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ack Corporation: Joseon RAW novel - Chapter (284)
284화 한성의 평범한 일상. (2)
‘왜 여기에 전하께서 계신 것입니까?’
바닥에 부복한 맹사성은 식은땀을 흘리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다른 대신들보다 적게는 마셨다지만, 맹사성 역시 상당한 양을 마신 상태였다.
하지만, 취기는 어느샌가 자취를 감추었다.
“이리 오시오. 잘되었소. 안 그래도 혼자 먹기 적적했는데. 와서 한잔 더 하시오.”
“예. 예….”
무릎걸음으로 다가온 맹사성은 세종이 내미는 잔을 공손히 받았다. 술잔을 받아 든 맹사성의 손은 작게 떨리고 있었다.
그런 맹사성의 모습을 보며 세종은 살짝 웃으며 말을 이었다.
“대신들이 서로 격의 없이 주연을 즐기는 소리를 들으니 참으로 안심이 되었소이다.”
“풋! 콜록! 딸꾹!”
세종의 말에 마시던 술을 뿜은 맹사성은 냅다 바닥에 부복하며 머리를 조아렸다.
“추태(醜態)를 부린 죄,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추태는 무슨…. 대신들이 근심 없이 주연을 즐기는 소리를 들으니 오히려 안심이 되었소이다.”
“망극하옵니다!”
“그건 그렇고…. 그렇게 일이 고되오?”
“아, 아니옵니다! 전하와 이 조선을 위해 견마지로(犬馬之勞)하겠다고 나선 이들이옵니다!”
목소리를 높여 대답하는 맹사성이었지만, 속으로는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고 있었다.
‘어째서 왜? 왜 나만? 왜? 왜! 이 자리에 내가 있어야 하나고! 왜! 왜!’
그 모습에 세종은 계속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어 갔다.
“역시 맹 대감이오, 만약 황 대감이 여기 있었다면 당장 불평부터 했을 터인데 말이오.”
“설마 그렇겠사옵니까?”
대답은 그렇게 했지만, 맹사성은 속으로 세종의 말에 동의하고 있었다.
‘확실히 황 대감이라면 그렇게 할 인간이야. 암.’
이런저런 스캔들로 인하여 ‘종신 근무’라는 벌을 받은 황희는 벌을 받은 이후 더욱 매서운 입심을 자랑하고 있었다. 때로는 세종에게도 문제를 지적하는 황희의 모습에 맹사성이 걱정하자, 황희는 간단하게 대답했다.
“이미 버린 몸인데 나중을 걱정할 필요가 있겠소?”
“대감!”
* * *
바들바들 떠는 맹사성에게 계속 술을 권하며 세종은 말을 이었다.
“오늘 만기(萬機, 임금이 보는 정무)가 빨리 끝나 시간이 난 덕에 잠시 백성들의 사는 모습을 보고자 잠행(潛行)에 나섰소이다. 그런데 대신들이 모여 술을 마신다기에 와 봤소이다. 덕분에 이런저런 속내를 들을 수 있었소.”
“살, 살려 주시옵소서!”
“내가 대감을 왜 죽이겠소? 내가 반성을 할 일이지.”
“아, 아니옵니다! 소신들의 죄이옵니다.”
“죄는 아니지. 내 대감들의 고충을 알게 되었으니, 한번 답을 궁리해 보도록 하겠소.”
“망, 망극하옵니다.”
“그럼, 한잔 더 합시다.”
“예, 예. 전하.”
* * *
그렇게 몇 순배의 술이 더 돌고 나서야 맹사성은 자리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흠, 밤도 깊었으니 내일 보도록 합시다.”
“예, 전하. 내일 뵙겠사옵니다.”
“조심해 들어가시오.”
공손하게 예를 취하고 밖으로 나가는 맹사성의 뒷모습을 본 세종은 작게 콧소리를 내며 턱수염을 쓰다듬었다.
“흐음….”
* * *
맹사성에 관한 태종의 평가는 단 두 글자였다.
-여수(如水, 물과 같다.)
“맹사성은 물과 같은 자다. 물이 그릇을 가리지 않듯이 그 또한 자리를 가리지 않지. 그리고 항상 수평을 유지하는 물처럼 그 역시 항상 공평무사하지. 이렇게 물과 같다는 것, 그것이 맹사성의 최대 장점이자, 단점이다.”
태종이 승하하고, 정권을 완전히 장악한 세종은 태종이 말한 ‘최고의 장점이자 단점’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알게 되었다.
세자인 향과 비교하자면 황희나 맹사성과 같은, 태종이 추천했던 인재들 모두 부족함이 있었지만, 그래도 눈에 차지 않을 정도는 아니었다.
때문에, 세종은 맹사성을 중용했고, 맹사성은 자신의 몫을 충분히 해냈다.
특히나, 좌의정에 오르고 나서부터는 여러 부처 사이의 분쟁을 조율하고, 공평무사하게 일을 처리하면서 확실하게 이름값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세종은 맹사성의 단점을 확실하게 보게 되었다.
맹사성의 최대 단점은 우유부단하다는 것이었다. 소탈하면서 사람을 가림이 없다는 그의 성격이 우유부단함을 만들어 낸 것이었다.
맹사성은 남에게 싫은 소리를 잘 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남에게 싫은 소리를 듣기 싫어했다. 그렇기에 분쟁이 생기면 최대한 공평무사하게, 이치에 합당하게 결론을 내리는 것이었다. 그래야 뒷말이 안 나오니까.
또한, 정무를 보는 관리들 사이에 분란이 생겨 일이 어그러지는 것이 싫어 항상 조율에 신경을 썼다.
이러다 보니 먼저 나서서 의견을 개진하는 경우가 적었다. 황희가 필요하다면 대놓고 세종에게도 문제를 지적했다면, 맹사성은 일단 문제가 발견된 다음에 해법을 내놓는 성격이었다.
아까 벌어졌던 술자리에서도 설전이 벌어지면, 맹사성은 부지런히 대신들 사이를 오가며 과열된 분위기를 가라앉혔다.
* * *
“총리는 아니더라도 부총리 자리에 최적인 인물이야. 그건 그렇고…. 대신들이 야근으로 힘들다 하니 이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가장 좋은 것은 일의 집중도를 높여서 최대한 짧은 시간에 최대한 많이 처리하는 것이 좋을까?”
‘혹독한 업무 환경’에 대한 해법을 고민하는 세종이었다. 하지만, 대신들이나 관리들이 들었다면 살려 달라고 애걸할 방법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렇게 된 배경에는 아까 대신들의 술자리에서 튀어나온 세종에 대한 뒷말 때문이었다.
세종 자신은 잘 모르고 있었지만, 은근 뒤끝이 강한 인간이었다.
* * *
“전하, 계주들을 다시 들이오리까?”
내금위장의 물음에 현실로 돌아온 세종은 자세를 바로 하며 대답했다.
“들여보내게.”
“예. 전하.”
잠시 후, 세 명의 계주들이 다시 방에 들어왔다. 정신을 가다듬은 세종은 계주들과 대화를 이어 갔다.
“지난번에 내가 명하기를, 장인들 주변을 잘 살피라 했다. 그래, 무슨 변화가 있는가?”
“아직은 없사옵니다.”
“그런가? 다행이로군. 그래, 일을 진행하는 데 있어 불편한 점은 있는가?”
세종의 물음에 계주들의 얼굴이 밝아지며 바로 대답했다.
“사람이 모자랍니다. 계원들을 늘리는 것을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인원을 늘려 달라?”
계주들의 요청에 세종은 턱수염을 쓰다듬으며 생각을 정리했다.
‘그러고 보니 기유년 범궐을 진압하는 과정에서 검계의 손해가 컸었지? 하지만, 지금은 내 말을 듣고는 있지만, 본질은 파락호들인데…. 잘못하면 한성의 치안이 문제가 될 수 있다.’
결국, 세종은 계주들에게 대놓고 물었다.
“내가 자네들을 불신하는 것은 아니나, 한성의 치안이 걱정되는 것도 있고, 진중하지 못한 자들로 인해 너희들의 존재가 드러날 수 있다는 걱정을 지울 수가 없다.”
“그 부분은 저희들이 목숨을 걸고 유지하겠사옵니다.”
“그런가? 그런데 말이다. 내가 알기로 너희들이 크게 사람을 잃은 때는 기유년이다. 그런데, 여태까지 인원을 늘려 달라는 청이 없다가 왜 지금 청을 하는 것인가?”
세종의 지적은 합당한 것이었다. 세종의 물음에 북촌 검계의 계주가 그 이유를 설명했다.
“기유년의 일로 많은 이를 잃었지만, 4 대문 안의 일은 남은 이들만으로도 가능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 맡은 일을 제대로 처리하자면 제물포까지는 사람이 가야 하옵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기에는 사람이 너무 모자랍니다.”
“그렇군.”
계주의 대답에 세종은 고개를 끄덕였다. 산동에 상관을 만들고 해상 교역로가 자리를 잡으면서, 제물포에는 명에서 온 화상(華商)들이 바글바글했다. 상인들만 아니라 그들을 호위한다고 온 중국 무사들도 한둘이 아니었다. 제물포에 발을 딛는 순간, 무기들을 압수했지만, 믿을 수는 없었다.
계주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던 세종의 뇌리에 갑자기 또 다른 생각이 번뜩였다.
‘가만, 외부의 간자들이 걱정되는 것은 제물포만이 아니지 않은가? 멀리는 동래의 왜관도 있고, 개성도 아직은 좀 불안하다. 그렇다면….’
막 입을 열려던 세종은 갑자기 말을 멈췄다.
‘하지만, 이들의 세력을 확장한다면 과연 제어가 제대로 될까?’
이런저런 경우의 수를 따져 보던 세종이 결론을 내렸다.
“좋다. 허락하겠다. 하지만, 거기에 더해 명령을 추가하겠다.”
“추가라 하시면….”
계주들은 마른침을 삼키며 세종을 바라봤다. 세종이 내리는 명령치고 쉬운 일은 거의 없기 때문이었다.
“이왕 사람을 늘리고, 세력을 넓히는 김에 감시망도 넓히도록, 우선은 제물포와 동래, 개성. 최종적으로는 조선 전역이다.”
“제물포, 동래, 개성….”
세종이 우선적으로 짚은 지역을 곱씹은 계주들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제물포와 동래는 화상들과 왜상(倭商)들이 잔뜩인 곳이었다. 따라서 간자가 없을 리 만무했다. 마지막으로 개성은 고려의 왕도였다. 지금은 거의 사라졌지만, 조선이 개국한 초기에는 ‘반(反)조선’의 기운이 넘실대던 곳이었다.
‘쉽지 않은 일이지만, 잘하면 조선의 밤을 우리가 장악할 수 있다!’
계산을 끝낸 계주들은 바로 머리를 숙였다.
“명을 받듭니다!”
“그리고, 하나 더.”
‘하나 더.’라는 세종의 말에 검계의 계주들은 정신을 바짝 차렸다. 그런 계주들의 얼굴을 보며 세종은 말을 이었다.
“너희들은 나의 명령을 받는 비밀 조직이다. 하지만, 지금 상황을 보자면 중구난방이다. 제대로 조직을 구성하도록.”
세종의 명령에 계주들은 서로의 얼굴들을 돌아봤다. 갑자기 살벌해진 분위기에 세종 옆에 앉아 있던 내금위장은 슬그머니 검의 자루 위로 손을 올렸다.
“왜? 어려운 일인가?”
세종의 물음에 계주들은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며 답했다.
“아니옵니다.”
하지만, 계주들 사이의 분위기는 계속 살벌했고, 그 모습을 보던 세종이 질문을 던졌다.
“그러고 보니 검계의 계주는 어떻게 정하나?”
“선대 계주가 은퇴하기 전에 지명합니다만, 최종적으로는 지명자와 도전자의 결투를 통해 계주가 정해집니다.”
“그러니까, 가장 강한 놈이 계주가 된다는 것이로구먼?”
“그렇사옵니다.”
“그럼, 내가 말한 명령에 따라 하나의 조직으로 통합된다면, 그 수장 자리를 놓고 자네들 셋이 결투를 하게 되는 것인가?”
“아마, 그렇게 될 것이옵니다.”
“생사투(生死鬪)는 아니겠지? 만약, 생사투를 벌여야 한다면 손해가 큰데….”
“예, 생사투는 거의 벌어지지 않사옵니다. 도전자로 나설 정도의 실력자를 잃는 것은 손해니 말이옵니다.”
“그런가? 흐음….”
서로를 경계하는 계주들의 모습을 살피던 세종이 다시 입을 열었다.
“내가 후보를 천거해도 괜찮겠나?”
“전하께서 지명하신다면 따르겠사옵니다.”
“아니지, 규칙은 따라야지. 그래야 분란이 안 생기지. 나는 자네들과 경쟁할 적당한 이를 하나 후보로 내세울 생각이라네.”
“적당한 이라 하시면?”
운종가 계주가 조심스럽게 묻자, 세종은 고개를 돌려 내금위장을 바라봤다.
“내금위장. 자네가 후보일세.”
“명을 받드옵니다.”
내금위장의 대답이 나오자마자 계주들은 동시에 소리쳤다.
“이런 씨팔!”
“응?”
계주들의 욕설을 들은 내금위장의 얼굴이 험악해지자, 계주들은 바로 머리를 조아렸다.
“비천한 것들이 실언을 했사옵니다!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듣지 않은 것으로 하지.”
“망극하옵니다!”
감사하다고 대답했지만, 계주들은 속으로 고함을 질러 댔다.
‘이거 너무한 것 아닙니까!’
세종의 옆에 앉은 내금위장이 가진 별호는 조선의 삼척동자도 다 아는 별호였다.
내금위장이 가진 별호는 ‘조선제일검’이었다.
결국, 다동 계주가 세종에게 백기를 흔들었다.
“이 자리에서 내금위장을 수장으로 받아들이겠습니다.”
다동 계주의 말에 세종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지, 규칙은 규칙! 관례를 따라야 하지 않겠는가?”
“내금위장이 수장이 된다면 반대할 이가 없을 것입니다.”
북촌 계주까지 나섰지만, 이번에는 내금위장이 말을 받았다.
“그거야 모를 일 아닌가? 확실하게 결판을 내는 것이 최선일세. 그리고, 이제는 나도 예전 같지가 않아, 그러니 누가 아나?”
“설마요….”
내금위장의 엄살에 계주들은 도리질을 치며 속으로 외쳐 댔다.
‘예전 같지 않기는 개뿔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