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ack Corporation: Joseon RAW novel - Chapter (1074)
1074화 토사구팽 (4)
사자들이 밖으로 사라지자 재상은 잔뜩 굳은 얼굴이 되어 이스마일에게 고했다.
“참으로 위험한 제안이옵니다.”
“위험하다? 어째서?”
“석유를 시작으로 우리와 동방이 하나로 엮여 교류한다는 부분은 나쁜 점이 없어 보이옵니다. 특히, 철도와 항구의 합자 건설 부분은 아주 좋아 보이옵니다.”
“그러니까, 어디가 위험하다는 것인가?”
“군대 부분이옵니다. 키질바시들이 가만히 있지 아니할 것이옵니다.”
“키질바시…….”
재상이 키질바시를 언급하자 이스마일은 이를 악물었다. 암살자들의 마수를 피해 은둔생활하고 있던 이스마일이 다시 일어설 수 있게 만들어주고, 나아가 페르시아의 지배자로 만들어준 이들이 키질바시들이었다.
하지만, 이후가 문제였다. 키질바시들의 완고하다 못해 극렬한 시아 수피즘은 대부분이 순니파인 페르시아 백성들이 복종보다 거부를 선책하게 만들고 있었다. 가장 강력한 동지가 가장 강력한 방해물이 되어버린 것이었다. 재상은 이스마일의 눈치를 살피며 말을 이었다.
“샤의 군대, 페르시아의 군대를 만드는 일은 일견 좋아 보입니다. 샤의 명령에 절대복종하는 군대야말로 샤의 가장 강력한 칼이기 때문이옵니다. 또한 군대를 양성하는 과정을 통해 많은 페르시아 백성들에게 기회를 주게 되옵니다. 이런 기회를 잡기 위해 페르시아인들이 샤께 충성하게 될 것이옵니다. 그리고 그의 가족들은 샤의 충실한 백성이 될 것이옵니다. 여기까지만 보면 절대 나쁜 일은 아니옵니다. 절대 나쁜 일은 아니지요. 하지만, 키질바시들이 문제이옵니다. 키질바시들이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옵니다.”
“그들 역시 나의 신하다. 내가 명하면 따라야 하지 않겠나?”
이스마일의 말에 재상은 의미심장한 말로 대답했다.
“그들은 이미 낙타와 같은 존재가 되었사옵니다.”
재상의 말에 이스마일은 다시 이를 악물었다. 예로부터 아랍 사회에 전해져 내려오는, 주인의 천막을 빼앗은 낙타의 이야기를 빗댄 것임을 알아챈 것이었다. 재상의 말에 이를 악물던 이스마일은 곧 한풀 꺾인 표정이 되어 말을 받았다.
“그냥 낙타고 아니라는 것이 문제지. 조금이라도 마음에 안 들면 주인을 물어뜯을 낙타들 아닌가? 이번에 보인 모습들을 보면 더욱 확실하지.”
* * *
타브리즈에 도착한 3국 연합의 사자들이 알현을 청했을 때, 키질바시들이 한번 들고 일어났었다.
“이교도들이 샤의 신성한 궁전에 발을 들이는 것은 막아야 하옵니다! 어딜 감히!”
강하게 반대하는 키질바시들을 본 재상이 이들을 말리고 나섰다.
“그렇다고 샤께서 궁 밖으로 나가실 수는 없는 것 아닌가? 외교란 것에는 예법이 있다네.”
“이교도와 외교란 있을 수 없는 말이오! 오로지 교리에 따라 진리를 전파하거나 죽일 뿐이오! 외교란 미명으로 이교도들과 붙어먹는 것은 저 이단 순니들이나 하는 짓이오!”
“어허~ 말이 너무 심하네!”
키질바시들과 재상 사이에 벌어진 설전이 점점 격해지자 이스마일이 끼어들었다.
“그만! 그만하라! 이 무슨 추태인가!”
“샤! 이는 알라와 진리를 위하고 지키기 위함입니다! 외교라는 미명에 흔들려서는 안 됩니다!”
“나라를 운영함에 있어 외교는 필수다! 이는 인정해야 한다! 이는 나의 명령이다!”
이스마일의 명령에 키질바시의 수장은 이를 악물 더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샤께서 그리 생각하시면 원하는 대로 행하시옵소서. 대신, 소신들은 그 자리에 빠지겠사옵니다. 부정한 이교도들이 부정한 입으로 내뱉는 부정한 말을 들을 수 없기 때문이옵니다.”
“하아~. 그렇게 하라.”
한숨과 함께 이스마일이 불참을 허락하자 키질바시들이 표정이 더욱 험악해졌다. 자신들이 이렇게 강경하게 나오면 이스마일이 물러날 것이라 예상했는데, 반대의 결과가 나왔기 때문이었다. 욱해서 앞으로 튀어나오려는 키질바시들을 손짓으로 제지한 키질바시의 수장은 이스마일에게 예를 취하며 경고했다.
“샤의 결정에 따르겠사옵니다. 하오나, 샤를 샤의 자리에 올린 것은 알라의 뜻이라는 것을. 이 나라는 샤의 나라이기 전에 알라의 나라라는 것을.”
경고가 끝나자마자 키질바시의 수장은 부하들을 이끌고 당당한 걸음걸이로 대전을 빠져나갔다. 허리를 굽힌 채 뒷걸음을 치지도 않고 꼿꼿하게 서서 당당하게 등을 돌리고 나가는 키질바시들의 모습에 이스마일과 모든 신하들이 이를 갈았다.
“으득!”
그렇게 키질바시들이 빠진 상태에서 이스마일과 삼국 연합의 사자들이 회견을 진행한 것이었다.
* * *
“궁 안에도 키질바시들의 눈과 귀들이 있다는 것이 문제요.”
이스마일의 말에 재상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받았다.
“내일부터 많이 시끄러울 것이 확실하옵니다. 그저 저들이 사자들만은 건들지 않기를 바랄 뿐이옵니다.”
“혹시 모르니 내일 날이 밝자마자 사자들이 머무는 숙소 부근에 병사들을 배치하도록 하시오.”
“샤의 명을 행하겠사옵니다.”
다음날 동이 트자마자 이스마일의 명령을 받은 왕궁 경비병들이 삼국 연합이 머무는 숙소-숙소라기보다는 거대한 공터-주변을 둘러쌌다.
“무슨 일인가?”
사자들의 대표로 나온 제국 관리의 물음에 경비병들의 지휘관이 바로 대답했다.
“혹시 모를 불의의 사태에 대비해 사자들을 보호하라는 샤의 명령이 있었습니다.”
지휘관의 말에 제국 관리는 잠시 뒤로 물러나 명과 일본 관리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명, 일본의 관리들과 짧은 대화 끝에 무엇인가 합의를 본 제국 관리는 다 돌아와 경비대 지휘관에게 말했다.
“샤께서 이렇게 걱정을 표해주시니 기쁘기 한이 없소. 하지만, 이렇게 많은 병력이 이곳에 몰려 있으면 백성들이 불안해할 것이오. 우리의 몸은 우리가 지킬 수 있으니 병사들을 물려주시오.”
“샤께서 내리신 명령입니다.”
“그럼 내가 샤께 아뢰겠소. 같이 갑시다.”
일단의 호위병을 거느린 제국 관리가 경비대 지휘관과 함께 샤의 궁전으로 향하자, 뒤에 남은 이들은 호위대 지휘관을 불렀다.
“방벽은 잘 설치되었나?”
“예. 겉으로 보기에는 그냥 물건을 쌓아놓은 것처럼 보이게 위장했습니다.”
“예상한 일이 벌어지지 않는 것이 최선이겠지만, 아무래도 일이 벌어질 것 같으이. 그렇게 된다면 압도적인 승리가 필요하네. 이 점을 명심하게.”
“걱정하지 마십시오.”
“탄약과 병력은 충분한가?”
“충분합니다.”
“자네들만 믿겠네.”
“예.”
사자들을 안심시키고 나온 호위대 지휘관은 장교들을 불러 모아 상황을 점검했다.
“낌새를 보아하니, 아무래도 피를 봐야 할 것 같소. 예상대로라면 적들의 주력은 단발 장총과 활로 무장한 기병일 것이오. 철저히 대비를 해주시오.”
“알겠소.”
“알겠습니다. 그런데, 위장한 병사들을 미리 환복 시키는 것이 낫지 않겠습니까?”
“환복은 일이 벌어질 때까지 금합시다. 적들의 오판을 유도해야 하니까 말이오.”
“알겠습니다.”
“그럼 다시 한 번 상황을 확인하도록 합시다.”
“예.”
이야기를 끝낸 호위대 장교들은 자신들이 맡은 구역으로 흩어졌다. 삼국의 관리들이 모여 사신단을 구성한 것처럼 호위대 역시 삼국의 군대가 모여 구성되어 있었다. 호위대의 총지휘관은 제국군 장교가 맡고 있었지만, 휘하 지휘관들을 대함에 깍듯하게 예를 갖추고 있었다. 휘하라고 했지만, 계급이나 모든 것이 그와 비슷한 이들이었기 때문이었다.
사신단이 머무는 장소를 경비함에 있어 호위대는 국가별로 구역을 나누어 배정했다.
-아직 말도 제대로 통하지 않는데, 모두 섞어 운영하는 것처럼 멍청한 일은 없다!
이런 판단에 따라 국가별로 구역을 나누어 배정한 것이었다. 그리고 여기서 제국, 명, 일본 사이에 자존심 경쟁이 붙어버렸다.
-우리가 저놈들보다 잘해야 해!
이런 자존심 경쟁으로 숙소를 둘러싼 철조망은 더욱 촘촘하고 튼튼하게 세워졌다. 또한 화물 상자로 위장한 방벽들이 더욱 교묘하게 세워졌다. 만약, ‘어떤 적’이 공격을 가해온다면 이 화물상자들이 튼튼한 진지로 변하게 되는 것이었다.
* * *
한편, 이스마일을 찾은 제국 관리는 이스마일에게 공손히 예를 올리고는 본론으로 들어갔다.
“샤께서 저희를 걱정해주심에 기쁘기 한이 없습니다. 하오나, 샤께서 거하시는 곳을 지키는 위병들을 보내심은 좋은 일이 아닙니다. 소신들의 안위는 걱정하지 마시고 샤의 안위를 지키시는 것이 옳습니다.”
제국 관리의 말에 이스마일과 재상의 표정이 묘하게 변했다. 잠시 이스마일과 눈빛을 교환한 재상이 나서서 제국 관리에게 물었다.
“동방의 사자는 샤께서 왜 근심하시는지 아는 것인가?”
“어느 정도는 알고 있습니다.”
“사자들의 목숨이 걸린 일인데 겁이 나지 않는 것인가?”
“어찌 겁이 나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나라를 대표해 나섰으니 목숨을 걸어야 할 때는 걸어야 하는 법 아니겠습니까?”
제국 관리의 대답에 재상은 이스마일에게 작게 귓속말을 속삭였다.
“저들은 알고 온 것 같사옵니다.”
“동감이오.”
재상의 말에 동의한 이스마일은 제국 관리에게 물었다.
“만약, 지네가 나라면 지금 나를 괴롭히는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이스마일의 물음에 제국 관리는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주인의 천막을 빼앗은 낙타는 목을 침이 옳고, 지켜야 할 양들을 물어뜯은 개는 대려죽임이 옳은 법입니다.”
“목을 치고 때려죽이라……”
이스마일이 대답을 곱씹고 있을 때, 제국 관리는 다시 말을 이었다.
“예로부터 이르기를. ‘왕은 저 해와 같아 온 백성을 따뜻하게 비춰야 한다.’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샤께서 백성들에게 따뜻한 빛을 비추려 하는 것을 막는 이들이 어찌 샤의 신하라 할 수 있겠습니까? 과거에는 샤의 신하라 할 수 있었겠지만, 지금은 그저 샤의 치세를 방해하는 방해물일 따름이옵니다.”
“흐음……”
“이 땅은 샤의 땅이고, 이 땅의 백성들은 샤의 백성입니다. 때문에, 신들이 샤께 왈가왈부를 아뢸 수는 없습니다. 단지, 샤께서 진정한 ‘샤한샤(شاهنشاه, 왕중왕)’의 칭호를 얻기 위해서는 결단이 필요한 법입니다.
제국 관리의 말에 이스마일은 자신도 모르게 진심으로 대답했다.
“자네, 자네의 혀는 그 어떤 명검보다 날카롭고, 그 어떤 여인의 입술보다 달콤하군. 생사고락을 함께했던 이들과 나 사이의 강철보다 질긴 인연을 끊어내고, 내 마음을 이리도 흔들어버리니 말일세.”
“과찬이십니다.”
“하지만, 지금 바로 결단을 내릴 수는 없다.”
잠시 말을 멈췄던 이스마일은 자신의 결정을 통고했다.
“우선은 자네의 청대로 병력은 물리겠다. 알라의 가호가 함께 하기를.”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반드시 신의 조국과 샤를 위한 최고의 결과를 만들어 내겠습니다.”
이스마일에게 정중하게 예를 올린 제국 관리는 뒷걸음질로 대전을 물러났다. 제국 관리가 사라지자 이스마일은 재상을 돌아봤다.
“그들은 움직이겠지?”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그들의 수장이 길길이 날뛰었다고 합니다.”
“피를 보겠군……후우~.”
길게 한숨을 내쉰 이스마일은 작지만 간절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인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