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g Player RAW novel - Chapter 186
제 186화
64장. 나스 대미궁 – 4화
트랜센던스 패럴라이즈.
내가 첫 번째로 잡은 선택지는 ‘마비’였다.
가벼운 터치와 함께 노루에게 마비 기운이 주입되자, 녀석이 몸을 부르르 떨다 이내 멈춰 버렸다.
파앗!
그 시점에 클로이는 이미 내 머리 위로 훌쩍 뛰어넘어, 노루에게 향하고 있었다.
귀여웠던 노루가 순식간에 키 몬스터로 변해 버렸지만, 당황하거나 망설이는 모습은 전혀 없었다.
거대화되며 이족 보행의 몬스터로 변해 버린 노루.
녀석의 어깨에 힘껏 올라탄 클로이는 양손에 멸살의 단검과 스텔라드 단검을 움켜쥔 채.
서걱! 서걱! 서걱!
열심히 노루의 목 옆쪽을 그었고, 동시에 쇄골 쪽에 끊임없이 단검을 찔러 넣었다.
끄오오오!
거대화와 동시에 외피 강화까지 이뤄진 터라, 공격 몇 번에 죽지는 않았다.
키 몬스터의 무서운 점은 그것이다. 갑자기 예상치 못하게 변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육체가 강화된다는 것이다.
게다가 공략법이나 패턴이 잘 알려진 보스 몬스터와 달리, 정해진 공격 패턴이 없었다.
그저 자신이 ‘꼴리는 대로’ 움직일 뿐이다. 그리고 노루의 필살 대응은 바로…….
“뿔로 들이받기로군.”
푸욱! 푸욱! 푸욱!
거칠게 콧김을 뿜어내던 노루가 어깨 위에 달고 있는 클로이를 무시한 채, 나를 과녁 삼아 달릴 준비를 했다.
요리조리 피하며 녀석을 약 올리면 좋겠지만 상책은 아니다. 클로이가 매달려 있기 때문이다.
클로이의 시선이 내게 향했고, 우리는 무언의 눈빛을 교환했다.
나는 버티겠다고 했다.
즉, 클로이에게 마음 놓고 ‘극딜’을 하라는 신호를 보낸 것이다.
클로이가 바로 자세를 잡았다.
그리고.
푹! 푹푹! 푹푹!
미친 듯이 단검을 내리찍기 시작했다.
고개를 흔들어도, 어깨를 흔들며 몸부림을 쳐도 클로이는 노루의 어깨 위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그러자 클로이는 어쩔 수 없다고 판단했는지, 노루가 나를 향해 전속력으로 돌진하기 시작했다.
지이잉. 지이잉.
트리플 트랜센던스로 강화시킨 퍼펙트 실드를 펼쳤다.
순간 1만 8천의 마력이 빠져나갔지만, 이제 이 정도의 마력 소모는 크게 부담이 없다.
크오오오!
하지만 노루 녀석에게는 실드가 해 볼 만한 벽처럼 느껴졌는지, 녀석은 고개를 숙인 채 그대로 돌진했다.
“후.”
동시에 클로이가 짧게 숨을 토해 내며, 잠시 노루에게서 거리를 두며 떨어져 나왔다.
노루와 같이 실드에 충돌했다가는 그 충격을 함께 받게 될 것이라 영리하게 빠진 것이다.
쿠웅!
“크음!”
방금 전까지 순한 눈빛으로 지켜보던 노루가 맞나 싶을 정도로 들이박힌 충격은 상당했다.
물론 실드에 균열이 생기지는 않았다.
평범한 퍼펙트 실드라면 박살이 났겠지만 트리플 트랜센던스가 아니던가? 만만치 않을 터였다.
푸욱! 푸욱! 푸욱!
실드를 깨부수지 못한 충격에 잠시 노루가 멈춘 사이, 클로이가 또다시 단검 공격을 퍼부었다.
이번에는 더 집요했다.
상처를 비집고 들어가는 단검에서는 푸른 기운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포르미도에게 전수받은 기술이라고 했다. 단검에 마력을 불어넣어, 피해량을 대폭 높이는 것이다.
‘그렇다면.’
노루의 공격이 멈칫한 사이.
나는 클로이가 있는 위치를 향해 날아올랐고, 클로이는 아래로 자연스럽게 내려왔다.
그다음.
노루의 다리 뒤쪽과 오금이 위치한 방향에 자리를 잡고는 단검으로 매섭게 양발을 찔러 버렸다.
끄워어어!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노루의 살점과 근육을 찢어 내는 클로이의 손길에는 자비가 없었다.
나는 노루의 어깨에 깊게 파인 상처 속으로 손을 밀어 넣었다.
그리고 확실하게 놈에게 일격을 먹일 수 있는 마법을 꺼내 들었다.
‘퀸튜플 트랜센던스 애시드 포인트.’
2클래스 산성 마법 애시드 포인트. 그것을 다섯 배인 퀸튜플로 강화한 마법이었다.
슈르륵.
이윽고 손끝을 떠난 강산성의 액체가 노루의 상처를 비집고 들어가 깊숙한 곳으로 향했고.
치이이익! 치이익!
타는 냄새와 함께 노루의 몸이 들썩이기 시작했다.
워억! 우억! 워럭!
고통에 몸부림치는 노루의 상체가 아이스크림처럼 녹아내리고 있었다.
양팔로 상처를 휘감으며 어떻게든 해 보려고 하는 듯했지만, 불가항력이었다.
애초에 몸속에서 뼈와 살, 근육과 장기를 녹이고 있는 강산성의 액체를 건드릴 수도 없기에.
평범한 애시드 포인트였다면 상처 부위의 근방만 녹이고 끝났겠지만, 트랜센던스는 역시 달랐다.
꺼억…….
이윽고 노루가 눈을 까뒤집으며 나와 클로이의 앞에 쓰러졌다.
힘없이 축 늘어진 혓바닥과 함께 노루의 목숨이 끊어졌다.
[칭호 ‘신속 처치(키 몬스터)’를 얻었습니다.] [민첩 50이 증가합니다.]‘오, 좋은데? 나에게도 좋지만, 클로이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칭호다.’
신속 처치는 키 몬스터를 1분 내로 죽이면 얻는 칭호다.
달리 시간 계산을 하고 싸운 것은 아니었는데, 오래 걸리지 않았던 모양이다.
“몸이 좀 더 가벼워지고 빨라지는 느낌이에요.”
감각에 예민한 클로이가 바로 변화를 알아차렸다. 심안으로 살펴보니, 과연 민첩이 50 올랐다.
“체감이 돼?”
“네, 확실히.”
“나스 대미궁이 위험 요소도 많고 난이도도 높은 곳이기는 하지만, 이렇게 이점을 집요하게 취하면 도움이 될 부분이 많아.”
“아쉬워요. 다른 동료들도 함께 왔어야 했는데.”
자신의 변화를 크게 느꼈는지, 클로이가 아쉬워했다. 자신 혼자만 얻었다는 생각이 든 모양이다.
“걱정 마. 나중에 모두 함께 다시 올 거니까. 한 번만 오고 끝낼 생각이면 이렇게 오지도 않았어.”
진심이었다.
나스 대미궁 지하 25층 공략?
이것은 시작일 뿐이다.
나는 나스 대미궁 지하 100층까지 내려갈 원대한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미궁을 정복할 정도의 수준은 갖추어야, 성마 대전에 대비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상대는 마물, 마수, 마족뿐만이 아니라…… 마왕도 있다.
미궁 하나 공략하지 못한 인간이 마왕을 어찌 상대하겠는가? 간단명료한 생각이었다.
“생각이 짧았네요.”
“아냐. 어쨌든 걱정하지 마. 우리 모두가 강해질 수 있는 방법을 항상 생각하고 있으니까. 그리고 그 계획에는 클로이도 너도 항상 포함되어 있어.”
내 말에 클로이가 대답 대신 미소를 지어 보였다.
요즘 제법 자연스러워진 클로이의 미소가 참 보기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디 보자. 10층부터 13층까지는 아잔(AZAN). 그럼 10층이니까 A타입 차원문으로 들어가야 하고, 오늘 날짜에서 10층의 A타입 차원문의 색깔은…….’
기억, 그리고 지도의 내용을 꼼꼼히 읽는 분석을 통해 나는 빠르게 정답을 찾아갔다.
그렇게 1분이 지났을까?
정답인 색깔을 찾았다.
“클로이, 검은색 차원문이야.”
“방금! 방금 바뀌었어요.”
클로이가 손끝으로 가리킨 노루의 시체 뒤에는 과연 검은색의 차원문이 있었다.
노루가 드롭 한 아티팩트나 정수는 없었기 때문에, 달리 챙길 것은 없었다.
“들어가자. 이제 11층으로!”
우리는 미련 없이 바로 차원문 안으로 향했다.
그리고 얼마 후.
[‘나스 대미궁 10층 공략자’의 칭호를 얻었습니다!]미궁 10층의 보스 몬스터를 처치하지 않고도 11층에 도착한 공략자가 될 수 있었다.
* * *
미궁 10층의 키 몬스터였던 노루를 죽였을 때는 보상이 신속 처치 하나뿐이었지만.
층계를 내려가면 내려갈수록 보상이 점점 더 붙기 시작했다.
개당 1만 골드 – 전생 100억 원 가치 – 의 초월급 마정석을 하나씩 얻음은 물론이고.
고농축 회복 포션의 재료가 되는 ‘재생의 피’도 얻을 수 있었다.
이것을 배합법에 맞춰 포션으로 만들면, 복용 즉시 체력을 100% 회복하는 ‘슈퍼 포션’을 제작할 수 있었다.
그간 자레드는 슈퍼 포션의 재료가 뭔지는 알고 있었으나 어디서 구해야 할지 몰랐었는데, 그것이 대미궁의 키 몬스터에게서 나왔던 것이다.
상위 층계로 가면서 난이도는 높아졌지만, 전리품을 챙기는 자레드는 대만족이었다.
무엇보다 슈퍼 포션의 재료인 ‘재생의 피’가 착착 모인다는 점이 기분이 좋았다.
이것이 있으면 전쟁 중 병사들의 신속한 치유 및 회복에 큰 도움이 된다.
보통 국가들이 예산과 재료 확보의 문제로 포션 보유량이 극도로 낮은 것을 생각해 보면!
현재까지 얻은 ‘재생의 피’로 최소 5천 명 이상의 부상병을 치료할 수 있을 것으로 예측됐다.
25층까지 무난히 진입한다면, 최소 1만 명이 혜택을 볼 수 있는 포션 제작이 가능하다.
치유사가 없더라도 충분히 응급 치료 및 회복의 역할을 담당할 수 있는 포션이 생기는 것이다.
* * *
‘역시 실전은 달라. 이거였어. 내가 원했던 건 자레드 님과 함께 던전에서 호흡하면서 목숨을 걸고 싸우는 이 전투였어!’
한편 클로이는 자레드와 함께 25층으로 향하는 내내, 만족에 만족을 느끼고 있었다.
매 층마다 격전의 연속이었고, 위험했던 상황도 많았다.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승리했다.
무엇보다 자레드의 존재가 너무나도 든든했다.
자레드는 전략적으로 자신을 전면에 내세우기도 했다가, 다시 치고 들어오기를 반복하며 자연스럽게 싸웠다.
모든 전투의 부담을 자신 혼자서 짊어지려 하지도 않았고, 클로이에게 모두 전가하지도 않았다.
서로의 연계 플레이를 노렸다.
그것은 굳이 말이나 신호로 교환하지 않아도, 움직임에서 느낄 수 있는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최고의 짝꿍.
클로이가 떠올린 표현이었다.
자레드는 스스로 빛나면서도 동시에 곁에 있는 자신까지 빛나게 해 주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목숨을 건 위험한 전투가 아이러니하게도 내내 즐거웠다.
전사로서 살아 숨 쉬는 보람을 확실하게 느끼는 듯했다.
‘나를 이만큼 잘 알고 있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
단언컨대 없다고 생각했다.
어린 시절을 함께 보내 온 엘프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클로이의 부모는 그녀를 어떻게든 궁수로 키우려고 했었으니까.
암살, 위장, 기만에 능하다는 사실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고집스럽게 궁술을 가르치려 애썼었다.
첫 스승이었던 엘라도 어쌔신으로서의 가르침을 준 부분은 그리 많지 않았다.
물론 그녀 덕분에 기본기는 확실히 늘었으나, 스스로의 한계를 뛰어넘지 못했다.
하지만 자레드를 만나면서 모든 것이 달라졌다.
새롭게 태어난 것이다!
그녀의 내면에 잠들어 있던 암살자의 기질을 자레드가 모두 끄집어냈다.
그리고 또다시 한계를 느낄 즈음, 포르미도라는 최고의 스승을 구해 주었다.
‘오로지 나를 위해, 자레드 님이 나를 위해서 희생해 준 거야.’
클로이의 생각은 한결같았다.
자레드가 고마웠고 감사했고, 그런 만큼 털어 낼 수 없는 애틋한 감정이 솟아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일까?
묵묵히 다음 층계로 향하려는 자레드의 뒷모습을 보자, 자신도 모르게 감정이 솟아올랐다.
‘더 가까이 가면 안 되는 걸까? 내 마음은 점점 커지고 있는데.’
그것은 바로 그간 꾹꾹 눌러 보려고 몇 번이고 다짐했지만, 결코 털어 낼 수 없었던!
자레드를 향한 연모의 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