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g Player RAW novel - Chapter 10
제 10화
4장. 내 손을 잡아 봐 – 2화
놈이 내 심기를 대단히 불편하게 만들었다.
순간 머릿속의 무언가가 뚝 끊어지는 느낌이 났다.
그리고.
파아앗!
내 몸이 용수철처럼 앞으로 튕겨져 나갔다.
3클래스의 헤이스트 마법으로 순간 가속 상태에 들어간 것이다.
“헉?”
당황한 체드의 목소리가 들렸다.
내 동선을 놓친 체드가 좌우를 열심히 두리번거리고 있었지만.
나는 이미 놈의 뒤에 조용히 자리하고 있었다.
그리고 인정사정 볼 것 없이 바로 뒤통수를 겨누고 1클래스의 매직 미사일 마법을 시전했다.
가장 기본적인 마법이지만, 그렇기에 가장 빠르고 사용이 용이한 마법이기도 했다.
뻐억! 뻐어억! 뻐억!
“으컥! 크억! 어커어억!”
그야말로 바로 뒤에서 날아든 매직 미사일 구체를 방어도 없이 뒤통수로 받아 낸 체드가 신음을 토해 냈다.
동시에 몸이 흔들리며, 중심을 잃고 비틀거렸다.
스릉!
나는 바로 호신용으로 차고 있었던 검을 꺼내 들었다.
상대가 순간적으로 전투 불능 상태가 됐을 때는 캐스팅에 시간이 살짝 걸리는 마법보다는 검술이 더 잘 먹힐 때도 있으니까.
마법사라고 해서 항상 마법만 써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정석에 대한 지나친 고집이다.
터업!
나는 체드의 머리칼을 바로 움켜쥐었다. 그리고 그의 목젖에 검날을 바로 가져다 댄 뒤.
스으윽!
미련 없이 가로로 그어 버렸다.
“끄걱. 끄걱. 끄걱…….”
체드는 피를 쏟아 내며, 제대로 말조차 잇지 못하고 버둥거렸다.
“저승길에 이걸로 가는 길이나 밝히면서 가라.”
나는 바로 파이어볼을 캐스팅한 뒤,
뻐끔거리는 체드의 입을 들어 올리고는 타오르는 화염 구체를 입안으로 밀어 넣어 버렸다.
화르르륵! 화륵!
그러자 체드의 머리가 하나의 거대한 불구덩이가 되더니, 이내 시원하게 활활 타올랐다.
숨이 끊어진 것이다.
[레벨업! Lv. 2 달성!] [레벨업! Lv. 3 달성!] [레벨업! Lv. 4 달성!]체드가 죽자, 레벨이 단숨에 3이나 뛰어올랐다.
조직의 ‘잔챙이’들을 상대할 때는 경험치가 미미했는데, 나름 수괴로 불리는 녀석을 잡았기 때문인 것 같았다.
“히익, 대장이 죽었다!”
“모두 튀어!”
체드가 목숨을 잃자, 부하들은 전의를 상실한 채 앞다투어 도망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광산의 출구와 입구에는 이미 병사들을 배치해 놓은 상태.
그리고 에서 이런 광산에 반드시 딸려 있던 비밀 통로도 사전 탐색을 미리 끝내 놨다.
그래서 그곳에도 병력을 일찌감치 배치해 놓은 상태였다.
놈들은 도망칠 수 없다.
선택지는 빨리 죽거나 늦게 죽거나 그 차이만 있을 뿐이다.
체드의 조직은 단순한 범죄 조직이 아니라, 악질 집단이었다.
노예 거래를 위해서 살인이나 납치를 자행하는 집단이었기 때문에 굳이 생포할 이유도 없었다.
그렇게 지하 광산의 상황은 빠르게 정리되어 갔다.
이윽고 체드 조직의 잔당들을 모두 토벌하고, 불법 거래를 위해서 왔던 구매자들까지 모두 포로로 잡고 나자,
시스템 메시지 알림이 떴다.
[퀘스트 ‘범죄와의 전쟁’을 완료했습니다. 영지민들의 충성도가 23 상승했습니다!] [퀘스트 ‘지하조직 궤멸’을 완료했습니다. 영지민들의 충성도가 34 상승했습니다!] [충성도 100을 달성했습니다! 소(小)황금기가 도래합니다!] [소(小)황금기가 도래함에 따라 영지민들이 영주의 은덕을 칭송합니다. 영지민들의 생산 능력이 한 달 동안, 33% 향상됩니다.] [내정 – 충성 : 100 / 100]‘퀘스트를 아껴 놨다가 한 방에 몰아준 보람이 있네. 이게 바로 퀘스트 꼼수지! 한 방에 몰아주기를 해서 소(小)황금기까지 다이렉트로 끌어내는 방법!’
이걸로 당분간 영지민들의 충성도는 신경 쓸 필요가 없게 됐다.
황금기로 생산 보너스도 얻었으니, 한 달간은 걱정을 던 셈이다.
이후 뒷수습이 진행되는 동안,
나는 지하 광산에 갇혀 있었던 사람들의 면면을 살폈다.
원래는 영지 시내로 나가 시찰을 하면서 ‘유망주’로 키울 만한 인재를 탐색할 생각이었지만.
마침 광산에도 포로로 잡혀 있는 사람이 꽤 많았던 것이다.
여기서도 잘하면 괜찮은 인재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인연은 어디에나 존재하는 법이니까.
하지만 아쉽게도 대다수는 평범한 사람들이었다.
그냥 레벨 1에 기본 스탯만을 보유한 사람들.
한편으로는 이해가 갔다.
그런 정도의 수준이었으니 쉽게 범죄자들에게 저항도 못 하고 잡혔을 것이고, 여기에 갇혔을 터였다.
그렇게 저마다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치안대 병사들의 에스코트 속에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려는 사람들을 보고 있을 즈음.
“…….”
유독 감옥 안에서 미동도 하지 않은 채로, 멀뚱멀뚱 나만 쳐다보고 있는 소녀를 볼 수 있었다.
사실 그녀의 시선을 느꼈던 것은 이 광산에 들어오면서부터다.
그녀는 계속 나를 신기한 표정으로 살피고 있었다.
호기심일까? 이유가 있는 걸까?
나는 자연스럽게 그녀에 대한 정보를 스캔했다.
[레나 – Lv. 2] [근력 : 8][체력 : 8] [마력 : 0][지혜 : 5] [민첩 : 5][매력 : 5] [물리 방어력 : 2] [마법 방어력 : 0] [특수 성향 : 끈질긴 인내 S / 투지 극한 F] [일반 성향 : 도전, 성장]‘와, 어려 보이는데도 불구하고 끈질긴 인내가 벌써 S등급에 도달해 있다는 것은 기본적으로 고통과 시련을 견뎌 내는 능력이 매우 강하다는 얘기인데? 유망주가 여기에 있었구나! 대박이야!’
나는 레나의 끈질긴 인내 성향에 관심을 가졌다.
그뿐만 아니라, 일반 성향도 눈여겨보았다.
자신도 쉽게 인지하지 못하는 특수 성향과 달리, 일반 성향은 평소 자신의 지향점을 표시한다. 자각하고 있는 것이다.
어린 소녀가 도전과 성장에 관심을 두고 있다는 것은 새로운 자극이나 훈련을 즐길 준비가 언제든 되어 있음을 뜻했다.
단지 지금은 현실적인 상황이 맞지 않아 여기에 갇혀 있게 되었지만 말이다.
‘유망주야. 확실히 유망주다!’
숨은 인재를 찾았다는 생각에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하지만 내 미소가 레나에게는 다른 의미 –오해를 하려면 한도 끝도 없이 할 수도 있으므로– 로 받아들여질 수 있기에.
천천히 그리고 차분한 발걸음으로 그녀에게 다가갔다.
다행히 그녀는 나를 경계하기보다는 골똘히 바라보는 모습이었다. 그러더니 먼저 말을 걸었다.
“영주님…… 이신가요?”
“그래. 크리비아 영지의 영주인 자레드라고 한다. 너는 이름이 뭐지?”
심안으로 이미 그녀의 이름을 알았지만, 내 능력이 드러나지 않도록 모르는 척 물었다.
“레나, 지젤, 엘리스예요.”
풀네임을 그녀가 말하는 순간,
불현듯 내 머릿속을 스치는 기억이 있었다. 동시에 등골이 오싹해졌다.
레나라는 이름 자체는 의 세계관에서 흔한 이름.
하지만, 레나 지젤 엘리스라는 사람은 단 한 사람뿐이다.
통곡의 벽, 레나.
10년 후에 벌어질 성마 대전에서 마왕군의 선봉에 서게 되는 여자.
의 주인공을 메인 스토리에서 처음으로 시련에 맞닥뜨리게 만드는 최대의 강적!
그녀가 바로 이곳에 있었다.
‘엑스트라의 위치에 서게 되면, 이런 식으로도 인연이 연결될 수 있구나!’
나는 깨달았다.
주인공 시점이 아닌 엑스트라의 시점에서, 그리고 메인 스토리가 시작되기 이전의 위치에 있을 때.
이번처럼 훗날 메인 스토리에서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게 되는 인물을 먼저 알게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통곡의 벽, 레나.
수백 명의 유저들이 쏟아 내는 공격을 여유롭게 웃으면서, 전혀 밀리지 않고 받아 냈던 최강의 탱커.
그녀가 지키는 요새는 절대 돌파할 수 없다는 말이 돌 정도로 레나는 마왕군의 뛰어난 방어자였다.
하지만 지금은 지하 광산에 끌려와 있는 가련한 소녀일 뿐.
아마도 10년 사이에 그녀를 격변하게 만든 계기가 있을 것이다.
십중팔구 그 과정에서 마왕의 유혹이나 인간계에 숨어든 마족의 흉계가 있을 것이라 짐작했다.
그렇다면 지금은 그 입김이 닿기 전인 것이다.
만약 그녀가 마족에게 포섭을 당했거나 영향을 받았다면?
심안으로 살핀 상태창에 분명 다른 표시가 있었을 터이다.
미래의 네임드 중 하나가 이 자리에 있다니!
나는 레나와 당장에라도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다.
하지만 핏기가 사라진 얼굴과 터진 입술을 보니 제대로 된 밥과 물을 먹은 지 오래된 것 같았다.
게다가 다른 사람들과 달리 밖으로 나가려고 하지 않는 것을 보면, 달리 갈 곳도 없는 듯했다.
나는 라키스에게 바로 명령을 내렸다.
“라키스, 레나가 먹을 빵과 물을 준비해 주겠소? 더 준비할 수 있다면 고기 수프까지.”
“옛, 마침 이곳에 오기 전에 조리했던 것이 남아 있으니 바로 가져오겠습니다. 아직 온기가 남아 있을 겁니다.”
“부탁하오.”
그는 충실하게 명령을 따랐다.
나는 레나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일단 몸을 좀 편하게 기대 보겠니? 내가 먼저 네 몸을 살펴주마. 일단 내 손을 꼭 잡으렴.”
그녀의 손은 오랜 기간 고생을 해 온 어른의 손처럼 잔뜩 굳은살이 박여 있었다. 마치 고목의 껍질을 만지는 기분이었다.
“아아.”
내 손을 맞잡은 레나에게서 떨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레나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며 안심시키고는 조심스럽게 힐(Heal) 마법을 사용했다.
현재 내 마력이 풍족한 상태는 아니지만, 1클래스의 힐을 쓰기엔 부족함이 없는 양이었다.
“어때, 하얀 기운이 보이지? 몸에 자연스럽게 스며들면 그만큼 체력이 올라갈 거야. 따뜻한 기운이 느껴지니?”
“네, 느껴져요. 정말 감사해요. 영주님이 저 같은 고아에게 관심을 가져 주실 줄은…… 꿈에도 몰랐어요.”
레나가 눈물을 글썽였다.
오래되어 해져 버린 옷, 몸에서 나는 묵은 냄새, 그리고 떡진 머리까지.
모든 것이 사람의 손길이 닿은 지 오래된 모습이었다.
나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어디에 있었니? 돌아갈 곳은?”
“보육원에 있었어요. 하지만…… 돌아가고 싶지 않아요. 원장님이 저를 광산에 팔아넘겼거든요.”
“뭐라고?”
나는 경악했다.
잦은 전쟁으로 나스 대륙에는 부모를 잃은 아이들이 많기에 생각보다 보육원이 많았다.
보육원은 다양한 지원을 받기 때문에 운영이 꽤 수월한 편이다. 독지가들의 기부도 꽤 들어온다.
그런데 그곳에 있는 아이를 광산으로 팔아넘겼다니?
그것은 돈에 눈이 멀어 미친 것이 아니라면 절대 벌어질 수 없는 일이었다!
“갈 곳이 없어요. 이제 살길을 찾아야 해요. 괜찮아요. 가진 건 몸뚱이뿐이니까 열심히 일하면 될 거예요!”
어두운 기색을 숨기고 밝게 대답하는 레나가 대견했다.
보통 이 정도 상황까지 내몰리게 되면 일반 성향이 생존, 원망, 분노와 같은 원초적인 방향으로 흘러가기 마련이다.
믿었던 보육원의 원장이 자신을, 그것도 노예 거래가 이뤄지는 지하 광산에 팔아넘겼으니까.
그러나 레나는 그렇지 않았다.
‘차라리 잘됐다. 이참에 그녀를 거두고, 마왕의 손길이 닿을 가능성을 차단하도록 하자. 그러면 성마 대전에 대비함은 물론이고, 전도유망한 유망주를 마왕이 아닌 내 가신으로 둘 수 있어.’
나는 빠르게 판단을 내렸다.
유망주 육성을 위한 인재를 찾으려던 내게, 레나는 더할 나위 없이 좋아 보이는 ‘떡잎’이었다.
절대 그녀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