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g Player RAW novel - Chapter 178
제 178화
62장. 모이즐 – 2화
“모이즐 님을 꼭 데려가고 싶어서 왔습니다.”
“나를 데려간다? 내가 스카우트니 뭐니 하는 입에 발린 말로 날 모시겠다고 하는 사람들에게 공통으로 하는 말이 있소. 아시오?”
“말씀해 보시지요.”
잊으려야 잊을 수 없는 모이즐의 ‘전용 거절 멘트’가 나오기를 기다리는 중이다.
기분이 좋았다.
생각보다 오랜 시간을 기다리긴 했지만, 어쨌든 그에게 마음이 확실히 닿은 것 같아서다.
지금까지 신하들을 얻는 과정에서 진심이 통하지 않았던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역설적으로 이 세계에서는 진심으로 인재를 갈구하는 지도자가 별로 없다는 뜻도 됐다.
주변의 몇몇 국가들을 생각하면……. 말해 봤자 입만 아프다.
“날 데려가고 싶으면, 100만 골드를 들여서 만든 초대형 공방이 필요할 거요. 그 정도면 내가 따라가 드리도록 하지. 끌끌끌.”
모이즐이 웃었다.
나 역시 함께 웃었다.
예상대로 차근차근 스텝을 밟을 수 있도록 알아서(?) 도와주는 모이즐이 고마워서.
“있다면 어떻게 할 겁니까?”
“어떻게 하기는? 따라간다고 했잖소? 평생을 뼈 빠지게 일해도 벌지 못할 돈인데, 그 정도면 당연히 혹하지!”
말이 끝나자마자, 나는 아공간의 문을 열었다.
그 뒤, 내부를 훤히 들여다볼 수 있도록 확대 마법을 걸어 주었다.
다음 순간.
“헐…….”
모이즐이 탄성을 터뜨렸다.
“이제 얘기를 할 마음이 드십니까?”
“뭐지? 마법으로 장난을 친 것 같지는 않은데……. 그랬으면 내게 마나가 감지됐을 것이고.”
‘오호?’
새로운 정보를 얻었다.
전생에서는 그저 모이즐이 대장장이 네임드라고 생각해서, 굳이 다른 부분을 알아보려 하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 얘기를 들어 보니, 마나에 대한 조예가 어느 정도 있는 모양이었다.
그 말인즉슨, 마나를 다룰 능력도 있다는 것을 뜻했다. 그래야 마나를 ‘감지’할 수 있을 테니까.
“이 돈, 모이즐 님과 함께 꿈을 펼치기 위해서 제가 모아 온 돈입니다. 진심입니다. 모이즐, 당신의 힘이 정말 절실하게 필요합니다.”
“꿈을 펼친다? 도대체 누구길래 내게 그런 이야기를 하는 거요? 보통 마법사는 아닌 듯한데, 대장장이가 왜 필요한 건지?”
모이즐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는 내가 돈을 제법 가지고 있는 마법사로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이야기를 질질 끌 필요는 없다.
내 마음도, 목표도, 준비 상황도 모두 보여 주었으니 이제 내가 누군지를 알릴 때다.
나는 품에서 꺼낸 우리 크리비아 왕국의 황금 깃발과 국새(國璽)를 보였다.
국왕인 내게만 각인이 된 물건으로, 내 곁에 있을 때만 금빛 색깔을 뿜어내는 성물이었다.
신성 국가의 왕이나 황제라면, 교황 아르모니아 17세가 직접 제작해서 선물하는 것이기도 했다.
“……크리비아 왕국의 국왕?”
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왕이랍시고 자랑할 생각은 없으나, 그가 어디로 가게 될지 목적지는 확실히 알려 주고 싶었다.
“이거……. 일이 좀 커지는군.”
모이즐이 뒷머리를 긁적였다.
자기가 생각한 것보다 스케일이 커져도 한참은 커졌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나도 마찬가지다.
그를 영입하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헤이즈와 함께 대균열에 다녀왔으니 말이다.
“속 깊은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어떤 이야기든 좋으니 허심탄회하게 말씀하시고 질문하시지요.”
내가 먼저 판을 깔았고.
“도대체 보잘것없는 이 못난 대장장이에게 왜 관심을 가지시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좋습니다. 이야기해 봅시다.”
모이즐이 받았다.
그리고 얼마 후.
터억!
그는 지금 이 시간부로 어떤 손님도, 의뢰도 받지 않겠다는 영업 중단의 팻말을 걸었다.
나와 모이즐의 마라톤 대화가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 * *
그로부터 12시간 후.
“아이고, 이놈의 코피……. 잠을 너무 아껴서 잤나?”
아르케네스는 모이즐의 공방 앞에서 자레드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는 쉴 새 없이 흐르는 코피 때문에 손수건을 바꿔 가며 계속 코를 틀어막는 중이었다.
그날, 꾸벅꾸벅 졸다가 숙소로 돌아가 잠을 청한 뒤.
이후에 자레드가 모이즐과의 대화를 기다리는 동안, 아르케네스는 계속 상단의 장부를 정리했다.
올해 들어서 하루에 3시간 이상 자 본 기억이 손에 꼽을 정도로 아르케네스는 연일 강행군이었다.
하지만 잠을 자는 것만으로도 많은 것을 손해 보는 것 같아, 그녀는 잠을 늘릴 수가 없었다.
어떻게든 잠들지 않기 위해 각성제를 탄 물을 즐겨 마셨다.
덕분에 잠을 버리고 시간을 얻기는 했으나, 당연히 몸에는 피로감이 꾸준히 쌓이는 중이었다.
주변 사람들 모두가 하나같이 입을 모아 그녀에게 쉬라고 권유했지만, 한사코 거절했다.
‘폐하를 위해서는 내가 더 노력해야 해. 이제 막 상단이 본궤도에 올랐는데, 여기서 조금이라도 속도를 늦추면 뒤처지고 말아!’
오히려 채찍질을 해 왔다.
아르케네스에게 자레드는 생명의 은인인 동시에 자신의 꿈을 펼칠 수 있게 도와준 둘도 없는 후원자였다.
그때, 토그의 산채에서 자레드에게 구출되지 않았더라면 지금과 같은 성공은 없었을 것이다.
빈털터리가 된 자신은 고향으로 돌아가, 작은 상단에 들어가 말단 보직이나 받았을 터였다.
하지만 지금은 어떤가?
나스 대륙에서 열 손가락 안에 드는 대상단으로 성장하여, 그 위세를 마음껏 뽐내고 있었다.
‘내 목숨은 폐하 거야. 내 것이 아니야.’
이것이 아르케네스의 오래된 생각이었다.
내 목숨을 자레드를 위해!
우스갯소리가 아니라 진심으로 가슴 깊숙한 곳에 심은 결의였다.
‘힘 좀 내라, 이 약해 빠진 몸뚱이 녀석아…….’
아르케네스가 때때로 아찔해지는 정신을 붙잡으며, 품에서 꺼낸 알약 몇 개를 입에 털어 넣었다.
종합 각성제.
대륙 남부에서 구한 것으로 몸에 용하게 잘 듣는 약이었다.
이것만 먹어도 하루 정도는 잠을 자지 않아도 거뜬했다. 피곤하지도 않았고.
“부디, 제발 모이즐 님…….”
아르케네스가 두 손을 모아, 자레드와 모이즐의 대화에 진전이 있기를 빌었다.
자레드의 성공이 곧 그녀의 기쁨이라고 생각했기에! 감정이 이입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 * *
“부지에 공방 구성에 재료 조달까지……. 정말 믿기지 않는군요. 타타르 마정석은 많은 대장장이가 탐내지만, 목숨을 걸고 훔쳐 오지 않는 이상 얻지 못하는 물건인데.”
“모든 준비는 다 끝났습니다. 딱 하나만이 없을 뿐이죠. 사람. 바로 모이즐 님입니다.”
“시종일관 제게 존대를 해 주시고, 게다가 저를 위한 이 모든 공간을 마련했다고 하시니 정말 얼떨떨하다 못해 꿈만 같군요.”
모이즐은 자레드가 펼친 초대형 공방의 부지와 설계도를 보며, 연신 감탄을 금치 못하고 있었다.
한 나라의 국왕이 이렇게 몰래 자신을 찾아온 것도 놀라웠지만, 더 놀라운 것은 그의 준비였다.
오로지 자신!
모이즐과 함께할 그림을 그리며, 이런 엄청난 준비를 해 왔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자레드는 자신에게 모든 전권을 위임하겠다고 했다.
대신 딱 한 가지 조건만을 걸었다.
모이즐의 능력을 오로지 크리비아 왕국을 위해서만 써 달라고. 그것이 전부였다.
연구가 필요하면 연구를 지원하고, 희귀한 재료가 필요하면 자신이 직접 구해 올 것이며, 구성이 궁금한 아티팩트가 있으면 어떻게든 구해 보겠다고도 했다.
아울러 자레드 자신이 현재 착용하고 있는 아티팩트와 아공간에 있는 아티팩트도 보여 줬다.
보물 창고를 보는 느낌이랄까.
모든 것이 신기했다.
모이즐은 순식간에 자레드에게 마음을 빼앗겼다.
그렇지 않고서는 못 배길 정도로 자레드는 자신을 위해 너무 많은 것을 준비해 뒀기 때문이다.
“좋습니다. 떠나지요. 울롱 왕국에 저 하나 없다고 해서 무슨 일이 생기겠습니까? 막툼과 카스카가 어련히 알아서 잘해 먹을 테니 걱정은 없습니다.”
모이즐이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공방에 투자한 것이라고는 기초 비용밖에 없어서 달리 미련이 남지도 않았다.
게다가 지금의 공방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대규모 공방이 첫 삽을 푸기를 기다리고 있지 않은가?
한시라도 빨리 가 보고 싶었다.
새로운 꿈을 펼치고 싶었다!
하지만 딱 한 가지.
떠나기 전에 반드시 해야 할 일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모이즐에게 대장장이 지식을 전수하고, 밑바닥부터 수련하여 올라오게 도와준 스승에게 작별 인사를 올리는 일이었다.
자레드도 흔쾌히 동의했다.
먼 곳으로 떠나기에 앞서, 인연을 정리하는 것은 누구나 당연한 일이었기에.
그런데……. 모이즐이 만나야 된다고 자신에게 말하는 스승의 이름과 정체가 심상치 않았다.
“카스트로라고 하셨습니까?”
이름을 들은 자레드는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카스트로.
그것은 모이즐에게서는 절대 들을 리가 없다고 생각했던 블랙 드래곤의 이름이었다.
* * *
처음에는 크게 놀랐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차라리 잘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전에 헤이즈와 함께 대균열에서 얻어 온 소트라스의 서적.
그것에 적힌 마계어 해석을 부탁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계산에서였다.
에서 왜 모이즐이 남들과는 다른 대장장이로서 무한에 가까운 잠재력을 보유했나 싶었는데!
스승으로 드래곤을 두고 있었다고 하니, 충분히 이해가 갔다.
인간과 친밀한 드래곤은 좀처럼 찾기 어려운데, 아마도 모이즐의 순수한 열정이 카스트로에게 어떤 감동을 준 것은 아닌가 싶었다.
나는 밖에서 졸고 있지는 않았으나, 안색이 좋지 않아 보이는 아키를 다시 숙소로 돌려보낸 후.
모이즐과 함께 카스트로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블랙 드래곤의 레어로 가야 하는 것이 아닐까 싶었는데, 예상과 달리 그는 평범한 민가에 있었다.
물론 인간의 모습으로 폴리모프 한 상태로 말이다.
‘이거 생각지도 않게 칭호 몇 개가 열리겠는데?’
나는 기대에 찬 눈빛으로 칭호창의 목록을 꼼꼼하게 훑고 있었다.
[드래곤의 숨결을 느낀 자] [드래곤과의 진실 된 대화] [드래곤의 두 얼굴] [인연의 시작]이렇게 네 가지가 카스트로를 만남으로써 내가 즉시 얻을 수 있는 칭호였다.
[드래곤 슬레이어]이건…… 나중 얘기고.
지금 시도했다가는 저승으로 가기 딱 좋을 테니까.
어쨌든 플레이어가 인외(人外)의 존재를 만나는 것은 특별한 경우이기에 의 칭호 시스템에 포함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카스트로를 만나면 네 개의 칭호는 즉시 얻을 수 있을 것이고.
더 나아가서 어쩌면 카스트로에 관심을 두고 있는 신이 내게도 관심을 갖거나, 주시하게 될지도 모른다.
‘모이즐이 복덩이네, 복덩이야.’
여러 가지로 일이 잘 풀리는 듯했다.
물론 카스트로가 마계어를 번역해 준다고 약속한 적은 없다.
다만 드래곤은 기본적으로 호기심이 강한 종족이기에 내가 요청하면 십중팔구 들어줄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다.
“폐하, 괜찮으시면 저 혼자 다녀와도 됩니다. 스승님이 꽤 변덕스러우신 분이라…….”
모이즐의 표정이 썩 좋지는 않았다. 스승임에도 불구하고 긴장하고 있는 것을 보면, 꽤 엄하게 그를 가르쳐 왔던 걸까?
바로 그때.
펄럭! 펄럭! 펄럭!
옷과 머리카락을 사방으로 정신없이 흩날리게 하는 바람이 불어닥쳤다.
동시에 육중한 무언가가 위에서 낙하하는 것을 느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고요했던 밤하늘에 일대 격변이 일어난 것이다.
그리고.
“인간으로서 함부로 묻혀서는 안 될 마족의 피 냄새가 짙은 놈이 있구나. 멈춰라! 네놈은 누구냐?”
귓가에 쩌렁쩌렁하게 울려 퍼지는 블랙 드래곤 카스트로의 목소리가 들렸다.
현생에서 눈을 뜬 이후.
이 세계 최상위 포식자라고 불리는 드래곤과 처음으로 대면하게 되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