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ack haired oil tycoon RAW novel - Chapter 4
004 통군정(2)
“기다리다니···나를 아는가?”
박규수가 흠칫한다.
“저는 의주 사는 김태선이라 하옵네다.”
“김태선이라 김태선······. 흠, 그대처럼 풍모가 범상치 않은 사내라면 한 번만 봐도 잊을 리 없거늘. 혹여 우리가 어디서 만난 일이 있던가?”
“없습네다. 부사 나리는 저를 모르시겠으나 만나뵈어 드리고 싶은 말이 있어, 무례를 범하고라도 기다리고 있었습네다.”
역시나 외모라는 건 이런 상황에서도 큰 영향을 미친다.
태선이 산적 같이 생기고 복색도 남루했다면 밤중 기다리고 있었다는데 차분하게 말을 들어주기는커녕 진작 줄행랑을 쳤을 터였다.
하지만 지금 박규수는 경계하면서도 한편으로는 호기심을 느끼는지 물었다.
“말인즉 내가 여기 올 것을 알고 있었다는 뜻인가.”
“예, 작년에도 이곳 통군정에 올라오셨다지요. 부사 나리의 조부님이신 연암 어른이 그러셨던 것처럼요.”
“재밌는 젊은이로군. 그렇지 않은가, 원거?”
원거라 불린 청년은 고개를 숙여 박규수의 질문에 응했다.
‘원거? 호 같은 건가.’
아무리 역사 다큐 PD를 했었다고 해도 인물들 하나하나의 호까지 외우진 못한다.
다만 지금 대하는 걸로 봐선 단순한 수행원 이상으로 아끼는 듯했다.
“소생은 한때 노름에 빠져서 의주뿐만 아니라 국경 넘어 여러 곳을 다녔더랬습네다. 그곳에서 어울리다 보니 청나라말을 더러 배웠고 대륙 건너 소식을 많이 접했드랬습니다.”
“···노름? 허, 노름하다 배운 청나라말과 소식이라니.”
박규수가 중얼거리며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하기야 노름판이라는 말에 당연한 반응이었지만 이는 태선의 노림수였다.
카운터 펀치를 날리기 전에 페이크를 한 번쯤 걸어줘야 효과가 극대화되는 법.
‘그리고 그걸 극대화하는 건 직접 보여주는 게 최고지.’
자신을 바라보는 눈에 어린 실망감이 깊어지기 전에 태선은 목을 작게 가다듬었다.
그리고 입을 열어 중국어를 늘어놨다.
“?!”
순간 줄줄이 나온 태선의 중국어에 박규수의 낯빛이 다시 바뀌었다.
그는 옆을 봤고 아까 원거라 불린 청년 역시 약간 놀란 듯 보였으나 이내 박규수에 속삭였다.
“이제는 노름을 안 한다고 합니다. 청나라에서 난리 났다는 소식을 듣고 눈을 뜨게 되었다는군요. 청나라말 솜씨가 저보다 못하지 않습니다.”
태선은 짐짓 고개를 숙였다.
“감히 미천한 재주를 뽐내 송구하옵네다.”
“아닐세. 나야말로 노름이란 말로 사람을 쉬이 속단했군. 그래서 자네가 알게 된 소식이 무엇이던고.”
“중원 땅보다 몇 배는 더 먼 바다 건너에 이역인들의 영길리국이 있다고 들었습네다.”
태선은 2차에 걸친 아편전쟁부터 시작하여, 상하이에 조계지라는 명목으로 땅을 차지하고 치외법권으로 설정한 정세에 대해 술술 썰을 풀어갔다.
당연히 힘으로 청나라를 굴복시켰으니 그 대외 관계는 조선 같이 조공을 하기는 커녕 오히려 청나라가 이권을 빼앗기고 항변도 못 한다는 것.
심지어 서구의 천주교에서 영향을 받아 자신을 예수의 동생이라고 주장하는 사이비로부터 태평천국운동이라는 민란이 터져 청나라 남부를 대부분 차지할 정도로 번지고 있다는 이야기까지 하자 박규수와 원거라는 청년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허어, 놀랍군. 여기서 그런 소식을 다 듣다니.”
“···참으로 그렇습니다, 부사 어르신.”
“한 사람에게 들은 이야기는 아니옵고 이런저런 치들의 말을 맞춰봤습디요.”
“그것이 더 대단한 일이 아니겠는가. 자네 통찰력이 참으로 대단하구먼. 지금 수천 리 바깥에서 일어나는 정세와 자네 그 말이 실로 다를 바 없으이.”
국제 정세를 놓고 공감대를 얻는 첫 단계는 클리어.
“청나라 같은 대국도 그러할진대 우리 조선이 방비하지 않는다면 더 큰 화를 입으리라는 생각이옵네다.”
대화의 흐름을 이어 태선은 다른 방향으로 물꼬를 텄다.
“아직 저들이 청국에 머물고 있을 때 배우고 저들에 대해서 알아야 한다···그렇기에 부사 나리는 청국에 가시려는 게 아니시옵네까.”
“그렇지. 자네도 들어서 알겠지만 바다 건너 이역인들의 문물이란 실로 놀랍다네.”
“저도 부사 나리의 그 뜻에 참으로 통감하고 있습네다. 그렇기에 감히 한 가지 청을 드리옵고자 이곳에서 기다리고 있던 것이었디요.”
“청이라···그랬었군. 무언가?”
청이 있다는 말이 나오자 박규수는 뭐냐 물으면서도 눈빛이 살짝 바뀌었다.
“호랭이를 잡으려면 호랭이 굴로 가라 하지 않갔습네까. 연행에 저와 제 동생을 동행토록 해주시라요.”
“연행에 동행하게 해달라? 더구나 자네 동생까지?”
“동생도 청나라말을 능숙히 합네다.”
이는 당연히 박규수로서도 간단한 일이 아닐 것이다. 하물며 혼자도 아니고 동생까지 같이 동행하게 해달라니.
“청나라 그랬듯 저들이 밀고 들어온다면 우리 조선도 응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고, 피할 수 없다면 저들을 잘 알고 대응할 수 있는 인재가 한 사람이라도 더 많아야 할 것입네다.”
“자네와 자네 동생이 그 인재라는 겐가?”
“그렇사옵네다. 아울러 감히 짐작컨대 부사 나리를 따르는 인재들이 한양에는 있갔지요.”
소리는 내지 않았지만 다시 박규수와 원거의 얼굴에 감탄의 빛이 흘렀다.
정곡을 찔렀기에. 박규수의 사랑방에는 훗날에 개화파의 씨앗이 되는 이들이 모여 함께 공부하고 있는 실정이다.
태선 역시 그걸 알고 슬쩍 지나가듯 언급한 것.
“연경에서 배운 바를 그들과 함께 나누고 연구하여 이 나라 조선을 위해 힘쓰실 줄로 아옵니다. 힘을 보태고 싶사옵네다.”
할 말을 쏟아냈기에 태선은 특히 마지막 말에 힘을 주며 바닥에 엎드렸다.
박규수는 뒷짐을 지고 잠시 가타부타 말없이 그저 태선을 내려다봤다.
무심하여 속내를 알 수 없는 눈빛이다.
휘이이잉─ 바람 소리와 물소리만 들리는 가운데 원거가 조심스레 박규수를 불렀다.
“···부사 나리?”
그제야 무언가 생각을 정리했는지 박규수가 입을 뗐다.
“사행은 이 나라 왕실에서 청나라 황실에 보내는 사신일세. 설령 부사일지언정 의관에서 짐꾼에 마부라 할지라도 함부로 결정할 사안이 아닐세.”
한 방에 뚫리진 않을 거라 예상했지만 역시나 튕기는 반응을 보니 드는 조바심.
다음 나올 말이 중요하다.
“대신 자네에게 하나 묻고 싶은 것이 있네. 내 지난해 연경에 가서 스스로에게 한 질문이네만 자네의 통찰력으로는 과연 어떤 답을 낼지 궁금해서 지혜를 빌려보고 싶구먼.”
“어찌 제 머리가 감히 부사 나리에 미치겠습니까만, 민한 것이라도 성심을 다하겠으니 하문하시디요.”
“자네의 말대로 양이는 조선에도 올 걸세. 이미 이양선이 곳곳에 출몰하고 있지. 그렇다면 청나라 예로 보건대 그 교류를 맡은 자들은 어찌해야 했겠나?”
‘진짜 궁금해서 물어보는 건 아니고 시험이군.’
일찍이 청나라 실상을 목도했기에 박규수도 안다. 그곳에서 마주할 명제.
그렇다면 어느 정도 개화사상을 품었으되 근본적으로는 유교적인 사상을 가진 지식인이 근대화 물결 속에서 가장 염려할 것은 과연 무엇일까.
태선은 짐작할 수 있었다.
‘사상 검증이었네.’
월등한 문물을 배워 나라를 부흥시키겠다···라는 명분으로 매국하는 것.
태선이 그러한 기질을 품고 있는지 아닌지 알려는 것이리라.
“조선은 오랑캐와 교역을 금하고 있네. 그들도 굳이 우리 조선에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면 구태여 고행을 자처하는 행동에 이유가 있겠는가? 자칫하며 이는 일부러 오랑캐를 조선에 끌어들이는 행동으로 비칠 수 있는 것이네만.”
이어지는 말을 들어보니 더 확신이 들었다.
소위 배웠다는 자들이 쉽게 빠지기 쉬운 편향.
강제로라도 문 열고 배우게 해야 한다는 식의 답을 그는 유도하고 있었다.
과거 매국노들이 그러했듯.
“결코 외적을 먼저 끌어들여서는 안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연경으로 갈 것도 없지 않은가?”
“오히려 그것을 위해 먼저 밖으로 나가 그들에 대해 배우는 것이 필요할 것입네다. 그들이 당장은 오지 않을 수도 있으나 나중 일은 그들 의중에 달린 것이고 임진 때 왜란처럼 미리 만반으로 준비해 나쁠 건 없을 것입네다.”
잠시동안 침묵이 흘렀다.
‘왜 반응이 더 없어.’
태선은 살짝 초조해졌다. 박규수의 속내를 짐작하여 최선의 답을 내놨다.
기실 임기응변으로 꺼내놓은 답이 아니라 몇 달 동안 머리를 짜낸 결과였거늘.
“자네의 청에 대해서는 생각해보고 기별을 주거나 하겠네.”
박규수의 표정이나 어조는 무덤덤했다.
돌아서는 뒷모습조차도.
***
“알고 있는가, 태선이? 청나라에서는 벽돌로 집을 짓는다네.”
그랬던 박규수였거늘 지금은 곁에 붙어 잠시도 쉴 틈을 주지 않고 있었다.
“서양인들의 기술로 지은 건물을 보면 낯설걸세. 자네도 이야기야 들었겠지만 직접 보면 감회가 또 다른 법이지.”
통군정에서 만나고 며칠 뒤 박규수는 말했던 대로 기별을 보내왔다.
그 결과 동생 태경과 함께 연행에 합류한 태선.
‘잘 풀려서 다행이야. 밀입국으로 왔으면 솔직히 태경이까지 데려오진 못했을 건데.’
언젠가 가족 전부 미국에 데려갈 생각이었지만 아직 어린 나이인 태경의 경우 그 시기가 이를수록 좋을 터였다.
본인의 적응이라는 면에서도 그렇거니와 태선에게도 동생의 빠른 적응은 힘이 될 테니까.
“형님메, 청나라 땅은 참말로 넓습메다. 날과 같이 오게 해주어서 고맙소웨.”
“보고 듣는 거 하나하나 잘 기억해두라.”
동생을 격려해주며 태선은 해주에서 우가장과 광녕을 거쳐 연행의 일원으로 이동했다.
박규수가 연행의 일행으로 넣어주며 형식적으로나마 태선과 동생 태경에 맡은 일은 바로 짐꾼이었다.
짐꾼의 일도 해가며 태선은 운동과 동생에게 청나라말 가르치는 일을 소흘히 하지 않았다.
‘당장은 중국어만 가르치지만 머지않아 영어도 유창하게 해야되니 지금 확실히 가르쳐놔야 돼.’
기실 중국어를 가르치는 건 나중에 동생에게 영어 익히는 과정을 더 원활하게 하려는 안배이기도 했던 셈.
더구나 녀석도 꽤 머리가 좋아서인지 배우는 속도가 빨랐다.
‘그래, 그래야지. 그래야 미국에서 빨리 내 일을 돕지.’
“허허, 태경이가 자네 동생이라서인지 머리가 좋구먼.”
통군정에서 박규수와 함께 올라온 당시 수행원인 줄로 알았던 원거라는 사내도 태경을 칭찬할 정도였다.
알고 보니 그는 조선 말기의 역관 오경석이었다.
‘오경석이었군. 이 자도 모를 수가 없지.’
그도 그럴 게, 이 사람 무려 사진이 남아있다.
13번이나 연경에 오가던 중 청나라 주재 프랑스 공사에게 부탁해서 찍은 사진이 현대까지 전해진 것이었다.
나중에 당상관에 이르지만 개항을 주장하다 흥선대원군의 미움을 받게 되나 그럼에도 민씨 일파에 붙지 않은 인물.
덧붙여 훗날 3.1운동 민족대표 33인 중 오세창이 바로 그의 아들이었다.
‘원거 오경석, 이 사람하고는 친하게 지내둬야 해.’
들어보니 오경석이 연행으로 가는 건 작년이나 올해의 일이 아니었다.
1846년 이팔 나이로 역과에 합격하여 1853년부터 연경에 체류하며 문물을 배웠단다.
그 이후에도 사행길을 여러 번이나 오고 간 그야말로 명실공히 조선 제일 연경 소식통.
‘즉 연경에 가면 어떻게든 미국으로 건너가기 위한 연줄을 찾아야 하는데 지금 내게는 아무것도 없잖아.’
하지만 오경석은 다르다. 정조경, 반조음, 엽명풍 등 당대의 청나라 문인과도 두루 친하게 지내며 수집광으로 유명했으니 인맥이 많을 터.
오경석을 통해 그걸 이용할 수만 있다면 일이 수월해진다.
“하하, 부끄럽습네다. 저야 귀동냥을 한 것이디, 원거 나리가 부디 우리 형제 숱한 가르침을 주시디요.”
“아닐세. 나야말로 자네에게 배우는 게 많으이. 우리 조선의 앞날을 위해 같이 힘쓰세.”
그렇게 오경석과 친목도 잘 다져두었다.
그리고 30여 일이 지나서 마침내 1861년 2월 24일 태선은 사신 일행과 함께 도착했다. 청나라 수도의 북경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