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ack Corporation: Joseon RAW novel - Chapter (746)
746화 세대교체 (4)
존치파와 선위파의 설전은 어느새 지식인들 사이에만 벌어지는 것이 아니게 되었다.
어지간한 도회에서는 밤마다 존치와 선위를 주장하는 이들이 써서 붙이는 벽보들이 담벼락을 어지럽혔다.
처음엔 한자가 가득하던 벽보들이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히라가나로 쓴 벽보들도 점점 더 많이 보이기 시작했다.
자기 딴에는 강력한 의지를 보여주겠다는 것인지, 어떤 벽보들은 가타가나로 쓰여졌다. 히라가나와 가타카나가 가득한 벽보들이 가득한 담벼락들을 보며 노인들은 혀를 찼다.
“거… 열심히 배워서 출세하라고 국민학교인지 뭔지 보내놨더니만….”
“옛날에 미카도(帝)가 졸지에 둘이 생기면서 다들 죽을 고생을 했다는데, 존치네 선위네 떠들고 앉아 있으니…. 또 분란이 생기겠구먼!”
“좀 먹고 살만 해지니까 쓸데없는 일을 하고 있어!”
“전란 때문에 고생한지 몇 년이나 지났다고!”
남북조 시대 때 고생했던 이들 가운데 지금까지 생존한 이들은 극소수였다. 하지만, 무로마치 막부와 오우치 사이에 벌어졌던 내전, 그리고 정권을 장악한 오우치와 정권을 탈취하려는 구게(公家)들과 벌어졌던 내전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부지기수였다.
그렇게 벌어졌던 내전의 아픔을 기억하는 이들은 존치파와 선위파의 설전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이렇게 격렬하게 설전이 벌어지고 있었지만, 전체적으로 선위파가 우세를 점하고 있었다.
기존 체제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여러 번국(藩國)의 다이묘들이나 영주들이 내전과 폐번치현으로 몰락해 버렸고, 천황의 가장 듬직한 버팀목이라 할 수 있는 구게들도 지난 내전에서 대부분 멸문지화를 당했기 때문이었다.
이런 상황이었기에 선위파는 점점 더 목소리가 커졌다.
“우리 야마토(大和)를 이끌어 왔던 군주로서 역대 천황들의 공은 인정한다. 하지만, 달도 차면 기우는 법이다. 새로운 시대가 되었으니 새로운 군주가 필요하다!”
“천황은 구습(舊習)의 상징이다! 새로운 상징이 필요하다!”
“저 중국과 제국의 역사를 보라! 후한의 헌제가 위의 고조에게 선양했고, 고려의 공양왕이 제국의 전신인 태조에게 선양했다! 이는 새로운 시대로 나아가기 위해 거쳐야 할 관문이다!”
선위파, 혹은 선양파 가운데 온건파들은 중국과 조선의 역사를 예로 들며 선양을 주장했다.
하지만, 좀 더 과격한 주장을 외치는 이들도 있었다.
“지금의 천황은 정통성이 없다! 그냥 축출해야 한다!”
“맞다! 지난 남북조 항쟁 이후, 천황의 정통성은 사라졌다! 정통성이 없는 천황의 권위를 인정할 수 없다!”
“만세일계라고? 그걸 어떻게 증명할 수 있는가! 축출, 아니, 숙청해야 한다!”
이렇게 선양을 주장하는 이들의 목소리가 커졌지만, 몇몇 지역에서는 반대로 존치론자들이 우세를 점한 지역도 있었다.
* * *
가장 대표적인 지역이 교토였다.
“뭐? 몰래 미카도를 모시고 나간 것도 모자라 선양해야 한다고? 이런 만역도들을 봤나!”
“매국노들! 잘해봐야 ‘임왜도원수(任倭都元帥)’에 불과한 자가 주는 권력이 그렇게 좋더냐!”
‘구습을 버리고 새로운 문물을 받아들여 일본을 발전시켜야 한다.’라는 ‘탈왜입조’를 주장하는 오우치 가문을 비웃었던 이들은 오우치 가문에 ‘항왜(降倭, 조선에 항복한 왜국인)’이라는 멸칭(蔑稱)을 붙였다.
특히, 교토 사람들이 이런 멸칭을 즐겨 사용했었다. 교토 사람들이 이를 사용한 것은 자부심 때문이었다.
헤이안 시대부터 대대로 일본의 수도였으며, 천황은 물론이고 무로마치 막부의 쇼군까지 터를 잡고 살았던, 일본의 중심이라는 자부심이었다.
“흥! 규슈의 촌것들!”
“조선의 엉덩이나 핥는 항왜 주제에!”
그렇게 항왜로 불리던 오우치가 정권을 잡자, ‘임왜도원수’라고 바꿔 부르게 된 것이었다.
“항왜 주제에 쇼군(將軍)이라니! 도원수가 어울리겠지!”
“맞아! 도원수라 불러주는 것도 고마워해야 해!”
물론, 대놓고 이런 호칭을 사용했다가는 치도곤을 당할 것이 확실했기에, 자존심 높은 교토 사람들도 은밀히 불렀다.
하지만, 존치파와 선위파의 설전히 수면 위로 올라오면서 교토 지역의 분위기가 점점 흉흉해지기 시작했다.
“매국노들, 미카도를 어떻게 하겠다고?”
“엎어야 해!”
그리고, 몇몇 사람들은 은밀히 무기를 모으기 시작하거나, 퇴락한 사무라이들을 하나둘 모으기 시작했다.
* * *
한편, 존치파 사이에서도 무력 사용을 결심한 이들이 하나둘 나오기 시작했다.
재미있는 것은 무력사용을 결심한 이들 가운데 상당수가 온건파였다는 것이었다.
“저들이 쇼군의 눈을 가려 삿된 길로 향하게 만들고 있다! 저들을 처단해야 한다!”
“간신들을 처단해야 한다!”
이들의 주장은 점점 더 발전하기 시작했다.
“간신들을 처단하고 쇼군을 깨우쳐 관백의 자리를 천황께 돌리게 만들어야 한다!”
“쇼군이 관백까지 겸했기에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이다! 원래대로 돌려야 한다!”
이른바 ‘대정봉환(大政奉歡)’의 씨앗이 싹을 틔우기 시작한 것이었다.
무력사용을 결심한 이들은 준비가 되자마자 실행에 옮기기 시작했다.
그들이 사용한 수단은 암살이었다.
* * *
야마구치의 고급 주택가.
오우치 막부의 고급 관리를 태운 가마가 길게 이어진 담장을 따라 움직이고 있었다.
상당히 늦은 시간이었기에 가마의 앞뒤로 등불을 든 이들이 길을 밝히며 움직이고 있었다.
한편, 관리의 행렬이 가는 길에 이어진 으슥한 골목에는 몇몇이 모여 그 행렬을 노려보고 있었다.
“온다!”
“다행히 경호무사도 별로 없어!”
상황을 확인한 이들은 서로를 돌아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결행하자!”
“오우!”
“가자!”
촹! 촤촹!
허리춤에 차고 있던 검을 일제히 뽑아든 사람들은 일제히 골목에서 뛰쳐나갔다.
“간신을 처단하라!”
“간신을 처단하라!”
검을 뽑아 든 남자들이 몰려오자 호위를 맡은 사무라이들이 기겁하며 검을 뽑았다.
“습격이다!”
“토노(殿)를 보호하라!”
얼마 지나지 않아 야마구치의 주택가 골목은 피와 비명, 죽음이 난무하는 참극의 현장이 되고 말았다.
* * *
이런 암살이 야마구치는 물론이고, 많은 도회에서 벌어지기 시작하자 요시노리는 바로 결단을 내렸다.
‘폐도령(廢刀令)’을 발령한 것이었다.
-막부와 조정의 허가를 받지 않은 자는 검의 패용(佩用)을 금한다.
-만약, 이를 어긴 자는 즉시 체포될 것이며 중형을 받게 될 것이다.
하지만, 폐도령은 상당한 반발을 불러왔다.
막부가 정권을 장악한 지 상당한 시간이 지났지만, 치안이 불안한 곳이 상당했기 때문이었다.
“이런 시국에 검을 놓고 다니라고? 그냥 죽으라는 소리냐?”
자신의 안전을 위해 폐도령을 거부하는 이들도 있었지만, 다른 이유로 폐도령에 반발하는 이들도 있었다.
퇴락한 사무라이들과 무장 가문의 후예들이었다.
“검은 우리의 자존심이다! 절대 놓을 수 없다!”
이런 반응에 오우치 막부의 방법은 당근과 채찍이었다.
-불안한 치안은 순사를 대규모로 배치해 해결하겠다.
-모든 이들이 칼을 안 차면 불안할 일이 없다.
따라서, 폐도령을 따르지 않는 자는 바로 체포하겠다.
-막부의 사찰부(査察部)와 군에 들어와 근무하면 검의 패용을 허가하겠다.
단지 검의 패용만 허가하는 것이 아니라, 능력에 따라 합당한 직급도 부여하겠다.
폐도령을 거부하던 사무라이들과 무장 가문의 후예들은 이 마지막 두 조항을 보고는 고민에 잠겼다.
오우치에 대한 불복과 자존심의 문제로 출사를 거부하고 있던 이들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이들도 점점 생활고를 겪고 있었고, 불투명한 앞날에 암담해진 상황이었다.
하지만, 막부의 치안 조직, 또는 군에 들어간다면 생활고와 불안한 미래를 모두 해결할 수 있었다.
여태까지 지켜온 자존심만 꺾는다면 말이다.
결국, 이들은 둘로 갈라지게 되었다.
한쪽은 막부에 들어가는 것을 결정했고, 다른 하나는 막부에 저항하는 이들과 합류를 결정한 것이었다.
둘로 나뉜 이들은 서로를 맹렬하게 비난했다.
“변절자!”
“미래를 보지 못하는 우인(愚人)!”
* * *
막부가 폐도령을 강하게 밀어붙였지만, 반발하는 이들은 계속해서 저항했다.
이들을 제압하는 과정에서 상당한 피해가 발생했고, 관리들은 이에 대한 해결책을 고민했다.
“검을 검으로 상대하는 것은 당연히 피해가 나올 수밖에 없어.”
“맞아. 특히, 저항하는 놈들의 검술이 더욱 뛰어난 경우가 너무 흔해.”
“암살도 막아야 하는데, 이거야 원….”
좋은 해결책을 고민하던 이들의 선택은 역시나 제국이었다.
“제국의 무기를 들여오자고?”
“가장 좋은 법은 설계를 들여와 자체 생산하는 것이옵니다. 탄약은 무리겠지만, 무기 자체는 생산하겠다고 협상해봐야 합니다.”
“그래서 어떤 무기인가?”
요시노리의 물음에 관리들은 바로 답했다.
“제국이 사용하는 마상총, 또는 단총이옵니다.”
* * *
향의 주도 아래 51구역은 ‘콜트1860 Army’를 기반으로 한 ‘육혈마상총’을 개발해 기병대에 보급했다.
그리고, 기병대는 마상총을 아주 쏠쏠하게 사용했다.
시간이 지나 구리식 탄피가 자리를 잡게 되면서 이 마상총은 탄피식으로 개조되거나 신규 생산되었다.
그리고, 이때부터 이 마상총은 기병대만의 전유물에서 벗어났다. 제국군 장교들을 위한 기본 무장으로 선택되면서 마상총은 ‘단총(短銃)’으로 불리게 되었다.
그리고, 이 단총은 군에서만 사용한 것은 아니었다. 제국의 치안을 유지하는 포청의 나졸들도 육모방망이나 쇠좆매, 추포용 밧줄과 함께 허리에 차고 다니는 기본 무장이 되었다.
* * *
이미, 제국에서 잘 써먹고 있었기에 막부의 관리들도 바로 들여올 생각을 한 것이었다.
그전에도 도입을 건의하는 이들이 많았지만, 지금까지 들여오지 않았던 이유는 하나였다.
상당히 비쌌다.
하지만, 상황이 상황이니만큼 도입을 해야만 하는 상황이 된 것이었다.
“그렇다 하더라도 우리가 생산할 수만 있다면 비용을 줄일 수 있으니 협상이 필요한 것이옵니다.”
“흐음….”
관리들의 말에 고심하던 요시노리는 어쩔 수 없다는 표정으로 결단을 내렸다.
“제국에 보낼 사자를 선발하도록.”
“핫!”
그렇게 결정을 했지만, 요시노리는 걸리는 것이 있었다.
“제국에서 단총을 들여오는 것이 답이기는 하지만, 이는 시간이 걸리는 일이다. 이를 보완할 대안이 필요하다.”
요시노리의 지적에 관리가 바로 대답했다.
“하! 그래서, 순찰부와 군에서 검술이 뛰어난 이들을 골라 별도의 조직을 만듦이 좋다는 안건이 올라오고 있사옵니다.”
“좋군. 실행하게. 이름은 정했나?”
“아직이옵니다.”
“그래? 그렇다면….”
잠시 고민하던 요시노리는 금필을 들어 백지에 이름을 적었다.
“이게 어떠한가?”
요시노리가 적은 이름은 ‘발도대(抜刀隊)’였다.
존치파와 반 막부주의자들이 치를 떨게 만드는 조직이자, 일반 백성들도 겁을 먹게 만드는 악명 높은 조직의 탄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