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 Hunter Killer RAW novel - Chapter 119
119
119. 짝사랑
수풀이 우거진 곳, 바위 위에 한 여인이 요염한 자세로 앉아 있고 몇 명의 남녀가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여울은 사라의 다리를 쳐다보고는 무미건조한 표정으로 물었다.
“부러졌나?”
여인, 사라는 두 손으로 바닥을 짚고, 팔을 안쪽으로 살짝 모으며 입을 열었다. 가슴이 파인 옷이기에 가슴골이 깊게 보였다.
“저도 잘…… 단장님이 봐주세요오.”
그녀의 교태가 가득 담긴 말에 여울이 뭐라고 입을 열려고 할 때, 보라가 먼저 앞으로 나서며 대답했다.
“치료는 제 전문이라.”
그 모습에 사라가 살짝 미간을 좁히며 보라와 여울을 번갈아 보았다. 보라는 그녀의 발목을 두 손으로 잡고 이리저리 살피며 말했다.
“아, 이거 심각한데?”
예상치 못한 말에 사라는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예, 에?”
보라는 진중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아플 수도 있으니까 꾹 참아요. 지금 치료 안 하면 나중에 잘라야 할 수도 있어요.”
“네? 그,그게 무슨…… 꺄악!”
우득!
보라는 그녀의 발을 부러지지 않을 정도로 확 꺾었다. 그러고는 일어나서 눈물을 찔끔 흘리는 그녀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앞으로도 이런 일 있으면 꼭 불러 줘요. 이 시간에 다른 대원이 죽든 말든 당신한테 먼저 달려올 테니까.”
“흡, 후, 후우…….”
사라는 보라의 말에 그녀가 일부러 아프게 했다는 것을 눈치채고는 씩씩거리며 노려보았지만,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가요.”
“그러지.”
여울은 직접 하고 싶은 말을 보라가 다 해 주었으니 조용히 그 뒤를 따라갔다. 사라는 보라의 뒷모습을 노려보며 앙심을 품었다.
‘저년이…….’
랭크도 높아 보이지 않는 여자가 그저 의료 지식 조금 있다고 여울의 옆에 붙어 다니는 것부터 마음에 들지 않았다.
언젠가는 큰 코를 다치게 만들 것이라고 다짐했다.
* * *
오늘 일정이 모두 끝난 숙소, 공동 여자 샤워실에서 뜨거운 물로 인한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있었다.
쏴아아아!
여인들은 나가면서 한 곳을 힐끔거렸다.
“뭘 저렇게 오래 씻나? 때 미나?”
“놔둬, 몸매 자랑하고 싶다잖아.”
“내가 들어올 때부터 씻고 있던 거 같은데…….”
그녀들의 시선이 향한 곳은 샤워실 정가운데에서 가슴을 활짝 펴고 긴 생머리를 반대로 넘기고 있는 진사라가 있었다.
“어이구, CF 스타 나셨네, 나섰어.”
사라는 이죽거리며 지나가는 여인들을 보며 피식 웃음을 흘렸다.
‘그래, 예쁘면 질투하는 게 정상이지, 마음대로 씹어 대렴, 하등한 것들…….’
그때, 탈의실 쪽에서 수군거림이 갑자기 확 커졌다.
“와아…….”
“우윳빛이다, 우유 완전.”
“부관님, 너무 예뻐요!”
부관님이라는 말에 사라가 그쪽으로 고개를 획 돌렸다. 여자 부관은 둘, 그중에 우윳빛이라고 불릴 만큼 하얀 피부도 한 명뿐이었다.
터벅, 터벅.
머리를 위로 틀어 올리고 타올로 가슴을 가리고 걸어오는 보라를 발견했다. 그녀의 속살은 햇빛을 보지 않고 살았던 사람처럼 티 없이 맑고 새하얀 피부였다.
사라도 하얀 편이었지만 그녀가 가까이 다가오니 확 차이가 났다.
촤아아악!
다른 사람들의 샤워기에 보라의 타올이 젖어 가슴에 딱 달라붙으며 그 윤곽이 제대로 드러났다.
그것을 정면으로 마주한 사라는 인상을 확 찌푸리며 고개를 내려 자신의 가슴을 보았다가 다시 보라를 쳐다보았다.
그때 딱 눈이 마주쳤다. 보라의 시선 천천히 내려가더니 살며시 한쪽 입꼬리가 올라갔다.
‘이익!’
사라는 죽을 만큼 창피함을 느끼며 바로 물을 끄고 샤워실을 급히 나갔다.
* * *
사라는 하얀색 커다란 롱티셔츠 하나만 대충 입고 침실로 돌아가는 길에 생각했다.
크기만 크지 전체적인 비율은 자신이 더 좋다.
피부도 적당히 하얀 게 인간미가 있지, 너무 병약해 보인다.
반면, 자신은 건강미도 넘쳐 보이지 않은가.
‘흐음…….’
사라는 들어가기 전에 옆 호실을 살짝 보았다.
그녀는 아득바득 우겨서 여자 숙소 가장 끝에 자리를 잡았다.
바로 옆부터 남자 침실인데 불미스러운 일이 생기지 말라고 여울과 부관들이 가운데 호실에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저 멀리 복도에서 사내들이 자신을 힐끔거리는 것이 보였다. 여울의 방은 조용했다.
사라는 새침한 표정을 한 번 짓고는 안으로 들어갔다.
그녀가 문을 닫자 복도에 있던 사내들이 중얼거렸다.
“와…… 나 합숙 생활 중에 이 시간이 제일 좋아.”
“나도. 쟤, 진짜 몸매 죽이지 않냐?”
“야, 그런 건 속으로만 생각해, 그러다 잡혀간다.”
“어휴…… 아무튼, 그래.”
* * *
사라의 방 안, 그녀는 문에 바짝 귀를 대고는 그들의 대화를 엿듣고 있었다.
‘그래, 내가 최고지.’
그녀는 자존감을 회복하고 씨익 미소 지으며 뒤돌아섰다. 그런데 방구석에 벌레 한 마리가 보였다.
그녀는 살짝 인상을 찌푸리며 바로 슬리퍼 한 짝을 벗어 내려치려다가 우뚝 멈춰 섰다.
옆방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린 탓이다.
사라는 슬리퍼를 내려놓고는 티셔츠를 잡아당겨 어깨 한쪽을 드러냈다. 그러고는 숨을 들이마셨다가 크게 소리쳤다.
“꺄아아아아악!”
쿠광쾅!
그와 동시에 옆방에서 둔탁한 소리가 들려왔다. 사라는 자신의 방문이 열리는 타이밍에 맞춰서 최대한 보호본능을 일으키는 표정으로 뒤돌아섰다.
끼익!
“저기 벌레가……!”
사라는 문을 연 장본인을 발견하고는 얼굴을 확 일그러트렸다.
“므슨 이리냐!”
각지고 큰 얼굴, 거대한 덩치, 방금 씻고 급하게 뛰어왔는지 젖은 민소매 티에 반바지 차림의 둥둥 부관이었다.
사라는 자신도 모르게 두 손으로 팔뚝을 감싸며 다시 소리쳤다.
“꺄앗! 갑자기 문을 열면 어떡해요!”
“으, 응?”
둥둥은 그녀의 행동에 어리둥절해 있다가 그 매끈한 어깨선에 시선이 멈췄다.
“빨리 나가라고욧! 변태예요?”
둥둥은 얼떨결에 뒷걸음질을 쳤고 문이 쾅 닫혔다. 복도에는 다른 남녀가 힐끗힐끗 그를 쳐다보고 있었다.
탁!
사라는 슬리퍼로 바로 벌레를 잡으며 인상을 확 찌푸렸다.
하필 가장 싫어하는 부관이다.
불발이라도 잡아 달라고 했어야 하는데 자기도 모르게 뭐라고 소리쳤다.
그때 그의 모습이 다시 떠올랐다. 젖은 나시, 혀 짧은 말투, 어벙한 행동…….
“으으!”
그녀는 몸서리를 치며 침대에 몸을 던졌다. 그래도 싫은 건 싫은 거다.
* * *
씻고 오던 여울은 사라의 방문을 바라보며 뒷머리를 긁적거리고 있는 둥둥을 발견했다.
“거기서 뭐하나.”
둥둥은 여울의 목소리에 고개를 홱 돌렸다. 아직도 그를 두려워하는 마음은 깊이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아, 그, 여다가 소리 텨서 벌네라고 핸는데, 절 내똣았슴니다.”
여울은 그를 가만히 바라보며 이해하려고 노력하다가 발끝을 돌렸다.
“들어와라.”
“넵!”
여울은 방 끝과 끝을 두리번거리다가 갈락의 대검 손잡이를 꺼내었다.
그러고는 끝으로 가서 대검의 아래 스위치를 눌렀다. 그러자 풍선에 바람이 들어가듯이 두꺼운 검신이 모양을 갖추었다.
갈락대검을 처음 본 둥둥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놀라워했다. 여울은 그에게 손짓했다.
“둥둥, 이걸 들어 봐라.”
“네? 넵!”
둥둥은 달려와 그것을 들어 올렸다. 7레벨에 근력 특성이라고는 해도 생각보다 손쉽게 들어 올리는 모습이 놀라웠다.
“7레벨 완성인가?”
“7네벨 안성…… 디연이 아니라고 핸슴니다.”
여울은 고개를 끄덕이며 손을 휘휘 저었다.
“그렇군, 이 대검, 네가 가져라.”
“네? 아, 가, 감따함니다! 감따함니다!”
둥둥은 대검을 끌어안고는 진심으로 좋아했다. 천장도 낮은데 그것을 들어서 위아래로 흔들거리고 별짓을 다 했다.
여울은 이제 디카르의 크기나 모양을 자유자재로 변환 가능하니 갈락대검이 필요가 없어졌다.
여울은 침상에 누우며 둥둥에게 말했다.
“집어넣고 그만 자라.”
“네엡!”
둥둥이 그 큰 덩치가 방방 뛰니 바닥이 울리는 느낌이다. 대검을 들고 있으니 몸무게랑 합쳐서 400킬로그램은 넘을 것이다.
여울은 바닥이 무너지기 전에 그를 잠재웠다.
* * *
다음 날, 어김없이 정해 준 지역에서 사냥 중에 진사라의 조는 깊은 숲속으로 들어왔다. 한 조원이 불안한 눈빛으로 주변을 둘러보며 말했다.
“아, 길이 여기가 아닌 것 같은데…….”
사라도 그 말에 동조했다.
“그러게…… 여기 좀 무서운데.”
사라의 반응에 조장 털보 사내가 가까이 얼굴을 들이대며 말했다.
“무서워? 괜찮아, 괜찮아, 오빠가 있잖아.”
“흐응…….”
못 미더웠다. 툭하면 재검사하면 A랭크라고 잘난체하는데 움직임을 보면 자신과 비슷하거나 그 아래였다.
어차피 위험하면 조명탄을 쏴 올리면 되니 사라는 그의 허세를 무시하며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숲이 우거지지만 조명탄을 올릴 수는 있을 것이다.
쿠웅!
그때 미세한 진동이 느껴졌다. 한 조원이 말했다.
“엇, 뭐야, 방금 뭐 안 느껴졌어요?”
사라도 그를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근데 이거 지진 아닌가?”
털보는 사라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으쓱댔다.
“걱정 말라니까, 지진이든 몬스터든…….”
쿠우우웅!
전보다 훨씬 더 크게 울렸다. 몸이 직접적으로 떨릴 정도의 진동에 모든 조원들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뭐, 뭐야?”
조원들이 고개를 들어 진동이 느껴지는 방향을 쳐다봤다. 사라가 털보를 보며 말했다.
“그거, 그 조, 조명탄 쏴야 하는 거 아니에요?”
털보는 살짝 고민하다가 인상을 썼다. 전에도 사라가 꾀병을 부리고 조명탄을 쏴 올리게 했던 것이 떠오른 것이다.
털보는 그때 분명 그녀의 눈빛을 보았다. 그녀는 여울 단장을 보고 싶어 했던 것이다.
“아니, 조명탄을 아무 때나 쓰면 되나?”
사라가 어이없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지금은 아무 때나가…….”
그때 장내가 급격히 어두워졌다.
쿠우우우우웅!
어마어마한 굉음과 함께 바로 앞에 거대한 바위가 내리꽂혔다. 아니, 자세히 보니 바위가 아니다. 창과도 같은 회색 털에 성인 남성만 한 발톱이 보였다.
사라는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았다. 나무의 키를 훨씬 넘어서는 거대한 괴물.
대가리까지의 높이는 수십 미터는 더 넘어 보였다.
“으허억!”
“끼야아아!”
조원들의 비명 소리 듣고 괴물이 고개를 숙여 그들을 내려다보았다. 사라는 털보를 보며 뾰족하게 소리쳤다.
“빨리! 빨리 조명탄!”
털보는 혼비백산해 조명탄 총을 꺼내다가 떨어트렸다. 그사이 괴물이 커다란 앞발을 들어 올렸다.
“피해애!”
사라는 조명탄을 잡지 못하고 뒤로 빠졌다. 조명탄이 있던 자리에 바로 괴물의 앞발이 내리찍혔다.
콰아아아아아앙!
그 거대한 충격에 조원들의 몸이 붕 떠올랐다가 바닥에 쓰러졌다.
괴물의 앞발이 쉴 틈을 주지 않고 다시 그들을 덮쳐왔다. 사라는 밤처럼 깜깜해지는 위를 보며 이번에는 피하지 못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동안의 노력이 머릿속에서 주마등처럼 스쳐 가며 눈물 한 방울이 흘러내렸다.
‘아직, 부귀영화를 누려 보지도 못했는데…… 내 여울 님은…….’
사라락!
그때 사라의 등 뒤로 바람이 불어왔다. 그와 함께 살짝 식초 같은 땀 냄새가 코끝을 스쳤다.
왠지 익숙한 냄새였다.
꽈아아앙!
성인 남성의 몸통보다 더 큰 검은 대검이 야구방망이처럼 휘둘러져 괴물의 앞발을 강타했다.
괴물은 앞발이 꺾이며 뒤로 한 걸음 물러나며 순간의 위기를 모면할 수 있었다.
한눈에 봐도 수백 킬로그램은 될 것 같은 대검을 한 손으로 휘두르는 남자, 터질 듯한 팔뚝에 흐르는 땀방울, 그는…… 어제 사라가 내쫓았던 뚱뚱한 부관 둥둥이었다.
둥둥은 반쯤 고개를 돌리고는 심각한 표정으로 사라의 조원들에게 외쳤다.
“빠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