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g Player RAW novel - Chapter 176
제 176화
61장. 공작의 흔적 – 2화
“네……?”
아키가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암흑 교단이라면 나뿐만이 아니라 내 동료 모두가 혐오한다. 예외가 없다.
특히 아키는 지금껏 수많은 거래를 하면서, 늘 거래 상대에 대한 꼼꼼한 조사를 해 왔다.
그래서 암흑 교단이나 마도국과의 연관점이 보이면, 절대 거래를 하지 않는 것을 철칙으로 삼았다.
그런데 본인의 몸에서 암흑 교단의 아티팩트가 나왔다고 하니, 당황하는 반응을 보이는 것도 이상하진 않았다.
“일단 정리는 다 하고 온 거지? 떠날 준비도 확실히 했고?”
“맞아요. 그래서 폐하를 뵙기 위해 최대한 빨리 온 거예요. 그런데 이 아티팩트가 암흑 교단의 아티팩트일 줄은……. 죄송합니다!”
아키가 황망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다.
나는 손을 뻗어 괜찮다는 제스처를 취한 뒤, 침묵의 팔찌를 끼워 보았다.
“음.”
그 순간, 제법 강렬한 두통이 느껴졌다. 정신 금제를 목표로 하는 아티팩트라는 얘기다.
일전에 클루제가 프탈린에게 줬던 적광 목걸이와 흡사한 원리.
[침묵의 팔찌] [분류 등급 : 3성] [옵션 1 : 착용자의 부정적인 감정에 반응하여, 단계적으로 정신을 잠식시킵니다.] [옵션 2 : 드러나지 않게 천천히, 아티팩트의 원주인에 대한 호감과 신뢰도가 증가합니다.] [옵션 3 : 완전 잠식이 끝나면, 원주인의 명령을 충실히 수행하는 꼭두각시가 됩니다. 하지만 본인은 전혀 인지하지 못합니다.]‘이 XX들…….’
절로 이가 갈렸다.
불행 중 다행인지 아키는 이 팔찌를 착용하고도 별 탈이 없었던 것 같았다.
아마도 최근 하는 일마다 잘 풀리고 했던 덕분에 ‘부정적’인 감정이 쌓일 여지가 적어서인 듯했다.
이런 아티팩트가 무서운 것은 본인이 자각을 하지 못하는 사이에 서서히 잠식된다는 점이다.
만약 잠식이 완전히 끝났더라면, 지금쯤 아키는 상단의 모든 정보를 가지고 잠적했거나 원주인에게 끌려갔을 것이다.
“폐하, 정말 죄송합니다! 제가 부주의했던 탓에 씻을 수 없는 대죄를 짓고 말았어요!”
“자책하지 마. 잘잘못을 가리려고 꺼낸 얘기가 아니다. 아키, 일단 이 팔찌는 내가 갖고 있을게.”
“네, 알겠어요.”
“앉아 봐. 기억이 조금이라도 사라지기 전에 이 아티팩트의 주인에 대해서 이야기해야 한다.”
아키가 적당히 옆에 보이는 바위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나는 팔찌를 다시 어루만지며, 분노를 곱씹었다.
이것은 우연이 아닌 완벽한 설계였다. 나를 직접 노릴 수 없는 암흑 교단의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내 주변인을 건드린 것이다.
나를 건드리는 것도 참을 수 없지만, 내 곁의 사람들을 건드리는 것은 더더욱 참을 수 없다.
이것만큼은 현실과 타협할 생각이 없었다. 이유를 막론하고, 이러한 비겁한 공작을 벌인 자들은 반드시 잡아 ‘죽일’ 생각이었다.
아키에게 물었다.
“누가 줬지?”
“최근에 부쩍 거래량이 늘어난 상단이 있어요. 칼라카스 꽃잎 포션뿐만 아니라, 저희 상단의 상품이라면 이유 불문하고 매입하는 큰손이 있었어요.”
“그러니까 제법 관계가 깊어진 상단의 상단주다, 이 말이군.”
“네, 맞아요. ‘린’이라는 이름을 가진 상단주예요. 린 메시나. 렌투스 제국에 거점을 두고 활동하고 있는 상인이에요. 여성이죠.”
“린……. 이름이 생소한데.”
“제게 말하기로는 이 일에 뛰어든 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고 했어요. 다만 자본이 탄탄해서, 자리를 빨리 잡은 것 같더라고요.”
“그 린이라는 상단주가 네게 이유 없이 이 팔찌를 준 거야?”
“네. 마침 여행을 다녀오면서 산 팔찌라고 했어요. 자기도 착용하고 있고, 제게 신뢰의 증표로 하나 건네고 싶다고 했거든요.”
“같은 팔찌를 착용했다……. 그녀가 원주인이라는 얘기군.”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확실하게 노린 것이다.
팔찌의 힘으로 아키를 잠식시킨 뒤, 원주인으로서 아키를 조종하려 했던 것이 틀림없었다.
“착용해도 달리 변화가 느껴지지 않아서, 정말 평범한 기념품 정도라고 생각했어요. 아티팩트라고는 꿈에도 생각 못 한 거죠.”
“아키, 그녀의 소재를 혹시 알고 있나?”
“네. 한 번 상단 건물에 방문했던 적도 있으니까요.”
“위치를 알려 줘. 목적지로 가는 길에 있으면, 중간에 들르도록 하자.”
“위치는…….”
아키가 기억을 되짚으며, 빠르게 장소를 알려 주었다.
모이즐을 만나러 가기 위해서는 렌투스 제국을 지나가야 하는데, 마침 이동하는 경로 중간에 있었다.
“올라, 아키를……. 아, 박살 나서 없군.”
무의식중에 아키에게 타넥스를 착용시키려 했다. 하지만 이내 아공간의 허전함을 느끼고는 고개를 저었다.
대균열에서 복귀하자마자 사비오에게 통신석을 이용해서 신형 제작을 의뢰해 뒀으니, 이제 막 제작에 들어갔을 것이다.
당분간은 아쉽지만, 초월체 없는 맨몸으로 때워야 한다.
“폐하, 제가 큰 실수를 한 건가요? 너무 죄송하고 면목이 없어 도무지 고개를 들 수가 없어요.”
항상 기운 넘치던 아키가 좀처럼 보이지 않는 시무룩한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내가 너무 강한 어조로 말했나 싶기도 했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나만큼이나 내 동료들을 건드리려고 하는 자들은 누구라도 용서할 수 없으니까.
하물며 아키가 ‘당할 뻔’했다.
이를 두고 사람 좋은 웃음을 실실 흘리면서, 유쾌하게 넘길 마음은 내게 추호도 없었다.
“아키, 앞으로는 설령 나를 만난다고 해도, 항상 의심하고 확인하는 습관을 들이도록 해. 너는 이제 공인(公人)이야. 결코 경계를 늦춰서는 안 돼. 모두가 네게 선의만 갖고 접근하지는 않아.”
“네, 폐하. 명심하겠습니다.”
“이번이 마지막이 아닐 거다. 앞으로도 나만큼이나 너를 노리는 손길도 많아질 거야.”
“반드시 조심하겠어요.”
“좀 더 보안을 강화할 방법은 내가 강구할 테니까 그때까지는 스스로 조심하도록 해. 알겠지?”
“네, 정말 죄송해요.”
“가자. 암흑 교단 소속인 것을 숨기고, 네게 마수를 뻗치려 했던 놈들이 누군지 확인해야겠다.”
바로 텔레포트를 사용할 준비를 마쳤다.
일분일초도 늦고 싶지 않았다.
놈들의 음흉한 계략을 알아챈 이상, 즉시 정체를 확인해 보고 싶었다.
* * *
“…….”
약간의 시간이 걸려 도착한 그들의 거점은 조용했다.
건물 자체는 매우 컸다.
5층 건물인 데다가 건물의 너비도 100m 정도로 꽤 넓었다.
다만 보통 24시간 불이 꺼지지 않는 것이 일반적인 상단의 건물과 다르게, 여기는 어두웠다.
‘아무도 없군.’
전생에 봤던 광경을 보는 듯했다. 주말이 되어, 모두 퇴근하고 없는 어두운 빌딩의 모습 말이다.
“뭔가 이상해요, 폐하.”
“내 생각도 그래. 건물 자체는 맞게 찾아온 듯하다.”
정면에 보이는 팻말에는 상단의 고유 문양과 함께 ‘린(Lyn)’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번지수를 잘못 찾은 건 아닌데, 분위기는 굉장히 이상했다.
“잠깐, 물러서라.”
바로 그때.
나는 직감적으로 떠오른 불쾌한 예감에 아키를 물러나게 했다.
나 역시도 걸음을 멈췄다.
그러고는 신성력 일부를 끄집어내어, 주변으로 조심스럽게 흘려 보았다.
“…….”
신성력의 흐름이 심상치 않았다.
보통은 공기 중에 연기가 흩어지며 사라지듯이 자연스럽게 비산하며 사라져야 했다.
하지만 낮게 가라앉은 신성력의 기운은 특수한 문양을 그리며, 어딘가에 엉겨 붙고 있었다.
‘마기 감지?’
이유는 하나밖에 없었다.
극상성의 힘으로 존재하는 마기에 이끌려서, 특유의 감지 반응을 보이는 것이다.
마력-마기의 관계와 달리, 신성력-마기는 마치 자석의 양극처럼 서로를 끌어들이는 성질이 강했다.
이윽고 신성력의 분포도가 확실해지자, 참고 있던 욕설이 입에서 터져 나왔다.
“이 XX들…….”
대형 마법진이었다.
이 건물은 아주 거대한 대형 마법진의 중심에 자리하고 있는 이른바 코어(Core) 건물이었다.
무슨 말인가 하면, 언제든 원하면 마법진을 발동시킬 수 있는 기폭제라는 뜻이다.
나는 아키와 함께 플라이 마법으로 하늘 높이 날아올랐다.
그리고 밑을 내려다보자.
내 눈에 백색의 반짝임으로 보이는 신성력이 예상대로 거대 마법진을 그리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 정도면 교단에서 세 손가락 안에 드는 자의 소행이다. 아그라트처럼 얼굴만 내세운 자가 아니라, 정말 암흑 교단의 모든 것을 깨우친 자의 소행이야.’
순간 등골을 타고 소름이 쫙 끼치는 것을 느꼈다.
에서 암흑 교단은 이런 식으로 초대형 마법진을 함정으로 자주 써먹었다.
유인할 상대 혹은 세력을 초대형 마법진의 중심점까지 유인한 뒤, 한 번에 발동시켜 모두 죽여 버렸던 것이다.
초대형 마법진은 가까이서 보면 의미 없는 한두 가닥의 선처럼 보이기에 마법진에 대한 이해도가 부족하면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다.
‘주술과 흑마법을 교묘하게 섞은 마법진이다. 이 정도면 암흑 교단의 교주나 부교주, 혹은 간부급의 소행이 확실해. 카코 교단은 여기에서 너무 거리가 멀고, 움브라 교단일 가능성이 크겠군.’
생각이 빠르게 정리됐다.
일단 나는 아키와 함께 텔레포트를 이용해 현장을 이탈했다.
어차피 적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애초에 이 정도 마법진을 만들어 낼 실력이면, 내가 등장하자마자 모습을 숨겼을 것이다.
알람 마법진 구축 정도는 식은 죽 먹기일 테니까.
“아키.”
“네, 폐하.”
“이번 일을 마무리 짓는 대로 반드시 네게 마기에 반응하는 아티팩트를 만들어 줄게. 이놈들, 보통내기가 아닌 듯하다.”
“후우…….”
무겁고 진지해진 내 말에 아키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숙였다.
잔뜩 긴장이 되는 모양이었다.
최우선 추진 과제가 생겼다.
나를 포함한 내 주변의 모든 동료와 신하들에게 마기에 반응하는 ‘감지 아티팩트’를 만들어 주는 것.
이를 위해서는 내가 가진 미세 세공 기술도 필요하고, 모이즐의 실력도 필요하다.
아울러 순도 높은 타타르 마정석과 아낌없이 사용할 수 있는 예산은 필수였다.
“아키, 엘라와 협의해서 아그레시오 기사단의 최정예 기사들을 붙여 주마. 앞으로는 그들과 함께 움직여라. 알겠지?”
“폐하께 근심거리가 되지 않도록 반드시 그렇게 하겠어요. 감사합니다.”
“그래.”
다시 아키와 함께 남쪽으로 방향을 잡고 이동하기 시작했다.
이동하는 내내, 기억 속에서 단서를 찾아보려 했지만 떠오르는 것이 없었다.
움브라 교단은 확실해 보이는데, 누구인지 짐작 가는 인물이 없었다.
에서는 클루제가 네임드였고, 나머지는 베일에 가려져 있었기 때문이다.
워낙에 의 스토리가 방대하다 보니, 개발진이 나머지 인물에 대한 떡밥을 차근차근 풀어내기 전에…….
‘내가 과로사해 버렸지.’
그런 비극이 생겼던 것이다.
누굴까?
누가 대범하게 내 목젖을 노리는 것이나 다름없는 짓을 벌인 걸까?
궁금하다. 미치도록 찾고 싶다!
내 앞길을 막아서려는 놈들.
그게 누구이건 간에, 절대로 용납하고 싶지 않다.
“열 받네.”
좀처럼 강한 분노를 표출한 적이 없었던 내 양미간에 주름이 깊게 잡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