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ack-Haired U.S. Army Marshal RAW novel - Chapter (52)
52_제국의 역습
1917년에서 18년으로 넘어가는 겨울.
독일제국은 폭발적인 기세를 보이며 전 유럽에 그 힘을 내비쳤다.
러시아 제국이 쓰러진 자리, 차르의 압제에 시달리던 발트 3국과 우크라이나에는 독일의 힘이 새로운 법으로 자리 잡았다.
역시 차르의 목줄에 신음하던 핀란드에서는 공산주의자들이 준동하기 시작했으나, 만네르하임이라는 걸출한 우익 장군의 등장으로 이들 빨갱이 무리는 급속도로 몰락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이제 남은 일은 최후의 결전뿐.
‘미카엘’이라는 암호명이 붙은 이 1918년 춘계 공세의 목표는 ‘솜(Somme)’이었다.
1916년, 영국군은 솜강 상류 일대에 대대적인 공세를 했고, 하루 만에 6만 명이 죽었다.
영, 프, 독이 합쳐 120만 명의 사상자를 낸 지옥의 땅. 독일군은 이곳을 쳐서 영국군을 바다로 밀어내기로 결정했다.
공격 목표가 정해졌으니, 그다음은 날짜를 선정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독일 참모본부는 마음속에 거대한 타이머를 갖고 있었다.
그 타이머가 0이 되는 순간, 미국은 압도적인 물량으로 모든 것을, 제국 그 자체까지 쓸어버릴 예정이었다. 이는 독일의 모든 장성들을 반쯤 미치게 만들었다.
따라서 공격은 최대한 빠른 시일, 즉 3월로 결정되었다.
모든 준비는 끝났다.
이제 독일은 수천 문의 야포와 백만 발이 넘는 포탄, 그리고 동부전선에서 개선한 최정예 숙련병 수십만 대군이 있었다.
‘후티어 전술’이라고 역사에 남은 전술 개념 또한 마침내 확립되었다. 독일의 최정예 스톰트루퍼와 우수한 대포의 능력이라면 영국과 프랑스 따위 갈기갈기 찢어버릴 수 있었다.
한편, 독일이 품고 있는 생각을 연합군이라고 안 할 리가 없었다.
이들은 결코 바보가 아니다. 현실이 그들의 예상을 뛰어넘어 훨씬 미쳐버렸을 뿐이다.
독일이 마지막 성인 남성 한 명까지 모조리 박박 긁어모아 전장에 내보내는 동안 영국과 프랑스라고 그러지 않았을까?
두 나라는 결국 현실과 타협해 12개 대대로 구성된 사단을 9개 대대로 축소했다.
기병들을 모조리 말에서 내리게 하고 보병으로 돌렸고, 멀쩡한 대대를 해체해 다른 부대에 넘겨줘 필사적으로 재편에 재편을 거듭했다.
그래도 병사는 모자랐다.
“신규 편성 이야기가 아닙니다. 손실이 발생한 부대를 완편하는 데만··· 60만 명이 추가로 더 필요합니다.”
“60만? 60만?? 돌았습니까 지금? 마지막 한 방울까지 쥐어짜도 브리튼에서 뽑아낼 수 있는 병력은 10만이 한계입니다!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식민지군 모조리 긁어모아도 절대 60만은 불가능해!”
“그럼 미국인들에게 분명히 전하십쇼! 병력을 내놓으라고! 당장 이 겨울이 끝나기만 하면 독일 놈들이 우리를 바다에 쓸어넣으러 올 겁니다. 대체 저 모질이들은 언제까지 신병 훈련시키겠답시고 꼼지락댄단 말입니까?”
절박한 영국인들은 쉴 새 없이 워싱턴 D.C의 초인종을 눌러대며 애걸, 협박, 읍소, 공갈을 일삼았고, 결국 이에 굴복한 베이커 전쟁부 장관은 퍼싱에게 정중히 요청을 보냈다.
“150개 대대. 딱 150개 대대만 보내달라고 영국인들이 요청했소.”
“싫습니다.”
“전부를 바라는 것도 아니오. 일부 병력만 편제를 쪼개 영국과 프랑스에 넘기는 게 어떻겠소.”
“미합중국의 아들들은 오직 성조기 아래에서만 싸워야 합니다. 애초에 병력이 모자라다며 징징대는 놈들이 왜 발칸반도와 중동에 수십 개 사단을 처박아 놓습니까? 그거나 빼라고 하시지요, 장관.”
“우리도 어쨌거나 연합군의 일원으로서-”
“현지의 사정을 고려해 신중한 검토 후 결정하겠습니다.”
쉴 새 없는 ‘요청’에 결국 퍼싱은 굴복하고 영국과 프랑스에 일부 병력을 빌려줬지만, 마지막까지 지휘권만큼은 꽉 붙들었다. 그것만큼은 퍼싱도 양보할 생각이 없었다.
***
쇼몽, 원정군 사령부.
“독일군의 공세가 임박했다는 징후가 곳곳에서 보이고 있네.”
퍼싱의 말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아직 우리의 상태는 썩 좋지가 않지. 자네들이 얼마나 노력했는지는 나도 알고 있지만-”
“아닙니다. 저희 역시 현실을 인지하고 있습니다.”
지금도 끝없이 미군은 쏟아지고 있다.
하지만 그건 엄밀히 말하면 ‘군대’가 아니다. 그냥 군복 입힌 얼뜨기 민간인일 뿐.
아직 미군이 이 전쟁에서 강력한 발언권과 주도력을 갖고 움직이기엔 많이 부족한 부분이 보였다.
“어차피 우리는 아직 이 전쟁의 구경꾼이야. 기탄없이 이야기해보도록 하지. 독일군의 다음 공세 목표는 무엇이라고 보나?”
“당연히 파리 함락이겠지요.”
“보통 방법으론 그게 불가능하단 걸 독일인들은 이미 1914년에 깨달았습니다. 제2차 베르됭 공세가 가장 가능성 높습니다. 프랑스군에 심대한 타격을 주고 나아가 아직 편성 진행 중인 우리 미군을 무너뜨리면 파리로 가는 길이 열립니다.”
“영국군을 치고 벨기에의 완전병탄을 노리지 않겠습니까?”
모두가 저마다 다양한 의견을 떠드는 가운데, 나는 침묵만을 고수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모습이 영 고까워 보이는 사람도 있었던 모양이다.
“우리 원정군의 최연소 대령께서는 어째서 조용하신가?”
“혹시 깜둥이들의 아둔한 지능이 전염이 안 되었으면 좋겠군.”
“그러게 무리하지 말라고 했잖나. 허허.”
아, 살살 긁는 솜씨가 참 대단들 하시네. 진짜 이 자리에서 죄다 뚜껑 따버리고 싶지만 참는다.
이 꼬라지를 그냥 봐주고 있지 않을 다른 사람이 하나쯤은 있겠-
“그쯤 하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맥아더 대령. 자네도 입 다물고 있던 주제에-”
“여러분들의 예측을 듣고 있자니 기가 막혀서 말을 꺼낼 수가 없더군요. 아마 킴 대령의 생각도 저와 크게 다르지 않을 듯합니다.”
아니, 아니. 나까지 끌어들이지 말라고.
거기서 그렇게 말해버리면 나까지 어그로가 튀어버리잖아 이 미친 유아독존형 인간아. 당신은 집안 빵빵하고 잘났으니까 감당 가능해도 나는 감당 못 하는데!!
“호. 그러신가? 그럼 어디, 그 귀한 예측을 좀 듣고 싶네.”
이렇게까지 판이 깔린 이상 말을 안 할 수도 없다.
나는 헛기침을 가볍게 하고는, 천천히 분위기를 잡았다.
“제가 옳은지 그른지는 모르겠지만, 우선 저는 제가 힌덴부르크라 가정하고 생각해봤습니다.”
“흠.”
“독일 입장에서 얻을 수 있는 정보는 당연히 제한되어 있습니다. 물론 그들도 스파이를 보내는 등 여러모로 정보를 수집하겠지만, 우리의 모든 사정을 훤히 꿰뚫고 있진 않을 겁니다.”
내 서론에 슬슬 입질이 오기 시작한다.
빨리 본론이나 꺼내라는 표정에서부터 흥미진진하게 지켜보는 부류까지.
“결론만 말씀드리면, 저는 솜강 일대로 다시 독일군이 오리라 예측합니다.”
“영국군을 타격하리란 뜻인가? 프랑스를 내버려두고?”
“예.”
“이유를 듣고 싶군.”
가만히 지켜보고만 있던 퍼싱이 나직하게 말하자, 쨍알쨍알거리던 다른 놈들이 모두 입을 다물었다.
“이프르, 파스샹달, 그리고 캉브레까지. 이 지역에 주둔한 영국군 제5군은 17년에 벌어졌던 전역 대부분에 동원되었습니다. 독일군 수뇌부가 봤을 때, 가장 만만하고 취약할 것이라 추측할 수 있는 게 바로 이 제5군입니다.”
“흠. 얻었을 때 가치가 있는 땅이 아니라, 얼마나 쉽게 적을 이길 수 있느냐를 고려할 것이다?”
“이제 독일군에게 중요한 건 정복할 땅이 아닙니다. 얼마나 많은 적군을 쓰러뜨리고, 얼마나 거침없이 군의 중추를 파괴할 수 있느냐로 그들의 운명이 결정날 겁니다.”
“다른 이유는 없나?”
“제5군의 좌측면은 영국 제3군, 우측면은 프랑스군입니다. 영국과 프랑스를 떼어 놓을 수도 있지요.
게다가 지형 역시 독일 입장에서 볼 때 좋습니다. 독일군이 날이 풀리는 대로 공세를 편다고 가정할 경우, 해빙기가 되면 대부분의 땅은 진창이 됩니다. 캉브레에서 경험했지만 그곳 일대는 지반이 단단해 기동에 유리합니다.”
“흠···.”
“하지만 그 솜입니다! 설마 독일군이 그렇게 무모한 공세를 펼까요?”
“애초에 캉브레 전투가 왜 벌어졌습니까. 전차 기동이 유리해서입니다! 전차가 득실득실한 곳으로 공세를 건다구요?”
“자. 탁상공론은 이쯤하고.”
퍼싱은 이쯤에서 의견 교환을 끝낼 요량으로 보였다. 여기서 더 길게 갔다간 남는 건 지휘관과 참모들 사이에서 벌어질 야유와 조롱뿐이란 걸 그도 아는 모양이었다.
“그 어떤 곳으로 독일군이 오든지, 우리는 최대한 연합군의 일원으로서 전쟁의 승리를 위해 공헌해야 한다는 사실을 명심들 하시오. 현재 당장 전투에 투입이 가능한 부대는-”
“1사단은 이미 프랑스군과 교대하여 참호선에 투입되었습니다.”
“42사단 또한 프랑스군과 협조하에 인수인계를 준비 중에 있습니다.”
“저희 또한-”
“93사단, 준비되었습니다.”
그리고 내가 던진 조약돌에, 모두가 움찔했다.
“93사단이?”
“그렇습니다. 현재 편성을 거의 끝마쳤으며, 즉시 실전 투입이 가능한 상태입니다.”
“허.”
다들 어이가 없다는 듯 혀를 찼다.
그래, 어이가 없겠지.
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여기 있는 사람들 대부분은 93사단을 ‘벼락출세한 옐로 몽키가 제 친구들 계급장 높은 거 좀 달아주려고 여기저기서 데려온 깜둥이 부대’ 정도로 보고 있다.
하지만 그 누구도 탁군 돗자리파 두목과 그 의형제 둘이 유관장 삼형제라는 걸 상상 못 했듯, 내가 모은 놈들은 미래의 원수급 인재들이다. 저 사람들이 그걸 예측할 수 있으면 회귀했거나 빙의자겠지.
“그래서, 93사단도 투입을 해달라?”
“깜둥이들은 조금···.”
“애초에 93사단의 편성 목표 자체가 흑인들의 전투력을 파악하기 위함이었잖습니까. 설령 흑인들의 전투력이 정말 끔찍하다 해도, 독일군의 총탄을 소모시켜 줄 수야 있겠죠.”
“하하! 그건 맞는 말이군!”
“아냐. 깜둥이들을 죽이는데 굳이 탄을 쓸 필요가 있겠나?”
병신들.
흑인들의 전투력? 끔찍하지.
너희들도 조만간 알게 될 거야.
“현재 93사단은 사령부 직할로 편성되어 있네.”
“그렇습니다.”
그 누구도 자기 예하 부대에 깜둥이들을 넣기 싫어한 결과다.
나야 차라리 좋다. 여러 복잡한 정치적 사정이 얽힌 끝에, 지금의 93사단은 도저히 군단 레벨에서 감당할 수 없는 물건이 되었다.
차라리 93사단을 맡으라 지시했던 퍼싱이라면 전장에 나갈 가능성이 크다. 만약 어디서 틀니 딱딱대는 미친 레이시스트 꼰대를 군단장으로 모셔야 했다면 이 부대는 전쟁 끝나는 그 날까지 저 후방에 짱박혀 영원히 잊혀졌을지도 모른다.
“93사단에 대해선 조금 뒤에 이야기하지. 킴 대령, 자네는 남아 있게.”
“알겠습니다.”
회의 종료 후, 나는 퍼싱과 독대할 수 있었다.
“킴 대령, 일은 좀 어떤가?”
“아주 좋습니다. 편성은 완료되었으며 장병들은 전의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런가. 사단 편성이 완료되다니 놀랍군.”
퍼싱이 너무 담담히 말해서, 이게 비꼬는 건지 정말 감탄인지 구분하기가 힘들었다.
“혹시··· 사단 단위의 투입이 아닌 다른 방안을 검토하고 계십니까?”
“프랑스에서는 연대 단위로 일부 부대를 자국군에 편입시켜주길 요청하고 있네.”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다. 아무튼 빠게트 새끼들은 도움이 안 돼요.
나는 당장이라도 게거품을 물고 싶었지만, 그래도 퍼싱의 앞이니 최대한 차분하고 합리적으로 보이는 척해야만 했다.
“저희는 이미 사단 단위 직할대 편성을 끝냈으며, 개별 연대의 전투력이 아닌, 1개 사단으로 운용했을 때 가장 효율을 극대화할 수 있도록 각종 훈련을 진행했습니다. 지금 와서 쪼갠다면 이는 여태까지의 준비가 물거품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흐음.”
“부탁드리겠습니다. 저희를 프랑스군의 관할로 넘기는 것까지는 어쩔 수 없겠지만, 연대 단위로 토막만은 피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시발. 시발. 절대 안 되지. 내가 얼마나 애지중지 키운 애들인데 그걸 박살내서 프랑스 놈들한테 쥐여준다고?
영국, 미국과 달리 프랑스는 지금 흑인들을 적극적으로 전선에 내보내고 있다.
이건 절대 프랑스가 자유와 민주, 인종 평등을 실천하는 국가여서가 아니다. 애초에 몇 달 전에 온 나라 병사들이 죄다 참호 못 들어가겠다고 파업하던 나라다.
영미가 ‘아아니, 어떻게 깜둥이랑 같이 싸운단 거지? 미치셨나?’라면 프랑스는 ‘아이고 우리 애들 죽는 거 더 이상 못 봐주겠네! 차라리 깜둥이들이 대신 피 흘리게 하자!’ 수준이다.
그러니 당연지사 애들 다 죽어서 돌아온다. 프랑스 놈들이 흑인 병사를 아낄 리도 없다. 내 눈에 흙이 들어오기 전까진-
“본관 또한, 정상적인 사단으로서 기능하지 못한다면 이야기가 다르겠으나 멀쩡한 사단을 쪼개 가면서 프랑스를 도와줄 필요는 없다고 판단하고 있네.”
휴, 다행이다.
역시 믿을 건 갓-퍼싱뿐. 이것이 바로 상식인의 상식적 판단이다.
“그러면, 사단을 유지한 상태로 프랑스 쪽 군단의 예하 사단으로 편성된단 말씀이십니까?”
“그래서 묻고 싶네. 자네가 편성한 사단은 너무나 독특해서 아직 내가 따라잡지 못하겠거든.”
말에 묘하게 뼈가 있는 것 같다.
이 당시 미 육군 1개 사단의 정원은 28,000명.
하지만 자원입대자라거나 여러 요소 때문에 93사단 총병력은 사실상 3만 명에 육박하고 있었다. 그야 어쩔 수 없잖은가. 그냥 까맣기만 하면 전부 93사단으로 짬처리되는걸?
그 넘치는 병력을 바탕으로 내가 해보고 싶은 건 이거저거 다 해볼 수 있었다. 퍼싱의 말은 아마 이걸 꼬집는 것 같았다.
“사령부 직할 사단이다 보니, 약간의 독특함까지는 괜찮지 않겠습니까? 이제 프랑스군이 손에 쥔다면 상당히 운용이 까다롭겠지만요.”
“하지만 최종 훈련은 받아야 하지 않겠나?”
이미 1사단은 프랑스 부대를 대체하며 전선에 투입된 상황. 26사단과 42사단 역시 투입될 준비를 갖추거나 투입을 완료했다. 프랑스 친구들은 최대한 미군의 전투력을 끌어올리고 싶어 안달이 난 상태. 확실히 실전 맛을 보려면 결국 빠게트의 손을 잡아야 한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저 또한 모두 일장일단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좋네. 자네의 의견은 충분히 들었으니, 나 또한 자네의 우려사항을 잘 고려해서 판단하지. 이상.”
며칠 후.
나는 퍼싱으로부터 ‘93사단은 유사시에 대비하여 전선 투입을 보류하겠음’이란 최종 답변을 전해 받을 수 있었다.
이거면 됐다.
물론 전장 냄새조차 못 맡아본 초짜들에게 최일선 참호를 맛보여주고 말고의 차이는 굉장히 크겠지만, 어차피 1차대전 시기의 다른 장교들도 내 부대를 이해하긴 굉장히 어려울 거다. 인종이든, 편성이든, 훈련이든 뭐든.
그럴 바엔 차라리 퍼싱 밑에 있는 게 낫다.
독일놈들이 오기까진 시간이 그리 많이 남아 있지 않았다.
***
1918년 3월 21일.
마침내 그날이 도래했다.
“미카엘 작전을 개시한다! 제국의 아들들이여, 이 전쟁을 끝내자!”
제국 내부의 마지막 화평 세력들의 꿈틀거림을 일절 무시한 채, 독일군은 춘계 대공세를 개시했다.
이 공세의 첫 목표는 예상대로, 아니 역사대로 영국군 제5군이었다.
이프르, 파스샹달, 그리고 대망의 캉브레까지 신명나게 꼬라박고 끔찍할 정도로 소모된 부대가 기습적인 독일군의 파상공세에 저항할 방도는 그리 많지 않았다..
캉브레가 다시금 생각난다.
그때 여실히 느꼈지만, 독일군은 지구상에 존재하는 그 어떤 군대보다 적극적으로 취약점을 파고들었으며, 거침없이 공세를 퍼부었고, 적진 한가운데 고립되는 걸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 결과 영국군의 지휘계통과 명령체계는 파괴되었고, 처참하게 천 갈래 만 갈래로 찢어져 허무하리만치 쉽게 무너져내렸다.
이렇게 재미를 봤으니, 당연히 그 전훈을 반영하지 않을 리 없다.
이건 역사에서 배운 지식이기도 하지만, 내 몸으로 직접 경험한 피의 교훈이기도 했다.
제5군은 명백히 맛집이었다.
1917년의 극심한 전투로 병력 소모가 심각해 정원 1천 명의 대대 중 5백 명도 채 안 되는 부대가 태반이었으며, 그나마의 보충병은 여기저기서 잡아와 부대의 통일성이라곤 없었고, 그 와중에 프랑스의 일부 전선을 인계받아 작전 범위까지 넓어졌다!
프랑스 놈들이 얼마나 참호를 개떡같이 만드는지까지 고려한다면, 그냥 제5군의 위기는 약속된 재앙이었다.
새벽 4시 40분.
독일군의 대대적 포격이 불운한 영국 제5군을 덮쳤다.
60km에 달하는 기나긴 전선 모든 곳에 포격이 가해졌다. 최일선 참호에는 이미 모두의 상식이 된 끔찍한 배합, 최루탄, 염소 가스, 겨자 가스, 포스겐의 선물 세트가 당도했고 후방을 향해서는 모든 도로와 통신 케이블을 날려버리기 위한 압도적인 포화가 불을 뿜었다.
아침 9시 40분.
5시간 동안의 격렬한 포화를 뒤집어쓰고 영국군이 넋을 잃었을 즈음, 독일군이 자신들의 참호에서 뛰쳐 나왔다.
아침 안개, 가스, 포화에 따른 연기가 온 전장을 덮었다. 이 모든 조건이 독일군의 안전한 진격을 보장해 주었고, 가장 최일선에서 돌격대 – 스톰트루퍼들이 뛰쳐나와 거침없이 적의 참호선으로 파고들기 시작했다.
단 하루 만에 제5군의 전선은 붕괴했다.
영국인들은 추풍낙엽처럼 쓸려 내려갔고, 독일군은 곳곳에서 격렬한 저항에 직면하긴 했지만 조직적인 대반격을 당하지는 않았다.
영국 제5군이 무너지고, 그 왼쪽의 제3군까지 타격을 입자 독일군이 노리는 바는 보다 명확해졌다.
영국군과 프랑스군을 갈라 치고, 영국군은 모두 해안가로 처박아버리는 것.
내가 주장하던 모든 사항이 현실로 다가왔다.
“독일군이 날로 진격해 오고 있네. 프랑스인들은 아미앵을 잃을까 봐 돌아버리기 일보 직전이야.”
“그렇다면 증원이 필요하겠지요.”
퍼싱은 고개를 끄덕였다.
“93사단은 언제부터 투입 가능한가?”
“이미 준비되어 있었습니다.”
“좋네. 현 시간부로 93사단의 편성을 완료하고 프랑스 놈들을 도와줄 채비를 하게.”
나는 무겁게 경례를 올렸다.
1918년.
이 미친 전쟁의 종막을 알리는 포성이 내 귓전을 울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