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g Player RAW novel - Chapter 102
제 102화
38장. 타락한 지하 사원 – 1화
“잠깐, 통행증을 제시하시오.”
“여기.”
“어허? 크흠…….”
“아이고, 고생이 많으십니다.”
“어헛, 자주 오는 상인이셨군. 몰라봐서 죄송하오. 통과!”
찰나의 순간에 정말 전광석화처럼 두 번의 뇌물이 들어갔다.
첫 번째 금화로 통행증이 없는 상황을 넘겼고, 두 번째 금화로는 검문검색을 넘겼다.
한두 번 뇌물을 받아 본 솜씨가 아닌지, 경비병은 능청스럽게 나를 통과시켰다.
“아이고, 다들 수고가 많으십니다. 마침 빵을 구워서 오는 길인데, 다들 하나씩 드시면서. 하하.”
넉살 좋게 다른 경비병들에게 건넨 호밀빵 속에는 금화가 하나씩 박혀 있었다.
이곳의 1골드는 전생을 기준으로 하면 100만 원 정도 한다. 보통 경비병의 월급이 2골드가 조금 안 된다는 점을 감안하면, 경비병들의 입장에서는 상당히 수지맞는 장사를 한 셈.
자본주의, 아니 뇌물의 노예가 된 경비병은 누구도 내 몸에 손을 대지 않은 채 나를 통과시켰다.
하지만.
“어허! 거기 멈춰라! 감히 통행증도 없이 여길 지나가려고?”
정직하게 관문을 지나는 사람은 집요한 검문과 통행증 확인 절차에 30분 이상을 소모해야 했다.
비리와 부정과 부패의 온상.
이것이 작금의 파우페르 왕국의 현실이었다.
금화를 앞세운 정면 돌파 덕분에 모든 것이 신속하게 이뤄졌다.
왕국 외곽에서 타락한 지하 사원이 있는 중부로 향하는 텔레포트 마법진 이용도 수월했다.
적절한 뇌물에 대기 순번이 세 자릿수에서 한 자릿수가 됐고, 얹어 준 뇌물에 신분 확인 절차가 사라졌다.
정말 돈이면 다 됐다.
병사도, 마법사도, 관리원도 모두 돈귀신에 홀린 것처럼 돈이면 모든 것이 일사천리로 해결되었다.
그렇게 나는 반나절도 되지 않는 시간에 타락한 지하 사원 앞에 도착했고.
역시나 던전을 관리하는 헌터 길드의 관리자들에게 금화를 쥐어 주며, 공략 순번을 앞당겼다.
정상적이라면 이 모든 과정에 최소 한 달은 걸렸겠지만, 이번에 내게 걸린 시간은 고작 한나절뿐이었다.
돈의 힘을 절실하게 느낀 시간이었지만, 한편으로는 씁쓸하고 참담한 파우페르 왕국의 현실을 직시한 순간이기도 했다.
‘나라를 뒤엎지 못하면, 부정부패에 찌든 이 불합리한 구조는 영원히 바뀌지 않겠지.’
편하게 던전까지 오기는 했지만, 그것과 별개로 파우페르 왕국의 경악스러운 현실을 보며 다른 생각도 함께 하게 됐다.
‘언젠가는 이 나라에도 꼭 변화의 바람을 몰고 오고 싶다. 내 손으로 새 바람을 일으키고 싶어.’
또 다른 포부(抱負)가 생겼다.
* * *
“어이, 형씨! B코스로 가려고? 거기로 가면 죽어! A코스랑 B코스랑 생존율이 95%와 10%로 천지 차이라는 거 몰라?”
“알아요. 아니까 가는 겁니다!”
“어이! 여럿도 아니고 혼자서 B코스로 가는 건, 그냥 묏자리 찾아서 가는 거나 다름없다고!”
“걱정해 주시는 건 고마운데, 괜찮아요.”
“아이고, 이거 또 젊은 헌터 하나를 잃겠구먼……. 쯧쯧.”
B코스에 들어서기에 앞서, 나는 계속 내 손을 붙잡고 말리는 헌터들 때문에 진행에 차질을 빚었다.
물론 그들의 말은 틀린 것이 없었다.
타락한 지하 사원은 지하로 향하는 통로가 크게 A코스와 B코스가 있는데, 주요 공격로는 A코스였다.
경사도 완만하고, 시야 확보가 쉬워 위험성이 낮으며, 공략이 많이 된 덕분에 노하우도 풍부했다.
반면 B코스는 ‘황천길’이라는 표현이 붙었을 정도로 악명이 높았다.
최소 열다섯.
B코스 공략 팀의 최소 인원은 열다섯이었다.
이는 에서도 해당되었던 불변의 진리였다.
하지만 나는 이미 머릿속에 그림을 다 그려 둔 상태였기에 홀로 들어왔다. 자신 있었으니까.
또한 솔플을 결심한 이유가 하나 더 있었다. 바로 전리품의 독식을 위해서다.
B코스의 보스 몬스터인 대형 쌍둥이 도마뱀, 벨라레와 벨라로.
이 녀석들은 다양한 직업군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아티팩트를 드롭 하기로 유명했다.
전투 계열뿐 아니라, 아키 같은 상인이나 발데스 같은 선전 장관 같은 비전투 계열에도 유용한 아티팩트를 뱉어 내곤 했던 것이다.
‘게다가 벨라레나 벨라로같이 완전 악 성향인 녀석들을 잡으면, 이 녀석을 업그레이드하는 카운팅도 크게 되지. 한 놈당 100 정도의 수치를 받았었지?’
나는 그간 차곡차곡 스탯을 쌓아 온 델루크의 팔찌에 대한 정보를 확인했다.
[델루크의 팔찌 : 악몽(惡夢)] [분류 등급 : 5성] [사용자가 옵션 1, 2, 3, 5의 정보 열람을 생략한 상태입니다.] [옵션 4 : (툴팁 생략) 현재 수집된 악몽 810 / 1000]계산대로면 벨라레와 벨라로를 잡으면 악몽 수집이 끝난다.
그렇게 되면 델루크의 팔찌는 악몽에서 절망으로 진화한다.
수집해야 할 것도 악몽에서 절망으로 바뀌면서 1천에서 1만 카운트로 바뀐다.
‘이참에 스펙업도 확실하게 해 둬야지. 언제 나보다 더 강력한 상대가 나타날지 알 수 없으니.’
대륙은 넓고, 괴물은 많다.
나는 트랜센던스 마법을 탑재하면서 제법 오버 파워가 가능해졌지만, 마력의 한계 때문에 그 시간이 짧다.
지금 내 능력이면 마스터 수준의 기사를 상대로 1분 정도는 능히 버틸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하지만 그 뒤는 답이 없다.
그때는 옷이든 팬티든 다 벗어 던지고, 삼십육계 줄행랑을 쳐야만 산다.
‘6클래스! 6클래스의 벽을 빨리 깨뜨릴 수 있으면 좋을 텐데. 이 놈의 클래스 상승은 언제 관련 퀘스트가 발동될지 짐작할 수도 없으니…….’
어지간한 레퍼토리는 죄다 꿰차고 있는 나도 클래스 업에 대해서는 지식이 없었다.
개발진이 설정한 별도의 관련 수치와 그 값이 있다고는 들었는데, 대외적으로는 알려지지 않았다.
많은 유저가 연구해서 얻은 그나마 가능성 높은 추론은 ‘던전 공략을 최대한 많이 하라’는 것.
이것 때문에 여기 온 김에 겸사겸사 타락한 지하 사원 공략을 시작한 것도 있었다.
“일단 비정공 꼼수로 공략하려면, 타넥스는 필수니까. 슬슬 착용해 볼까? 사비오 녀석이 열심히 훔쳐보겠군.”
나는 피식 웃으며, 아공간에서 바로 타넥스를 소환했다.
확실히 아공간에 1만 골드를 들여 10배로 확장한 이후, 아티팩트나 타넥스 같은 초월체의 수납이 한결 편해졌다.
예전처럼 소환을 활용한 방법으로 중간에 끼게 만드는 짠내 진한 꼼수를 쓰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 기분 좋은 부분!
“착용.”
양손을 힘껏 펼치고, 시동어를 외우며 두 눈을 감았다.
그러자 타넥스가 아주 부드럽게 머리부터 발끝까지 나를 감싸며, 순식간에 몸과 일체화가 됐다.
‘영화 속의 슈퍼히어로가 이런 느낌이구나.’
타넥스를 착용하자마자 바로 머리에서 떠오른 그를 생각하며, 방향을 안쪽으로 잡기 시작했다.
‘마력 충전 상태 100%. 기동 상태 최상, 불량 부위 없음. 좋아. 컨디션 최고니까 신속하게 가자.’
준비는 끝났다.
쿠아아앙!
파공음과 함께 내 몸이 빠르게 던전 안, 어두침침하고 음산한 곳으로 쏜살같이 향했다.
* * *
그로부터 약 10분 후.
“와, 이 자식 뭐지? 딱 봐도 여기 타락한 지하 사원이잖아? 던전 공략 중인 거는 틀림없는데. 이런 말도 안 되는 방법으로 혼자서 몬스터 구간을 프리패스 한다고?”
타넥스에 설치한 감시 장치를 이용해 영상을 지켜보던 사비오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타타르 아일랜드에서 오래 지내긴 했지만, 헌터의 던전 공략에 관심이 많아 예전부터 관련 서적을 달달 외듯 읽었던 사비오였다.
그래서 자레드가 보인 솔로 플레이의 모습은 충격과 경악의 연속이었다.
보통 던전 공략이라 하면 팀 단위의 공략을 말한다.
물론 아주 쉬운, 고블린 따위의 몬스터가 나오는 곳이라면 솔플도 가능은 할 것이다.
하지만 그런 곳은 헌터들이 던전이라는 이름을 붙이지 않는다.
사냥터라든가, 훈련지라는 조금 다른 별칭을 붙인다.
타락한 지하 사원, 특히 자레드가 선택한 B코스는 최소 권장 인원이 15인으로 알려진 곳이었다.
한데 자레드는 혼자서 아주 수월하게 몬스터 구간을 돌파하고 있었던 것이다.
“거의 천장에서도 완전 외벽 쪽에 붙어 움직이다시피 해서 어그로를 발생시키지 않았어!”
사비오의 호기심 가득한 눈이 자레드의 움직임 하나하나를 세세하게 훑었다.
정말 대단한 꼼수였다.
이것은 꾸준히 공중 기동이 가능한 플라이 마법이나 초월체가 있어야 시도할 수 있는 꼼수였다.
아니, 애초에 이런 꼼수를 어떻게 알았나 싶었다!
모든 이의 목숨은 하나로 공평하지 않은가?
목숨을 걸고, 수없이 실험을 해 왔다고 보기에는 노하우의 절륜함이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대단해. 정말 대단한데? 던전을 구석구석까지 완전 꿰뚫고 있잖아? 이 자식, 모르는 게 뭐야?”
짝! 짝! 짝!
사비오가 감탄 섞인 박수갈채를 보냈다.
그는 들을 수 없겠지만 말이다. 물론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도 모르겠지.
한데 바로 그때.
-어때, 사비오. 신기하지? 이 정도면 타트라 넥스의 파일럿으로 활용하기에는 정말 최고의 실력 아냐?
“응?”
혼자 몰래 엿듣고, 엿보고 있다고 생각했던 저쪽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뭐야, 내가 보고 있는 걸 알고 있었어?”
사비오는 순간 등골을 타고 소름이 쫙 끼치는 것을 느꼈다.
-너에게는 관람료 무료니까 실컷 보라고. 내가 타트라 넥스에 얼마나 잘 어울리는지 계속 증명해 줄 테니까.
자신감 넘치는 자레드의 목소리에 사비오가 영상을 출력하고 있는 화면 앞까지 얼굴을 갖다 대기를 몇 번이나 반복했다.
신기해서였다.
그간 벽만 보고 타트라 넥스를 만들어 오는 느낌이었던 자신에게 드디어 교감을 나눌 상대가 생긴 것이다.
“제길, 이럴 줄 알았으면 쌍방향 교신을 위해서 통신석을 장착해 두는 건데. 망할.”
괜히 아쉬워졌다.
한 마디라도 대화를 나눠 보고 싶은데, 방법이 없었다.
“아냐, 좀 더 지켜보자. 너무 반가워할 필요 없어. 호들갑 떨 필요도 없고.”
이내 평정심을 되찾은 사비오가 마음을 가라앉혔다.
분명 자레드는 뛰어난 파일럿이고, 당장에라도 만나 보고 싶은 유능한 사람이었지만…….
그는 인간이었다.
동족이 아닌 이종족은 함부로 믿어서는 안 된다는 것.
이것은 타타르 아일랜드에 사는 다크 엘프의 신념이기도 했다.
파아앗! 파앗! 파앗!
화면 속에서 자레드는 정말 화려한 묘기와 함께, 던전의 빈틈을 집요하게 파고들며 이동했다.
몬스터들이 득실거리는, 총 8개의 방을 지나갔지만 전투를 벌인 몬스터는 단 한 마리도 없었다.
일반 공략 팀이라면 최소 2일은 족히 걸렸을 공략과 이동.
한데 자레드는 불과 2시간 만에 끝내 버린 것이다.
자레드의 공략에 푹 빠져 화면만 보고 있던 사비오가 정신을 차렸을 때.
“뭐야……. 무서워. 벌써 벨라레와 벨라로가 있는 타락의 방 앞이잖아?”
자레드는 보스 몬스터 벨라레와 벨라로가 있는 타락의 방 앞에 도달해 있었다.
꼼수를 이용한 1인 공략.
그것은 소설이나 망상이 아닌 생생한 현실이었다!
* * *
“자, 이제 알맹이만 확실하게 빼먹어 보실까?”
드디어 타락의 방에 들어선 나는 아직 잠들어 있는 벨라레와 벨라로를 확인하고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이제부터가 진정한 꼼수 공략의 시작이었다.
놈들은 나를 때릴 수 없지만, 나는 원 없이 놈들을 두드려 패 줄 수 있는!
유일무이한 꼼수 포인트를 찾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