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ack-Haired U.S. Army Marshal RAW novel - Chapter (85)
85_비둘기 죽이기 (7)
개같은 일은 항상 들어맞는다.
미리 준비해둔 전화번호를 통해 연락이 빗발치기 시작한 건 순식간이었다.
– 살려주세요! 마을 사람들이 절 죽이려고 해요!
– 저 때문에 가족이 린치를 당했습니다.
– 고향에서 나가라고 협박을 당하고 있습니다!
패튼의 기갑여단, 그리고 93사단에서 앞길 막막한 친구들 일부를 추려 1차대전 참전용사 전우회를 차렸다.
나는 적극 개입하기보단 한발 물러나 자금 지원을 해주는 정도로 만족해야 했다. 더 개입하면 군벌 소리 들어도 할 말이 없으니.
그리고 참전용사 친구들이 제대해서 집으로 가기 무섭게 전우회의 활동은 폭발적으로 늘었다.
수백 명이 벌써 패물만 건져서, 혹은 맨몸으로 디트로이트, 샌프란시스코, 로스앤젤레스, 하와이 등으로 도피했다. 흑인들이 대규모로 한 곳에 이주했다간 오히려 그곳의 반-흑인 정서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최대한 짤짤이로, 눈에 띄지 않게 뿌려야 했다.
이 거대한 시대적 흐름을 내가 막기란 불가능하다.
전제군주면 또 몰라. 아니지, 지금 흐름을 막으려던 전제군주들이 줄줄이 날아가고 있으니 누구도 못 막는다 봐야겠지.
그러면 역시 여론을 장악해야 한다.
여론, 특히 기레기에게 시달려 짜증이 120% 올라버린 사람이 마침 내 곁에 있었으니.
“그래서, 제 아들놈과는 무슨 작당을 하고 계신지?”
“저 같은 젊은 친구들. 남과 달라 보이기 위해서라면 돈을 아끼기 싫은 사람들. 이런 사람들을 위한 차를 만들어 보자는 이야기를 하고 있지요.”
“후우. 실패를 하든 말든 지켜봐야겠지.”
포드 회장은 지금 지와 어마어마한 숫자의 변호사 군단을 동원한 소송전을 치르고 있었다.
‘무식한 빨갱이’라는 시카고 트리뷴지의 기사에 대해 소송을 때렸는데, 이미 반전주의자, 공산주의자 등 별별 욕을 다 먹고 있던 포드 회장이야말로 언론에 침을 묻히고 싶은 1순위 타자 아니겠나.
“킴 장군과 건설적인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제가 듣기로는 크게 틀린 말이 없었습니다.”
“그래?”
“예. 그 기자 놈들이 그런 기사를 쓰는 이유가 무어겠습니까. 자극적이어야 신문을 팔 수 있어서 아닙니까?”
“그래서?”
“그러니 우리가 훨씬 더 자극적인 기사만 쏟아내는 신문을 창립하- 왜 때리십니까!”
“맞을 짓을 하니까 그러지!”
내가 제안한 언론은 간단했다.
지금 이 기레기가 판치는 언론보다 훨씬 훨씬 매운 맛 강렬한, 개노답 찌라시 덩어리.
황색 언론의 왕복 싸닥션을 때릴 수 있는 궁극의 불쏘시개.
그 이름 하야, 타블로이드지다.
아직 미국엔 타블로이드 신문이 없더라고? 당장 영국의 전설적인 타블로이드 조차 없다. 그럼 뭐다? 만들어야지.
“시카고 트리뷴 같은 새끼들이랑 대등하게 맞설 신문을 만드는 것도 아니고, 더 쓰레기 같은 신문을 만들자고? 그게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야?!”
“어차피 기사의 내용이 중요한 게 아니잖습니까.”
“뭐라고?”
“더 씹을거리, 가십거리를 대중들에게 제공해주면 어떤 자잘한 기사가 나오더라도 다 묻어버릴 수 있습니다. 싸우면 힘만 들고 아픈데, 상대의 기사를 아무도 안 읽을 정도로 끝내주는 떡밥을 던져주면 돈도 벌고 좋잖습니까.”
“흐으음···.”
회장님은 잠시 고민하더니 툭 내뱉었다.
“내 선에서 결정할 일이 아니군.”
“아니, 이게 포드 회장님이 아니면 누가 결정할 일입니까.”
“자네가 말하는 요지는 알아들었네. 다만 그런 불쏘시개라면 매일마다 고소장이 날아올 것 아닌가. 나 말고도 기자에게 치를 떠는 인물들은 많으니, 한번 같이 해보자고 제안해봄세.”
오, 돼··· 됐나?
그런데 누구를 부르시려고요?
내 소박한 의문에 포드 회장은 빙긋 웃으며 답했다.
“그거까지 알려줄 순 없지. 이 배신자.”
뒤끝 쩌네. 쫌팽이 영감.
***
포드 회장님과의 즐거운 미팅은 여기까지 하도록 하자.
샌프란시스코에서 비명 섞인 전보를 받았는데 더 이상 미적댈 순 없었다.
진짜 몸이 두 개여도 부족할 것 같지만, 어쩌겠나 내가 벌여놓은 일이 이렇게 많은 것을.
그리하여 드디어 돌아온 나의 고향.
샌프란시스코.
부모님께는 미안하지만, 도로시와 헨리는 데리고 오지 못했다. 잠깐 일만 보고 돌아가야 하거든.
사실 지금 온 것도 굉장히 무리해서 온 거다. 고속철이나 여객기가 있는 것도 아닌 지금, 미국 동쪽 끝에서 서쪽 끝을 오가는 일이 어디 쉽겠나?
다행히 이번에는 전과 같이 화려한 환영인파 같은 건 없었다. 비밀로 해달라고 한 보람이 있다.
“유진 킴?”
“혹시 킴 장군이십니까?”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제가 지금 갈 길이 바빠-”
“이쪽으로 오시죠. 차를 준비해 놓았습니다.”
인파가 모이기 전에 다행히 내 도착을 기다리고 있던 사람들과 합류할 수 있었고, 곧장 우린 대한인국민회 사무실로 향했다.
과거 초라한 빌딩에 사무실을 임대 냈던 과거는 어디로 갔는지, 이제 위풍당당한 신식 건물 하나를 통째로 쓰고 있는 것이 제법 번듯해진 모양새였다.
“어이구 내 새끼! 어이구 내 새끼. 몸 성히 왔구나. 어디 다친 데는 없고?”
“크흠. 나라와 민족의 큰일을 하고 왔는데 채신머리 없이 그게 무언가?”
“아 당신은 조용히 좀 하고 있어요! 하루가 멀다 하고 교회 나가서 기도드리고 온 양반이 무슨 젠체하고 있어요!”
어머니의 빼액 한 번에 순식간에 약해지시네. 역시 먹이사슬은 어쩔 수 없나 보다. 나는 절대 저런 모습을 보이지 않도록 도로시에게 잘해야지.
잠시 가족 간의 해후를 나눈 뒤, 곧장 우리는 대형 회의실에 앉아 일단 담배 한 대씩을 물었다.
“어서 오시게. 건강히 지냈나?”
“다들 신경 써주신 덕택입니다. 감사합니다.”
나.
눈에 띄게 초췌해진 유신이와 유인이.
그리고 아버지.
안창호 선생과 박용만 선생.
한인 사회를 이끌어나가는 사람들은 거의 다 모였다 봐도 된다.
한 명을 빼놓고 말이다.
“사담은 급한 이야기 먼저 끝내고 하지. 우선 그 흑인들, 일단 받아주고는 있네만 어떻게 된 일인가?”
“아시다시피 미국 내 조선인이래봤자 1만도 안 됩니다. 그야말로 한 움큼도 안 되지요.”
“그건 그렇네만-”
도산 선생이 약간 주저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나는 더욱 강하게 나갈 수밖에 없었다.
“인구가 곧 힘인 이곳에서, 저희는 단독으로 목소리를 낼 수 없습니다. 유색인종 대다수와 손을 잡고, 유색인종의 대표이자 스피커가 되어야만 조선인의 권리를 얻을 수 있다고 봅니다.”
서부는 그야말로 인종의 용광로다.
백인, 흑인, 히스패닉, 중국계, 일본계, 한국계 등.
일본계를 제외할지 말지는 둘째 치고서라도, 가능한 한 이들과 손을 잡아야 하는 처지지.
“그들을 다 합친다 하더라도 백인을 이길 수는 없네. 알고 있겠지?”
“백인과 싸우면 필패할 뿐입니다.”
나는 서둘러 그를 안심시키기 위해 말을 꺼냈다.
“미합중국은 명백히 백인들의 나라입니다. 그들과 정면대결하거나 그들의 반감을 사게 된다면 절대 오래가지 못합니다.”
“그래. 그 정도면 이해하겠네.”
가장 먼저 사업 이야기가 안건으로 올라왔다.
철조망 사업. 이건 우리 집안이 단독으로 진행한 사업이다.
그리고 그리스건. 이것도 떼돈을 벌었지만 이제 쫑났다고 봐야 한다.
전차는 직접 했다기보다는 포드 탱크 컴퍼니의 지분과 로열티를 통해 벌어들인 수익.
“생각보다 고용 창출 효과는 낮네.”
“형이 그렇게 말했잖아? 전쟁 특수는 1년 정도로만 생각하라고.”
“그렇지. 차라리 고용을 안 하고 말지, 고용했다 짜르면 오히려 원한만 품을 거 아냐.”
내 지시사항은 그래서 간단했다.
평시에도 사업을 유지할 수 있을 수준으로만 사세를 키우고, 나머지는 다 하청이든 외주든 로열티든 별도로 돌리라고.
이는 꽤 긍정적 효과를 불러왔는데, 우리가 적극적으로 사세를 확장하지 않고 다른 업체에 적극적으로 일감을 넘긴 결과 우리에게 꽤 호의적인 친구들이 늘어난 모양이었다.
“그리스건은 어떻게 할까?”
“아직 수요가 더 있을 거야.”
“전쟁이 끝났는데도?”
“이렇게 싸고 저렴하고 막 굴릴 수 있고 요령도 필요 없는 무기가 또 어디 있다고?”
비숙련자의 호신용 총알 분무기로 이거만 한 아이템이 또 없다.
내가 기억하기로 우편 차량 호송 병력들이 산탄총으로 무장했던 것 같은데. 그 자리를 이 작고 아담한 주유기로 대체할 수 있지 않을까?
이건 납품용으로 비벼봐야 할 문제다. 그리스건은 고장 나면 수리하는 대신 그냥 한 자루 더 사면 될 정도로 저렴한 가격이 장점이니, 가성비로 밀어붙이면 가능성이 없진 않을 거다. 장인어른과 상담하자.
그 외에도 부동산에서부터 한인들이 자잘하게 진행하고 있는 식당 등 군소 업체의 동향까지 체크한 후 드디어 본론이 나왔다.
“알다시피, 3월 1일부터 조선인의 독립을 요구하던 대대적인 만세 시위가 있었지만 일제는 오직 가혹한 탄압으로 응수했네.”
모두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일제의 탄압이라면 뻔하다. 총칼을 앞세운 학살과 몽둥이찜질.
“그리하여 각지에 흩어져 있던 독립운동가들이 저마다 조직화에 들어갔고, 조선의 힘을 한데 결집하기 위해 이 모든 조직을 망라하여 임시정부를 수립하기로 하였네. 유진 군이 민족자결주의에 부정적인 것은 내 이미 서신을 받아 알고 있네만, 적어도 조선민족이 하나 되어 목소리를 내야 하지 않겠나?”
후우. 머리가 지끈거린다.
어떻게 해야 가장 잘 했단 소릴 들을 수 있을까.
저 임시정부들 중 여러 곳에서 우리의 프린스 리께서 국무총리로 추대받고, 이 박사는 여기에 한술 더 떠 대한민국 ‘대통령’을 칭하면서 임정은 제대로 문을 열기도 전에 한바탕 소동을 겪게 된다.
그러니 여기서는 아무래도-
“지금 우리 대한인국민회에서도 임시정부를 정식으로 창설하거나 그에 준하는 행동을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드높네. 그리고 당연히 우리 내부에서는 유진 군을 추대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가장 높고.”
나는 잠시 내가 잘못 들었나 귀를 의심했다.
누구요? 저요?
“저 말씀이십니까?”
“미주 땅의 조선인 중 가장 이름난 사람이 자네 말고 누가 있나?”
아무도 반박하는 말을 꺼내지 않았다.
그제야 나는 안창호의, 박용만의, 그리고 가족들의 표정을 알 수 있었다.
기대감.
“저는 애초에 국적조차 미합중국이고, 조선 땅은 밟아본 적도 없습니다.”
“하지만 자네의 피는 명백히 조선 민족의 피지. 상해건 한성이건 연해주건, 지금 그들도 눈치만 보고 있네. 유진 군이 결단을 내려줘야 하네.”
“불가합니다. 미합중국의 군인 된 몸이 두 정부에 충성할 수는 없습니다.”
“그렇게 말할 줄 알고 있었네. 일단 여론이 그러하다는 점만 알아두면 되겠네.”
안창호는 이해한다는 듯, 그리고 박용만은 아쉽다는 듯 입만 쩝쩝 다셨다.
“그렇다면 임시정부에 관해서는 특별히 생각이 있는가?”
“두 분 선생님들께서는 어떻게 하실 요량이신지요?”
“당연히 우리는 임정에 합류해야지.”
그래. 이게 당연하지.
임정이 분열되고 존재가치를 의심받는다 하더라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훗날의 이야기. 지금 이 시점에서 임정은 민족자결주의, 그리고 한민족의 독립 의지를 계승한 시대적 사명의 총아다.
하지만 미래를 뻔히 아는 내 입장에서, 이 두분의 임정행은 말릴 수밖에 없다.
“······.”
“왜 그러나?”
“혹시, 무언가 다른 생각이 있나.”
박용만 선생의 물음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저는 두 분이 안 가시는 편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의외군. 미국과 척지는 게 두렵다고 말할 건 아닐 테고, 걸리는 게 있나?”
“제가 지금 무어라 말한들 사실 두 분께 와닿지는 않을 거라 생각합니다만··· 이 미국 땅에 두 분 중 한 분은 남아 계시는 편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이렇게까지 말하자 두 사람도 고민하는 기색이 역력해졌다.
“그리고, 임시정부에 관해서라면 논의해야 할 사람이 하나 더 있잖습니까?”
“그놈 말인가.”
“예. 그놈.”
“자네와 크게 마찰이 있었다고 들었는데, 괜찮겠나?”
나는 탁자를 톡톡 두드리며 생각에 잠겼다.
이제 결정을 내릴 시간이다.
치울지 말지. 써먹을지 말지. 방임할지 말지.
“일단 이야기는 들어봐야겠군요.”
나중에 유언이 되든 어쨌든, 들어는 드려야지.
그게 웃어른을 위한 예의 아니겠나.
다만, 지금 듣는다곤 안 했다.
반년 정도는 더 똥줄을 태워주마.
아직도 그 양반만 생각하면 짜증이 치솟거든.
그리고 어쩌면, 밉상인 양반으로 개같은 양반을 쓰러뜨릴 각이 나올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