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 Hunter Killer RAW novel - Chapter 189
189
초대형 게이트가 다시 열리면서 그 어마어마한 공격을 막아 낸 나라는 그렇게 많지 않다. 70개국 이상이 중요 방어기지가 파괴되고 사람들은 살기 위해 사방으로 흩어졌다.
저벅, 저벅, 저벅.
황량한 도시, 버려진 길에 누더기 옷을 입은 백여 명의 사람이 힘없는 걸음으로 발을 옮기고 있다. 이번 초대형 게이트 건으로 인해 자신의 나라가 붕괴된 피난민들이다. 아직 방어기지가 존재하고 먹을 것을 생산할 수 있는 안전한 나라로 가기 위해 끊임없이 발걸음을 옮기는 것이다.
피난민 무리는 무너진 건물로 인해 길이 끊어져 옆으로 꺾었는데 스무 명의 사람이 그 앞을 가로막았다. 그들은 하나같이 총과 검을 들고 있었고, 피난민들과는 다르게 얼굴도 옷도 멀끔했다.
피난민 무리의 선두에 있는 사내 열댓 명이 다급히 총을 들어 그들을 겨누며 소리쳤다.
“헙.”
“뭐, 뭐야!”
“도적들인가?”
“엄마, 무서워…….”
새로 나타난 사람 중 검을 든 한 여인이 앞으로 한 걸음 나섰다. 그녀는 피난민들이 들고 있는 총 끝이 떨리고 있는 것을 보며 피식 웃음 짓고는 말을 이었다.
“그걸로 오크 한 마리라도 쏴 죽일 수 있겠어?”
그녀는 검을 허리춤에 넣고는 뒤에 누군가에게 손짓했다. 그러자 한 사내가 투명한 봉지를 그녀에게 건넸다. 그녀는 그 봉지를 피난민들에게 던졌다.
휙, 퍽.
피난민들은 지레 놀라며 뒷걸음쳤다. 그들 앞에 떨어진 것은 아직 상하지 않은 빵이었다.
“허업!”
“빵이다!”
“먹을 거다!”
“안 돼!”
몇몇 사람이 말렸지만 굶주림에 눈이 돌아간 사람들은 대부분 빵을 향해 달려 나가 허겁지겁 뜯어 먹었다. 모두 먹고 난 후에도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빵을 건넨 여인은 그들을 보며 말했다.
“백 명이라……. 뭐 이쯤은 먹여 살릴 수 있지. 따라오려면 따라와라”
“먹여 살린다니…….”
“드디어 살 수 있는 건가?”
“아냐, 저 사람들을 따라 가기에는…….”
의심하는 사람들은 적었다. 지금 당장 식량과 안락한 쉼터가 제공된다는 생각에 대부분이 그들을 따라 걸음을 옮겼다.
건물 사이사이에 쓰레기와 폐부품들로 막아 나름대로의 방어기지를 구축한 폐도시에 들어섰다. 그곳 입구에는 총과 검을 든 사람 수십 명이 지키고 서 있었다.
“와아…… 저 사람들 보니까 안심된다. 진짜 사람이 살 수 있는 곳으로 온 거야……. 안전한 곳으로.”
“드디어, 드디어…….”
안쪽에는 몬스터들의 시체가 꽤 많았다. 쳐들어온 몬스터들을 처리하고 구석에 밀어 둔 것 같았다. 간혹 가다 사람들의 시체도 보였는데 상황이 상황이니만큼 그냥 방치해 둔 듯했다.
“어…….”
그런데 이상하게 점점 들어갈수록 몬스터보다는 사람의 시체가 더 많았다. 몬스터에게 잔인하게 뜯긴 시체들이었다. 그것도 아직 부패가 덜 된 시체도 있었다. 상식적으로 이해가 잘 되지 않았다.
“무, 무서워 엄마.”
“괘, 괜찮아, 괜찮…….”
엄마는 품에 파고들어 몸을 떠는 아이를 꼭 껴안았다. 그때, 선두에 걸어가던 여인이 웃으면서 뒤돌아보았다.
“왜? 이상해? 이미 늦었어.”
그녀는 고개를 쳐들고는 미친 사람처럼 마구 웃어 댔다. 그녀의 말에 피난민들은 얼굴을 굳히며 발걸음을 멈췄다. 주변을 둘러보니 무너진 건물과 쌓인 시체 뒤로 몬스터들이 붉은 눈을 빛내며 올라오고 있었다.
선두에 걸어가던 무리가 양쪽으로 갈라지자, 앞에 보이지 않던 것이 보였다. 수백, 수천 명의 발가벗겨진 시체가 쌓여 있고, 그 위에는 사람의 머리로만 꿰어 만든 끔찍한 왕좌 위에 한 남자가 앉아 있다.
그는 턱을 괴고 있는 채로 한 손을 들어 올려 피난민들을 향해 흔들었다.
“어서 오너라, 나의 양식들이여.”
그의 언어는 처음 들어 보는 것이었다.
* * *
여울은 정부 헌터와 경찰의 지원을 받아 해당 구역을 봉쇄하고 비슷한 외형의 인물을 찾았다. 그래서 모자와 마스크를 씌우고 아이에게 직접 확인시키며 조사했다. 그러나 하루가 지나도록 범인으로 추정되는 자는 나오지 않았다.
아이가 헷갈려 하는 자는 발목에 추적 장치를 걸고 헌터 두 명이 따라붙었다. 그 수는 무려 백여 명이 넘어 그들과 그들의 가족들에게서 원성이 높았다.
여울은 미간을 좁히며 담당 경찰에게 다가갔다. 경찰은 그가 다가오자 화들짝 놀라며 자세를 다잡았다.
“감식은 아직인가?”
담당 경찰은 여울의 물음에 바로 휴대폰을 꺼내어 들었다.
“확인해 보겠습니다!”
경찰은 각을 잡은 채 감식반에 통화를 걸며 말을 이었다.
“최소 이틀은 걸린다고는 했는데……. 헌터님 일이니까 최대한 빨리 진행하라고는 했습니다만……. 아, 네! 아…… 아직 안 나왔습니까?”
그는 대역죄를 지은 사람처럼 식은땀을 흘리며 여울의 눈치를 보았다. 그때, 수화기 너머로 누군가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아, 지금 막 나왔다고 합니다!
“오, 잘 됐군요! 헌터님, 결과 나왔다고 합니다. 바로 가 보시겠습니까?”
“가죠.”
“옙, 모시겠습니다.”
여울은 경찰의 안내에 따라 과학 수사 센터로 걸음을 옮겼다.
과학 수사 센터 3번 감식실, 한 여인이 스포이트로 하얀 액체가 담긴 유리병에 어떤 액체 한 방울을 떨어트렸다. 그러자 하얀 액체가 단숨에 검게 변하였다.
여인은 그것을 가리키며 여울과 경찰에게 말했다.
“색의 농도에 따라 독성의 강도를 판단하죠. 이 정도면 10레벨 헌터라고 해도 체내로 흡수되면 10분 이내에 저세상으로 갈 겁니다.”
그녀는 유리컵을 들어 눈앞에서 흔들며 말을 이었다.
“블랙다콘의 독이에요. 그것도 매우 강한 네임드급으로, 거기에 혈액 순환을 돕는 성분 등등 여러 가지가 많이 섞여 있더라고요. 전문가는 아니지만 꽤 공을 들였어요.”
블랙다콘의 독. 사냥용으로 검에 바르기도 하기에 몬스터 잡화점에서도 쉽게 구할 수 있다. 그러나 네임드급은 몇 군데 팔지도 않고, 높은 가격이기에 잘 팔리지도 않는다.
여울은 담당 경찰을 보며 말했다.
“최근에 독을 구입한 사람이 있는지 확인해 봐야겠군요.”
“예, 맞습니다! 그쪽으로 수사를 진행시키겠습니다.”
경찰은 바로 또 휴대폰을 들어 어딘가로 전화했다.
아이가 그 남자를 찾기까지 기다릴 수는 없다. 이미 다른 방법으로 구역을 빠져나갔을 수도 있다. 진행 가능한 모든 방법으로 수사해야 한다.
여울은 범죄에 이용하거나 검은 돈으로 구입해야 하는 밀거래 잡화점 위주로 찾아다니며 구매 목록을 확인했다. 그러나 구매는커녕 강력한 네임드급 독을 파는 곳도 그리 흔치 않았다.
직접 구했다는 이야기다. 그렇다면 헌터일 가능성이 크기에 용의자 수사 범위는 확 좁혀지지만, 그 이후로는 또다시 오리무중이 되었다.
어떻게 다시 수사 방향을 정해야 하나 고민 중에 여울의 전화기가 울렸다. 휴대폰에는 보라의 이름이 찍혀 있었다. 그는 다급히 전화를 들어 통화를 눌렀다.
“주보라!”
―아잇, 깜짝이야. 평소에도 이렇게 걱정스럽게 받으면 좋겠네.
“몸은 괜찮나?”
―걱정되면 보러 와요. 바쁜가?
여울은 고개를 흔들며 그녀에게 대답했다.
“지금 바로 가지.”
―상남자네.
여울은 그 뒤에 대답도 하지 않고 바로 끊고는 그녀가 입원한 병원으로 달려갔다.
* * *
드르륵.
2인 병실, VIP 병실은 1인실밖에 없기에 2인실은 아담한 감이 있었다. 여울의 부탁으로 은서와 보라가 한 곳에 입원한 것이다.
안으로 들어서니 지연이 와 있었다. 그녀는 여울을 보고는 말없이 고개를 깊이 숙였다. 그 모습에 보라가 둘을 번갈아 보며 중얼거렸다.
“뭐야, 이 어색함은? 누가 보면 이혼한 부부인 줄 알겠네.”
그 말에 여울은 뜨끔했지만 티 내지 않고 그녀에게 다가가다가 은서에게 발끝을 돌렸다.
“역시, 딸 바보. 언제쯤 내가 저 우선순위 위에 올라설까.”
그녀의 말에 지연은 피식 웃음 지었다.
“아마 평생 못 제치지 않을까?”
“평생이라니. 언니, 은서 저 계집애 시집가면 바뀌겠지.”
그때 은서의 이마에 손을 대고 있던 여울이 고개를 홱 돌리며 말했다.
“안 보낸다, 시집.”
보라는 혀를 삐죽 내밀며 고개를 장난스럽게 끄덕끄덕했다.
“눼눼, 어련하시겠어요? 누가 저 사람의 사위가 될지 벌써부터 불쌍하다.”
지연은 사위라는 말이 나올 때 여울의 주변에서 잠깐이나마 살기가 나온 것을 느꼈다. 그녀는 착각이라고 생각하고는 머리를 털며 그에게 물었다.
“수사는 어떻게 되어 가고 있어요?”
여울은 그녀에게 시선을 돌리고는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아무것도. 철두철미한 놈이다. 감식 결과가 나와서 찾아봤는데…….”
여울은 두 여인에게 그동안 진행된 상황에 대해 자세히 얘기했다. 수사는 힘이나 기억력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두 여인은 지혜로우니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모든 진행 과정을 밝히자 보라가 턱을 괴고는 골똘히 생각하다가 갑자기 손가락을 튕기며 말했다.
“우유! 그 우유 팩 아직 있어요?”
“수사 센터에서 가지고 있지.”
“우유에는 날짜랑 바코드가 있잖아요. 어디서 판 건지, 언제쯤 팔았는지 알 수 있지 않을까요?”
여울은 보라의 말에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그러고는 지연과 보라를 번갈아 보며 말을 이었다.
“은서를 부탁하지, 그럼.”
여울은 그 말을 남기고는 바로 병실을 나섰다.
* * *
여울은 보라의 말대로 우유팩을 확인해 보았다. 그것은 남문 32구역에서 생산, 배포된 것이었다. 여울은 경찰들보다 먼저 그 공장에 찾아가 CCTV를 확인하였다. 그의 얼굴은 이제 한국 사람들이 대부분 알 정도로 유명해져 따로 수사 협조 같은 것은 필요 없었다.
“어, 어라 이게 왜 이러지?”
경비원은 컴퓨터를 두드리며 당황한 기색을 띠었다. 화면에는 검은 화면만 띄워져 있었다.
“이, 이거 아무래도 해킹당한 것 같은데요. 누군가 이날만 삭제한 것 같습니다. 분명 고장 난 적이 없는데…….”
그는 식은땀을 흘리며 여울의 눈치를 보았다. 여울은 검은 화면에 시선을 고정한 채 말했다.
“삭제된 날짜가 언제입니까?”
“12월…… 11일부터 15일까지네요.”
“알겠습니다.”
여울은 바로 그곳을 나서며 담당 경찰에게 전화를 걸었다.
“예, 공장 주변 12월 11일부터 15일까지 CCTV 모두 확인할 수 있습니까? 네, 같이 확인합시다.”
여울은 경찰의 도움을 받아 CCTV를 모두 확인하기 시작했다. 눈이 빠지도록 밤새 가며 확인하던 중, 그가 한 손을 들었다.
“잠깐.”
그의 말에 따라 화면이 멈추었다. 주변을 식별할 수 없는 깊은 밤에 모자와 마스크를 쓴 사내의 뒷모습이 나와 있는 화면이다. 그 화면을 보는 여울의 눈동자는 눈에 보일 정도로 흔들리고 있었다.
뒷모습이지만 누구인지 알 수 있다. 술 취한 사람처럼 비틀거리는 걸음걸이, 180 부근의 체형.
여울은 눈에서 불이 나올 것처럼 그를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었다.
‘당신이 거기 왜 있어.’
여울이 화면 너머로 바라보고 있는 자는 UST 소장 데이빗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