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g Player RAW novel - Chapter 163
제 163화
57장. 케베눔 – 3화
“…….”
기회를 만들기 위해 내가 쓴 미끼는 바로 내 자신이었다.
일단 작전은 통했다.
케베눔은 스스로의 뛰어난 육체 능력만을 믿고, 거침없이 내 목을 움켜쥐었다.
누군가에게 목을 졸려 보기는 예전에 마하트 3세의 무덤에서 마하트에게 잡혀 본 이후로 두 번째였다.
그때도 아찔한 정신으로 버텼던 것 같은데 이번에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크윽.”
신음이 먼저 터져 나왔다.
-역시 인간 마법사는 종잇장처럼 약하단 말이야!
치열하게 공방전을 주고받은 나를 붙잡았기 때문인지, 케베눔의 사기는 드높았다.
나는 케베눔의 양손에 붙잡혀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상태.
처억.
그 와중에 자연스럽게 축 처진 팔이 케베눔의 양팔을 붙잡았다.
바로 다음 순간.
[확정적 해체를 사용합니다.] [10초간 대상의 모든 방어력 수치가 0으로 바뀝니다.]절대 약화의 반지에 달린 6번 옵션인 ‘확정적 해체’를 썼다.
그러자 손에 닿은 케베눔의 양팔부터 시작해서, 그의 외피가 순식간에 흐물거리는 젤리처럼 변하기 시작했다. 방어력의 초기화가 이뤄진 것이다.
‘트랜센던스 파이어 월.’
그 상태에서 곧바로 초월 형태의 파이어 월을 전개했다.
방어력이 리셋 된 상황에서 초월 마법의 불길이 몸을 휘감는다?
일반적인 경우로 따진다면, 사람의 몸에 기름을 퍼붓고 그 위에 불을 붙인 효과와 같으리라.
무슨 말인가 하면, 정말 잘 타오르고, 또한 잘 녹는다는 것이다.
“커허어어어억!”
아니나 다를까, 불길 위에서 그 상태로 활활 타오르게 되어 버린 케베눔의 비명이 들려왔다.
끄르륵. 꾸륵. 끄륵.
케베눔의 피부에서 정체불명의 소리가 들리며, 녀석의 피부가 부풀어 올랐다가 녹아내렸다.
방어력을 상실한 피부는 단단함을 잃었고, 불길을 한시도 버텨 내지 못했다.
“못 나간다!”
쿠웅!
그사이에 합류한 레나가 불길 밖으로 빠져나오려는 케베눔을 밀쳐내며, 다시 원상복귀를 시켰다.
이제는 척하면 착. 환상의 호흡은 최고조에 달해 있었다.
-이런 상처에 내가 죽을 것 같으냐! 뒈져 버려라!
케베눔의 말이 틀리진 않았다.
피가 쭉쭉 빠지고 있었고, 어느덧 40% 구간 아래로 떨어졌다.
하지만 케베눔의 입장에서는 여전히 40%의 체력이 남은 것이기에 놈은 여유가 있었다.
반면에 나는 순간적으로 눈앞이 아찔해질 정도의 블랙아웃이 찾아왔다.
몇 개의 마법 구체를 케베눔에게 연속으로 날렸지만, 맷집으로 버티는 녀석에게 별다른 타격은 주지 못했다.
이 상태로는 블링크나 텔레포트 같은 마법 시전도 불가능하다. 일단 집중이 안 되기 때문이다.
“…….”
나는 묵묵히 대회복 패턴이 나오기를 기다렸다.
‘이 전술은 앞으로 다시는 쓰면 안 되겠군. 완전 폐기다. 아무리 생각해도 정신 나간 전술이야.’
한편으로는 냉정한 자체 피드백까지 마무리했다.
정신을 잃기 직전의 위기 상황이지만, 그래서 더 유쾌하게 받아들였다.
바로 그때.
-아무짝에도 쓸모없다는 것을 왜 모르지?
대회복 패턴이 나왔다.
케베눔의 대사가 끝나면 약간의 시간차를 두고 체력이 쭉 회복된다. 꼭대기까지 말이다.
그 순간!
처억!
나는 오른손의 엄지를 들어, 공중에서 마력탄을 사격 중인 헤이즈를 향해 신호를 보냈다.
데스 힐의 발동을 주문하는 약속된 신호였다.
“하아앗!”
이윽고 헤이즈의 일갈이 터져 나오며, 그녀의 손끝을 떠난 적색의 구체가 케베눔에게 날아왔다.
헤이즈의 모든 치유술 스킬은 백색을 기반으로 하지만, 유일하게 다른 색의 스킬이 있다.
그것이 바로 지금!
데스 힐(Death Heal)이었다.
-어차피 모든 상처가 회복될 것일진대…….
케베눔은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날아드는 데스 힐의 구체를 심드렁한 표정으로 받았다.
그 순간, 헤이즈가 악에 받친 목소리로 외쳤다.
“폐하를 고통스럽게 한 악마! 여기서 네 목숨도 끝이야!”
지금까지 좀처럼 들어볼 수 없었던 헤이즈의 분노가 담겨 있는 외침이었다.
-크큭!
케베눔이 웃었다.
놈은 노림수를 모르는 걸까?
그런 것 같다.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지금까지 몸으로 줄곧 때워 왔으니까.
바로 그때.
-허?
케베눔이 몸에서 갑작스럽게 일어난 변화를 캐치했는지, 의아한 표정으로 내 얼굴을 응시했다.
정신 잃기, 2초 전.
내가 버틸 수 있는 한계 시점을 코앞에 두고, 케베눔의 악력이 눈에 띄게 약해졌다.
그리고.
퍼엉!
나를 지켜보던 케베눔의 얼굴이 터졌다. 아니, 그냥 케베눔 전체가 풍선처럼 터져 버렸다.
순식간에 42%의 대미지가 데스 힐로 인해 한 번에 들어가면서, 감당하지 못한 육신이 폭발을 일으켜 버린 것이다.
그것은 마치 살아 있는 거대한 고깃덩어리를 터뜨린 것과 같은 효과였다.
“…….”
사방으로 살점과 피가 대책 없이 튀었다. 피할 새도 없고, 그럴 공간조차 없는 폭발이었다.
“크윽! 윽!”
반사적으로 몸을 날리며, 동료들 앞에 자리를 잡은 내가 바로 바람의 장벽을 펼쳤다.
마력이 부족해 쓸 만한 두께로 펼쳐지진 않았지만, 아슬아슬하게 충격을 감당할 정도는 됐다.
케베눔이 죽었다.
방금 전까지 위풍당당하게 내 목을 움켜쥐고 있던 케베눔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남은 것은 그저 수백, 수천 개의 조각으로 분해되어 버린 케베눔의 살점이 전부였다.
데스 힐 버그.
녀석은 자신이 왜 죽었는지, 최후의 그 순간까지 예측하지 못했을 것이다.
데스 힐은 알았더라도, 대회복을 하는 내내 우리가 말없이 회복 누적을 기다리고 있었을 줄은 꿈에도 몰랐을 테니까.
샤아아아.
이어서 나를 포함한 동료들의 머리 위에 하얀 빛줄기가 내렸다.
동시에 저마다에게 특화된 맞춤형 아티팩트가 생성됐다.
마군의 피난처에서 가파지스를 잡았던 때처럼, 각자의 특성에 맞게 형성된 보상이었다.
‘전부 9성이야!’
심안으로 빠르게 헤이즈, 클로이, 미아, 레나에게 활성화된 보상을 스캔한 나는 쾌재를 불렀다.
9성급 아티팩트면, 그 위 단계로는 10성과 초월급밖에 없다.
희소성은 말할 것도 없고, 아티팩트의 최상위 생태계에 존재하는 귀중한 보상을 얻은 것이다.
순식간에 여기저기서 변화가 일어났다.
가장 먼저 눈에 띈 변화가 일어난 것은 헤이즈였다.
자신의 앞에 만들어진 아티팩트 반지가 자연스럽게 손가락에 끼워졌기 때문이다.
이는 귀속(歸屬)을 상징하는 것으로 아티팩트가 절대 남에게 양도될 수 없음을 알리는 의식이기도 했다.
“……폐하! 엄청난 변화가 일어났어요! 와, 이, 이게, 이럴 수가 있는 건가요?”
“어떤 변화야?”
“신성력의 근원을 상징하는 디바인 서클(Divine Circle)이 다섯 갈래로 늘어났어요!”
“디바인 파이브(Five)?”
“네……!”
“불과 2년 반 만에 디바인 파이브? 이 소식을 들으면 메디네가 눈물을 흘리겠군. 하하하!”
나는 진심을 담아 힘껏 웃음을 터뜨렸다.
내가 현생에서 눈을 뜨기 전까지만 해도 유칼레스 가문의 평범한 하녀에 불과했던 헤이즈.
하지만 지금은 사실상 메디네의 뒤를 이을 ‘포스트 치유사 네임드’라 해도 무방할 정도의 경지에 올랐다.
지금 헤이즈의 수준이라면, 메디네에게 그녀를 소개했을 때 깊은 관심을 가질 것이다.
자신의 뒤를 이을 치유사 후계자가 없다며, 늘 앓는 소리를 해 댔던 것이 의 메디네였으니까.
“정말…… 정말 믿기지 않아요!”
기분이 좋아진 헤이즈가 타넥스에 탄 채로, 시키지도 않은 입체 기동까지 해 가며 보스 방 전체를 훨훨 날았다.
녀석이 좋아하는 모습을 보니, 막판에 던졌던 내 승부수가 꽤 괜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다시 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믿는 구석이 있다고 한들, 정신을 잃는 경험이 결코 유쾌할 수는 없으니까.
정신을 잃었다가 눈을 떴더니 저승이라면……. 생각도 하기 싫다.
‘레나의 스탯과 특수 성향이 대폭 올랐어. 목걸이인가? 부족한 아티팩트 부위를 채웠군.’
‘미아도 종합 클래스로 따지면 이제 4클래스에는 확실히 자리를 잡았다. 바람 속성을 대폭 강화하는 팔찌를 얻었군.’
‘클로이는 분신술인가? 포르미도가 좋아하겠어. 클로이의 유일한 약점이 분신을 이용한 기만술을 쓸 수 없다는 점이었는데.’
헤이즈를 제외한 남은 3인의 변화도 눈부셨다.
크고 작은 위기를 넘기며, 여기까지 끌고 온 보람이 있었다.
나는 확신했다.
지금 이 자리에 미래의 소드 마스터와 치유사, 그리고 바람의 인도자와 네임드 어쌔신이 있는 것이라고.
오늘의 변화는 바로 그 미래를 향한 기폭제가 될 첫 걸음이었다.
“폐하! 폐하는 어떤 보상을 얻으신 거예요?”
그때, 헤이즈가 내 눈앞에서 둥둥 떠다니고 있는 검은색의 반지를 가리켰다.
‘케베눔 링(Kevenum Ring).’
얻고 싶었던 반지.
심연의 모든 것을 담고 있는 듯한 먹빛의 반지라서 더욱 인상적인 반지이기도 하다.
광택 없는 먹빛에 케베눔의 이름이 음각으로, 그것도 금빛으로 새겨져 있어 더 독특하기도 하고.
“이 반지가 내 것인 듯하군.”
나는 웃으며 반지를 바로 손에 끼웠다.
언뜻 보기에는 흑마법사가 즐겨 낄 법한 아티팩트로 보이지만, 낀다고 해서 부작용이 생기거나 정신이 나간다거나 하지는 않는다.
[케베눔 링] [분류 등급 : 10성] [옵션 1 : 마력 10,000 증가] [옵션 2 : 지혜 500 증가] [옵션 3 : 물방 200 증가] [옵션 4 : 마방 200 증가] [옵션 5 : 근력 100 증가] [옵션 6 : 체력 100 증가] [옵션 7 : 대회복 – 잃은 체력과 외상(外傷)을 전부 회복시킵니다. 본인 또는 타인에게 시전할 수 있습니다. 쿨타임 24시간] [옵션 8 : 천리안 – 아티팩트 1개의 위치를 즉시 확인할 수 있습니다. 단, 1회 사용 가능한 옵션입니다.] [옵션 9 : 광신적 추종 – 자신의 체력 99%를 소모해서, 반경 500m 내에 있는 모든 아군의 전투력을 1시간 동안 2배 향상시킵니다. 쿨타임 2일] [옵션 10 : 야행성 기질 – 일몰 이후, 일출 직전의 기간 동안에는 마력 회복이 3배 상승합니다.]‘드디어!’
10성 아티팩트를 처음 손에 넣는 순간이었다.
눈길을 즉시 잡아끄는 1번 옵션부터 시작해서, 어느 옵션 하나 버릴 것이 없었다.
대회복이 내상을 커버하지 못한다는 점은 아쉬웠지만, 그래도 활용 가치는 매우 높았다.
나뿐만 아니라, 타인에게도 쓸 수 있다는 점에서 더더욱.
천리안 역시 마찬가지다.
일회성 옵션이지만, 내가 정말 원하는 아티팩트가 있다면 위치를 파악할 수 있다는 것 아닌가?
갖고 싶은 아티팩트는 셀 수 없을 정도로 많다. 그중에 하나를 확실히 타깃팅 하게 해 줄 수 있으니 매우 유용하다.
광신적 추종은 헤이즈가 내 곁에 있다면, 활용 가치가 무한대로 상승하는 옵션이다.
체력 99%를 소모하는 기술이라 자체 시전은 위험 요소가 분명히 있기는 하다.
하지만 헤이즈가 옆에서 즉시 체력을 회복시켜 줄 수 있다면, 그야말로 공짜 특전이나 다름없는 셈.
야행성 기질도 밤, 새벽 전투가 언제든 벌어질 수 있는 전장의 상황을 생각하면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옵션이었다.
묵직하게 들어온 1만의 마력에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이런 아티팩트가 속 악역 네임드에게 가거나, 다른 주인에게 가지 않았다는 것이 천만다행으로 느껴졌다.
새삼 나 혼자만이 가지고 있는 지식이 감사하게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한데 바로 그때.
“응?”
케베눔이 앉아 있던 옥좌의 옆에 낡은 보물 상자 같은 게 놓여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보통 게임이나 소설, 영화 속에서 이런 보물 상자에는 예상치 못한 것들이 들어 있던데!
과연 무엇일까?
나는 한달음에 달려가 보물 상자를 열어 보았다.
그러자.
[그라시아의 안경] [그라시아의 목걸이] [그라시아의 허리띠]“나머지 3종이 여기에…….”
행방을 알 수 없었던 그라시아의 5종 세트 중 내가 획득한 2개를 제외한 나머지 녀석들이 사이좋게 여기에 모셔져 있었다.
그라시아 세트 5종을 내 손으로 모두 수집하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