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ack Corporation: Joseon RAW novel - Chapter (441)
441화 포석(布石) (3)
동궁전의 서재로 돌아온 향은 종이를 앞에 놓고 장고(長考)에 들어갔다.
한참을 고민하던 향은 곧 머리를 긁적이며 중얼거렸다.
“아무리 생각해도 가장 효율이 높고 안정적이며 수명이 긴 시스템은 연방제야….”
자신이 보았을 때 최적의 국가체제를 생각한 향은 다음으로 넘어갔다.
“일단 제목을 잘 지어야 다음이 잘 풀리는 법이지. 즉, 국호가 중요해.”
향은 종이에 자신이 생각한 국호들을 쓰고 지우고를 반복하기 시작했다.
“조선연방? 뭔가 촌스러워….”
‘조선연방’이라는 단어에 줄을 죽죽 그어 지은 향은 그다음으로 ‘고려연방’이라는 단어를 적었다.
“코리아 때문인가? 가장 익숙하기는 한데, 이걸 한글로 적으면 문제가 커지지. 빨간 맛도 빨간 맛인데 조선이 무너뜨린 고려를 국호로 넣는 짓이니….”
고려가 무너지고 조선으로 국호를 바꾼 지 아직 50년도 안 지난 상황이었다. 그런데 국호에 고려를 넣는다? 무슨 일이 벌어질지는 뻔했다.
‘고려연방’이라는 단어도 지운 향은 다른 이름을 적었다.
“다음으로 생각나는 것은 대한제국인데…. 이것도 그 막장을 생각하면 좀 찝찝하고….”
이렇게 여러 이름을 놓고 고민하던 향은 마침내 가장 괜찮아 보이는 이름을 정했다.
“이게 제일 낫겠군.”
‘대한연방제국’
향이 정한 국호였다.
세종에게 제출할 기획안의 표지에 ‘대한연방제국’이라고 큼지막하게 적은 향은 팔을 걷어붙였다.
“자! 제목을 적었으니…. 슬슬 시작해 볼까?”
* * *
한편, 총리관저의 회의실에서는 황희와 대신들이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아무래도 이번에 발견한 동방의 무주지(無主地)를 포기할 수는 없겠지요?”
“전하께서는 절대 포기하지 않으실 거외다.”
김점과 황희가 나누는 이야기를 들은 대신들은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무주지’
세종의 핑계를 댔지만, 대신들도 이를 포기할 생각은 전혀 없었다.
물론, 예산을 담당하는 관리들은 죽을 맛이겠지만.
“무주지 개척 관리의 문제를 생각해 보자면, 결국은 양위냐 대리청정이냐의 문제겠소.”
이야기를 듣던 조계생이 ‘양위냐 대리청정이냐’의 선택을 입에 담자, 대신들이 인상을 구기며 의견을 내놓았다.
“아마도 대리청정이 더 보기 좋지 않겠소?”
“확실히 대리청정이 보기가 좋지.”
“양위라…. 아우~. 생각만 해도 토가 쏠리오.”
‘양위’라는 단어를 내뱉은 대신들은 온몸을 부르르 떨더니 다급히 찻물로 입안을 헹궜다.
대신들에게 ‘양위’라는 단어는 안 좋은 추억을 불러오는 단어였다.
* * *
범궐(犯闕)이라는 대역죄를 범하고 사사(賜死)당한 양녕대군이 세자의 자리에 있을 때, 태종은 무려 세 번이나 전위(傳位, 왕위를 물려줌)의 뜻을 밝혔었다.
그때마다 양녕은 머리를 산발하고 바지저고리만 입은 채 석고대죄해야만 했다.
단지 선언만 한 것이 아니라 실제로 내관을 통해 옥새를 세자에게 보냈고. 이를 받아 든 양녕은 바로 옥새를 태종에게 반납했고, 대신들은 궁궐 앞마당에 모여서 목이 터져라 ‘아니되옵니다!’를 외쳐야 했다.
문제는 태종이 벌인 이 양위 소동이 정치적 음모라는 것이었다.
세 차례나 벌어진 양위 소동을 통해 태종은 양녕에게 선을 댄 대신들을 파악하고, 양녕의 외척인 민씨 형제들을 숙청할 빌미를 잡은 것이었다.
그리하여, 태종은 ‘협유집권(挾幼執權)’-어린 세자를 옆에 끼고 권력을 잡으려 한다.-이라는 죄를 물어 민씨 일가와 자신에게 반기를 드는 신하들을 숙청했다.
때문에, ‘양위’라는 단어를 들을 때마다 대신들은 몸서리를 치게 된 것이었다.
* * *
앞으로의 일을 예측하던 대신들은 조말생을 보면서 질문을 던졌다.
“주상 전하께서 이어(移御, 임금이 거처하는 곳을 옮김)하신다면 언제쯤이 될 것 같소?”
대신들의 물음에 조말생은 바로 대답했다.
“짧으면 5년, 길면 10년.”
“그렇게 차이가 나는 이유는 무엇이오?”
“도전자급 전선이라 해도 1년에 한 번 왕복하는 것이 최선이오. 지금 동쪽으로 보낼 수 있는 도전자급 전선들을 모두 동원하고, 그 전선들이 단 한 척의 손실도 없이 잘 도착한 다음, 순조롭게 교두보를 만들고, 무주지의 원주민들의 순치도 순조롭다면 5년. 이런저런 변수로 일이 꼬이면 10년.”
“5년에서 10년이라….”
조말생의 설명에 대신들은 손가락을 꼽아 가며 계산을 해 보았다.
“올해가 경신년이니까….”
세종22년(1440년, 경신년)인 올해 세종의 나이가 43세가 되어 가고 있었다. 조말생의 계산대로라면 세종의 나이 40대 후반에서 50대 초반이 될 때였다.
“살짝 아슬아슬한 느낌이 드는데….”
임금이라는 자리는 단명하기 쉬운 자리였다. 나라를 운영한다는 것은 막대한 심력을 소모하는 일이기 때문이었다. 과도한 심력의 소모는 곧 육체의 붕괴를 불러왔고, 이는 단명으로 이어졌다.
“그래도 그동안 세자께서 애를 쓴 덕에 전하의 건강이 좋으시니 큰 걱정은 안 해도 되지 않겠소?”
“그리고, 무주지의 관리가 국정 운영보다는 쉬울 것이고….”
최선을 다해 긍정적인 방향으로 생각하는 대신들이었다.
“자! 그 부분은 나중에 생각하기로 합시다!”
황희가 목소리를 높여 상황을 정리했다.
“그 부분은 우리가 아니라 주상 전하의 결심에 따라 정해질 일이니 그만 생각합시다!”
“그러지요.”
“그것이 최선이겠소이다.”
황희의 말에 대신들은 양위와 관련된 생각을 접었다.
하지만, 무주지에 대한 생각은 접지 못한 대신들은 계속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나저나 얼마나 클 것 같소?”
“해안선을 따라 4,000리를 내려갔어도 해안선이 끝나지 않았다고 하지 않았소? 그렇다면 최소한 우리 조선 땅보다는 크다는 소리 아니겠소?”
“그렇겠지?”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던 도중 김점이 작게 중얼거렸다.
“적어도 명나라 정도만 돼도 참 좋을 텐데…. 이왕이면 이것저것 뽑아 먹을 것도 많으면 더 좋고 말이지….”
김점의 말에 대신들은 누구라 할 것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중에 이런저런 경로를 통해 김점의 말을 전해 들은 향은 피식 웃으며 중얼거렸다.
“캘리포니아 하나만 확보해도 좌부총리는 방방 날아다니시겠군.”
‘골드러시’로 유명한 금광들과 ‘칼로스 쌀’로 잘 알려진 농업 지대.
간단히 계산해서 이 캘리포니아 지역만 제대로 확보해도 조선이 걱정하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
하지만, 향도 잘 몰랐던 것이 하나 있었다. 캘리포니아를 포함한 미국의 남서부 지역을 차지한 북미 원주민들은 사납기로 유명한 아파치 족들이었다.
* * *
사흘 뒤, 향은 근정전에서 자신이 생각한 새로운 국가운영체제에 관해 발표했다.
세종과 대신들의 시선이 집중된 가운데 대형 괘도 옆에 선 향은 세종에게 예를 올렸다.
“시작해 보거라.”
“예, 아바마마.”
세종의 명령에 답한 향은 잠시 목을 가다듬고는 곧 입을 열었다.
“사흘 전, 아바마마께서 제게 내리신 명에 따라 제가 궁리를 해 보았습니다. 점점 조선의 강역이 넓어지고 있고, 바로 얼마 전에는 대륙으로 여겨지는 무주지를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지금의 상황을 설명하는 것으로 서두를 연 향은 괘도의 표지를 넘겼다.
아무것도 적히지 않은 표지를 넘기고 새롭게 드러난 종이에는 커다랗게 여섯 글자가 적혀 있었다.
-대한연방제국(大韓聯邦帝國)
“이것이 제가 생각한 새로운 국가운영체제이자 국호입니다.”
향의 말에 근정전 안은 가벼운 소란이 일었다.
“조용하라.”
소란을 잠재운 세종은 종이에 적힌 글자를 확인하며 향에게 물었다.
“대한이라 하면 삼한일통의 맥을 이어받았다는 것이냐?”
“예.”
“연방이라는 단어가 좀 낯설다만 풀이하자면 나라들이 엮였다는 소리이고 제국이라 했으니….”
잠시 말을 멈추고 생각을 정리한 세종은 향에게 다시 물었다.
“옛 주의 봉건제를 되살린 것이냐?”
“비슷하나 많이 다릅니다.”
향은 종이를 넘기며 계속해서 설명했다.
-조선의 강역이 점점 넓어지면서 직접 통치는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이는 새롭게 조선의 강역으로 편입된 지역을 통치함에 있어서 큰 어려움을 불러오게 된다.
-원지(遠地)의 사정을 잘 모르게 되면서 해당 지역의 형편에 맞지 않는 정책들을 강제할 수 있고, 그렇게 되면 원지의 백성들이 불만을 가지게 될 것이다.
-이는 어렵게 편입시킨 백성들의 반란을 유도할 것이고, 통합은 요원한 일이 될 것이다.
-따라서, 원지는 해당 지역의 주민들로 구성된 행정 기구를 만들어 현지 상황에 어울리는 정책을 추진하게 한다.
-중앙은 현지의 자치권을 허락해 주는 대신 국방권과 외교권을 확보한다.
“바로 여기서 주의 봉건제도와 차이가 발생하는 것입니다. 해당 지역을 운영하는 행정 기구가 가진 무력은 치안 유지가 가능한 수준으로만 제한합니다.”
“흠….”
향의 설명에 세종은 고개를 끄덕였고, 대신들도 호의적인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나름 괜찮은 것 같은데….”
그 뒤로 향의 설명은 길게 이어졌다.
“…이상입니다.”
설명을 끝낸 향은 세종을 바라봤다.
“어떠신지요?”
“나름 괜찮은 것 같기는 한데….”
슬쩍 말을 흐리며 내용을 곱씹어 보던 세종이 향에게 물었다.
“지금 여진의 지역이나 대설도와 종장도 지역도 분리를 할 생각이냐?”
“여진과 동빙항 지역은 아니지만, 대설도와 종장도 지역은 분리를 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여진 지역과 동빙항은 육로로 연결되어 있고, 대설도와 종장도는 바다로 떨어져 있기 때문이냐?”
“그렇습니다.”
향의 대답에 세종은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생각에 잠겼다.
세종이 질문을 멈추자, 이번에는 황희가 질문을 던졌다.
“대설도와 종장도는 그 땅의 넓음이나 항산을 생각할 때 큰 걱정이 되지는 않사옵니다. 하지만, 문제는 무주지이옵니다. 무주지의 덩치와 아직 제대로 확인하지 못한 잠재력을 생각하면 위험하지 않겠사옵니까? 잘못하면 종주국과 종속국의 위치가 바뀔 수 있사옵니다. 전조와 요, 금의 관계를 생각해 보시옵소서.”
고려와 요, 금은 ‘형제지국(兄弟之國)’이라 칭하며 외교 관계가 성립했다. 하지만, 어느새 형과 아우의 위치가 뒤바뀌고, 나중에는 고려의 위치가 신속하는 위치까지 떨어졌었다.
황희는 바로 이 부분을 지적한 것이었다.
지금 발견한 무주지의 덩치는 대륙이라 불릴 정도였다. 그 덩치라면 시간이 지나면 조선의 국력을 앞지르게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렇게 되면 고려의 비극이 조선에게 다시 벌어지지 않으리라는 보장을 할 수가 없었다.
황희의 지적에 향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 부분은 충분히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해서, 제가 생각한 무주지의 해답은 ‘일지일국(一地一國)’이 아니라 ‘일지다국(一地多國)’의 연방제입니다.”
‘United States! 물론 그다음은 아메리카가 아니라 대한이겠지만.’
“일지다국?”
순간적으로 황희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이자, 향이 예를 들어 가며 설명했다.
“주가 중원을 제후국으로 갈랐듯이, 무주지도 여러 조각으로 가르는 것입니다. 그리고 조선은 그 조각들 사이에서 중재하고 감시하는 것입니다.”
“그 조각들이 힘을 합쳐 반기를 들면 어떻게 합니까?”
황희의 물음에 향은 오히려 되물었다.
“바로 이웃한 여진족들끼리 서로 사이가 좋은 것을 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아!”
향의 물음에 그제야 이해를 하고 감탄사를 내뱉는 황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