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ack Corporation: Joseon RAW novel - Chapter (294)
294화 동상이몽(同床異夢) (1)
요동에서 한바탕 난리가 벌어지고, 왜국의 구주에서도 난리가 벌어졌지만, 조선은 안정을 찾아 움직이고 있었다.
연초에 요동에서 벌어진 전란은 ‘총력전’을 선언한 세종의 적극적인 지휘로 국경 너머에서 단기전으로 끝이 났고, 왜국에서 벌어진 전란은 아예 영향조차 주지 못했다.
하지만, 조정은 주의 깊게 왜국의 움직임을 관찰하고 있었다. 왜국에 설치한 두 곳의 상관 가운데 하나가 오우치 가문의 영지에 자리 잡고 있었고, 오우치 가문과 손을 잡고 채굴하는 은광이 있기 때문이었다.
“무슨 짓을 해서라도 확보해야 하는 것이 은광입니다!”
재경부 장관 김점은 목에서 피를 토하듯이 은광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그의 열변에 다른 장관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막 채굴을 시작한 은광이었지만, 들어오는 원광이 심상치 않았다.
은의 함유량도 심상치 않았고, 아직 제 궤도에 오르지도 않았음에도 출토량이 만만치 않았다.
만약, 이와미 은광이 제대로 가동을 시작한다면 조선의 경제는 날개를 달 것이 확실한 일이었다.
“만약, 대내씨가 위험해진다면 우리 조선은 출병(出兵)까지 감수해야 한다고 생각하옵니다!”
“그것은 너무 과격한 생각 아니오?”
김점의 말에 맹사성이 과하다는 반응을 보였지만, 김점은 고개를 저었다.
“과격한 것이 아니옵니다!”
김점은 세종에게 머리를 조아리며 사태의 위중함을 설명했다.
“전하! 지금 조선은 점점 더 많은 기물이 나오면서 백성들의 편리함을 돕고 있사옵니다! 문제는 이런 기물들은 다 돈을 내고 사야 한다는 것이온데, 백성들이 돈을 버는 길은 한정되어 있사옵니다!”
“돈을 버는 길이 한정되어 있다?”
김점의 말에 세종은 심각한 얼굴로 상황을 되짚어 봤다.
말없이 머릿속의 기억을 정리한 세종이 침울한 얼굴이 되었다.
“그렇구려. 관리들과 교원의 수를 늘렸지만, 학문을 익힌 자들에게 모두 자리를 주기에는 부족하고, 농사가 아닌 다른 일을 찾는 이들에게는 공사 현장의 노동일 외에는 충분한 일자리를 줄 수 없는 상황이구려.”
“그렇사옵니다. 이를 해결하지 못한다면 종국에는 경장을 불안하게 함은 물론이고 치국도 불안하게 할 것이옵니다. 그러므로 백성들에게 여러 일자리를 만들어 줘야 하는데 이는 엄청난 재물이 소모되는 일이옵니다. 물론, 지금도 여기저기서 금과 은을 채굴하고 있지만, 제대로 채굴하는 상황은 아니지 않사옵니까?”
김점의 지적에 세종과 장관들은 불편한 얼굴로 입을 다물었다.
그동안 진행된 탐광을 통해 적지 않은 수의 금광과 은광을 찾을 수 있었고, 그중 상당한 수는 충분한 채산성을 가지고 있었다.
특히나 금광은 전국적으로 여러 곳에 자리하고 있었고, 평안북도 운산에서는 엄청난 규모의 금맥을 찾아낼 수 있었다.
하지만, 조선은 그것을 제대로 캘 수 없었다. 명국 때문이었다.
조선이 부강해져서 ‘칭제건원(稱帝建元, 황제라 칭하고 연호를 정함)’을 할 때가 그 광산을 채굴할 때라는 것이 세종과 대신들 사이의 공통적인 생각이었다.
“그렇기에 석견(石見)의 은광은 우리 조선이 반드시 가지고 있어야 하옵니다. 이만주와 동맹가첩목아를 징벌한 조선군의 전력이라면 충분히 가능한 일 아니옵니까?”
김점의 말에 세종은 피곤한 얼굴로 대답했다.
“경의 말은 잘 이해했소. 하지만, 너무 앞서가지는 맙시다.”
“…예.”
그렇게 일단락되었지만, 세종의 근심은 가라앉지 못했다.
김점이 군사적 수단을 동원할 것을 주장할 때, 대신들의 상당수가 그의 의견에 동조하는 듯이 보였기 때문이었다.
“때로는 승리가 독이 된다더니….”
이만주와 먼터무를 상대할 때만 하더라도 확전이 될 경우를 걱정하면서, 조심하던 대신들이 이제는 무력의 사용을 긍정적으로 보기 시작한 것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대내씨가 승전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조선군 출병론’은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하지만, 세종은 대신들의 호전성을 경계했다. 이는 향도 마찬가지였다.
“무슨 일제 강점기 왜놈들도 아니고…. 왜 이리 호전적이야? 후장총은 당분간 접어야겠다.”
* * *
무기 개발은 당분간 연기하는 것으로 마음먹은 향은 다른 부분에 매달렸다.
“장영실 지평을 불러오게.”
51구역에 도착한 향은 바로 장영실을 불렀다.
경장이 진행되면서 꾸준하게 실적을 쌓은 장영실은 지평까지 승진한 상태였다.
잠시 후, 향의 호출을 받은 장영실이 향의 사무실로 들어왔다.
“저하, 부르셨사옵니까?”
“예, 전에 말한 방직기의 개발 상황은 어떻습니까? 어느 정도 진척되었나요?”
향의 물음에 장영실은 허리를 90도로 꺾으며 대답했다.
“송구하옵니다! 아직 별다른 진척이 없사옵니다!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괜찮아요. 쉬운 일은 아니라는 것은 잘 알고 있었으니 말입니다.”
“송구하옵니다.”
“정말 괜찮다니까요.”
향의 말은 진심이었다.
‘방직기를 만들 때도 그 고생을 했는데, 원형으로 천을 짜는 것이 쉽겠어?’
진땀을 흘리며 굽신거리는 장영실을 다독인 향은 본론을 꺼냈다.
“그래서 말인데, 우리 생각을 조금 달리해 봅시다.”
“생각을 달리하라 하심은?”
“제가 원형으로 천을 짜는 방직기를 만들라고 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자루 때문이었죠?”
“그렇사옵니다.”
“왜 그랬을까요?”
“두꺼운 천을 바느질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닌지라….”
“그렇습니다.”
장영실의 대답에 향은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포대를 만드는 것을 보면 아낙네들이 하나하나 손으로 바느질해서 만들고 있었다. 단순 노동이었지만, 노동 강도는 절대 약하지 않았다. 자루를 만드는 천이 두꺼웠기 때문이었다.
덕분에, 자루를 찾는 곳은 점점 늘고 있었지만, 공급은 한정된 상황이었다.
“그러니까, 생각을 달리해서 이 바느질을 쉽게 하는 기물을 만들자는 것이지요.”
“바느질을 쉽게 하는 기물 말이옵니까?”
“재봉틀이라고 이름을 붙여 봤습니다.”
향이 책상 위로 설계도를 펼치자, 장영실은 가까이 다가와 설계도를 살피기 시작했다.
재봉틀을 구성하는 각각의 부품들에 관한 설계도를 살피는 장영실의 눈이 빛나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던 향이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그 코스프레 장인 녀석이 도움이 될 때도 있네.’
21세기, ‘광(廣)덕’이라고 불렸을 정도로 여러 분야의 덕질을 하던 향-당시엔 김진호-은 그 덕질의 종류만큼이나 다양한 인맥을 만들었다.
그런 인맥 가운데 하나가 코스프레 애호가였다. 게임과 애니메이션 캐릭터의 코스프레를 주로 하던 그녀는 직접 의상을 만들었다.
그녀가 코스프레를 할 때 사용할 소품을 만들어 주면서 친분을 쌓은 향은 그녀가 사용하는 재봉틀을 보며 눈을 빛냈다.
“야! 김진호! 그거 분해하면 죽여 버린다!”
향의 성격을 잘 아는 그녀가 경고하자, 향은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난 최신형은 별로 안 좋아해.”
“특이한 놈.”
스팀 펑크를 좋아하는 것만큼, 향의 취향은 확실했다.
버튼 하나를 누르거나 다이얼을 돌리는 것만으로 온갖 종류의 바느질을 할 수 있는 초현대식 재봉틀은 향의 취향이 아니었다.
아니, 재봉틀만이 아니라 그가 좋아하는 기계류 모두가 아날로그의 냄새가 잔뜩 풍기는 것들이었다.
그런 취향 덕에 향은 황학동과 다른 골동품 시장을 뒤져 구식 재봉틀을 구한 다음 분해해 내부를 살폈다.
인터넷을 통해 확보한 정보와 실물을 통해 향은 재봉틀에 관한 자세한 정보를 알 수 있었다.
이런 과거의 기억 덕분에 향은 꽤 괜찮은 수동식 재봉틀의 설계를 만들어 낼 수 있었다.
‘꽤 괜찮다.’라는 수식어를 붙일 수밖에 없는 이유는 설계도에 그려진 재봉틀의 모양이 상당히 투박하고 덩치가 컸기 때문이었다. 조선의 금속 가공 기술이 꽤 발달했지만, 아직은 갈 길이 멀었다.
“꽤 괜찮을 것 같사옵니다.”
향의 설계도를 본 장영실은 긍정적인 평가를 내렸다.
“그렇지요? 그럼 한번 만들어 봅시다. 이 재봉틀이 제대로 만들어지면, 자루를 만드는 것만이 아니라 돛을 만들 때도 도움이 되지 않겠습니까?”
“그렇겠사옵니다.”
향의 말에 장영실은 고개를 끄덕였다.
자루를 만드는 데 들어가는 천이 두껍고 질기다고 하지만, 돛을 만드는 데 사용되는 천은 더욱 두껍고 질겼다.
그렇게 두껍고 질긴 천들을 바느질해서 커다란 한 장의 돛을 만드는 것은 중노동에 속하는 일이었다.
그렇게 고개를 끄덕이던 장영실은 다른 문제를 지적했다.
“방직기는 그렇다 해도, 지금 태엽 시계를 만드는 데 전념을 해야….”
“재봉틀부터 시작하도록 합시다.”
“예.”
향의 명령에 장영실은 말없이 설계도를 챙겼다.
* * *
장영실과 함께 장인들을 찾아가 재봉틀의 구조와 작동 원리에 관해 설명하는 것을 끝으로 하루의 업무를 끝낸 향은 가벼운 발걸음으로 환궁했다.
세종과 소헌왕후를 찾아 돌아왔음을 고한 향은 동궁전으로 돌아와 세자빈과 양원, 양제를 찾았다.
“오늘도 별일 없었지요?”
“예, 저하.”
이제는 많이 부푼 배를 한 세자빈과 양원, 양제는 향의 물음에 바로 답했다.
세자빈과 양원, 양제가 회임한 이후 향은 그들의 건강을 세심하게 관리했다. 식생활은 물론이고, 가벼운 운동을 시키는 등, 향은 꼼꼼하게 신경 썼다.
그런 향의 모습은 바로 소문이 났고, 샘이 난 소헌왕후와 후궁들은 은근히 세종을 갈궜다.
* * *
그렇게 세자빈과 양원, 양제들과 덕담을 나눈 향은 자신의 방으로 돌아왔다.
방에 연결된 서재로 들어선 향은 책상 위에 가득한 보고서를 보며 작게 욕설을 뱉었다.
“빌어먹을….”
책상 위에 떡하니 놓인 보고서들은 국정에 관한 것들이었다.
21세기의 경우, 기껏 들어간 공무원, 그것도 중앙정부의 핵심 기관 소속이었음에도 향은 우울증 때문에 관둬야 했다.
그 정도로 국정, 또는 행정은 향에게 심각한 스트레스를 안겨 주는 존재였다.
하지만, 다시 태어나서 세자로 책봉을 받자마자 이런저런 일들로 원로 대신들을 숙청시키고, 세종이 시작한 경장에 큰 공헌을 한 향이었다.
이는 향이 좋아서 한 일이 아니었다.
자신의 안전을 위해서는 부왕이 강력한 권력을 가져야 했다. 또한, 자신의 덕질을 위해서는 조선이 발전해야 했다.
이를 위해 향이 그렇게 열심히 한 것이었다.
문제는 그 과정을 통해 향에게 점점 더 많은 정치적 부담이 실리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로 인한 스트레스가 상당하다는 것이었고.
* * *
다음 날, 조회를 끝내고 나온 향은 지친 표정을 한 채 51구역으로 향하며 중얼거렸다.
“이런 말 하면 욕먹겠지만, 아들이 태어났으면 좋겠다….”
“예? 뭐라 하셨사옵니까?”
“아무것도 아닐세.”
내관에게 짧게 대답한 향은 속으로 나름 계산을 하기 시작했다.
‘21세기에서 배웠던 역사 더하기 내가 그동안 진행한 관리 프로그램을 더하면 적어도 20년 이상 건강하실 테고…. 태어날 아이가 아들이면 그때쯤이면 확실하게 자기 기반도 어느 정도 다졌겠지? 그러면 내가 왕위를 물려받고 예의상 3~4년 하다가 양위하는 거야…. 그리고 나는 바로 51구역에 말뚝 박는 거지. 좀 무리다 싶으면 자식들 셋을 하나로 묶어서 한 놈은 왕, 다른 한 놈은 도승지, 또 다른 한 놈은…. 아! 딸이면 어떻하지? 아니, 딸이어도 상관없나? 이미 여자들의 진출도 시작되었으니까 말야, 20년 후면 어느 정도 일상이 되었겠지. 만약, 좀 부족하다 싶으면 내가 공구리를 좀 친 다음에 넘기면 되겠지.’
그렇게 향이 자신만의 시나리오를 쓰고 있을 때, 세자빈과 양원, 양제는 다과상을 앞에 놓고 담소를 즐기고 있었다.
“어머!”
한창 이야기를 나누던 세 여인들은 동시에 배를 어루만졌다.
“태동(胎動)이?”
“세 아이가 같이 움직이다니, 우애가 좋은 것 같사옵니다.”
“그렇습니다. 이 아이들이 태어난 다음이 기대되는군요,”
평소와 달리 강한 태동을 느끼며 즐거워하는 세 여인들이었다.
* * *
한편, 세종도 나름의 계산을 하고 있었다.
“한 10년 정도이려나?”
“예?”
“혼잣말일세.”
상선에게 짧게 답한 세종은 속으로 중얼거렸다.
‘경장이 끝나기까지 몇 년 안 남았고…. 앞으로 10년 정도면 시행착오도 거의 다 잡았겠지. 그리고 그때면 옛 체제에 익숙한 지금의 대신들도 다 물러나고 새로운 체제에 익숙한 이들이 그 자리를 채우겠지. 그러면 세자를 대리청정시키거나 선위(禪位)한 다음에, 본격적으로 조선을 가다듬는 일에 매진해도 될 거야. 행정만 바꾼다고 모든 것이 다 바뀌는 것은 아니니까. 그리고, 그때면 세자의 자식들 나이도 10살. 세자의 피를 이어받은 녀석들이라면 자질도 좋을 테니 미리미리 다듬으면….’
* * *
“어머! 또 태동이?”
“호호! 이놈들이 자기 이야기 하는 줄 아나 보옵니다!”
세 여인들의 입에서는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