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ack Corporation: Joseon RAW novel - Chapter (134)
짱그라
헬로밤
134화변하는 사람들. (2)
손에 쥔 철사를 보며 일철은 자신만만한 표정이 되었다.
“내가 다른 것은 몰라도 철사는 자신 있지!”
일철의 대장간은 철물도 잘 만들었지만, 철사(鐵絲)나 동사(銅絲)로 기물을 잘 만드는 것으로도 주변에 소문이 나 있었다.
일철이 만든 적쇠(석쇠의 서울 방언)는 인근의 부잣집은 물론이고 한성의 기루에서도 구하러 올 정도였다.
또한, 철사를 요리조리 구부려 만든 쇄자갑(鎖子甲, 사슬갑옷)은 마치 천으로 된 옷을 입은 것처럼 부드럽게 몸에 착 붙는다고 소문이 난 덕에 새로 군역을 지는 이들이 멀리서도 찾아와 구할 정도였다.
물론, 향의 51구역에서 조선식 풀 플레이트 메일이 만들어 보급되면서 수요가 확 줄어 버렸지만.
이렇게 철사를 가지고 기물을 만드는 것에 자신이 있었기 때문에 일철은 자신만만한 것이었다.
“어디 보자….”
일철은 근처에 굴러다니는 나뭇가지로 땅바닥에 대충의 설계도를 그렸다.
“닭장의 크기는….”
일철은 자신의 살림집에 딸린 뒷마당의 면적을 가늠해 보고는 대충 고개를 끄덕였다.
“대충 2칸 정도면 되겠군….”
크기를 정한 일철은 부인을 찾았다.
“여보, 마누라!”
“왜요?”
“우리가 닭을 키우자고!”
“예?”
“그러니까….”
일철의 설명을 들은 일철의 부인은 바로 찬성했다.
“까짓거! 합시다! 안 그래도 계육점주들의 수작질에 속병이 도질 것 같았는데, 합시다! 해요!”
부인까지 찬성하고 나서자, 일은 빠르게 진행되었다. 일철은 바로 근처에 사는 목수에게 주문을 넣었다.
“닭장을 만들어 달라고? 닭장이라…. 어려운 것은 아니니 금방 해 주지.”
“부탁함세. 내 삯은 제대로 쳐 줄테니, 제대로 튼튼하게 좀 만들어 줘.”
그렇게 해서 불과 사흘 만에 2칸짜리 닭장이 만들어졌다.
그렇게 닭장이 만들어지자, 일철은 철망으로 만든 사각형의 창틀을 만든 것이었다. 사각형의 철제 틀에 날줄, 씨줄이 엮이듯 엮인 굵직한 철사는 보기만 해도 튼튼해 보였다.
뿌듯한 얼굴로 자신이 만든 철창을 댄 닭장을 바라보던 일철은 부인과 자식들에게 소리쳤다.
“뭣들 하고 있어? 얼른 닭들 집어넣어야지!”
“예! 얘들아!”
일철의 가족들은 서둘러 암탉들과 수탉들을 닭장 안으로 밀어 넣었다.
철망으로 창을 막은 닭장은 곧 그 효과를 발휘했다. 창을 넘어 밖으로 도망가는 닭들도 없었고, 바람이 잘 통하니 더위 먹는 닭들도 안 나왔다.
바닥부터 상당한 높이로 돌과 회죽으로 꼼꼼히 막은 덕에 삯이나 오소리는 물론, 구렁이로부터 안전해진 공간에서 닭들은 느긋하게 돌아다녔다.
‘일철네 닭장이 대단하다!’라는 소문이 돌면서 근처 양계장의 사람들이 기웃거리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본 일철이 턱을 쓰다듬었다.
“가만 보자…. 이거 베끼는 놈이 나올 것 같은데?”
이런저런 궁리를 하던 일철은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근방에 누가 글을 알더라?”
글을 아는 이들을 찾아 헤매던 일철은 결국 제유소의 말단 아전에게 계작 두 마리를 안기고 대필을 부탁했다.
“해 달라니 해 주네만…. 과연 사람들이 찾을까?”
“찾는 것은 나중 문제고, 애먼 놈들이 말도 안 하고 자기네 마음대로 베끼는 꼴은 못 봐서 하는 겁니다.”
“아! 그건 몹쓸 일이지!”
일철의 설명에 고개를 주억거린 아전은 휘리릭 문서를 작성해 주었다.
“감사합니다!”
“그것 가지고 뭘…. 여하튼 계작 잘 먹겠네!”
그렇게 서류를 만든 일철은 바로 지적재산관리소에 자신의 철망을 등록했다. 관리소 직원을 통해 서류를 확인한 향은 미소를 지었다.
“드디어 스스로 움직이는 이들이 늘어나는군.”
* * *
철망창이 특허로 등록되면서 소문을 들은 양계장들은 일철의 대장간에 철망창을 주문했다.
양계장은 지방에도 많았기 때문에, 지방의 대장장이들이 일철의 대장간을 찾아 사용 계약을 맺는 일도 점점 늘었다.
이렇게 계약이 있을 때마다 일철은 자신의 부인에게 당당하게 외쳤다.
“나, 아직 안 죽었어!”
그동안 빛이 바랬던 대장장이의 자존심이 살아난 것이었다.
* * *
닭들이 다시 꾸준하게 공급되면서 ‘일미계작’은 다시 손님들이 늘기 시작했다. 그에 맞춰 양계장도 3채로 늘었다.
이렇게 양계장이 늘면서 일철은 새로운 문제를 만나게 되었다.
사료의 문제였다.
일철의 자식들은 닭들이 먹을 지렁이, 개구리, 굼벵이들을 잡느라 종일 사방으로 돌아다녀야 했다. 하지만, 그걸로는 무리라는 것이 확실했다.
“흐음….”
해답을 찾기 위해 고민하던 일철은 제유소로 향했다.
“이여! 송 갑부 아니신가!”
“아이고, 갑부라니 당치도 않습니다요!”
기름을 파는 아전의 농에 손사래를 치던 일철은 일단의 일꾼들이 가마니를 지고 나와 쌓는 것을 보게 되었다.
“저건 뭔가요?”
“저거? 기름을 짜내고 남은 콩 찌꺼기일세.”
“많네요. 저거 치우는 것도 일이겠네.”
“소나 돼지 먹이로 그만이야.”
아전의 대답에 일철의 고개가 홱 돌아갔다.
“소와 돼지가 먹는다고요?”
“말도 먹지. 왜?”
“저거 제게 좀 파시죠!”
“한 섬에 콩 2말일세.”
“잠시만 기다리십쇼!”
허겁지겁 집으로 달려가는 일철의 뒷모습을 보며 아전은 장부를 펼쳤다.
“보자~. 이렇게 하면 인근의 양계장들에는 다 들어가는 건가?”
* * *
이렇게 적지 않은 백성들이 조금 더 나은 생활을 위해 그동안의 틀을 깨기 시작했다.
수면 아래에서 벌어지는 작은 움직임이었지만, 그 움직임이 만들어 낸 파문이 향에게 닿았다.
꽃샘추위도 지나간 3월의 어느 날,
향은 여느 때처럼 말에 올라 51구역으로 향하고 있었다.
“훠이~. 물렀거라! 세자 저하 행차시다!”
선두에 선 내관의 외침에 대로를 지나던 백성들은 모두 좌우로 갈라져 부복했다.
“이거야 원…. 매일 같이 이러는 것도 불편한데 법을 바꿔야 하나….”
부복한 백성들 사이로 말을 몰며 향은 난감한 표정이 되어 중얼거렸다.
* * *
세종이나 역사에 나오는 다른 왕들처럼 1년의 대부분을 궁에만 머물면서 어쩌다 밖에 나오면 별문제가 될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향은 반대로 1년의 대부분을 궁과 51구역을 오가면서 생활한다는 것이 문제였다.
호종하는 호위무관들과 내관들의 수를 최소한으로 줄인다고 줄였지만, 안전의 문제 때문에 1/3만 줄일 수 있었다. 덕분에 향이 한번 궁을 나서면 적어도 30명의 인원이 한꺼번에 움직여야 했다.
“너무 많습니다! 더 줄여도 됩니다!”
향은 인원 감축을 주장했지만, 세종은 요지부동이었다.
“네가 세자라는 것을 잊지 말거라.”
그리고, 토호에 대한 정책들이 준비되면서 세종은 다시 명령을 내렸다.
“무도한 이들이 불측한 일을 벌일지 모르니 세자에 대한 경호를 강화하라!”
덕분에 향이 51구역으로 오가는 날은 아침저녁으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이었다.
“피할 수 없다면 시간을 줄여야겠지!”
결국, 향은 건강과 키 성장을 위해 시작한 승마를 빠른 출퇴근을 위해 계속하게 되었다.
우스운 것은, 향이 걱정하고 미안해하는 것과 달리 한성의 주민들에게 있어서 향의 출퇴근은 한성의 명물이었다. 특히나 명의 황제도 감탄한 향의 외모는 한성 주민들의 자랑이었다.
“이 촌놈들아! 너희들은 세자 저하의 얼굴 본 적이 있냐? 우리는 매일 본다! 세자 저하가 얼마나 잘생겼는지 너희들은 모르지?”
향과 세종이 만들어 실행한 여러 개혁정책 덕에 백성들의 지지는 뜨거웠다.
어쩌다 궁에 일이 있어 향이 밖으로 나오지 않는 날에는 길에 나선 백성들은 걱정이 가득한 눈으로 경복궁을 바라봤다.
“설마 어디 편찮으신 것은 아니시겠지?”
* * *
“훠이~! 물렀거라!”
향의 고민을 아는지 모르는지 내관의 가갈은 계속 이어졌다.
51구역의 정문이 눈에 들어올 때 즈음, 갑자기 요란한 꽹과리 소리가 들렸다.
괭괭괭괭!
“저하! 쇤네의 소원을 풀어 주시옵소서!”
“정지!”
“정지!”
“저하를 보호하라!”
난데없이 꽹과리를 치며 한 남자가 대로 가운데로 뛰어들자 행렬은 비상이 걸렸다.
향의 주변에 있던 호위무관들이 다급히 향을 감싸고 있을 때, 선두에 있던 무관들이 말을 탄 채 문제의 남성을 둘러쌌다.
“네 이놈! 뭐 하는 놈이냐!”
“저하! 쇤네의 소원을 풀어 주시옵소서!”
“뭐 하는 놈이냐니까!”
대답은 하지 않고 세자만 찾는 남자, 아니 소년에 더 가까운 이의 행태에 무관 하나가 말에서 내려 검을 뽑아 겨누었다.
호위 무관의 서슬에 문제의 소년은 허겁지겁 대답했다.
“저, 저는 말복이라고 합니다! 살려 주십쇼!”
살려 달라는 말과 함께 냅다 부복한 말복이는 속으로 소리를 질렀다.
‘내가 죽으려고 환장한 거지! 그놈의 술이 원수다! 원수야!’
세자의 행렬을 막는다는 것은 맨정신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기에, 말복은 한 동이의 탁주를 비웠다.
취기가 만들어 낸 호기에 일을 벌였지만, 무관이 겨눈 칼에 그 호기는 순식간에 사라졌다.
바닥에 엎드린 채 바들바들 떠는 말복의 귀에 향과 호위무관의 대화가 들어왔다.
“그 남자를 데리고 오게.”
“하오나, 저하! 불측한 의도를 품고 접근한 놈일지 모릅니다!”
“그럼 간단하게 몸수색을 하고 데리고 오면 될 것 아닌가? 원을 풀어 달라며 행렬을 막아섰으니 무슨 사정인지는 알아야 할 것 아닌가?”
“…하오나….”
“세자의 길을 막는 것이 중죄라는 것을 알면서도 뛰어들었네. 그 정도면 얼마나 필사적인지 알 수 있지 않나? 데리고 오게.”
“…명을 받듭니다.”
향의 명령에 무관들은 말복의 몸을 수색한 다음 향 앞으로 끌고 왔다.
자신이 탄 말 앞으로 끌려온 말복을 본 향은 말에서 내렸다.
“몇 살이냐?”
“열, 열넷 되었사옵니다.”
“나하고 동갑이로군. 그래 무슨 원통한 사정이 있어 길을 막은 것이더냐?”
향의 물음에 말복은 주변을 둘러싼 호위무관들의 눈치를 살피며 더듬더듬 대답했다.
“원, 원통한 일이 아니라 도저히 풀지 못한 일이 있어서….”
“풀지 못한 일?”
“예. 제가 사는 동리의 그 누구도 답을 주지 못해서 이리했습니다. 주상 전하 다음으로 똑똑하신 저하시라면 답을 주실 거라 생각해서….”
“그래 무엇을 알고 싶은 것이더냐?”
“쇤네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알려 주시옵소서!”
“허어….”
‘아닌 밤중에 홍두깨도 아니고, 직업 상담이라고?’
예상하지 못한 답변에 기가 막혔던 향은 말복에게서 술 냄새를 맡았다.
“킁킁. 이거 술 냄새인데. 술을 마신 거냐?”
“예, 맨정신으로는 도저히 엄두가 안 나서….”
“하하하!”
말복의 대답에 향은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한참 웃어 댄 향은 말복을 바라봤다.
“자세히 이야기를 나누기 전에 포청에 가서 매 좀 맞고 오너라.”
“예?”
“이렇게 일을 벌일 정도면 네게도 간곡한 일이겠지. 하나, 국법이란 것이 있다. 너는 지금 그 국법을 어겼으니 벌을 받아야 함이 당연하다. 그러니, 벌부터 받고 오거라.”
“예.”
향의 말에 말복은 풀이 죽어 대답했다. 그 모습을 본 향이 무관들에게 명했다.
“자네와 자네는 이자를… 잠깐, 너의 이름이 뭐더냐?”
“말복이라 하옵니다.”
“그래, 이 말복이를 포청으로 데리고 가서 형을 집행하라 하게.”
“예!”
향의 명령에 호위무관들은 기세등등하게 대답했다. 그 모습에 향이 무관들에게 손짓했다.
“귀 좀….”
향은 가까이 온 호위무관들에게 작게 속삭였다.
“최대한 멀쩡하게 데리고 오도록. 만약에 말일세, 내가 보기에 심하다 싶으면 자네들에게 그 책임을 물을 걸세. 포도대장에게도 똑같이 전하도록.”
“예, 옙!”
호위무관들은 식은땀을 흘리며 대답했다.
향은 말복에게 명했다.
“다시 말하지만 국법은 엄정하다. 가서 벌을 받고 돌아오라, 너의 소원은 그다음에 이야기하겠다.”
“예.”
이렇게 해서 실제 역사보다 빠르게 격쟁(擊錚)이 공식적으로 기록되게 되었다.
한편, 이 소동을 구경한 한성 주민들은 보지 못한 이웃들에게 상황을 설명하며 이렇게 말했다.
“세상에 이렇게 어질면서도 엄정한 양반 본 적 있어? 본 적 있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