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ochrome Sovereign RAW novel - Chapter (1136)
1136화. 삼마대혈전(三魔大血戰) (11)
“큭!”
지마후의 입에서 답답한 신음이 흘러나왔다.
마기가 터럭 한 올까지 들어찬 경지는 진즉에 지났다. 이 정도 높이에서, 설령 고수가 힘을 담아 내쳤다고 한들 큰 충격은 받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도 그녀는 속이 울렁거리고 등판이 부서질 것 같은 충격에 눈앞이 아찔해졌다.
‘왜?’
의문과 동시에 위급함을 느꼈다.
‘위험!’
터어어엉! 쾅!
지마비신으로 회피하자마자 그녀가 쓰러졌던 자리에 시커먼 손도끼 하나가 손잡이까지 박혔다.
흑백쌍룡의 흑룡부였다. 어검인 광풍섬을 펼친 건 아니었지만, 일격을 허용하면 어디 한 군데 날아갈 위력이 담긴 공격이었다.
치리리링!
손과 칼이 통째로 묶인 지마후는 회피도 끝까지 할 수 없었다.
“하아아압!”
기합과 함께 천지일마공을 극한까지 개방한 그녀가 힘차게 팔을 휘둘렀다.
연호정의 팔 근육이 부풀었다.
괴력이었다. 지마후의 내력은 풍부하기 그지없었고, 개방된 마공은 일대의 자연지기를 제멋대로 희롱하여 상대의 호흡조차 막아 가고 있었다.
성천의 고수라도 정면에서 상대하기 어려운 마공이었다. 위력의 문제가 아닌 기질의 문제였다. 주변을 잠식하여 상대의 호흡과 체력, 나아가 진기까지 오염시키고 있었다.
‘진짜 마공이군.’
이것이야말로 강호의 역사가 그렇게 경계하던 진짜 마공의 힘이다.
청해에서 싸웠던 사제장들의 마공은 어딘가 변화되고 뒤틀린 것이었다. 위력은 충분하다 못해 넘칠 만큼 대단했지만, 마공 특유의 잠식력과 오염 능력은 강하지 않았다. 심지어 타인의 몸에 기생한 전대 교주의 마공 역시 정기신이 일체화되지 않았기에 온전한 힘을 보여 주지 못했다.
하지만 지마후는 달랐다.
지금 그녀가 펼치는 저 마공이야말로 정통마공(正統魔功)이라 불릴 만하다. 그 옛날 천하를 공포에 떨게 만들었던 마공 특유의 역천기(逆天氣)가 너무나도 선명했다.
흘러가는 시대에 맞게 변화와 개량을 반복한 다른 마공과는 다른, 구결 하나 바뀌지 않은 옛 시대 그대로의 마공.
바로 그렇기 때문에, 연호정은 이 싸움에서 필승을 자신했다.
후우우우웅!
은은한 금빛 진기가 교룡쇄를 타고 흘러 지마후의 칼날을 잠식했다.
파바바바박!
순간 교룡쇄에 묶인 지마후의 팔 전체가 황금빛으로 물들었다.
‘뭐, 뭐야?!’
지마후는 당황했다.
‘마공이 끊겼어?!’
공기를 들끓게 하던 마기 역시 점차 희미해졌다.
그녀가 의도한 게 아니었다. 그럴 이유도 없었다.
지마후는 얼굴을 일그러트리며 모든 공력을 쏟아부었다.
파악!
있는 대로 힘을 내 팔을 끌어당겼는데, 순간 쇠사슬에 걸린 무게가 확 사라졌다.
양팔로 끌어당기는 힘을 받아 질주한 연호정이 광풍구룡살의 삼초, 붕산세를 펼쳤다.
콰아아앙!
눈앞이 아득해지는 충격이었다.
지마비신으로 피했지만, 대지에 거대한 구덩이를 만들어 낸 패력강공의 발경에 전신의 뼈마디가 으스러지는 것 같았다.
“으아압!”
지마후가 정면으로 돌진했다.
한순간 마기가 분해되어 제힘을 내지 못했지만, 그 믿기지 않는 상황에서도 어떻게든 활로를 찾았다. 그녀가 찾아낸 활로는 정면이었다.
퍼버벅!
연호정의 몸 곳곳에 지마후의 각법이 박혔다.
확실히 심상치 않은 고수였다. 누구라도 당황할 법한 상황에서 정면으로 돌진해 쾌속한 각법으로 상대를 공격한다. 풍부한 전투 경험이 돋보였다.
하지만.
콰앙!
지마후의 입에서 핏물이 터져 나왔다.
제대로 된 위력을 내지 못한 각법으로 일곱 방을 갈겼지만, 연호정의 각법은 포탄과도 같은 위력을 담아 그녀의 상반신을 후려쳤다.
그 충격량은 어마어마했다. 쇠기둥 하나가 날아와서 부딪힌 것 같다. 마신(魔身)을 이루지 않았다면 그대로 상반신이 날아갔을 것이다.
퍼어억!
그런 공격에도 지마후는 포기하지 않았다. 이 악물고 고통을 참아 낸 그녀는 휘어져 올라가는 각법으로 연호정의 손목을 쳤다.
후우웅!
광룡부가 하늘을 날았다.
상대의 손을 쳐서 병기를 놓게 한다. 기가 막힌 응수, 놀라운 섬세함이었다.
그러나 지마후는 기뻐할 수가 없었다. 자신의 각법에 맞아서 놓친 게 아니라, 맞기 전에 병기를 놓고 손바닥으로 각법의 충격을 해소했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퍼억!
지마후가 입을 떡 벌렸다.
근접 거리에서 내리치는 박치기 일격. 이마와 이마가 부딪쳤는데 마치 철판을 두른 망치에 맞은 것 같았다.
순간적으로 정신이 날아갔지만, 그래도 지마후는 움직였다. 여태껏 쌓아 온 전투 경험이, 본능이, 무공이 그녀의 육신을 움직이게 했다.
파바바바바박!
빠르게 거리를 벌린 그녀는 천지일마공을 양팔에 집중했다.
‘……!’
정신을 차린 지마후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됐다?!’
마기가 집약되기 시작한다.
키키키킹!!
묶인 교룡쇄 끝을 흔들고 절묘한 틈을 만든 그녀가 왼손을 뺐다.
퍼어엉!
왼손을 빼기까지 걸린 찰나의 시간만큼 그녀는 피해를 감수해야 했다.
중장거리를 무시하고 날아온 장력에 지마후는 또 한 번 피를 토했다.
만약 그녀의 상태가 평소와 같았다면, 이 틈에 머리를 노리지 않고 좌측 가슴을 후려친 장력에 의문을 표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다급했고, 그런 걸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
지마후가 연호정을 향해 좌권을 휘둘렀다. 광혈교의 절기 광마신권(狂魔神拳)이었다.
콰르릉!
그녀의 주먹에서 뿜어진 흑회색 권풍이 무시무시한 기세를 담고 연호정을 향해 쏘아졌다.
지금껏 지마후가 당했지만, 교룡쇄로 연결된 이상 연호정 역시 일정 거리 이상으로 회피할 수가 없다. 지마후는 자신의 일격이 상대에게 상당한 내상을 유발할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우우웅! 퍼엉!
지마후의 눈이 경악으로 커졌다.
‘미친!’
연호정은 광룡부를 쥐지 않은 오른손을 대충 휘둘러 광마신권의 권풍을 부숴 버렸다.
그렇다. 말 그대로 부서졌다.
두 사람의 경지 차이는 그리 크지 않았다. 물론 연호정이 이룬 경지가 그녀보다 높았지만, 방심하면 그 자신이 당할 만큼 지마후의 무공도 강력했다.
말하자면 박빙의 승부를 펼칠 수 있다는 것인데, 그런 상대가 전력을 다해 내친 권풍을 한 손으로 튕겨 내듯 부숴 버리다니?
“역시.”
믿기지 않는 위업을 달성하고도 연호정의 표정은 담담했다.
“쉽구나, 너희는.”
화아악!
지마후의 몸에서 강한 살기가 피어올랐다.
“너, 정말 죽고 싶은 것이냐?!”
“서로 죽이자고 만난 사이에 새삼스럽게 무슨.”
치리리링!
지마후의 눈이 흔들렸다. 연호정이 직접 교룡쇄를 움직여 팔을 풀어 준 것이다.
어느새 허공에 뜬 광룡부를 쥔 연호정이 창대 끝에 교룡쇄를 연결했다.
“와라. 죽여 주마.”
자신의 팔을 내려다보던 지마후의 눈에 점차 광기가 어렸다.
“날 도발할 생각이었다면 완전히 성공했다.”
참마도를 쥔 손이 하얗게 변했다.
“너, 곱게 죽지는 못할 것이다!”
파아아앙!
극한으로 펼쳐진 지마비신의 신법.
육안으로 움직임을 확인할 수가 없다. 그 정도로 빠른 신법이었다.
파박! 콰쾅!
정면으로 돌진하다가 한순간 측방으로 몸을 옮기니, 그 속도가 너무 빨라서 공기가 폭발을 일으켰다.
번쩍!
참마도가 수십 자루로 나뉘며 연호정의 전신을 노렸다.
우우우우!
용마십도의 용두참(龍頭斬), 용명참(龍鳴斬), 용인참(龍刃斬), 용무참(龍舞斬)의 사연식이 일수유에 펼쳐졌다.
산 하나를 그대로 허물어 버릴 것처럼 강맹한 무공의 연환식이었다. 이번 공격으로 연호정의 존재 자체를 지워 버리겠다는 듯 흉흉한 살기가 그득했다.
그때였다.
콰콰콰콰쾅!!
용형의 도기 수십 개가 연호정의 측방에서 솟구친 반투명한 황금빛 팔각(八角)의 방패에 막혔다.
마치 거북이의 등껍질처럼 보이는 방패였다. 지마후의 얼굴에 경악이 떠올랐다.
‘또!!’
도초가 막힌 것도 충격이지만, 초식 이전에 저 내공 방패에 닿은 마기가 모래성처럼 무너지는 것을 보았다.
‘파훼?!’
순간 연호정이 무시무시한 기세로 광룡부를 휘둘렀다.
콰아앙!
지마후의 몸이 이십여 장 거리를 날아갔다.
압도적인 힘, 무학의 상식을 초월하는 괴력의 일참. 광풍구룡살의 무참이었다.
파바박!
피를 뱉어 내며 겨우 신형을 다잡은 지마후는 순간 세상이 어두워지는 것을 느꼈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니, 어느새 연호정이 다가와 거대한 도끼를 내리치고 있었다.
그 무시무시한 속도보다 내리치는 도끼 주변에서 일렁이는 황금빛 불꽃이 더 충격적이었다. 마치 신화교의 열양공을 상대하는 듯, 피부가 타들어 가는 듯한 통증이 올라왔다.
광풍구룡살의 붕산세.
콰아앙!
지마후의 두 다리가 덜덜 떨렸다.
용마십도, 승천마룡식(昇天魔龍式)을 펼쳤지만 내리치는 도끼의 힘이 너무 강했다. 이번 일격으로 발목이 돌아가고 관절 곳곳이 어긋났다.
우두둑!
마공 특유의 재생 능력으로 몸을 바로 했지만, 이미 그사이에 광룡부가 또다시 날아오고 있었다.
지마후가 눈을 부릅떴다.
후우우우웅!
하늘을 가득 메운 시커먼 도끼들.
환상처럼 흩어진 수십 개의 광룡부가 폭우처럼 쏟아지는 듯했다. 광풍구룡살의 오초, 폭우강룡(暴雨降龍)이었다.
콰콰콰쾅!!
천재지변이 이와 같을 것이다.
신왕기로 증폭된 연호정의 상단전은 그의 강력한 욕망과 상상력에 힘입어 무쌍(無雙)의 공격을 발했다.
카드득!
온몸이 피투성이가 되어 물러난 지마후. 어느새 그녀가 들고 있던 참마도 곳곳에 실금이 갔다.
‘왜지.’
지마후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왜 마공이 제대로 운용되질 않지?’
관절을 넘어 내장 출혈을 막고, 근육에 힘을 더해 곧장 몸을 날릴 수 있어야만 했다. 본래의 천지일마공이라면 그러했을 것이다.
하지만 상대의 진기가 침투하자 마기가 산산이 흩어져 제 역할을 못 했다. 억지로 내공을 끌어올리려 해도 겁을 먹은 고양이처럼 웅크린 채 옴짝달싹도 하지 않았다.
‘도대체 왜……?!’
지마후가 고개를 들었다.
그 순간, 그녀는 거대한 용을 보았다.
쿠르르릉!
환상처럼 대지를 갈아 대며 전진하는 거대한 용은 아가리를 쩍 벌린 채 미친 듯이 꿈틀대고 있었다.
지마후는 그 용이 쇠사슬과 연결된 도끼가 만들어 내는 환상이란 걸 알았다.
하지만 그건 환상이 아니기도 했다. 극한의 상단신기로 만들어진, 용이 실존한다면 분명 이와 같았을 거라는 생각이 들 만큼 잘 조형된 진기의 폭풍은 그대로 지마후를 강타했다.
광풍구룡살의 육초, 질주광룡(疾走狂龍)이었다.
콰르르르릉!!
폭음과 함께 지마후는 자신의 육체가 분해되고 있음을 인식했다.
그리고.
‘그랬군.’
그녀는 깨달았다. 연호정이 자신을 도발한 이유를.
‘저놈은 마공과 상극인 무공을 익히고 있어.’
마공을 개방하면 개방할수록, 마기의 밀도를 올려 공력을 뿜으면 뿜을수록 대응하기가 쉬워진다.
‘쇠사슬을 풀어 준 것도 전력을 다해 덤비길 바라서다. 그래야 싸움이 빨리 끝날 테니까.’
쇠사슬로 묶어 발길질과 박치기를 가한 것 역시 모든 힘을 끌어내기 위해서였다. 치욕적인 공격이었으니까. 누구라도 화를 낼 수밖에 없을 테니까.
푸스스스.
지마후의 눈 하나가 가루가 되어 흩어졌다.
남은 외눈에 연호정의 뒷모습이 담겼다. 어느새 그는 시커먼 손도끼 하나를 저 먼 전장으로 날려 보내고 있었다.
‘……망할 자식.’
상대는 자신을 싸울 맛이 나는 상대가 아닌, 이미 죽은 상대로 여기고 있었다.
언제 죽느냐의 차이일 뿐, 이미 상대가 이긴 것이다.
지마후의 외눈이 감겼다.
감긴 눈꺼풀이 흩어지고, 하나 남은 눈이 다시 드러났다.
‘눈도 감지 못하나.’
시간이 조금씩 조금씩 빨리 흐르기 시작했다.
콰콰쾅!!
반경 십여 장을 초토화시킨 광룡부가 연호정의 의지에 따라 다시 주인에게로 돌아갔다.
툭.
뒤집힌 대지 위에, 손잡이만 남은 참마도의 잔해가 떨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