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g Player RAW novel - Chapter 199
제 199화
68장. 압도적인 힘으로! – 4화
“모두 물러서지 마라! 온 힘을 다해 버텨라! 우리가 무너지면 왕국의 북쪽이 전부 크리비아 놈들의 수중에 넘어가게 된다!”
북부군 총사령관 칸토나.
그는 거의 피를 토할 정도로 독하게 소리를 질러가며, 파우페르 왕국군을 독려하고 있었다.
채 한나절도 되지 않는 동안에 국경 방어선 세 곳이 무너졌다.
연전연패였다.
자정에 시작된 전쟁은 아직 동이 트기 전임에도 불구하고, 최악의 상황으로까지 치닫고 있었다.
‘마치 괴물을 보는 듯해. 무슨 영약이라도 먹은 것인가? 병사들의 기세가 하늘을 찌르는 것 같다.’
병사들을 독려하고 있었으나, 칸토나의 속은 문드러져 갔다.
크리비아 왕국군은 강해도 너무 강했다. 그들은 일개 병사까지 용맹하게 달려들어 싸웠다.
그뿐만 아니라 철 무기의 위력을 앞서는 켈디아 무기의 위용도 대단했다.
켈디아 무기로 무장한 크리비아 왕국군은 거침이 없었다. 전원 무장 상태라 예외도 없었다.
애초에 전방의 힘겨루기가 전혀 되지 않았다.
1선에서 화력의 차이가 심하게 나니, 먼저 무너지는 것은 항상 파우페르 왕국군이었다.
기사단의 전투도 마찬가지.
독기를 품고 엘라의 지휘 아래 돌진하는 아그레시오 기사단은 마치 저승에서 온 죽음의 기사단을 보는 듯했다.
그간 술과 나태함에 찌들어 느슨해진 파우페르 왕국의 기사들은 그들의 상대가 전혀 되지 못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최전방을 휘젓고 다니는 여검사 – 레나 – 와 암살자로 보이는 남자 – 클로이 – 앞에서 병사들이 추풍낙엽처럼 쓰러지고 있었다.
여검사는 언뜻 보기에도 스물도 되지 않은 어린 나이로 보였지만, 검기와 비슷한 것을 썼다.
검을 잡은 이후, 40년 검술 외길 인생을 살아온 자신도 깨닫지 못한 검의 오의를…… 그녀는 아무렇지 않게 펼쳤다.
앞을 가로막는 병사들은 마치 허수아비처럼 픽픽 쓰러져 갔다. 대결이라는 단어가 아예 성립하지 않았다.
그리고 암살자의 경우에는 그나마 검이라도 몇 번 부딪혀 보는 앞의 상황과 달리, 일방적으로 아군을 쓰러뜨렸다.
병사들이 암살자를 상대로 하는 것은 그저 잔상만 열심히 쫓다가, 뒤에서 기습을 당해 목숨을 잃는 것이 전부였다.
“게다가 저런 말도 안 되는 치유력을 보유한 치유사는 또 어디서 나타난 것이냔 말이다.”
칸토나는 기가 찼다.
헤이즈가 가는 곳에서는 고통에 신음하며 쓰러져 가던 병사들도 금세 생기를 되찾고 일어났다.
힐 마법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고도의 치유력이 병사들의 초고속 회복을 도왔다.
치유사 하나를 육성하기가 그렇게 어렵다고 한다.
하물며 파우페르 왕국에서도 가장 높은 경지에 있는 치유사가 디바인 포였다.
한데 헤이즈는 벌써 디바인 파이브의 경지에 오른 상태, 이는 특별한 경우로 친다고 하더라도 10년은 족히 빠른 성취였다.
게다가 헤이즈를 노리고 칸토나가 궁병대를 이용해 집중 사격을 퍼부어 보기도 했으나.
그녀의 곁을 지키고 있는 타넥스에게 철저하게 막혔다.
올라의 인공지능은 집요하다 싶을 정도로 헤이즈의 모든 위험 가능성을 차단해 버렸다.
“하…….”
방금 전까지 병사들의 사기를 북돋우려 했던 자신의 외침이 무색하게 전황은 그야말로 최악이었다.
전방, 후방, 좌측, 우측 할 것 없이 모든 방향에서 아군의 전열이 동시에 무너지고 있었다.
총체적 난국.
이 말로 전황의 모든 것을 요약할 수 있을 정도였다.
전장에서 잔뼈가 굵은 군인이자 노련한 사령관인 칸토나도 ‘대안’을 떠올릴 수가 없었다.
‘마법사단이 합류만 해 주면 되는데, 도대체 왜 오지 않는 거야!’
칸토나는 아직 지원이 오지 않은 레이진의 마법사단을 떠올리며 불같이 화를 냈다.
그래도 나름 정예라 불리는 마법사단이 아닌가?
그들이 있다면 이 방어선을 버리고, 4차 방어선으로 다음을 도모해 볼 수도 있을 듯했다.
시간을 조금만 더 끌면 왕도에서 지원군이 출발할 테고, 그다음으로 렌투스 제국에 지원 요청을 해 볼 수도 있을 터였다.
지원이 절실했다.
이대로 가면 정말 대패라는 결과물을 받아 들 가능성이 컸다.
한데 바로 그때.
“오! 지원군이다!”
“파우페르 마법사단인가!”
뒤를 보던 병사들이 반가운 표정으로 소리쳤다.
제법 많은 인영이 플라이 마법으로 상공을 가르며, 빠르게 이쪽으로 접근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드디어!”
반가운 것은 칸토나도 마찬가지였다.
레이진을 위시한 용맹한 마법사들이 있다면, 전략적으로 유리한 수비의 이점을 어떻게든 살릴 수 있을 듯했다.
“어서! 어서 이쪽으로!”
칸토나가 힘껏 손을 흔들었다.
크리비아 왕국의 군인들이 바로 코앞까지 몰려들었지만, 드디어 반격의 서막이 올랐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다음 순간.
“아……!”
칸토나를 포함한 파우페르 왕국의 모든 병사들이 하나된 목소리로 탄식을 터뜨렸다.
마법사들의 전면에서 모습을 드러낸 것은 바로.
“자레드.”
크리비아 왕국의 국왕이자 마법사이기도 한 자레드였다.
칸토나는 직감했다.
그들이 후방에서 나타났다는 것은 이미 파우페르 마법사단의 ‘정리’가 끝났다는 것을.
다시 말해 그들이 전멸을 당했든 패주했든 간에, 상황이 완전히 종료된 것이라고 말이다.
“끝났다…….”
지금까지의 격렬했던 저항이 모두 부질없어졌음을 느꼈다.
깡!
칸토나가 검을 던졌다.
완벽한 항복 의사였다.
여기서 더 이를 악물고 싸워 봤자, 남는 것은 전멸밖에 없음을 칸토나는 너무도 잘 알았다.
자신의 목숨은 바칠지언정, 이제 막 성인이 된 신병들까지 모두 저승길로 몰아넣고 싶지 않았다.
당장에 상공에 떠 있는 마법사들을 견제할 수단이 단 하나도 없다는 것도 한몫했고.
“모두 무기를 버려라!”
칸토나가 미련 없이 소리쳤다.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파우페르 왕국군이 앞을 다투어 무기를 던지고, 무릎을 꿇었다.
모두가 드러내어 말하지 않았을 뿐, 처음부터 절대 열세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래도 최선을 다해서 싸워 보았으나 이제는 한계였다. 더 이상의 희망은 없었다.
“…….”
확실한 항복 의사.
그 모습을 직접 확인한 자레드가 마법사단의 공격 준비를 멈추고, 조용히 전장으로 내려왔다.
이미 끝난 전쟁에 더 이상 피를 흘릴 필요는 없었으니까.
* * *
해방의 9월.
파우페르 왕국의 백성들은 자신들의 9월을 그렇게 불렀다.
각지에서 모든 백성이 쌍수 들어 크리비아 왕국군의 진공을 환영했다.
그중에 일부 백성은 용기를 내어 봉기를 일으켰고, 탐관오리들을 때려잡아 감옥에 가두었다.
그만큼 모든 백성이 하급 관리부터 시작해서, 국왕 파피스 9세에게까지 가진 반감과 원망은 엄청났다.
파우페르 왕국의 군대는 크리비아 왕국군이라는 강력한 적과 맞서기에 앞서, 내부부터 무너져 내렸다.
이것이 만들어 낸 나비효과는 엄청났고, 덕분에 왕도 파센티아로 향하는 고속도로가 활짝 열렸다.
심지어 중간에는 요충지인 관문 수비를 담당하던 부대들까지도 줄줄이 항복했다.
군인들마저도 국가를 저버린 것이다. 그만큼 그들은 새로운 변화에 대한 갈망이 컸다.
그 결과.
9월이 채 끝나기도 전에.
파피스 9세는 왕도 파센티아에 마련된 특설 처형장의 단두대에 머리를 올리는 신세가 되었다.
“자레드! 내가 죽으면 왕국 전역에 있는 나의 충성스러운 부하들과 내 자손들이……!”
“처형을 집행해라. 한순간도 이놈과는 말도 섞기 싫으니.”
시이이잉!
“자레드, 네 이……!”
파피스 9세는 제대로 된 유언을 남길 새도 없이, 자레드에 의해 처형됐다.
그 순간.
“와아아아! 폭군이 죽었다!”
“술과 여자에 빠져 살던 미친 악마가 드디어 죽었어!”
“크리비아 왕국 만세! 새 국왕 폐하 만세!”
모든 백성이 열렬히 환호했다.
그들에게 파피스 9세의 죽음은 하루하루가 지옥 같았던 삶의 종식을 알리는 희망의 신호탄이었다.
크리비아 왕국에 넘어간 파우페르의 영토 전역에서는 대대적인 탐관오리 색출 작업이 진행 중이었다.
대다수의 관리가 매관매직이나 비리에 엮여 있어, 행정 체계의 혼란이 어느 정도 예상됐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레드는 엄정히 법을 집행했다.
여기서 제대로 탐관오리들을 청산하지 않다가는 전생의 ‘대한민국’에서 경험한 친일파처럼 두고두고 문제가 될 수 있음을 알아서다.
공백을 최소화하기 위해 자레드는 율리안을 필두로 한 엘리트 행정 관리들을 대거 데려왔다. 덕분에 혼란은 빠르게 수습되었다.
* * *
10월 1일.
렌투스 제국에 위치한 갈라딘 공작의 저택.
그의 저택에는 소집령을 받고 한곳에 모인 렌-세븐이 갈라딘의 말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윽고 보고서의 내용을 모두 확인한 갈라딘이 말문을 열었다.
“우리가 제대로 손도 써 보기 전에 파우페르 왕국이 크리비아의 손에 넘어가 버렸다.”
“켈디아 무기의 위력이 엄청나더군요. 도대체 그런 원석을 어떻게 발견하여 가공하는 건지…….”
원스넬이 인상을 찌푸렸다.
켈디아 원석과 무기는 극비리에 채굴, 제작이 이뤄지고 있어 도무지 제작법을 알 수가 없었다.
일반 병사들의 전투에서부터 무기의 차이가 극명하게 나니, 왕국의 군대 전체가 우르르 무너지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
“우리가 함부로 움직일 수 없도록 신데르스 왕국이 중간에서 병력 배치를 꾸준히 바꾸는 것도 눈엣가시 같은 일이고.”
갈라딘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크리비아 왕국과 일심동체로 움직이는 신데르스 왕국의 모습을 절대 곱게 볼 수 없는 탓이다.
“신데르스 왕국이 있는 북쪽으로의 진군은 힘들다. 그렇다고 말루스, 보누스 왕국을 치기에는 전선이 과도하게 길어질 우려가 있지.”
“네, 맞습니다. 어디를 공격하더라도 위험 요소가 많습니다.”
렌-세븐의 둘째인 투카가 맞장구를 쳤다.
렌-세븐 모두의 생각과 같아서, 그들은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크리비아 왕국이 전쟁의 포문을 열었다. 우리도 당초의 계획을 앞당겨, 신속하게 목표를 노려야 한다.”
“울롱 왕국을 노리십니까?”
“준비는 모두 끝났다. 개전에 앞서, 너희들이 껄끄러운 요인들만 제거해 준다면 한결 일이 수월해지겠지.”
“클클클.”
갈라딘의 말에 렌-세븐 전원이 비릿한 미소를 흘리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갈라딘은 고심 끝에 최종 목표를 확정했다.
얼마 전에 자레드가 모이즐을 빼내 온 나라, 울롱 왕국이었다.
“다만…….”
갈라딘의 표정이 다시금 어두워졌다.
자레드를 떠올릴수록 씁쓸해지게 되는 입맛 때문이었다.
그의 계략에 모두가 속았다.
자레드가 파우페르 왕국에 관심을 갖는 듯한 눈치를 조금이라도 보였다면 진즉에 알아챘을 텐데!
놈은 영악하게!
끝까지 속내를 숨겼다.
그리고 결전 전날에 은밀히 만들어 놓은 장거리 텔레포트 마법진을 이용해, 대군을 이동시켰다.
언뜻 봐도 마법진 구축에 수십만 골드의 재정이 소모됐을 듯하나, 추진에는 거침이 없었다.
“이제는 정말 확실하게 자레드를 견제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레드는 매우 강한 힘을 가졌으며, 또한 영리한 국왕이다. 아울러 누군가에게 종속되려 하지도 않지.”
“그렇습니다.”
“자레드를 발밑에 두지 못한다면 공존은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선택지는 하나지. 놈을 무너뜨리는 것뿐이다.”
“…….”
모두가 침묵으로 동의의 의사를 표시했다.
갈라딘과 렌-세븐의 생각이 정확히 똑같았다.
자레드는 지방의 소영주 출신으로 때를 잘 만나 왕국을 일으킨 운 좋은 남자가 아니었다.
충분히 칭제(稱帝)할 수 있을 황제의 재목이었다.
이제야 자레드의 진가를 확실하게 알게 된 지금.
갈라딘은 그것이 너무나도 속이 쓰려, 도저히 견딜 수가 없었다.