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ochrome Sovereign RAW novel - Chapter (1080)
1080화. 미끼 (5)
갔던 속도보다 더 빨리 황궁으로 온 연호정 일행은 곧장 양천을 만났다.
“오면서 대충 들었습니다. 현재 상황이 어떻습니까?”
“엄청나게 분주하다.”
양천의 얼굴은 한껏 굳어 있었다.
“감숙은 공동파를 중심으로 움직였고, 섬서는 화산과 종남을 중심으로 진격하고 있다.”
“진격…….”
“밀고 내려오는 놈들이 민간인들을 약탈하면서 죽이고 있다. 특히 감숙이 심해. 도대체 어떻게 생겨 먹은 놈들인지, 현(縣) 단위로 파괴하며 내려오는데 그 속도가 전혀 줄지 않는다.”
연호정의 눈에 살기가 일었다.
다만 그의 목소리는 침착했다.
“섬서는 어떻습니까?”
“기병 수만 일만이다. 하나같이 중무장한 기병들인데 감숙만큼은 아니더라도 상당히 빠르다. 따로 보급 부대가 존재하는 것 같긴 한데, 아직까지 눈에 보이진 않는다.”
전쟁에서 보급은 실제 병력만큼이나 중요하다.
아니, 어쩌면 더 중요하다고도 볼 수 있다. 아무리 뛰어난 병사도 먹지 않으면 싸울 수 없다. 군대는 정신력이 아니라 체력으로 싸우는 것이다.
다만, 무림인으로 구성된 군대라면 얘기가 조금 다르다.
무림인은 내공이라는 신묘한 힘으로, 여느 범부와 똑같은 양을 먹어도 수일을 더 버틸 수 있다. 초절정고수 정도가 되면 주먹밥 하나만으로도 사나흘 이상 본인의 기량을 온전히 보일 수 있을 정도다.
즉, 보급의 양이 일반 군대보다 훨씬 더 적다는 것이다.
그 정도가 되면, 무공을 익힌 마적단들은 보급도 없이 자체적으로 마을과 마을을 이동하며 미친 듯이 날뛸 수 있다. 적은 식량으로도 제 기량을 온전히 뽐낼 수 있으니까.
하물며 삼교가 파견한 병력이라면 말할 것도 없다.
연호정 역시 흑암제 시절 보급을 최대한 신경 썼지만, 일반 군대와 비교하면 같은 병력 대비 절반도 채 되지 않는 양이었다. 소수 정예 부대를 운용할 때는 그냥 개인이 개량한 전투 식량을 싸 들고 한 달을 넘게 작전을 진행하다가 귀환하는 일도 많았다.
그러나 그 숫자가 일만 정도가 되면 반드시 보급병이 필요하다.
특히나 기병이라면 말의 먹이가 중요할 것이다.
연호정이 고개를 저었다.
“보급 부대가 있긴 할 테지만, 우리가 예상하는 것보다 훨씬 적게 잡아야 할 겁니다.”
“왜 그렇게 생각하느냐? 놈들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말들은…….”
“북부의 말들은 중원의 말들과 다릅니다. 그놈들이 부리는 말은 덩치가 크진 않지만, 초원의 들풀을 뜯어 먹으며 천 리를 달리는 게 예삿일입니다. 그 정도도 못 버티는 말들은 진즉에 다 사라져 버렸지요.”
“허!”
양천 역시 북부 초원의 말들을 본 적이 있었다.
하지만 탄탄한 근육과 호쾌한 질주를 보며 감탄했을 뿐, 그 말들의 생태를 알진 못했다.
“용아철기단과 비교하면 어떠하냐?”
“아시다시피 철기단의 말들 역시 하나같이 명마들이지만, 그쪽과의 비교는 애매합니다. 힘으로는 철기단이 우위일 것이고, 체력으로는 저쪽이 앞설 겁니다. 하지만 말의 먹이를 생각하면 아무래도 저쪽에 밀릴 수밖에 없습니다.”
양천 역시 천하를 떠돌아다니며 그 경험으로 용아철기단을 만들었다. 그가 아는 말 중 철기단의 말만큼 뛰어난 혈통은 없었다.
하지만 들어 보니, 초원의 말들은 또 이쪽과 다른 모양이었다.
“놈들은 오랜 옛날부터 혈통 좋은 초원의 말들을 포획해 그들만의 방법으로 개량시켰습니다. 중원의 말들도 특색이 있지만, 각자의 장단점은 다를 겁니다. 같다고 봐선 안 됩니다.”
“으음.”
절대적인 비교는 의미가 없지만, 중요한 건 중원의 시선으로 봐선 안 된다는 것이다.
게다가 삼교는 중원이 배척하는 각종 술법을 지니고 있었다. 그 술법이나 기이한 약학으로 기마를 양성했다면?
“지금은 일단 병력만을 봐야 합니다.”
“네 말이 옳다. 감숙의 경우 사천삼강 중 하나가 도우러 갈 거라 보고 있다.”
연호정의 눈이 반짝였다.
“움직인다면 당가주가 직접 움직일 확률이 높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초전의 중요성을 알기 때문이지요. 현재 감숙에는 무극수가 없습니다. 반면 사천에는 당문에만 두 명이 존재하지요. 그렇다고 암왕이라는 패를 벌써 꺼내 들 순 없을 테니, 가주가 직접 부대를 이끌고 감숙으로 갈 겁니다.”
다급한 순간에도 연호정의 안목은 빛을 발했다.
양천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말이 맞겠다. 하물며 마인과 한 판 붙은 경험이 있으니, 당가주가 움직일 확률이 높겠지.”
“중요한 것은 섬서입니다.”
연호정의 눈이 깊어졌다.
“섬서에는 무극수가 없습니다.”
물론 무극수가 없다고 싸움이 안 되는 건 아니다.
하지만 일만 기병에 무극수가 섞였는지 안 섞였는지를 당장 모른다는 게 문제였다.
무극수라도 대(對)고수전에 특화된 부대와 부딪치면 목숨이 위험하다.
그걸 다르게 말하면, 대고수전에 특화된 부대가 필요할 정도로 무극수의 전력이 엄청나다는 것을 뜻한다.
섬서 무림에 절대고수를 상정하고 만든 부대 따위는 없다. 물론 화산과 종남의 진법은 신묘하고 고수전에 특화된 것도 있을 테지만, 그렇다고 무극수의 힘을 무시할 수는 없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기병이라는 건데.’
화산과 종남의 검진은 기세부터 꺾고 시작한다.
아무리 주인이 잘 다독일지언정 내공을 익힌 말이 아닌 이상 효과적인 기병 돌격은 나오기 힘들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무극수가 필요해.’
적측에 무극수가 있다면 대항할 고수가 있어야 하니 필요하고, 적측에 무극수가 없다면 초전을 압도해야 하니 더더욱 필요하다.
‘요녕과 섬서, 감숙 세 곳에서 치고 들어오는 병력 하나하나에 무극수가 하나씩 존재한다고 가정해야 한다.’
그때, 연위가 말했다.
“급보가 왔다. 북상하던 무림맹 병력 중 절반이 섬서로 향하기로 하였다.”
“예?”
“그 절반의 병력에, 검제 선배께서 계신다는구나.”
연호정이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나마 다행이군요.”
“일단 어느 정도 그림은 만든 셈이다. 남은 건 요녕인데, 그쪽은 어떻더냐?”
연호정은 정찰 내용을 상세히 설명했다.
팽무강의 눈이 깊어졌다.
“나는 가문으로 가겠소.”
모두의 눈이 그에게로 쏠렸다.
“팽가는 대대로 하북의 패자로 이름을 날렸소. 하북 일대에 대해서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지. 만에 하나를 위해, 하북과 요녕 사이에 전 병력을 끌고 가 진을 치도록 하겠소.”
양천이 고개를 끄덕였다.
“얼마나 걸리겠는가?”
“사흘도 안 걸릴 겁니다. 게다가 하북에는 우리만 있는 게 아니지요. 각 문파에 연락을 취해 절반은 동쪽을, 절반은 황궁 북부 일대를 막으라고 하겠습니다.”
“좋은 판단이야. 그렇게 해 주게.”
“그럼.”
팽무강은 그 즉시 회의장을 나가 신법을 펼쳤다.
연위가 한숨을 쉬었다.
“결국 이것이었군. 그 불안감의 정체가.”
양천이 고개를 저었다.
“이왕 벌어진 일이니 앞날만 생각합시다. 자, 일단 감숙과 섬서는 대충 구색을 갖추었소. 남은 것은 요녕인데.”
그가 연호정을 바라보았다.
연호정이 미소를 지었다.
“언제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초전부터 말이냐?”
“안 될 건 또 뭐가 있겠습니까.”
그때였다.
“요녕은 내가 맡겠소.”
연위의 말에 모두가 놀라서 그를 바라보았다.
연호정도 깜짝 놀랐다.
“아버지.”
“다른 사람은 다 되어도 너는 안 된다.”
연위의 목소리는 단호했다.
“전쟁이 시작된 지금, 사제지간은 물론 부자지간도 무의미하다. 능력이 되는 사람을 필요한 곳에 떨어트려 놓는 것이 가장 중요해.”
“……?!”
“양 태상과 함께, 너는 당금 무림에서 가장 실전적인 전술가다. 어디든 네 도끼가 필요하지 않겠느냐마는, 지금은 아니야. 지금 네가 할 일은 황궁, 무림맹, 흑제성과 함께 전국(全局)을 다스리는 것이지, 무장(武將)의 역할이 아니다.”
연호정의 눈이 흔들렸다.
양천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 역시 연가주의 말에 동의한다. 나아가 넌 흑백무제라 불리는, 흑백 양도에 있어 상징적인 존재다. 초전부터 나서면 그림이 좋지 않아.”
다소 경박하게 들리기도 하지만, 깊게 생각해 보면 양천의 말이 옳았다.
좋든 싫든 연호정은 무림의 영웅이 되어 있었다. 그런 영웅이 전쟁이 시작되자마자 달려 나간다면 그 또한 나쁜 일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일시적인 사기에 영향을 끼칠 뿐이다. 이번 전쟁은 얼마나 오래 지속될지 모르는 것. 연호정이 중심을 잡아야 경거망동할 사람들이 줄어드는 것이다.
그리고 결정적인 순간 나서서 전투를 치러야 한다. 그것이 지금의 연호정이란 이름이 지닌 무게였다.
“알겠습니다. 그럼 그렇게 하도록 하지요.”
연호정의 장점은 본인의 의견이 틀려도 수용이 빠르다는 점이었다.
“자, 그럼 어디 말해 봐라. 내가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
회의장에 놓인 지도를 보며 고심을 거듭하던 연호정이 양천에게 물었다.
“제가 주도해도 되겠습니까?”
양천이 회의장에 모인 모든 사람을 향해 외쳤다.
“지금부터 흑제성주를 황궁의 임시 군사로 임명하겠소.”
문무백관도 모인 자리였지만, 그들은 불편한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태공이 확실하게 그들을 제어했기 때문이기도 하나, 그들 역시 지금이 얼마나 중요한 순간인지 알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이번 사태의 책임자인 양천이 흑제성주를 군사로 세운다면 그들로서는 반대할 명분도, 이유도 없었다.
태공이 말했다.
“우리 백관은 뒤를 받칠 것입니다. 여러 행정에 관한 업무를 알아서 처리할 터이니, 이번 전쟁의 주도권은 장수들이 가져가시지요.”
전쟁에도 행정은 필요하다. 태공의 말은 곧 너희가 결정하면 우리가 알아서 따라간다는 뜻과 다르지 않았다.
고개를 끄덕인 양천이 연호정을 보았다.
연호정이 말했다.
“이제부터 부대를 책임지는 강호 무림인들을 무림장(武林將)이라 칭하겠습니다.”
“…….”
“아버지께서는 요녕으로 가셔야 하니 동북 무림장인 셈입니다.”
“알겠다.”
빠르게 말을 이으려던 연호정은 순간 눈살을 찌푸렸다.
지도를 노려보며 생각에 잠긴 연호정.
한참 동안 지도를 보던 그가 검지로 지도 곳곳에 선을 그었다.
“동북…… 서북…… 북부…… 튀어나온 돌의 갑작스러운 움직임에도 당황하지 않고 광혈과 사음이 즉각 반응했다…….”
연호정이 눈살을 찌푸렸다.
“이상한데.”
무엇이 이상하다는 것일까?
모두의 의문 어린 눈빛 아래, 연호정이 입을 열었다.
“연위 무림장의 출병을 잠시 미루겠습니다.”
양천이 물었다.
“왜냐?”
“신화교 측에서 이교(二敎) 모르게 병력을 주둔시켰다면, 아무래도 불안하지 않았겠습니까?”
“뭐가 말이냐?”
“그들끼리야 잘 알긴 할 테지만, 아무리 그래도 이교가 즉각 반응하여 군대를 출병할 거라고 확신할 수 있었을까요?”
“……!”
“이교 입장에서 봤을 때, 신화교의 병력 이동은 그야말로 돌발 행위였습니다. 부랴부랴 병력을 보내 전선을 맞췄지만, 그것은 이교의 군사적 능력이 빼어나다는 증거일 뿐 어떠한 의미도 없습니다.”
“그럼……?”
“그렇다고 신화교에 바보만 모여 있을 리는 없지요. 소교주가 이런 행동을 했다지만, 만에 하나 이교가 반응하지 않았다면 어쩔 생각이었겠습니까?”
연위의 눈이 부릅떠졌다.
“성동격서?”
“이미 한 번 성공시킨 전술입니다만, 준비된 수가 아니지요. 이건 노린 게 아니라 애초에 도박수였던 겁니다.”
연호정이 지도를 내리쳤다.
“동북 무림장으로는 빙궁주와 묵 신장, 강 신장을 보내겠습니다. 연위 무림장은 무림맹 병력과 황궁의 북부 기습에 대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