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ack Corporation: Joseon RAW novel - Chapter (442)
442화 포석(布石) (4)
황희에 이어 다른 대신들도 이해하는 듯이 보이자, 향은 말을 덧붙였다.
“물론, 일지다국이 제대로 성립이 되지 못하고 일지일국이 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말입니다. 사람이나 짐승이나 몸통이 머리보다 한참이나 크지만, 몸통이 머리를 대신하지 못합니다. 이는 제가 생각한 연방제도 마찬가지라 생각합니다.”
“몸통이 아무리 커도 머리를 대신하지 못한다…. 좋은 말이로구나.”
“그렇사옵니다.”
향의 말에 세종과 대신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감탄했다.
그 모습을 보며 향은 속으로 중얼거렸다.
‘아프리카와 아시아, 그리고 아일랜드 쪽에서는 악명이 높지만, 그래도 가장 써먹을 만한 것이 영연방이지. 물론, 저 빌어먹을 악명이 문제지만….’
향이 생각한 관계는 캐나다와 호주, 뉴질랜드와 영국 사이의 관계였다. 성긴 듯이 보이지만 계속해서 끈끈한 연결이 지속되는 것이 이들이었다.
‘물론, 그 관계가 그 나라들 모두 영국에 뿌리를 둔 백인들이 주류라는 것이라서 그런 것일 수도 있지만, 그렇게 따지면 아메리카 원주민들도 기원은 아시아라고 하지 않았던가?’
“…세자야?”
“예? 예!”
속으로 상상의 나래를 펼치느라 삼천포로 빠져 버렸던 향은 자신을 부르는 세종의 목소리에 급히 현실로 돌아왔다.
“송구합니다. 잠시 딴생각을 하느라….”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기에 그러누?”
“송구합니다.”
향이 제대로 정신을 차린 모습에 세종은 곧 질문을 던졌다.
“아까 네가 말한 것처럼 우리 조선이 머리의 역할을 하는 것이 참으로 아름답게 보이기는 하구나. 그렇다면 우리 조선이 머리의 역할을 계속하려면 무엇을 지키고 무엇을 나눠야 할 것이라고 생각하느냐?”
“반드시 지킬 것은 세 가지입니다.”
“세 가지? 너무 적은 것 아니냐?”
“절대 아닙니다.”
향의 단호한 대답에 세종은 오히려 눈을 빛냈다.
“그래? 어디 한번 들어 보자꾸나. 그 세 가지가 무엇이냐?”
“지식, 자본, 식량 자급입니다. 그 이유는….”
향은 그 세 가지를 왜 반드시 지켜야 하는지 설명했다.
-조선은 물리에 관한 지식과 기물을 만드는 기술에 관한 가장 선구적인 지식을 확보하고 있어야 한다. 이는 두말할 필요가 없는 일이다.
첫 번째 이유에 세종과 대신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세종은 거기에서 한발 더 나아갔다.
“그렇다면 자본을 꼭 지켜야 하는 이유도 이해가 가는구나.”
세종의 말에 향은 강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물론, 새롭게 획득한 무주지가 경세 부분에서도 본토보다 더욱 덩치가 커질 것입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자본, 즉, 종잣돈을 조선 본토가 주도적으로 확보해 운영한다면 충분히 주도권을 지켜 나갈 수 있습니다.”
“그렇지요, 그렇지요! 참으로 그러하옵니다!”
향의 말에 김점은 목이 부러져라 고개를 끄덕이며 동감을 표시했다.
미소를 지으며 김점에게 작게 목례를 한 향은 말을 이었다.
“처음 말한 지식 부분은 이해를 쉽게 하기 위해 물리와 기술 부분만을 이야기했지만, 사상 부분도 선구자의 위치를 지켜야 합니다.”
“사상을?”
“우리가 명에 사대하는 것이 단지 명의 덩치가 크기 때문만은 아니지 않습니까?”
그 짧은 질문을 끝으로 향은 입을 다물었다.
하지만, 향이 무엇을 말하려 했는지 모르는 이들은 아무도 없었다. 덕분에 근정전 안의 공기는 순식간에 무거워졌다.
깃털조차 바위처럼 무겁게 느껴지는 분위기 속에서 가장 먼저 입을 연 이는 세종이었다.
“그래. 그 부분의 필요성도 충분히 알았고, 우리가 반드시 이뤄야 할 부분이기는 하구나. 이걸 맡기기에 가장 적합한 이들이 있으니 다행이로구나.”
세종의 말에 향과 대신들은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 * *
‘백성들이 상하를 막론하고 오로지 재물과 물리만 좇으니 도리가 땅에 처박혔다!’
‘물리에 숨은 진리를 찾아 편리를 찾는 것도 중하지만, 도리를 깨우치고 가르치는 것도 중하다!’
이런 내용의 상소문이 올라오면서 세종은 유학을 연구하는 연구 기관을 만들었다. 하지만, 세종이나 향, 대신들 모두 정통 유학에서 많이 벗어난 상황인지라 이상주의자들의 목소리가 커지는 것을 달갑게 여기지 않았다. 때문에, 이렇게 만들어진 연구 기관에는 유학자들만큼이나 행정 실무를 거친 전직 관료들이 자리를 잡았고, 이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설전이 끊이지 않고 있었다.
그리고, 세종과 향은 옆에서 열심히 부채질하고 구경을 했다.
“팝콘! 팝콘이 필요해!”
이들의 설전을 들을 때마다 향이 외친 대사였다.
* * *
“그래, 첫 번째와 두 번째 이유는 잘 알겠다. 그렇다면 식량 자급이 왜 중요한 것이냐? 지금 발견한 무주지의 경우, 해안에서 조금만 들어가도 숲이 우거진 평원이라 했다. 그렇다면 농지의 문제는 해결할 수 있지 않겠느냐?”
세종의 물음에 향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아마도 그렇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 조선은 확실하게 식량 부족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식량 자급의 문제는 해결된 것 아니더냐? 본토의 식량 사정에 문제가 생기더라도 원지(遠地)에서 들여와 해결하면….”
거기까지 이야기하던 세종은 갑자기 말을 멈췄다. 방금 자신이 하던 말을 곱씹던 세종은 고개를 저었다.
“그렇군. 그게 문제가 되겠구나….”
“그렇습니다. 그렇기에 반드시 식량 자급 문제만은 지켜야 합니다.”
한편, 세종과 향의 대화에 대신들은 속으로 투덜거리기 시작했다.
‘또, 또 시작했다! 부자들만 아는 선문답!’
‘아오! 자기들 똑똑하다고 자랑하는 거야, 뭐야!’
그런 대신들의 마음을 아는지 황희가 나서서 물었다.
“전하께서 하신 말씀처럼 원지라 하더라도 결국은 같은 조선의 땅입니다. 강원도에 흉년이 들면 경상이나 전라에서 곡물을 보내는 것이 당연한 일이듯이, 본토에 문제가 생기면 원지가 돕는 것이 당연한 것 아닙니까?”
황희의 물음에 향이 나서서 대답했다.
“조금이라도 실수하면 본토의 자영농들 씨가 마르게 된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저 서이의 나라 가운데 로마라는 나라가 있었는데….”
‘로마가 알게 모르게 삐걱거리기 시작한 때가 이집트를 꿀꺽한 다음부터였다지?’
향은 로마의 예를 들어 이유를 설명했다.
“…때문에, 본토의 사회적 안정을 위해서라도 적정선의 식량 자급 상황은 유지해야 합니다.”
“아….”
향의 설명에 황희를 비롯한 대신들은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대신들의 모습에 향이 굳히기에 들어갔다.
“아바마마께서 경장을 시작하실 때부터 이 조선의 자영농을 육성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이셨는지를 절대 잊으시면 안 됩니다.”
경장을 시작하면서 제일 먼저 했던 일이 지주들을 박살 내는 것이었다.
물론, 이때 가장 큰 목적은 향촌의 지배력을 지주들에게서 빼앗아 오는 것이었지만, 이 과정을 통해 육성된 자영농이 조선의 재정에 큰 수입원이 되고 있는 것도 현실이었다.
“흐음…. 그렇다면, 원지의 농업을 크게 육성하는 것을 피해야 하는 것이옵니까? 물론, 본토의 안정을 위해서는 자급자족할 필요는 알겠사오나….”
아쉬움을 감추지 못하는 김점의 발언에 향은 바로 답했다.
“아닙니다, 육성은 해야죠. 그것도 대규모로 육성을 해야 할 것입니다. 본토에 흉년이 들어 자급자족이 힘들질 경우를 대비해야 하고….”
잠시 말을 멈춘 향은 사관과 주서들을 슬쩍 바라보고는 목소리를 낮추었다.
“이런 말이 있지요? ‘우리 집에 불이 나면 난리가 난 거지만, 남의 집에 불이 나면 최고의 구경거리다.’.”
향의 말에 김점은 물론이고, 세종과 대신들 모두 뜨악한 표정을 지었다.
“설마….”
김점이 설마 하는 표정을 짓자, 향은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우리 주변에는 우리에게 위험한 이웃들이 있지요. 좋은 소리는 못 듣겠지만, 필요하다면 불씨라도 집어 던져야 하지 않겠습니까?”
순간, 대신들은 모두 같은 생각을 했다.
‘이런 사악한!’
“사관과 주서들은 알아서 정리하라. 나라를 지킴에 있어 때로는 불의한 일도 각오해야 하기 때문이다.”
“명을 받드옵니다.”
세종의 명령에 사관과 주서들은 머리를 조아리며 답했지만, 사초의 내용은 조금 달랐다.
-사관은 말한다.
나라를 지킴에 있어 불의한 일도 각오해야 함은 위정자의 숙명일 수도 있다. 하지만, 아예 시작하기도 전에 불의를 입에 담는 것은 좋지 못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가끔씩은 불씨를 던지는 것이 아니라 대놓고 불을 질러 버리고 싶은 나라들이 있기는 하다.
* * *
어느덧 향의 발표는 끝을 향하고 있었다.
“세자는 추가로 하고 싶은 말이 있느냐?”
“예.”
세종의 물음에 향은 잠시 생각을 정리하고는 입을 열었다.
“지금 대신들께서 걱정하시는 바는 잘 압니다. 새롭게 발견한 무주지. 그 덩치가 얼마나 클지 확인조차 못 한 무주지. 당연히 그곳에는 원주민들이 있을 것이고, 조선의 백성으로 순치한다고 해도 우열이 뒤바뀔 가능성은 확실히 있습니다.”
향의 말에 대신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지금 우리 조선의 강역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경장을 시작할 때보다 얼마나 넓어졌습니까? 대설도와 종장도 지역을 빼더라도 예전에 비해 거의 두 배에 가깝게 넓어졌습니다. 그럼에도 동북방의 삼림 지대는 아직도 끝없는 미개척지가 남아 있고, 모험적인 시도를 해야 하겠지만 옛 고구려의 요동 땅이 남아 있습니다. 이 지역을 제대로 소화한다면 우리 조선의 본토 역시 만만치 않을 것이라 확신합니다.”
“가만?”
“호오?”
향의 말에 지도를 살피던 대신들이 눈을 빛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 * *
비록 기후는 가혹했지만, 동북 지방의 미개척 삼림 지대-향의 개입 전 역사에서는 동시베리아라고 알려진-는 목재는 물론이고 여러 귀한 자원들이 계속 발견되고 있었다.
삼림과 자원만이 아니라 삼림 지대에 터를 잡고 있던 원주민들도 하나둘 조선에 귀부하면서 차근차근 조선의 백성이 되어 가고 있었다.
덕분에 국방부는 매달 지도를 새롭게 갱신해야만 했다. 귀부한 부족들을 통해 새롭게 알게 된 지역의 정보를 기입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동북 지방의 삼림 지대를 확보해 나가면서 조선은 조용히 명이 장악한 요동 지역의 동쪽 경계선 지역에 조금씩 접근하고 있었다.
그리고 세종과 군부의 지휘관들을 지도를 볼 때마다 비슷한 말을 중얼거렸다.
“언젠가는….”
* * *
그렇게 향의 발언이 끝나자, 세종이 결론을 내렸다.
“내가 듣기에 세자의 궁리가 꽤 괜찮다고 생각하오.”
“참으로 그러하옵니다.”
“그렇사옵니다.”
세종의 말에 황희와 대신들이 화답했다.
대신들의 긍정적인 반응을 보며 세종은 말을 덧붙였다.
“하나, 이는 한 사람의 궁리에 불과하니 모자란 부분이 있을 것이오. 그러니 경들은 세자의 궁리를 기반으로 다듬어 보고를 하시오.”
“명을 받드옵니다.”
“그리고 좌부총리.”
“예, 전하.”
세종이 특별히 자신을 지목하자, 김점은 바짝 긴장한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
“아무래도 예산을 늘려야 할 것 같소. 하지만, 함부로 세입을 늘릴 수 없으니, 그동안 모아 놓은 자금을 풀어야 할 것 같소.”
세종의 말에 김점은 두 눈을 질끈 감으며 대답했다.
“예, 전하.”
그런 김점의 마음을 아는지 세종은 말을 덧붙였다.
“하지만, 무조건 푸는 것은 나라에 도움이 안 되니 올해와 내년의 지출 항목을 살펴 줄일 수 있는 것은 줄이도록 하시오.”
세종의 명령에 김점은 큰 목소리로 대답했다.
“명을 받드옵니다!”
* * *
회의가 끝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김점은 국방부 장관실에 쳐들어갔다.
“선택하시오!”
“뭐를 말이오?”
“을식 장총과 을식 화차! 둘 중에 하나 선택하시오! 둘 다 동시 대량 생산은 안 돼!”
“하지만….”
“지금 갑식 소총도 상대가 없지 않소! 그러니 선택하시오! 전하께서도 줄일 수 있는 것은 줄이라 하시지 않았소!”
김점의 닦달에 조말생은 눈물을 머금고 선택을 해야 했다.
“을식 화차를 선택하겠소.”
역시나 화력에 미친 조선인다운 선택이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