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ack-Haired U.S. Army Marshal RAW novel - Chapter (97)
97_레븐워스의 마술사 (1)
해는 동쪽에서 뜨고, 그래도 지구는 돌고, 레븐워스에도 새로운 하루가 시작된다.
그리고 새 하루가 시작된다는 것은 곧 드럼 준장의 상판을 봐야 한다는 뜻이고.
“귀관의 인기가 아주 폭발일세.”
“저야 언제나 인기 좋았지요.”
내가 말야, 소싯적에 파티장만 나가면 여자들이 아주··· 도망간다고 바빴지. 옐로 몽키 광광 우럭따. 거둬주셔서 감사합니다 도로시 님 충성충성.
“그렇군. 전훈 분석은 어떻게 되어 가고 있지?”
“참전자 증언을 취합 중인 단계입니다. 이는 별도의 사례집을 출판하는 방향으로 빼고, 내년부터 정식으로 도입할 예정입니다.”
“좋아좋아. 무엇보다 속도가 우선이니 속히 시행하지.”
내가 아주 살짝 펌프질을 하긴 했지만, 드럼은 마치 추진력을 얻기만 기다리고 있던 알바트로스처럼 훨훨 날아다니고 있다.
이 인간.
진짜로 맥아더랑 한판 붙어볼 작정이다.
그만둬! 어이, 그 앞은 지옥이다!
내가 부추기긴 했지만 저리 장렬하게 달려드니 좀 곤혹스럽다. 전통을 수호하고자 하는 틀니 딱딱맨들과 함께 다구리치면 맥아더고 뭐고 이길 수 있다는 심산인 것 같은데···.
나는 이제 슬슬 두려워지고 있었다.
혹시나 드럼이 이길까 봐.
처음엔 채피가 챕챕거리는 술자리 농담 레벨인 줄 알았는데, 썩어도 준치라고 드럼이 판을 짜는 솜씨가 예사롭지 않았다.
맥아더가 이기면 흔히 있는 일이다.
아마 오지게 똥폼이란 똥폼은 다 잡으며 “봤나, 후배? 무능한 놈들은 항상 까마귀 떼처럼 몰려다닌다네.” 같은 소리를 내뱉으며 다 줘패고 승리한 이 맥아더를 빨리 떠받들어! 라는 아우라를 팍팍 풍기겠지.
하지만 맥아더가 진짜 깨지면?
저번에도 피해망상으로 한번 발작했었는데, 망상도 아니고 진짜로 다구리 맞아 알력다툼에서 밀리면?
굴욕감을 날마다 씹던 우리 더글라스 선배가 맥가놈으로 진화해서 훗날 피의 보복을 할 게 뻔하잖은가. 드럼이 옷을 벗든 말든 내 알 바는 아니지만 눈에 핏발 가득 선 맥가가 피의 보복과 대숙청을 개시하는 건 상상만 해도 존나, 존나 무섭다.
“아, 그리고.”
“예.”
“킴 부인께 축하드린다고 전해드리게. 건강한 아이를 낳길 나 또한 기도하겠네.”
“감사합니다. 애 태어날 때까지 전출 좀 안 가게 잘 부탁드립니다.”
“염려 말게나.”
결국 헨리 동생 만들기 프로젝트가 진행되었다.
절대 이곳 레븐워스에서 밀려나면 안 되는 이유가 하나 더 생긴 것이다.
아직 의학이 21세기처럼 발달하지 못한 지금.
사람은 아차 하는 순간 덧없이 가는 존재다.
내가 지켜야 하는 어린 생명이 하나 더 늘어난다.
정치적인 외줄타기를 계속하는 지금, 단 한 번의 실수로 파나마나 필리핀행이 결정 날 바로 지금.
임산부가 먼 길을 갈 수도 없으니, 만약 발령이 난다면 나 혼자 가야겠지.
그러면 도로시는 또 나 없이 아이를 낳게 된다.
하지만 말할 수가 없었다.
조금 더 기다렸다 낳자고 하는 순간, 도로시 눈치가 얼마나 빠른데 대번에 눈치채고도 남지. 내가 아는 그녀라면 뭘 그런 쓰잘데기없는 걸 걱정하냐면서 등짝을 신나게 스매싱할 거다.
서로가 서로에게 부담 주는 걸 질색팔색하는 관계. 어찌 보면 참 끼리끼리 만난 것 같기도 하고.
헨리가 태어날 때 없었던 것 하나만으로 이미 입이 백 개여도 할 말이 없다.
만약에 또 없어 봐라. 샷건을 들면 차라리 감사하지. 부인이 ‘에휴. 군바리랑 결혼할 때부터 이럴 줄 알았지.’ 같은 생각을 품게 하는 것부터 이미 구제불능의 남편이자 아빠 아닌가.
그리고 솔직히, 아주 약간 억울하지만, 이렇게 빨리 애가 들어설 줄은 몰랐다.
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어차피 내가 버티기만 하면 다 해결될 일이다. 이번에야말로 태어날 아이 얼굴은 좀 보고 전출을 가든 하리라.
전생과는 달리, 지켜야 할 내 사람들이 점차 늘어나고 있다.
어깨가 무겁지만 힘들진 않았고, 오히려 투지가 샘솟았다.
하지만 투지가 샘솟고 자시고는 모두 바깥 일이고.
집에 돌아와서까지 으르렁대는 건 짐승도 안 하는 짓이다.
“좀 씻고 옷부터 갈아입어.”
“시러어어~ 유진은 양말을 받았어요~ 유진은 이제 자유에요~”
“아빠 발냄새.”
“아들아. 이게 노동의 냄새라는- 아야! 아야!”
“애 앞에서 자알 한다 자알 해.”
도로시가 나를 보는 눈길이 가면 갈수록 헨리를 보는 그것과 비슷해지는 건 착각이겠지.
“아빠. 여기에 동생 있대.”
“그래그래. 헨리가 말 잘 듣고 착한 아이로 있으면 곧 동생 태어날 거야.”
“그럼 아빠도 말 잘 들어야 해? 아빠 발냄새 맡고 동생 오기 싫어하면 오또케?”
“······.”
도로시가 숨넘어갈 것처럼 꺽꺽댄다.
이래서야 가장의 권위가 무너진다. 이 아버지가 한때는 수만 병사들을 거느리고 카이저와 루덴도르프 모가지에 칼을 들이밀던 전쟁영웅이건만 어찌!
역시 전차가 필요하다. 그 개쩔고 간지나는 강철의 흉기를 거침없이 다루는 애비를 보면 헨리도 아빠가 얼마나 훌륭한 사람인지 알고 존경심이 무럭무럭 샘솟겠지.
내 장담컨대 전차를 싫어하는 남자애가 이 세상에 있을 리가 없다. 크고 아름다운 무기, 기차, 공룡을 싫어하는 애들이 드문 것과 마찬가지의 이치다.
내가 씻고 나오자 도로시가 기다렸다는 듯 말을 꺼냈다.
“아 참. 이번 주말에 큰오빠가 이리로 오기로 했어.”
“그래? 처음 뵙게 되네.”
찰스 커티스 주니어.
내게는 형님이 되시는 분이니, 이제 슬슬 이야기를 들을 때도 됐지.
헨리가 잠에 든 후, 그녀가 천천히 커티스 가의 옛날 이야기를 풀기 시작했다.
요약하자면 사실 어느 집에나 있을 법한 이야기였다.
자신의 일을 물려받길 원하는 아버지.
그게 싫었던 아들.
듣고 있자니 새삼 집안이라는 게 참 뜻대로 안 되는구나 싶다.
입지 탄탄한 정치인이고 거의 만능열쇠처럼 느껴지던 그조차 집안 문제가 있잖은가.
물론 나는 좀 다르긴 하다.
이 망할 군바리 일을 가업으로 물려줄 생각은 없다.
나는 적어도 군인으로서 부끄러운 일을 하진 않았다고 생각한다.
제국주의 군대의 일원으로 식민지인들을 가혹하게 진압한 적도 없고, 나치 정권이나 일본군처럼 범죄 정권을 위해 일하지도 않았다. 군생활의 절정이라 할 수 있을 1차대전과 2차대전 모두 자유를 위해 싸웠노라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일이지 얼굴 붉힐 일은 아니다.
그런데 헨리가 군인이 된다?
최악의 경우엔 베트남전이나 맛보겠지.
역으로 헨리가 입대하겠다고 땡깡부리면 어떻게 한다? 말려 말아?
말렸는데 얘도 집 나가서 아득바득 웨스트포인트 입학하면 어떻게 한담?
와. 벌써 생각만 하는데 머리가 띵하고 골치가 아프다. 미치겠네 진짜.
***
“처음 뵙겠습니다. 찰스 커티스 주니어입니다.”
“유진 킴입니다. 제게는 형님 되시는 분이신데 편히 말씀하시지요.”
“그러지. 저 천방지축이던 망아지를 과연 데려갈 수 있는 용사가 있을까 걱정했는데 정말 다행이야. 혹시 집에 무슨 문제 있으면 언제든 말하게. 내가 도와줄 순 없고, 덜 얻어맞는 법 정도는 코치해줄 수 있네.”
“오빠!!”
“어우. 기차 화통을 삶아 먹었나. 봤지? 쟤가 장난 아냐.”
“하하. 제 소중한 부인입니다. 하하하.”
곧이어 우리 귀여운 헨리가 처음 보는 외삼촌과 인사를 하고, 같이 식사를 하며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눴다.
당연히 주된 화젯거리는 도로시였고.
배가 빵빵해진 후 우리는 비로소 서재에 단둘이 앉게 되었다.
“도로시가 내 이야기를 많이 했나?”
“사실 그리 많이 듣진 못했습니다. 커티스 의원과 의견이 맞지 않아 집을 나갔다고만 들었지요.”
“집을 나간 건 아니야. 걔가 어렸을 적 일이라 정확하게는 모르나 보군. 나는 캔자스의 초원을 사랑하지만, 바다 건너 바깥세상에 대한 호기심과 동경이 그 사랑을 억누를 만큼 훨씬 컸네.”
역마살이 낀 분이셨군.
“아버진 지역구를 물려주고 싶어 했지만, 글쎄. 솔직히 말해 나는 공화당과는 의견이 맞지 않아.”
“커티스 의원은 꽤 진보적인 성향이었던 것으로 알고 있는데도요?”
“진보적이긴 개뿔. 공화당은 이제 썩은 내가 풀풀 나고 있어. 공화당의 진보? 시어도어 루스벨트 같은? 그 사람들은 그냥 제국주의자들이지.”
“혹시 그러면 진짜로 그, 사회주-”
“난 절대 빨갱이가 아냐. 절대로. 내가 빨갱이였으면 미쳤다고 매제를 만나려 했겠나? 앞길 막는 일이라는 걸 뻔히 알면서도 저지르는 취미는 없어.”
그럼 다행이고.
이 시대에선 명백히 공화당이 조금 더 진보적이고, 민주당이 화이트 파워 외치면서 꼴통 냄새 풍기는 편인데. 그 공화당이 싫으면 뭐지?
“나는 머리 굵어지자마자 곧장 해운업에 뛰어들었네. 도로시 말처럼 아예 집을 나간 것도 아니고, 그냥 일하면서 돌아다니다 보니 집에 거의 못 오게 된 것뿐이야. 뱃일하는 사람이 캔자스까지 가긴 좀 그렇잖나? 그나마 D.C는 바다와 가까우니 종종 아버지를 만나긴 했었네.”
“그건 다행이군요. 사실 좀 걱정했었습니다.”
“그래. 음으로 양으로 아버지 덕을 좀 봤었고, 지금은 나름대로 어깨에 힘주고 다닐 수 있게 되었네.”
한동안은 또 서로의 무용담을 나누며 시간을 보냈다.
나는 당연히 전쟁터 이야기를, 커티스 주니어는 사업 관련해서 있었던 일 등등을 떠들었고 이야기를 하다 보니 자연스레 아시아-태평양 무역 관련 화제로도 한참을 떠들었다.
“역시 들은 대로군.”
그가 거의 빈 찻잔을 내려놓으며 슬며시 웃었다.
“사실 땅개··· 크흠, 실례. 육군의 전쟁영웅이라기에 내 얄팍한 상상력으로는 셔먼이나 그랜트 같은 사람을 떠올렸었네.”
그거 그냥 패튼 프리퀄이잖아. 저와 같은 품위 있고 지적인 사람을 자꾸 그런 양반들이랑 엮지 말라고요.
“하지만 알음알음 자네에 대한 이야기가 들려오는데, 그게 내 매제 이야기니 도무지 궁금증을 참을 수가 있어야지 말야.”
“육군 밖에서도 제 이야기가 나온다구요?”
“내가 무역을 주로 하다 보니, 해군과 국무부에 이리저리 끈이 많네. 그 양반들이 일개 육군 장교 이야기를 꺼낼 리가 없는데도 잊을 만하면 자네 이야기가 언급되더란 말이지.”
또 그 레포트 이야기인가.
뭐, 그럴 만하다. 그건 내가 진짜 튀어 보려고 만든 회심의 걸작이니까.
내 인생에 그런 몹쓸 레포트를 만들 일이 또 있을 것 같진 않지만, 아무튼 내 주가가 오른 것 같아 기분이 썩 나쁘진 않네.
“혹시나 해서 묻는 거지만, 국무부 일 해볼 생각은 없겠지?”
“당연하지요. 제가 뭐라고 국무부에 갑니까?”
“국무부 친구들이 자네 때문에 얼마나 혼비백산했는지 모를 거야. 전쟁부 장관이 결투장을 보냈어도 그것보단 덜 시끄러웠을걸세. 아직 스카웃 요청이 안 갔다는 게 신기하네.”
“그야··· 제 입으로 이러기도 부끄럽지만, 훈장까지 두둑하게 받은 인물이 국무부에 가기도 좀 그렇잖습니까?”
“그렇긴 하지.”
그가 고개를 주억였다.
“혹시 자네, 민주당에는 관심이 없나?”
“전혀요.”
“아니아니. 정치 하자는 이야기가 아니야. 으음. 군인도 결국 출세를 하려면 정계와 소통할 창구가 있어야 하지 않나. 비록 민주당이 야당 신세가 거의 확정이라곤 해도, 하나쯤 끈을 만들어 두는 건 어떻겠나 이거지.”
어휴. 나야 있으면 땡큐지.
대공황 이후 공화당 정권은 무너진다.
그러고 나면 프랭클린 루스벨트가 10년 넘도록 백악관을 지키고, 그 뒤를 이어 트루먼까지 쭈욱 민주당의 시대.
지금이야 커티스 의원의 뒷배가 참으로 따사롭지만, 이게 천년왕국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불감청이언정 고소원이라고 민주당과의 소통 창구가 있어서 전혀 나쁠 일은 없다.
“나와 참 이야기가 통하는 친구가 있어. 저 남부 꼴통들처럼 흑인 노예를 갖고 싶어 아등바등하는 놈도 아니고, 굉장히 폭넓은 시야와 탁월한 판단력을 가진 인물이네.
문제는 이번 윌슨 하야 건으로 조금 타격을 입었다는 점인데, 그래도 이런 일로 폭삭 망할 사람은 아니라는 게 내 판단이야. 아마 민주당 내 소수파로서나마 자기 자리 정도는 지킬 수 있을걸세.”
“형님께서 그렇게 극찬하시는 분이라면 저야 당연히 좋은 인연을 만들고 싶지요. 혹시 누군지 알 수 있겠습니까?”
“아. 내가 아직 이름도 언급 안 했군. 프랭클린이라고, 이번에 민주당 부통령 후보로 나왔네. 어차피 이번 선거야 버리는 카드니까- 자네 괜찮나?”
시발.
오 시발.
역시 사람이 죽으라는 법은 없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