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ack Corporation: Joseon RAW novel - Chapter (764)
764화 조우(遭遇) (9)
우습게도 아즈텍의 권력자들이 인신공양에 열을 올리게 만든 것은 그의 부친인 이츠코아틀과 몬테수마1세 자신이었다.
그전까지 인신공양이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전쟁에서 패배한 쪽의 왕족이나 전사들만 제물로 바치거나 왕족이 자해하여 스스로 제물이 되는 정도였다.
하지만, 이츠코아틀과 몬테수마1세의 시기가 되면서 인신공양의 규모가 더욱 커졌다.
대규모 인신공양을 정당화하기 위해 그전까지 믿던 교리를 이단으로 몰고, 새롭게 교리를 정립할 정도였다.
그리고, 이 제물을 구하기 위해 식민부족을 공격했고, 속국들을 압박했다.
이 과정을 통해 아즈텍의 지배에 반항할 수 있는 세력을 약하게 만들기 위함이었다.
그랬던 몬테수마1세가 직접 이방인들을 만나려 나선 것은 이방인의 칼 때문이었다.
-우리 전사들이 가진 무기보다 한참이나 강력한 무장을 갖춘 이들이다. 이들을 섣불리 건드려 전쟁이라도 벌어진다면 위험하다!
몬테수마1세가 생각한 위험은 패배라던가 국가의 멸망 같은 것은 아니었다.
-이곳은 우리가 다스리는 지역이다. 패배란 있을 수 없다.
-하지만, 큰 손해를 볼 수 있다.
-제국의 전사들을 많이 잃는다면 주변에 속국들이나 식민부족들, 또는 평민들이 하극상을 벌일 수 있다.
몬테수마1세가 걱정한 것은 외부의 적을 상대하느라 힘을 소진한 상태에서 내부의 적에게 무너지는 것이었다.
-틀라토아니인 자신이 직접 나서서 유화적인 분위기를 만든다면 귀족들도 어쩔 수 없을 것이다. 그러면, 불필요한 전력 소모를 피할 수 있다.
이것이 몬테수마1세가 직접 이방인을 만나겠다고 결정한 이유였다.
* * *
제국군 상륙지점.
“무작정 기다리는 것도 지치는군.”
지휘관용 천막에 앉은 채 상황을 살피던 안상수 제독은 난감함이 가득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문제의 해안에 교두보를 만들고 거의 보름이 지난 상황이었다.
그동안 아무런 접촉도 없었고, 병사들은 무료함에 지쳐갔다.
처음 상륙한 며칠 동안은 바짝 날이 선 상태로 사방을 살피던 병사들이었지만,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은 채 하루하루 지나가면서 긴장이 무뎌진 것이었다.
때문에, 안상수 제독은 소총수로 차출된 수병들과 배에 남은 수병들을 교대시켰다.
사방이 꽉 막힌 답답한 배에서 생활해야 하는 이들과 육지에서 휴양 아닌 휴양을 보낸 이들을 교대시켜 사기를 유지하고, 어느 정도의 긴장을 유지하게 한 것이었다.
병사들이 긴장을 푸는 것을 막기 위해 안상수 제독은 또 다른 방법을 동원했다.
“이대로는 식수가 부족하다. 근처에서 식수원을 찾도록. 단, 교두보에서 반나절 거리 이내로 한정한다.”
“인원은 얼마나 배정하는 것이 좋겠습니까?”
“최소단위는 대(隊, 25명)일세. 그 이하로 나누는 것을 엄금하도록.”
“예!”
안상수 제독의 명령에 따라 매일 1개 여(旅, 125명)가 교두보를 벗어나 주변을 뒤지고 다녔다.
매일같이 주변을 수색하면서 제국군의 탐지 범위는 반나절 거리에서 한나절 거리로 늘어났다.
그 와중에 괜찮은 샘물을 찾아 식수 문제를 해결한 것은 덤이었다. 그와 더불어 지난번에 제대로 하지 못했던 측량 작업을 꼼꼼하게 진행할 수 있었다.
교두보 주변을 샅샅이 뒤지면서 어느 정도 자신감이 붙은 제국군 장교들은 안상수 제독에게 상신했다.
“우리가 먼저 내부로 진출하는 것이 좋지 않겠습니까?”
장교들의 제안에 안상수 제독은 고개를 저었다.
“불가(不可). 우리는 지금 이 지역에 관한 아무런 정보도 없다. 그런 상황에서 움직이면 자멸이다.”
“충분한 장비가 있으니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충분한 장비? 밖에 있는 무기들은 전쟁을 위한 것들이지, 탐사를 위한 것들은 아냐. 탐사를 위해 장비한 것은 벌목도가 유일하네.”
“나침반이 있지 않습니까? 나침반이 있으면 방향을 잃을 염려가 없으니 괜찮지 않겠습니까?”
젊은 장교가 나침반을 언급하자, 안상수 제독은 문제의 장교를 노려봤다.
“자네, 밀림에 들어가 본 적 있나?”
“없습니다.”
“밀림에서 길을 잃으면 나침반도 소용없어. 내 경험일세.”
* * *
젊었을 무렵, 제독은 루손 인근 섬들을 탐사하는 탐사대에 들어갔던 적이 있었다.
당시 탐사에서 안상수 제독이 배운 것은 ‘밀림은 살아있는 지옥’이라는 것이었다.
주변에 철분이 섞인 바위라도 있으면 나침반은 바로 바보가 되어 버렸다. 해를 보며 방위를 측정하는 것도 빽빽한 밀림 때문에 불가능했다.
믿을 수 있는 안내인이 없다면 바로 전원 사망이라는 결과로 끝이 날 수 있는 곳이 밀림이었다.
* * *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한 안상수 제독은 다음과 같이 말을 맺었다.
“믿을 수 있는 안내인이 존재한다면 최선이고, 하다못해 지도라도 있는 것이 아니면 밀림으로 들어서는 것은 절대 해서는 안 될 일이야.”
“…알겠습니다.”
젊은 장교들의 무모한 도전은 막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안상수 제독의 시름도 커졌다.
“무작정 이렇게 진을 치고 앉아있는 것도 한계가 있어. 병사들도 문제지만, 화약도 문제다.”
병식화차와 병식 장총에 사용되는 탄환은 어느 정도 습기에 저항성이 있었다. 구리로 만든 탄피에 화약이 들어있고, 입구는 총탄으로 막혀 있기 때문이었다. 또한 탄환과 탄통이 들어있는 상자는 숯이 같이 들어있어 습기를 흡수해주고 있었다.
문제는 완구와 비격진천뢰에 들어간 화약이었다. 탄약상자와 마찬가지로 숯이 제습제 역할을 하고 있지만, 바닷가의 습기를 흡수하는 건 숯으로는 한계가 있었다.
흑색화약보다 습기에 강한 새로운 화약이었지만, 습기를 많이 먹어 좋을 것이 없는 것은 흑색화약과 마찬가지였다.
“다른 문제도 있지. 말이 통하지 않는다는 것.”
안상수 제독은 이 문제도 고민이었다.
예전 루손 지역이나 말레이 반도, 인도네시아 제도 등의 경우에는 나름의 답이 있었다.
그 옛날 송나라 시절부터 진출해 있던 화교들과 이슬람 신도들이었다.
화교들과 이슬람 신도를 중간에 두면 하다못해 필담을 해서라도 의사소통이 가능했다.
하지만, 지금 도착한 이곳은 아무 정보도 없었다. 통역의 존재는 꿈도 못 꾸는 상황이었다.
“신숙주 대감을 끌고 올 수도 없는 일이고…”
‘언어의 천재’, ‘언어의 불가해’라는 평가를 받는 신숙주였다.
하지만, 안상수 제독은 곧 고개를 저었다.
“천하의 신숙주 대감도 신지에 처음 도착했을 때에는 큰 고생을 했더라지?”
아무리 생각해도 답이 안 나오는 상황에 답을 고민하던 안상수 제독은 결심을 굳혔다.
“닷새! 앞으로 닷새만 더 기다려 보고 접촉이 없으면 바로 철수한다!”
안상수 제독의 결심은 장교들과 병사들에게 전달되었다. 이야기를 들은 장교들과 병사들은 시원섭섭한 표정이 되었다.
“헛수고라고 해야 하나, 아니면, 잘 쉬었다고 생각해야 하나.”
“그래도 측량 작업은 제대로 했으니 다행이네. 두 번 일할 필요는 없으니까.”
“그래도 어떤 사람들이 사는지 한번 보고 싶었는데 말이지.”
그렇게 온갖 감정이 뒤섞인 채 하루하루가 지나갔다.
* * *
제국군이 이렇게 지내고 있을 때, 밀림에 숨은 아즈텍 전사들도 갑갑하긴 마찬가지였다.
해변에 상륙한 이방인들의 수가 상당하다는 첩보에 주변에 있던 아즈텍 전사들이 밀림 속에 모여 있었다. 하지만, 이들은 절대 제국군 앞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절대 마주치지 말 것!
몬테수마1세의 지엄한 명령이 있었기에 아즈텍 전사들은 제국군을 그냥 바라만 봐야 했다.
심지어, 제국군이 탐사 활동을 시작하면서 아즈텍 전사들은 제국군의 탐사 범위 밖으로 물러나 제국군들이 밀림 속을 돌아다니는 것을 보고만 있어야 했다.
이런 상황이 계속되면서 하급 전사들의 불만은 상당했다.
일개 대 단위로 쪼개져 움직이는 제국군인들을 그냥 바라만 봐야했기 때문이었다.
“저 정도면 그냥 덮쳐도 될 것 같은데…”
하급 전사들의 대부분은 노예, 아니면 평민들이었다. 전공을 쌓거나 포로들을 잡으면 그 대가로 평민, 노예의 신분에서 벗어나 재규어 전사가 될 수 있었다.
그런 욕망에 사로잡힌 이들이 아무것도 모른 채 저 앞에서 얼쩡거리는 제국군인들을 그냥 놔두는 것은 매우 참기 어려운 일이었다.
그렇다고 몬테수마1세의 명령을 어겼다가는 바로 제물이 될 것이 확실했기에 하급 전사들은 이를 악물고 제국군인들을 보고만 있던 것이었다.
“진짜 힘들군.”
“그냥 칠까?”
“그러다 제물이 되려고?”
“저놈들이 먼저 덮쳤다고 하면 되잖아?”
참기 힘들어진 하급 전사들 사이에서 불순한 말들이 퍼지기 시작할 무렵, 전령이 소식을 가져왔다.
-틀라토아니께서 직접 오신다!
몬테수마1세가 직접 온다는 소식에 독수리 전사들과 재규어 전사들은 하급 전사들을 엄하게 관리하기 시작했고, 하급 전사들은 불순한 의도를 숨겨야 했다.
* * *
철수까지 하루 남았을 때.
밀림으로 탐사를 들어갔던 병사들이 다급히 밀림에서 튀어나와 교두보로 달려왔다.
“비상! 비상!”
“원주민들이 오고 있다!”
교두보로 돌아오며 제국군 병사들은 목이 터져라 고함을 지르며 아즈텍 전사들의 접근을 알렸다.
땡땡땡!
병사들의 외침에 교두보 여기저기서 비상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렸고, 휴식을 취하던 병사들은 다급히 자신들의 무기를 챙겨 자신들의 담당구역으로 뛰어갔다.
천막에서 휴식을 취하던 안상수 제독은 급히 튀어나와 상황을 확인했다.
“보고하라!”
제독의 명령에 탐사를 나갔던 여의 지휘관이 제독에게 보고했다.
“많은 수의 원주민들이 이곳을 향해 접근하고 있습니다!”
“규모는?”
“최소한 천 단위 이상입니다!”
보고를 받은 안상수 제독은 부관에게 명했다.
“신기전을 쏘도록!”
“예!”
잠시 후, 한 발의 신기전이 하늘로 솟아올라 터졌다.
펑!
‘적 접근’의 의미를 가진 신호용 신기전이 터지자, 바다에 정박했던 배들에서도 신기전이 하늘로 솟아올랐다. 교두보에서 쏜 기전을 확인했다는 의미였고, 정박한 배들에서도 바쁜 움직임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 * *
한편, 해변에 거의 도착한 몬테수마1세와 아즈텍 전사들은 신기전을 보고 멈칫했다.
“뭐지?”
“어떻게 하는 거지?”
비슷한 효과를 내는 수단이 없었던 아즈텍인들은 모두 비슷한 생각을 하게 되었다.
‘저들에게는 매우 뛰어난 주술사가 있다!’
그렇게 생각한 아즈텍인들은 좀 더 조심스럽게 접근했다.
저렇게 하늘에 불꽃과 연기를 만들 수 있는 뛰어난 주술사가 저주를 걸면 큰일이었다.
저주 자체도 문제였지만, 그 저주를 풀기 위한 제물을 구하기 위해 전쟁을 벌이거나, 아니면 자신들이 제물이 되어야 할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조심스럽게 움직여 아즈텍 전사들은 밀림을 벗어나 교두보로 향했다.
그 선두의 중심에는 몬테수마1세를 태운 가마가 있었다.
가마에 앉은 몬테수마1세는 저 앞에 자리한 이방인들의 진지를 바라봤다.
처음 접촉을 보고한 재규어 전사의 말처럼 길쭉한 나무 막대기를 든 이방인 전사들이 자신들을 노려보고 있었다.
‘지휘관이 누구일까? 저들의 왕일까?’
몬테수마1세가 이방인들의 우두머리를 찾고 있을 때, 안상수 역시 원주민들의 우두머리를 찾고 있었다.
망원경으로 아즈텍 전사들의 진영을 살피던 안상수는 곧 가마에 탄 몬테수마1세를 찾았다.
‘설마 왕이 직접 온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