 화염도마뱀…….’
점점 더 강한 몬스터들이 게이트에서 나오고 있다. 그것도 같은 종류라도 케라브에서 만났을 때보다 훨씬 강한 놈들이…….
소녀가 케라브는 밖의 상황이 변하여 조기 졸업을 한 것이라고 했다. 그럼 아직 라칸보다도 더 강한 종류의 몬스터들이 더 있다는 것. 언제까지, 어디까지 더 올라갈까? 사람들은 5레벨부터 한계에 부딪치고 그 이상 한계를 깨기가 힘들다.
라칸급의 몬스터가 나오는 게이트만 열려도 멸망에 가까운 타격을 받을 것이다. 이제 소녀가 말했던 멸망의 날은 1년도 채 남지 않았다. 그때까지 마족들과의 결판을 내야 한다.
수언의 병실로 올라가는 길, 한 간호사가 방송국 기자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자주색 코트를 입은 엄청 예쁜 여성분이 혼자 게이트를 들어가더니 얼마 안 있어서 닫혔어요.”
“그 여성분은 어디로 가셨나요?”
“그게…… 안 나오셨어요. 확실히!”
자주색 코트, A등급 게이트를 혼자 닫고 나오지 않은 것을 보면 사 와코의 환상이 분명하다. 은서는 안전하다는 뜻이다.
박살이 나 있는 병실 안으로 침상 위에 걸터앉아 있는 수언이 보였다. 그 맞은편에는 어디 한 군데도 다치지 않은 은서가 보였다.
“아빠아!!”
“아, 아저씨?”
여울은 말없이 성큼성큼 다가가 가자마자 수언을 거칠게 안았다.
탁탁!
여울은 그의 등을 두 번 치고는 무겁게 한 마디를 내뱉었다.
“고맙다.”
수언은 은서를 구하기 위해 사 와코에게 덤벼들었다가 이런 일을 당한 것이다. 표현은 하지 않았지만 그가 깨어나지 못하는 것을 보며 마음이 죄책감이 느껴졌던 것이다.
* * *
언론은 세이버의 화재 이전에, 비리를 폭로하였다. 일반인들은 그 존재도 몰랐던 지하 6층에 위치한 수십여 개의 감금실, 그곳에는 재계의 실종된 유명 인사들 다수가 발견되었고 그 외에도 그곳에 감금되어 강제로 불공정한 계약을 맺었다는 이들이 속출했다.
검찰 측에서는 살해당한 세이버 대원들의 상흔이나 여러 가지 흔적을 분석한 결과, 다크나이트가 한 행동으로 추정된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기자회견 때의 경고로 인해 여울을 의심하는 네티즌들도 적지 않았다. 물증은 물론 알리바이까지 확실하니 검경 쪽에서 조사에 들어갈 수 없었다.
대신 꽤 많은 기자들이 그에게 인터뷰를 요청했다. 여울은 그중 신한길드와 호의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방송국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전 아닙니다만, 만약 맞는다면…… 어떻게 하실 겁니까?”
그 인터뷰 이후로 소문은 빠르게 사그라졌다. 그의 말마따나 그의 랭크는 S랭크다. 우리나라에서 세 명밖에 없고 전 세계적으로도 100명 내외의 초인적인 힘을 가진 S랭크. 스스로 죄를 인정하고 감옥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고서는 어떻게 할 방법이 없는 것이다.
죄에 대한 정확한 증거가 있고 막무가내로 나간다면 사회적으로 고립될 경우도 있으나 여울의 상황은 달랐다.
여울에 대한 의심과 관심은 그가 일본으로 떠나 있는 한 달 동안 깔끔하게 잊혔다.
일본에서 세 명의 마족을 잡고 한 달 만에 귀환한 여울은 바로 공무원 이진태를 찾아갔다.
“미국, 가겠습니다.”
앞으로 닥쳐올 몬스터들만을 대비하며 살기에는 세상이 너무 악하다. 아무도, 감히 올려다볼 생각도 들지 않도록 만들어야겠다.
여울은, 자신의 힘을 세상에 알리기로 결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