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g Player RAW novel - Chapter 185
제 185화
64장. 나스 대미궁 – 3화
‘재밌어. 항상 평범하지 않고, 새롭고, 짜릿하고, 즐거워.’
자레드와 함께 달리는 내내 클로이는 생각했다.
어디로 향하고 있으며, 왜 달리고 있는지는 알았다.
두 사람의 목적지는 바로 나스 대미궁의 중앙부에 위치한 ‘소멸의 입’이었다.
이름이 보란 듯이 알려 주듯이 이곳은 들어가면 모든 것이 소멸하는 곳이었다.
평범한 자연의 모습을 하고 있는 미궁의 다른 곳과 달리, 이곳은 깊이를 알 수 없는 거대한 구멍이었기 때문이다.
소멸의 입 근처만 해도 꽃이 피고, 나비가 날아다니는 온화한 자연의 모습이지만.
이질적이다 못해 공포심이 들 정도로, 소멸의 입은 입구부터 시작해서 내부가 전부 검었다.
모든 빛을 빨아들여, 그 무엇도 나올 수 없다는 불가사의한 천체(天體) – 블랙홀 – 를 닮은 듯했다.
클로이는 자레드를 믿었기에 일말의 의심도, 걱정도 하지 않았다.
“어어? 저기 저 사람들, 뭐 하는 거지?”
“어이! 거긴 소멸의 입이라고! 거기로 들어가면 죽어!”
“동반 자살이라도 하려는 건가?”
걱정하는 헌터들의 말이 들렸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그들은 모를 것이다.
자레드와 함께 있으면 얼마나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던전을 공략하게 되는지 말이다.
클로이가 늘 자레드에게 호기심을 갖고, 한편으로는 매력을 느꼈던 것도 이 때문이었다.
그는 정말 많은 것을 알고 있었다. 때때로 지식의 깊이가 무서울 정도로 말이다.
이번에도 마찬가지.
클로이의 상식 속에서 나스 대미궁은 한 층, 한 층을 차례차례 공략하면서 내려가야 하는 던전이었다.
무려 마지막 층계가 지하 100층으로 알려진 거대한 지하 던전이기도 했다.
그래서 자레드가 처음에 지하 25층까지 공략을 간다고 했을 때.
클로이는 몇 개월 정도의 준비가 필요하냐고 물었었다.
대다수의 헌터가 그 정도의 공략 기간을 예상하고 나스 대미궁에 들어오기 때문이다.
‘일주일. 그것보다 짧을지도.’
하지만 자레드는 전혀 의외의 답을 내놓았다.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그것이 클로이의 호기심을 더 불러일으켰고, 그래서 냉큼 따라온 것이다.
도대체 이번에는 어떤 신기한 방법으로 새로운 길을 인도해 줄까 싶어서!
아니나 다를까, 시작부터 클로이는 자레드와 함께 스펙타클한 경험을 하고 있었다.
“클로이, 준비됐지?”
“네.”
“꽉 잡아. 내려간다. 내 손만 놓지 않으면 돼! 나머지는 전부 내게 맡기고.”
“네.”
클로이가 고개를 끄덕이며, 자레드의 손을 힘껏 잡았다.
그리고.
파아아앗!
아름다운 도약과 함께 두 남녀의 몸이 한데 뒤섞여, 소멸의 입 안으로 떨어졌다.
“아아!”
“죽으려면 다른 데서 죽지, 보는 사람 착잡하게 왜 여기 와서 이렇게 헛되게 목숨을 버리는지, 원.”
이미 두 사람의 죽음을 확신한 듯한 헌터들은 혀를 끌끌 차며, 다른 곳으로 향했다.
괜히 소멸의 입에 가까이 다가갔다가, 애먼 폭풍에 휘말려 죽는 일을 막기 위해서였다.
그랬다.
나스 대미궁을 찾아오는 모든 헌터들에게 소멸의 입은 이름 그대로 ‘소멸’이었다.
예외는 없었다.
하지만 단 한 사람.
자레드만이 다른 가능성을 보고 있었다.
* * *
‘역시. 의 지식은 거짓말을 하지 않아. 대미궁의 숨결 버프는 유효해.’
파르륵! 파륵!
나는 연신 귓가를 스치며 지나가는 소멸의 입 내부의 거친 바람을 느끼며 미소를 지었다.
‘대미궁의 숨결’이 없으면 이 바람은 바로 죽음의 바람이 된다.
만약 버프가 없었다면, 지금쯤 나와 클로이는 수백 개의 살점이 되어 흩어지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대미궁의 숨결 버프가 우리를 보호해 주고 있는 덕분에 털끝 하나 상하지 않고 안전했다.
물론 만사형통은 아니다.
버프가 있다고 해도, 지하 10층을 지나친 시점부터는 바람의 영향력이 커져 버틸 수 없었다.
그래서 정확히 10층에서 멈출 필요가 있었다.
‘보인다.’
어둠의 벽으로 가득했던 소멸의 입에서 한 줄기 빛이 보였다.
10층을 알리는 빛이다.
소멸의 입은 지하 10층 구간을 지날 때마다 약간의 틈이 존재하는데, 이곳이 바로 그곳이었다.
터업!
나는 손을 힘껏 뻗어서는 재빨리 그 틈을 잡았다.
틈 자체는 흙으로 쌓아 올린 담벼락처럼 약해서, 틈을 크게 만들기에는 문제가 없었다.
“클로이, 틈을 벌려 줘.”
“네.”
가벼운 클로이부터 팔의 반동을 이용해 위로 올리자, 그녀가 가볍게 틈에 두 다리를 안착시켰다.
그리고 스텔라드 단검으로 틈 주변을 쑤시기 시작하자, 이내 큼지막한 균열이 차례로 생겨났다.
[대미궁의 숨결] [남은 시간 15초]그새, 시간이 흘렀다.
이 숨결 버프가 사라지는 순간, 정말 한 치의 남김도 없이 바람에 닿은 모든 것이 사라진다.
아직 여유는 있지만, 방심해서는 안 된다. 확실하게 소멸의 입을 빠져나와야 안전하니까.
푹푹! 푹! 푹!
“됐어요!”
“먼저 들어가! 나는 플라이 마법으로 도약하면 되니까!”
내게 손을 뻗어 당기려는 클로이의 손짓을 만류하고, 그녀를 먼저 들여보냈다.
클로이가 외견상 차가워 보이기는 하지만, 사실 마음 씀씀이는 매우 이타적이다.
헤이즈나 이자벨이 그녀와 함께 던전 공략을 다녀와서 내게 해 줬던 말이기도 했다.
위험은 자신이 모두 감수하려고 하고, 팀원들의 안전을 책임지려 했다는 것이다.
심지어 특수 성향 ‘헌신 SS’를 가지고 있는 헤이즈도 혀를 내둘렀다고 했으니, 말 다했지.
이윽고 나도 플라이 마법으로 안정적으로 안착에 성공했다.
틈을 완벽하게 빠져나와, 나스 대미궁 지하 10층의 지면에 발을 내디뎠다.
그다음, 클로이와 함께 헤이스트로 충분한 거리를 벌리며 빠져나왔다.
쿠구구구구!
소멸의 입이 내부의 변화를 감지했는지, 순간적으로 거센 상승 기류를 힘껏 토해 냈다. 동시에 대미궁의 숨결 버프도 끝났다.
아마 지금 이 순간에 저기에 발끝이라도 건드리고 있었으면, 기류에 휘말려 들어가 바로 황천길로 직행했을 것이다.
“여기가 10층…… 인가요?”
“맞아. 나스 대미궁 지하 10층이지. 봐 봐, 정면에 보란 듯이 숫자가 적힌 비석이 박혀 있잖아?”
정면을 가리켰다.
미궁 곳곳에는 방문자로 하여금 몇 층인지 까먹지 않도록, 안내 비석이 여러 개 박혀 있다.
일부는 모험을 왔던 헌터들이 박은 것이고, 일부는 개발진의 구조물이다.
물론 이를 알 리 없는 현생의 사람들은 ‘창조신의 이정표’라는 말을 종종 쓰곤 한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내막을 아는 내게는 실소를 자아내게 하는 이야기다.
바로 그때.
시간차를 두고 공략 성과가 반영됐는지, 상태창에 메시지가 연속으로 출력되기 시작했다.
[‘나스 대미궁 1층 공략자’의 칭호를 얻었습니다!] [……(생략)] [‘나스 대미궁 9층 공략자’의 칭호를 얻었습니다!] [레벨이 9 올랐습니다!]‘좋아!’
기분 좋은 성장을 알리는 메시지의 향연이 이어졌다.
각 층을 공략할 때마다, 공략자의 칭호를 획득하게 된다.
특전은 근력, 지혜, 물방, 마방 수치가 10씩 상승하는 것이다.
방금 전의 꼼수 – 혹은 버그 – 덕분에 나와 클로이는 가장 올리기 힘든 네 가지 스탯을 손쉽게 90씩 올린 것이다.
클로이의 상태를 심안으로 스캔해 보니, 나와 동일하게 레벨도 9가 올랐다. 스탯도 마찬가지.
아마 클로이 본인은 나처럼 숫자로 볼 수는 없었겠지만, 몸으로 묘한 변화를 느꼈을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내게 하고 싶은 말이 떠올랐는지 클로이가 먼저 운을 뗐다.
“뭔가…….”
“달라졌지?”
“네.”
“미궁의 가호가 네게 내린 거야. 매 층을 넘어갈 때마다 이런 변화가 생길 거다.”
“정말 신기해요.”
“아직 놀라기는 일러. 이제부터 시작이거든.”
나는 신기한 표정으로 나스 대미궁 지하 10층의 모습을 살피는 클로이의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
쿠구구. 쿠구. 쿠르르릉.
화창한 봄날 같았던 지하 1층의 날씨와 달리, 지하 10층의 날씨는 굵은 장대비가 내리기 직전의 날씨였다.
주변을 둘러보니, 제법 많은 백골이 보였다.
미궁의 넘버링이 한 자릿수에서 두 자릿수로 넘어가는 시점에서부터 난이도가 크게 높아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많은 헌터들이 9층까지 공략한 자신의 실력을 믿고 10층에 도전했다가 목숨을 잃는다.
여기가 딱 그런 구간이었다. 나는 바로 지도를 펼치며 말했다.
“클로이, 잠시 대기해. 우리는 층계의 보스 몬스터가 아니라 키 몬스터(Key Monster)만 잡는다.”
보스 몬스터가 층계를 대표하는 존재로서 다음 층계로 가는 ‘정식 입구’를 여는 존재라면.
키 몬스터는 ‘변칙 입구’를 여는 존재다.
무슨 말인가 하면 다양한 입구를 연다는 뜻이다.
예를 들어 10층의 보스 몬스터를 잡으면, 무조건 11층으로 향하는 문이 열린다.
하지만 10층의 키 몬스터를 잡으면 여러 형태의 문이 열린다.
보스 몬스터 앞으로 향하는 문, 미궁의 정반대 지점으로 가는 문, 다음 층으로 갈 수도 있으나 재수가 없으면 오히려 거꾸로 한 층 내려가게 될 수도 있는 문.
제각각이다.
확률 싸움이고, 운이 좋은 경우보다는 나쁜 경우가 많아서 헌터들은 키 몬스터를 싫어했다.
잡기는 어려운데, 잡았을 때의 특전이 제한적이기 때문이다.
대미궁 입구의 차원문처럼 열린 차원문의 색깔마다 연결된 출구가 달라, 운이 많이 작용한다는 부분도 한몫했다.
‘내가 괜히 고인물이 아니고, 미궁이 괜히 미궁이 아니지. 정직한 이동 루트만 존재한다면 그게 미궁이겠어?’
헌터들에게는 키 몬스터가 만들어 내는 차원문과 미궁 다음 층계와의 연결이 단순한 운처럼 보이겠지만.
내 머릿속에는 대미궁에서 하루에도 수백 번씩 피를 흩뿌려 가며 희생해 준 ‘플레이어’들의 기억과 혼이 살아 숨 쉬고 있다.
‘아잔(AZAN), 노바(NOVA), 썬(SSUN), 구우(GUU).’
나는 마치 암호문을 연상케 하는 문구를 줄줄이 외웠다.
이것은 바로 10층부터 25층 구간까지 키 몬스터를 죽였을 때.
다음 층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설정되어 있는 차원문의 타입을 말하는 것이다.
즉 10층에서는 A타입의 차원문을 선택해야 하고, 11층에서는 Z타입, 12층에서는 다시 A타입.
이런 식이다.
“어디 보자…….”
키 몬스터의 위치를 찾았다.
보스 몬스터는 별도로 만들어진 보스 방에 있는 반면, 키 몬스터는 필드를 마음대로 돌아다닌다.
그때그때 임의로 키 몬스터가 지정되기 때문에, 나조차도 예상이 불가능하다.
아마 키 몬스터가 된 몬스터 당사자(?)도 모를 것이다.
바로 그때.
또각또각. 또각또각.
제법 청아한 발굽 소리가 가까이에서 들렸다.
나와 클로이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돌아갔고, 그 자리에는 정말 또랑또랑한 눈빛을 한 작은 노루 한 마리가 있었다.
“귀여워요.”
클로이가 노루를 바라보며 말했다.
내 생각도 같았다.
거친 미궁의 풍경에는 어울리지 않는 귀여운 녀석이었다.
한데 바로 그때.
크오오오!
노루가 괴성을 터뜨리더니, 순식간에 전신이 거대화되기 시작했다.
나는 노루의 변화를 보고, 녀석의 본질을 즉시 알아차렸다.
바로 이 녀석이!
10층의 키 몬스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